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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공사 수납원들’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나?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의 투쟁이 남긴 것⑦ 기록노동자 희정


 

“들어가서 청소해요.”


지난해 9월 한국도로공사 정직원이 된 이는 이렇게 말했다. 불법 파견 여부를 가르는 근로자지위소송에서 대법 판결(직접고용)을 받고 도로공사로 출근하는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다. 아니, 이제 톨게이트에서 일하지 않는다. 수납업무도 하지 않는다.


집단 해고가 있기 전, 도로공사는 이들에게 자회사와 직접고용 중에서 선택권을 주는 것처럼 굴었을 때부터 ‘청소’ 이야기를 했다.

“우리 보고 직접고용으로 가면 풀이나 뽑아야 한다고 했어요.”


도로공사 정직원(직접고용)을 선택할 경우, 전국 52개 지사로 뿔뿔이 흩어져 장거리 근무를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임금도 깎이고 정년도 연장되지 않으며, 수납업무는 새로 만들어진 자회사에서 맡아 하기에 당신들은 ‘풀이나 뽑아야 한다’고 했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수납 일을 “아무나 하는 일”이라며 폄하했던 도로공사가 이번에는 청소 일을 더 아랫자리 일로 상정해 협박의 수단으로 썼다.


그러나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도로공사 측의 얘기에 코웃음 쳤다.

“언제는 우리한테 풀 뽑는 거 안 시켰냐고요.”


대법 판결을 받고 먼저 현장에 복귀한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은 지금 한국도로공사 소속으로, 고속도로 관리 및 청소 업무를 하고 있다. (공공연대노조 제공)


수납 노동자들이 평소에도 수납업무만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들의 투쟁을 통해 알려진 일. 그러나 노동조합에 가입한 이들의 수가 많아지자, 영업소는 과적 차량 잡으라고 땡볕에 사람 세우는 일을 더는 시키지 않았다. 잡초 뽑기, 화장실 청소, 눈 치우기 등도 중단됐다.


시킬 수 없는 일이라는 건, 시키는 사람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노조가 생기자 멈췄다. 월급 받는 처지에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일이 실은 위법이고 불법이었음을, 일하는 사람들은 알게 됐다. 그렇게 ‘부당함’에 대한 감각이 깨어났다.


부당함을 몸으로 겪어낸 노동자들은 해고가 되자마자 농성에 들어갔다. 그러나 도로공사는 자신들이 저지른 부정을 인정하지 않았다. 10여 년 넘게 사람을 불법(파견)으로 사용했으면서, 법원 판결의 끝을 보겠다고 했다.


2019년 8월, 대법원도 불법 파견임을 인정했다. 판결이 나자 도로공사는 대법 판결자(중 직접고용 희망자 300명)만을 채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원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노동조합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법 판결자들에게 교육 소집 일정이 통보됐다.


왜 굳이 우리 일자리 빼앗아 남을 주고…


우여곡절 끝에 대법 판결자들은 교육 소집에 응하고 도로공사 각 지사에 배치받는다. 새로운 업무지에서 이들은 무엇을 하나.


“우리가 도로공사 50년 묵은 때를 다 벗겨내고 있어요.” 


한국도로공사 대관령 지사에서 일하고 있다는 서순분 씨. 경기도에 집이 있는 그는 평일에는 강원도까지 가서 일하고, 주말이면 화성 인근으로 돌아온다. 올해가 정년 앞둔 마지막 근무라 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이는 눈이 아프다고 했다.


“락스 써서 그래. 충실히 한다고 락스를 다 뿌려가지고. 그날 막 눈물이 나더라고. 부작용 같아. 내 가만 생각하니까. 도로공사가 우리한테 하나 얻은 게 졸음쉼터가 깨끗해졌다는 거. 깨끗하게 청소해놓고 거기서 쉰다니까.”


함께 자리한, 함평지사 유경화 씨가 걱정을 한다. 둘은 같은 영업소(경기도 매송)에서 근무한 사이다. 한 명은 강원도, 다른 한 명은 전라남도에 배치받았다. 경화 씨가 몸 상해가며 너무 열심히 하진 말라 해보지만, 순분 씨는 “하다 보면 충실해져” 한다. 그 충실도 말릴 겸 경화 씨는 졸음쉼터 청소할 때 유기용제를 많이 쓰면 안 되는 사실을 말해준다.


