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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용감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번 주에는 몇몇 아이들과 ‘용기’에 대한 공부를 했다. 자기가 용기 있는 어린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으며 수업을 시작했다. 또 자기와 싸워 이긴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함께 생각해보았다.
어떤 아이는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도와준 경험을 말했다. 수업 중 얼마나 용감하게 손을 들어 발표하는지를 이야기한 아이도 있고, 길을 잃었을 때 침착하게 대처해 다시 길을 찾은 사례도 등장했다. ‘정말 용감하구나’, 나도 생각했다. 눈을 반짝이며 발표하는 어린이들을 보면서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나도 그들처럼 정말 씩씩하고 용감했던 시절이 있었다.
초등학생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팔당수원지의 물을 서울로 공급하는, 어른 키보다도 높은 지름의 수도관이 지나가는 서울 근교에 살았다. 그걸 공사한 것이 4학년 때였는데, 땅에 묻기 위해 길에 가로로 차근차근 늘어놓은 수도관은 어디까지일지 가늠도 되지 않을 만큼 끝없이 이어졌다. 그것은 서로 맞붙어 있기도 하고, 조금 넓게 벌어져 있기도 했다.
그렇게 줄지어 있던 수도관은 바로 시골아이들의 하교길 놀이터가 되었다. 아이들은 그 위로 기어 올라가서는 수도관과 수도관 사이를 껑충껑충 뛰어 달려가며 놀곤 했다.
그건 정말 재미있어 보였다.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에 나도 그 위로 올라갔다. 지금 생각하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척척 내달리던 아이들은 고학년에, 체력도 좋은 남학생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그런 걸 따져볼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나는 4학년이기도 했지만, 또래아이들 사이에서 키도 엄청 작은 아주 쪼끄만 아이였다.
사이가 촘촘하게 붙은 곳을 뛰어 건너는 건 어렵지도 않고 재미있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촘촘한 것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발을 잘못 디디면 미끄러져 땅으로 곤두박질칠 수도 있을 것 같이 간격이 조금씩 벌어진 곳이 곧 나타났다. 물론, 다른 아이들은 그곳을 척척 잘도 뛰어넘었다.
나는 우선 그 앞에 멈춰 섰다. 땅이 멀찍이 내려다보이는 그 높은 데서 그냥 포기하고 내려와도 누가 뭐랄 사람이 없었다. 떨어질 수 있다는 것도 난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위험할 지도…. 그런데 왜 그곳을 꼭 뛰어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우선 나는 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서 있다가 숨을 고르고…. 몸을 뒤로 젖혔다, 앞으로 숙였다 반동을 굴러 발을 쭉 뻗어, 훌~쩍!
발이 둥근 수도관 가장자리에 살짝 닿기가 무섭게 화-악 밑에서 몸을 끌어내렸다. 수도관의 둥근 원통을 타고 몸이 빙그르 돌았고, 머리부터 수도관 깊은 구석에 처박히고 말았다. 많이 아팠지만, 다행히 둥근 원통에 충격이 반감되어 아무데도 다친 데는 없었다. 온몸이 욱신거려 잘 일어서기도 힘들었지만, 후회되기는커녕 마음이 아주 시원해지고 고요해지는 것이었다.
나는 그 뒤로 다시는 수도관 위를 올라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 위를 뛰어본 걸 후회하지도 않았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너무 용기가 지나쳐 내 체력과 한계를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하고 보는 무모함은 그때처럼 나를 곤두박질치게도 했지만, 나의 한계를 조금씩 극복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는 꿈을 꾼다
그러나 몇 해 전, 암 수술 이후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자 그런 용기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움츠러드는 나를 본다. 모든 사람이 나이가 든다고 용기가 꺾이는 건 아니다. 또 병에 걸렸다고 모두 의기소침해지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병 앞에서 또 40이 넘은 나이 앞에서 조금씩 세상과 타협해 그럭저럭 살고 싶다는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이런 생각이 사람을 늙게 하는구나’, 깨달은 건 불과 몇 달 전의 일이고 그것도 어쩌면 건강에 자신이 조금 생기면서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 비상을 꿈꾼다. 그 비상이 나를 어디로 다시 추락시킬지 모를 일이지만, 그때, 다리를 쭉 뻗어 하늘로 비상하던 바로 그 때, 분명 나는 날고 있었다. 그렇게 하늘로 날아오르는 꿈을, 다시 꾼다.
“얘들아! 그럼, 자기와 싸워 이긴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가족과 산에 갔었는데, 너무 힘들어도 참고 올라가서 정상을 밟았어요!”
“아무리 다른 것이 하고 싶어도, 꾹 참고 숙제를 해요.”
“달리기를 할 때, 열심히 달려서 1등을 했어요.”
아이들은 제각기 앞을 다투어 말했다. 나는 정말 대단하다고, 참으로 용감한 어린이들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다음 말을 덧붙였다.
“그렇게 노력했어도 산의 정상에 오르지 못할 때가 있어. 또 열심히 달렸지만, 1등을 못하기도 하지. 그렇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 그렇게 열심히 노력한 바로 그것도 자기와 싸워 자기를 이긴 거라고 선생님은 생각해. 성공할 자신이 없어도 용기를 내어 최선을 다해봐. 그것이 너희들을 더욱 용감하고 씩씩한 사람으로 만들 거야. 알았지?”
“네!!!”
