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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얼마든지 고칠 수 있대요!”
수진이, 지민이, 예슬이와 공부하다가 우연히 외모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
“선생님, 저희 엄마는 키만 크래요. 얼굴은 얼마든지 고칠 수 있지만, 키는 못 고친다며 키는 꼭 자라야 한대요!”
“우리 엄마도 그랬어요. 쌍꺼풀 수술은 나중에 할 수 있는데, 키는 늘릴 수 없다고.”
“수진아! 엄마가 쌍꺼풀 수술 해주신대?”
“예!”
“쌍꺼풀 없어도, 네 눈이 얼마나 예쁜데! 그리고 개성 있잖아.”
“아~ 아니에요. 쌍꺼풀 수술할 거예요!”
요즘 부모들이 외모에 대해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하는 줄은 몰랐다. 물론 사람의 가치나 능력을 외모로 평가해, 키가 작거나 못생기면 취직도 안 되는 현실이나, 성형수술을 자기투자의 하나쯤으로 생각하는 세태를 생각한다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지만 말이다.
누군가 세상이 이러니 어쩌겠냐고 변명을 한다면, 이런 현실조차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고 결국 우리 어른들 가치관의 반영 아니냐고 말해주고 싶다. 그걸 인정한다면, 어처구니없는 시류에 휩쓸리는 자기를 변명할 수 없을 것이고, 이렇게 뻔뻔스럽고 노골적일 수는 더더욱 없겠다 싶다.
외모보다는 됨됨이로 사람을 평가해야 한다고, 자기 외모에 자긍심을 가지라고 가르쳐도 이런 사람이 될까 말까 한 것이 교육이다. 그런데 이렇게 노골적으로 왜곡된 가치관을 주입시킨다면, 이들이 자라 어떤 어른이 될 지는 너무 뻔하지 않을까?
“그래? 너희들도 엄마들과 같은 생각이야?”
“예~!”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지민이와 수진이의 반응에,
“어휴~”하고, 또래아이들에 비해 키가 특별히 작은 예슬이는 한숨부터 쉰다.
“예슬이 걱정하는구나. 걱정 하지마! 더 클 거야. 그리고 더 크지 않아도 괜찮아. 선생님 봐! 키가 이렇게 작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불편한 게 하나도 없었어. 얘들아, 키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그리고 원한다면, 키도 크게 할 수 있어! 정말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야….”
나는 아이들에게 내 생각을 좀더 말했지만, 지금 얘기한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는 것 같아, 이 정도에서 말을 멈추었다.
부모의 가치관을 내면화하는 아이들을 보며
아이들은 어른의 생각을 정말 빨리 흡수한다. 특히, 부모의 생각은 더욱 잘 받아들인다. 그들은 부모가, 생각한 것을 말로 다하지 않아도 그들이 뭘 생각하고 원하는지 바로 알아차린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들 문법에 맞게 행동하고 대답한다.
옛날에 가르쳤던, 지금은 중학생이 된 은수의 어머니는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우리 애는 ‘이렇게 잘 못할 거면 그만 두지?’하면, ‘앞으로 잘 할 거예요’ 하고 너무 느물거리며 대답해요. 어찌나 속이 좋은지….”
은수 어머니는 말로는 딸의 능청스러움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지만, 은수의 쉬이 포기하지 않는 인내심과 여유 있는 태도가 마음에 들기도 한 것 같은 인상도 풍겼다. 꼬박 4년을 함께 공부해, 나는 은수는 물론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은수가 ‘그럼, 그만 두겠다’고 대답했다면, 은수는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건 은수의 진심일 수도 있지만, 어머님께서 원하시는 대답이 바로 그거라서 하는 말일 수도 있어요. 아이들은 부모가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거든요.”
나는 그녀가 좀 더 은수에게 자기 욕심을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녀는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또 얼마 전 준영이 어머니는 매우 안타까운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선생님, 우리 준영이는 무슨 애가 너무 돈만 좋아하고, 돈으로 모든 걸 평가하려 들어요. 어떡하죠?”