“졸음쉼터 아래 미생물로 정화를 하는 곳이 있어서 락스 물을 많이 쓰면 안 된다네요.”

서순분 씨는 처음 듣는 이야기인 듯하다. 

“어떻게 알았어?”

“사람들 오면 붙잡고 물어봤죠.”

사람들 누구? 도로공사 직원? 아니란다. 경화 씨는 졸음쉼터로 설비를 고치거나 정화조 점검하러 사람이 오면 붙잡고 물어봤다고 했다.


“도로공사 사람들도 그런 거 몰라요. 우리한테 말해주지도 않고. 자기들도 모를 거야. 다 용역을 써왔으니까.”


한국도로공사 소속으로 고속도로 관리 및 청소 업무를 하고 있는 톨게이트 노동자들.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제공)


도로공사는 졸음쉼터 관리를 비롯해 고속도로 정비와 청소 업무 대부분을 외주업체에 대행해왔다. 톨게이트 수납업무를 용역-위탁 주었듯이 말이다. 위탁업체가 하던 일이 톨게이트 노동자들에게 옮겨 갔다.


“우리 일하러 가는 당일, 외주업체 직원들이 그만뒀어요. 전에 일하시던 분들은 어디로 가세요? 하니까 다행히 계약 기간이 끝났다 하는데. 다른 지사는 갔더니 일을 하고 계신 분도 있었대요. 마음이 안 좋죠. 우리는 다행히 그분들 얼굴을 못 봤지만. 그 지사 같은 경우는 하루 같이 일을 했으니까 더.”


광주지사로 발령을 받은 최양예 씨의 말이다. 그는 서안산 영업소에서 근무했다. 차로도 3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먼 타지로 와서 다른 노동자가 떠난 자리에서 일한다.


“우리가 새로운 일자리 만들어 달라는 거 아니거든요.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려고 노력하는 거지. 왜 굳이 우리 일자리 빼앗아서 남에게 주고. 남의 일자리 빼앗아서 우리에게 주냐고요.”


치사가 바글바글한 일터


수납업무는 빼앗기고, 몇 개월 전 자신들의 처지와 흡사한 용역 직원들이 나가는 것을 보며 일한다. 서순분 씨에게 정규직 되고 좋은 점을 묻으니 “없어. 사원증 가진 것, 그것 말고는 없어” 한다. 임금피크제로 인해 정년을 앞둔 그는 월급마저 삭감당했다. 최저임금을 겨우 웃도는 수준이다. 그것 말고도 아쉬운 것이 많다.


“치사가 바글바글해.”


지사로 출근을 했더니 도로공사는 현장보조원이라는 새로운 직종을 만들어 놓았다.


“우리를 대하는 안 보이는 벽이 있잖아요. 우린 현장보조원이에요. 우리가 제일 밑에. 단계가 있더라고요.”(최양예)


기존 현장직에서 별도 분리된, 현장직보다 낮은 임금과 직군의 ‘현장보조원’. 그러나 치사가 바글바글한 데는, 도로공사의 태도나 첫 직군의 생소함에만 이유가 있지 않다. 직급과 호봉, 임금의 기준, 업무분장,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정작 일하는 사람들이 알 수 없다.


대법 판결 이후 도로공사는 교육 소집 명령을 내리며 ‘들어와서 일하라’ 이상을 말하지 않았다. 도로공사는 민주노총과 근무조건에 관한 어떤 것도 협의하지 않은 채 소집 명령을 내렸다. 업무 내용도, 근속 승계도, 노동조건도 정해진 것이 없이 오직 ‘직접고용(정규직)’ 사원증만 주겠다고 하니 업무 지시를 받을 때마다 혼란스럽다.


시키는 대로, 혼내는 대로 당하던 과거의 우리가 아니다


인터뷰를 위해 가져간 질문지에 ‘217일간의 농성 투쟁’이라고 적힌 것을 보며 서분순 씨는 손사래를 쳤다.