아이들은 입을 모아 큰 목소리를 시원스럽게 대답했지만, 글쎄 그들이 내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정말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이 아니라도,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이 말의 의미를 깨닫는 아이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나는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말할 수 있으리라. 정인진의 교육일기▣일다는 어떤 곳?
[ ] 아이들에게 책을 읽힌다는 건 [ ] 상점제도, 과연 교육적인가? [ ] 비판적으로 책을 읽어요
이번 주에는 몇몇 아이들과 ‘용기’에 대한 공부를 했다. 자기가 용기 있는 어린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으며 수업을 시작했다. 또 자기와 싸워 이긴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함께 생각해보았다.
어떤 아이는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도와준 경험을 말했다. 수업 중 얼마나 용감하게 손을 들어 발표하는지를 이야기한 아이도 있고, 길을 잃었을 때 침착하게 대처해 다시 길을 찾은 사례도 등장했다. ‘정말 용감하구나’, 나도 생각했다. 눈을 반짝이며 발표하는 어린이들을 보면서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나도 그들처럼 정말 씩씩하고 용감했던 시절이 있었다.
일러스트-천정연 작
그렇게 줄지어 있던 수도관은 바로 시골아이들의 하교길 놀이터가 되었다. 아이들은 그 위로 기어 올라가서는 수도관과 수도관 사이를 껑충껑충 뛰어 달려가며 놀곤 했다.
그건 정말 재미있어 보였다.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에 나도 그 위로 올라갔다. 지금 생각하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척척 내달리던 아이들은 고학년에, 체력도 좋은 남학생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그런 걸 따져볼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나는 4학년이기도 했지만, 또래아이들 사이에서 키도 엄청 작은 아주 쪼끄만 아이였다.
사이가 촘촘하게 붙은 곳을 뛰어 건너는 건 어렵지도 않고 재미있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촘촘한 것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발을 잘못 디디면 미끄러져 땅으로 곤두박질칠 수도 있을 것 같이 간격이 조금씩 벌어진 곳이 곧 나타났다. 물론, 다른 아이들은 그곳을 척척 잘도 뛰어넘었다.
나는 우선 그 앞에 멈춰 섰다. 땅이 멀찍이 내려다보이는 그 높은 데서 그냥 포기하고 내려와도 누가 뭐랄 사람이 없었다. 떨어질 수 있다는 것도 난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위험할 지도…. 그런데 왜 그곳을 꼭 뛰어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우선 나는 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서 있다가 숨을 고르고…. 몸을 뒤로 젖혔다, 앞으로 숙였다 반동을 굴러 발을 쭉 뻗어, 훌~쩍!
발이 둥근 수도관 가장자리에 살짝 닿기가 무섭게 화-악 밑에서 몸을 끌어내렸다. 수도관의 둥근 원통을 타고 몸이 빙그르 돌았고, 머리부터 수도관 깊은 구석에 처박히고 말았다. 많이 아팠지만, 다행히 둥근 원통에 충격이 반감되어 아무데도 다친 데는 없었다. 온몸이 욱신거려 잘 일어서기도 힘들었지만, 후회되기는커녕 마음이 아주 시원해지고 고요해지는 것이었다.
나는 그 뒤로 다시는 수도관 위를 올라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 위를 뛰어본 걸 후회하지도 않았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너무 용기가 지나쳐 내 체력과 한계를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하고 보는 무모함은 그때처럼 나를 곤두박질치게도 했지만, 나의 한계를 조금씩 극복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는 꿈을 꾼다
일러스트 - 정은 작
‘이런 생각이 사람을 늙게 하는구나’, 깨달은 건 불과 몇 달 전의 일이고 그것도 어쩌면 건강에 자신이 조금 생기면서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 비상을 꿈꾼다. 그 비상이 나를 어디로 다시 추락시킬지 모를 일이지만, 그때, 다리를 쭉 뻗어 하늘로 비상하던 바로 그 때, 분명 나는 날고 있었다. 그렇게 하늘로 날아오르는 꿈을, 다시 꾼다.
“얘들아! 그럼, 자기와 싸워 이긴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가족과 산에 갔었는데, 너무 힘들어도 참고 올라가서 정상을 밟았어요!”
“아무리 다른 것이 하고 싶어도, 꾹 참고 숙제를 해요.”
“달리기를 할 때, 열심히 달려서 1등을 했어요.”
아이들은 제각기 앞을 다투어 말했다. 나는 정말 대단하다고, 참으로 용감한 어린이들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다음 말을 덧붙였다.
“그렇게 노력했어도 산의 정상에 오르지 못할 때가 있어. 또 열심히 달렸지만, 1등을 못하기도 하지. 그렇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 그렇게 열심히 노력한 바로 그것도 자기와 싸워 자기를 이긴 거라고 선생님은 생각해. 성공할 자신이 없어도 용기를 내어 최선을 다해봐. 그것이 너희들을 더욱 용감하고 씩씩한 사람으로 만들 거야. 알았지?”
“네!!!”
아이들은 입을 모아 큰 목소리를 시원스럽게 대답했지만, 글쎄 그들이 내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정말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이 아니라도,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이 말의 의미를 깨닫는 아이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나는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말할 수 있으리라. 정인진의 교육일기▣일다는 어떤 곳?
[ ] 아이들에게 책을 읽힌다는 건 [ ] 상점제도, 과연 교육적인가? [ ] 비판적으로 책을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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