“그건 준영이의 잘못이 아니에요. 준영이의 그 생각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거든요. 바로 어머님과 아버님 생각의 반영이죠.”
“맞아요. 제가 바로 그래요. 하지만 애가 그러는 건 너무 싫네요.”
“꼭 노골적으로 말을 하지 않아도 부모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이들은 다 알아요. 그런데 왜곡된 가치관을 서슴없이 아이 앞에서 말하기까지 한다면, 그걸 내면화하는 건 당연하죠. ‘준영이가 이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하는 바로 그 모습으로 부모님들이 사셔야 합니다.”
그렇지만 준영이 어머니도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누구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런 속에서 아이들은 그들 부모의 생각과 가치관을 자기의 가치관으로 내면화시켜 나갈 것이다. 그래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부모의 좋은 모습은 물론 나쁜 모습까지 그대로 닮은 아이가 될 것이다.
세상에 자기 자식이 돈만 추구하는 어른이 되길 바라는 부모는 없다. 또 어떤 부모가 자식이 자기 외모에 자긍심 없는 사람이 되길 바랄까마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부모 밑에서 그와 다른 자식이 나올 수는 더더욱 없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나는 아이들이 좀더 진지하게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문제가 제기되면, 커리큘럼의 순서를 바꿔가며 요란을 떨면서 서둘러 토론을 벌이곤 한다. 그러나 이날은 진도를 바꿔서라도 이 문제(외모 추구하는 사회)에 대해 생각해봐야겠다고 마음먹지도 않았다. 가끔은 아이들에게 ‘이런 걸 가르쳐서 뭐하나?’ 하는 무력감에 빠질 때가 있다. 그날이 꼭 그랬다. 정인진 (※ 교육일기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일다는 어떤 곳?
[외모] “얼굴도 못생긴 게” [몸이야기] 다이어트 폭격에 대응하는 법 [고용] “Must be pretty”
서점 아동코너에서 다이어트, 몸짱 관련 책을 보는 아이 ⓒ일다
“선생님, 저희 엄마는 키만 크래요. 얼굴은 얼마든지 고칠 수 있지만, 키는 못 고친다며 키는 꼭 자라야 한대요!”
“우리 엄마도 그랬어요. 쌍꺼풀 수술은 나중에 할 수 있는데, 키는 늘릴 수 없다고.”
“수진아! 엄마가 쌍꺼풀 수술 해주신대?”
“예!”
“쌍꺼풀 없어도, 네 눈이 얼마나 예쁜데! 그리고 개성 있잖아.”
“아~ 아니에요. 쌍꺼풀 수술할 거예요!”
요즘 부모들이 외모에 대해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하는 줄은 몰랐다. 물론 사람의 가치나 능력을 외모로 평가해, 키가 작거나 못생기면 취직도 안 되는 현실이나, 성형수술을 자기투자의 하나쯤으로 생각하는 세태를 생각한다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지만 말이다.
누군가 세상이 이러니 어쩌겠냐고 변명을 한다면, 이런 현실조차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고 결국 우리 어른들 가치관의 반영 아니냐고 말해주고 싶다. 그걸 인정한다면, 어처구니없는 시류에 휩쓸리는 자기를 변명할 수 없을 것이고, 이렇게 뻔뻔스럽고 노골적일 수는 더더욱 없겠다 싶다.
외모보다는 됨됨이로 사람을 평가해야 한다고, 자기 외모에 자긍심을 가지라고 가르쳐도 이런 사람이 될까 말까 한 것이 교육이다. 그런데 이렇게 노골적으로 왜곡된 가치관을 주입시킨다면, 이들이 자라 어떤 어른이 될 지는 너무 뻔하지 않을까?
“그래? 너희들도 엄마들과 같은 생각이야?”