“우리는 100일 정도밖에 안 싸웠어.”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투쟁이 한창이던 9월, 도로공사의 소집 명령에 응했다. 중간에 김천 도로공사 본사 농성장을 떠나야 했다. 반 토막 싸움을 한 기분에 손을 젓는 게였다. “그러면 현장에 가서는 무엇을 하셨는데요?” 그러자 이리 말한다.

“우리야 싸웠지. 하루에도 몇 번을.”


코로나19 영향 이전까지만 해도 매일 아침 한국도로공사 각 지사 앞에서 아침 선전전을 진행했다.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제공)


권리를 아는 이들에게 일터는 평온의 공간일 수만은 없다. 지난해 9월 첫 번째 교육 소집이 통보되자, 노동조합은 사전 논의할 새 없이 조합원을 복귀시켜야 했다. 어떤 업무가 주어질지, 그 업무를 빌미로 어떤 탄압이 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민주노총 소속 대법 판결자들은 이것만 약속하고 갈 수 있었다. 일을 한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인지, 부당한 일이 아닌지 스스로 판단해 대응한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진 모르지만 부닥쳐 해결해야 할 거다 라고는 생각했죠.”(최양예)


노동조합으로 모여 싸운 기간 동안 몸으로 익혀온 부당함에 대한 감각을 믿고 자신의 판단에 따라 행동한다. 이 말을 달리하면, 일상이 투쟁이다.


“사무직(실무직), 현장직 구분을 둬서 자기들끼리도 엄청 차별을 하더라고요. 현장직 사람들은 사무직 사람들에게 함부로 못 하고. 저는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우리는 들어가면서부터 아주 그냥, 가만있질 않았어요.”


광주 지사 최양예 씨의 말이다. 현장보조직이라는 가장 아래 단계에 놓여 있어야 할 사람들이 가만 당해주질 않는다. 이들도 불과 1년 전만 해도 용역 직원, 중년 여성, 현장 근무자라는 2중 3중의 굴레에 쌓여 도로공사와 영업소 측의 갑질을 받아왔다. 그러나 벌어먹고 사는 일이란 게 원래 그런 줄 알았던 시절은 이제 끝났다. 부당함에 맞서는 법을 싸운 감각으로 안다. 그러니 “아주 그냥 가만히 있지 않”는다.


“갓길 옆에 진짜 요만한 길이 있어요. 흙이 있는 곳을 다져서 가드라인을 박아 놓은 거라 흙이 유실돼요.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요만큼 남아 있는 길을 청소를 하래요. 발을 디디면 떨어질 것 같은. 단체로 안 했어요. 그런 데를 꾸역꾸역하면 내 목숨 내놓고 해야 해.”


못하겠다고 한다. 그러면 도로공사는 업무 지시 불응이라 한다. 애초 정당한 지시가 아니었다고 항의한다. 세상에 익숙한 위계 관계 속에서 이들의 항의는 ‘대드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징계 협박이 온다. 그러나 영업소 사장이 ‘혼내는 대로’ ‘혼나던’ 예전의 이들이 아니다.


그래도 “일을 해온 가닥들이 있어 내 일처럼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사고도 난다. 최양예 씨는 결국 부상을 당했다. 도로 가드라인 너머에서 작업하다가 발이 구덩이에 빠진 것이다.


“우리 업무할 때 안전수칙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안전교육은 그냥 일반적인 온라인 교육을 시켜요. 거기에 우리가 일하는 거 관련한 내용은 없어요. 고속도로 비탈면 청소하고 그런 거 관련해서는 따로 안 받아요.”


예전에는 외주업체가 알아서 하던 일이다.(외주업체 직원들은 과연 적합한 안전교육을 받았을까?) 도로공사 자사 직원이 된 그들이 왔으나, ‘맡겨버리는’ 행태는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들어오면서, 우리 근로조건을 자기들이 급하게 얼른 만들었어요. 임금도 거기서 측정해버리고 강요하는 처지죠. 그러니까 매사에 갈등이 발생하는 거죠. 뭘 시킨다더라, 다음 달에는 이렇게 한다더라. 카더라 통신처럼 나오는 거예요. 공식적으로 뭘 이야기하는 사람도 없어. 대놓고 누구랑 이야기할 대상도 없고.”


이런 일은 반복된다. 서순분 씨는 얼마 전 해결된 일을 이야기해준다.


“고속도로에 버려진 쓰레기를 가져와 분리수거를 하는 위탁업체가 있어요. 그 업체가 일을 못하겠다고 했나, 업체를 바꾸는 중이었나. 안 가져가고, 쓰레기가 지사 건물 뒤에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는 거야.”


현장보조원에게 분리수거를 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현장보조원이라고는 대여섯. 적은 인원으로 하기에는 업무량도 많고 험한 일이다. 처음에는 다른 업체가 선정될 때까지 임시로 하자 하더니, 점점 그 기간이 길어졌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 지사장 면담을 요구했단다. 현장보조원 한 명이 대표로 올라가 지사장, 공구장(대리) 포함 관리직 5명과 마주 앉아 ‘우리는 못한다’ 통보를 했단다. 그래서 결국, “안 하게 됐어.”


“정규직만 되면 다 되는 줄 알았지. 산 넘어 산이야”라고 한탄하는 서순분 씨지만, 나는 의아했다. 가장 말단 현장직이 업무 지시가 부당하다며 직급 높은 상사에게 면담을 요청한다? 이게 어느 일터에서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아무리 좋은 직업, 높은 연봉, 안정된 직장을 성취했다 하더라도, 이들처럼 상사에게 내 노동의 권리(통제권)을 당당히 요구할 수 있을까. 칼퇴하는 데도, 회식 빠지는 데도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이 직장이라고 말하는 세상에서 말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이 되었을까.

“나는 뵈는 게 없다니까. 그렇지만 당당한 건 있다니까.”


우리 ‘대판자’들이라고!


서순분 씨는 ‘치사가 바글바글한 날’에는 이렇게 말을 던진다고 했다. “우리는 대판자들이라고!” 대판자, 자신이 만든 줄임말이다. 대법판결자. 때로는 한술 더 뜬다.


“우린 청와대에서 싸운 사람들이야. 청와대 사랑채 어딘지 알아? 거기까지 가서 싸운 사람이야.”

그러니까 높은 직급에 ‘쫄 것도’ 위축될 것도 없다는 소리다. 부당한 것은 부당한 거다.


“우리는 당당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 없어요. 정당한 것 가지고 이야기를 하니까. 내가 불의를 하고 타협을 하는 게 아니니까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서울 톨게이트 캐노피에 올라간 톨게이트 노동자들, 지난해 7월의 일이다.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제공)


‘대판자’라는 그이만의 표현은 자신이 정당한 요구를 했고, 그 정당함을 (법으로) 인정받아 이곳에 있는 사람이란 사실을 알리는 말이다. 솔직히 일하는 사람이 자기 권리를 말하는 데 정당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 있나. 칼퇴근도 정당하다. 회식 불참도 정당하다. 그러나 제때 퇴근조차 못 하는 이유는 현실 밥줄에 있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에게도 법은 멀었다.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해고가 됐다. 그러나 그 법을 가까이로 가져온 것은, 그래서 ‘대판자’라고 자신의 정당함을 법 판결로 표현할 수 있던 것은 이들이 서울과 김천에 농성장을 펼치고 ‘법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자들’에게 맞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이곳, 도로공사에 있을 수 있었다. 뭉치고 싸우는 과정을 거쳐 여기에 온 이들에겐 밥줄 가지고 하는 협박이 통하지 않게 됐다. 본부장, 지사장, 현장직, 사무직 같은 용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일터가 사람을 부리고 통제하기 위해 만든 위계는 이들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한다.


도로공사의 묵은 때 벗기기


서순분 씨는 김천 도로공사 본사 농성 생활에서 배운 게 있다고 했다.


“일명 땅따먹기야. 본사 점거했을 때 우리가 점점 땅을 확장해서 경찰들 야금야금 다 몰아냈어요. 이제 (도로공사에) 들어왔으니 땅따먹기를 해야 해. 하나하나 준비를 하는 거야. 제설차도 대형면허 따서 우리가 몰 수 있을 거 같아.”


사람들끼리 쉬는 시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너는 이것을 할 수 있어, 준비를 해 놔. 그러니까 안에서 개척한다고 할까?”