“예~!”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지민이와 수진이의 반응에,
“어휴~”하고, 또래아이들에 비해 키가 특별히 작은 예슬이는 한숨부터 쉰다.
“예슬이 걱정하는구나. 걱정 하지마! 더 클 거야. 그리고 더 크지 않아도 괜찮아. 선생님 봐! 키가 이렇게 작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불편한 게 하나도 없었어. 얘들아, 키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그리고 원한다면, 키도 크게 할 수 있어! 정말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야….”
나는 아이들에게 내 생각을 좀더 말했지만, 지금 얘기한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는 것 같아, 이 정도에서 말을 멈추었다.
부모의 가치관을 내면화하는 아이들을 보며
아이들은 어른의 생각을 정말 빨리 흡수한다. 특히, 부모의 생각은 더욱 잘 받아들인다. 그들은 부모가, 생각한 것을 말로 다하지 않아도 그들이 뭘 생각하고 원하는지 바로 알아차린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들 문법에 맞게 행동하고 대답한다.
옛날에 가르쳤던, 지금은 중학생이 된 은수의 어머니는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우리 애는 ‘이렇게 잘 못할 거면 그만 두지?’하면, ‘앞으로 잘 할 거예요’ 하고 너무 느물거리며 대답해요. 어찌나 속이 좋은지….”
은수 어머니는 말로는 딸의 능청스러움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지만, 은수의 쉬이 포기하지 않는 인내심과 여유 있는 태도가 마음에 들기도 한 것 같은 인상도 풍겼다. 꼬박 4년을 함께 공부해, 나는 은수는 물론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은수가 ‘그럼, 그만 두겠다’고 대답했다면, 은수는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건 은수의 진심일 수도 있지만, 어머님께서 원하시는 대답이 바로 그거라서 하는 말일 수도 있어요. 아이들은 부모가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거든요.”
나는 그녀가 좀 더 은수에게 자기 욕심을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녀는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또 얼마 전 준영이 어머니는 매우 안타까운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선생님, 우리 준영이는 무슨 애가 너무 돈만 좋아하고, 돈으로 모든 걸 평가하려 들어요. 어떡하죠?”
“그건 준영이의 잘못이 아니에요. 준영이의 그 생각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거든요. 바로 어머님과 아버님 생각의 반영이죠.”
“맞아요. 제가 바로 그래요. 하지만 애가 그러는 건 너무 싫네요.”
“꼭 노골적으로 말을 하지 않아도 부모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이들은 다 알아요. 그런데 왜곡된 가치관을 서슴없이 아이 앞에서 말하기까지 한다면, 그걸 내면화하는 건 당연하죠. ‘준영이가 이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하는 바로 그 모습으로 부모님들이 사셔야 합니다.”
그렇지만 준영이 어머니도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누구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런 속에서 아이들은 그들 부모의 생각과 가치관을 자기의 가치관으로 내면화시켜 나갈 것이다. 그래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부모의 좋은 모습은 물론 나쁜 모습까지 그대로 닮은 아이가 될 것이다.
세상에 자기 자식이 돈만 추구하는 어른이 되길 바라는 부모는 없다. 또 어떤 부모가 자식이 자기 외모에 자긍심 없는 사람이 되길 바랄까마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부모 밑에서 그와 다른 자식이 나올 수는 더더욱 없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나는 아이들이 좀더 진지하게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문제가 제기되면, 커리큘럼의 순서를 바꿔가며 요란을 떨면서 서둘러 토론을 벌이곤 한다. 그러나 이날은 진도를 바꿔서라도 이 문제(외모 추구하는 사회)에 대해 생각해봐야겠다고 마음먹지도 않았다. 가끔은 아이들에게 ‘이런 걸 가르쳐서 뭐하나?’ 하는 무력감에 빠질 때가 있다. 그날이 꼭 그랬다. 정인진 (※ 교육일기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일다는 어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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