집에서도, 영업소 직장에서도 자기 자리를 갖지 못하고 종종거렸던 불과 1년 전 이들이 떠오른다. 이제는 자신이 설 곳은 물론이고, 영역을 넓히는 일을 고심한다. 개척이건, 땅따먹기이건, 지금 이 자리가 자신들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양예 씨에게 있어서 부당함을 되돌리는 것은 자신들이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는 일이라 했다.


“우리가 직접고용 되어서 수납업무를 계속하는 것이 목표예요. 우리가 계속 이 일을 한다고 생각 안 해요. 계속한다고 해도 지금 같은 처우를 받고 하진 않을 거고. 개선할 거고.”


도로공사는 오는 5월 14일 자로, 해고된 톨게이트 노동자 전원에게 출근 명령을 내렸다. 대법원 판결이 난 지 259일 만의 일이다. 물론 이들의 출근을 앞두고도 업무, 직급, 근속 인정, 임금 등 노동조건에 관한 어떤 협의도 노동조합과 공식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여전히 도로공사는 노동조합(민주노총)과 협의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새로 복직을 할 톨게이트 노동자들 또한 앞서 현장에 들어간 대법 판결자들처럼 스스로 판단하고 부당함을 가려, 때론 싸워야 한다. 이들을 기다리는 것도 낯선 청소 업무와 원거리 발령, 그에 따른 동료와의 헤어짐이다. 7개월을 같이 싸운 영업소 ‘동지’들과 떨어져 지낸다. 홀로 맞서야 하나. 마음을 다잡는다.


해고된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5월 14일 현장 복귀를 앞두고 있다. 웃으면서 당당하게 함께 싸운 결과이다.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제공)


출근을 앞둔 한 이에게 “걱정되진 않으셔요?” 물은 적이 있다. 그이는 차분한 어조로 다짐하듯 말했다.


“불안하지 않아. 그래도 사람인지라 내가 어떻게 싸워야 할지 걱정은 하지. 누가 가르쳐주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하지만 우리가 싸우던 힘이 어디서 나왔겠냐고. 내 속에서 나온 거잖아. 싸움의 원천은 내 속에서 나오는 거거든.”(이민자, 충주 영업소)


싸우던 힘을 믿는다. 그리고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원거리 발령이 날 거라고 하니까 가족들이 안 하면 안 되냐고 그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싸웠는지에 대해서 가족들은 다 알고 있으니. 그 기간이 길지 않을 거고. 이것도 내가 싸우는 방식이다. 내 싸움 아직 안 끝났다고 하지요.”(이정미, 원주 영업소)


되찾아야 할 것이 있다. 앞서 대법 판결자들은 도로공사에서 하는 청소 일을 두고 “도로공사 50년 묵은 때를 벗기고 있다”고 했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벗겨내야 할 진짜 ‘묵은 것’은 청소로만 벗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새로운 출근지에서 들려줄 반가운 소식을 기다리고자 한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연재를 마무리하며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의 꼼수임에도, 암묵적으로 용인되어온 ‘자회사’ 문제를 폭로하며 거리로 나온 톨게이트 노동자들. 217일간의 투쟁 끝에 한국도로공사는 비록 ‘2015년 이후 입사자는 법원 판결에 따라 추후 고용 여부를 다시 판단하겠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일단 해고한 톨게이트 노동자 전원을 직접 고용하기로 했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현장 복귀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직접고용이 되었지만 일터에서의 임금‧직군‧업무 차별은 엄연히 존재한다. 또한 자회사를 포함해 도로공사엔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으며, 정부와 도로공사는 또 언제 어떤 핑계를 대며 직접고용된 이들을 비정규직으로, 자회사로 내칠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자회사 폐지-온전한 직접고용’ 요구는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시즌2’ 싸움에서 여전히 가져가야 할 과제이다.


그리고 그것은 1100만 비정규직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과제이기도 하다. 톨게이트 투쟁의 위대함과 상징성을 알기에, 싸움이 끝난 이후에도 많은 연대와 응원의 목소리들이 이어지고 있다. ‘톨게이트 투쟁 기록팀’은 일터에서 지속될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싸움과 노동을 응원하며 7편의 기사 연재를 마무리한다. (나랑, 희정, 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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