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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짓 몸짓으로 통역하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죠

<기록되어야 할 노동> 수화통역사 황소라 씨 이야기


※ <일다>는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과 공동 기획으로, 지금까지 기록되지 않은 여성노동자들의 ‘일’을 이야기하는 인터뷰를 싣습니다. “기록되어야 할 노동” 연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보도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대화는 ‘말’로만 하는 게 아니죠, 통역도 마찬가지


손말이음센터를 알게 된 것은 3년 전쯤이다. 언뜻 들어서는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손말이음? 무엇을 하는 곳일까 궁금했다. 손말은 ‘손으로 말을 하는 것’으로 수어를 뜻하고, 이음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는 뜻이다. 수어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수화통역사’들이 일하는 곳이 손말이음센터(이하 센터, 107번)다.


수화통역사 황소라 씨를 만난 것도 그때인데 그녀를 통해 센터를 알게 되었다. 처음 센터에 대해 설명을 듣고 이름이 ‘참 이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들의 공모를 거쳐 손말이음센터라는 이름을 갖기 전에는 ‘통신중계서비스센터’였다. 센터는 한국정보화진흥원 소속으로, 이곳에서 일하며 수화통역을 하는 분들을 중계사라고 부른다. 영상중계와 문자중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청각 장애인, 언어장애인들이 많이 이용하세요. 언어장애인은 말씀하시기가 어렵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언어장애인과 청각 장애인과 뇌병변 장애인이 각각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 각각이 아니예요. 청각 장애인이 듣지 못하니까 말하기가 어렵잖아요. 그러다 보니 언어장애가 생기는 경우가 있구요. 뇌병변 장애인들도 말을 바로 하는 게 어려우니까 언어장애 등급을 받기도 하고. 우리가 설명할 때도 청각 장애인들 대상으로 한다고 홈페이지에 설명이 되어있어요. 대부분 그분들이 이용을 많이 하세요. 청각 장애인은 전국에 33만 명 정도예요. 청각 장애인이라고 해도 아예 못 듣는 게 아니고 전화통화가 가능한 분도 계세요.”


▲ 수화통역사 황소라 씨는 손말이음센터에서 수화로 영상중계를 하고 있다.


센터는 장애인들만 이용하는 곳은 아니다. 장애인과 소통을 원하는 비장애인들도 이용하고 있다. 청각 장애인뿐만 아니라 언어장애인, 비장애인들도 이용하기 때문에 이용자는 무한대다. 예를 들어 청각 장애인의 경우, 들리지 않기 때문에 말로 소통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음성으로 통화하기가 어렵다. 그런 경우 청각 장애인은 중계사에게 문자로 소통을 원하는 사람의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해당 사람이 비장애인이면 중계사는 전화를 걸어 청각 장애인이 문자로 적어준 내용을 상대방에게 음성으로 알려준다. 또 비장애인이 음성으로 말하는 내용을 다시 청각장애인에게 문자나 수어로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언어치료학 공부하려다 재미에 푹 빠진 수화통역


황소라 씨는 수화통역을 전공했다. 언어치료학과에 가려고 했는데 1학년 1학기 때 교양으로 기초 수화를 배우다가 재미에 푹 빠졌다. 재미가 있으니 성적도 잘 나왔다. 기초 수화를 가르쳐 주시던 교수님은 농인이었다. 음성통역 없이 교수님이 구화로 대화를 했다. 기초 수화 시간에 제일 앞자리를 차지하고 들을 만큼 재미있었다.


학교 다닐 때 손말이음센터가 있다는 얘기는 들었다. 주로 수화통화센터, 농아인협회에 취업을 많이 하는데 그녀는 2~3명씩 일하는 곳보다 인원수가 조금 더 많은 센터를 선택했다. 적은 인원수가 일하다가 직원들 간 트러블이 생기거나 본인과 잘 맞지 않으면 직장생활을 오래 하기 힘들 것 같아서였다.


학생 때 홈플러스 계산대에서 2년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지만, 졸업 후 첫 직장은 이곳 센터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할 때 퇴사하고 재입사하는 형식으로 들어오게 되었지만, 센터 경력 8년 차다.


수화통역사들은 1년에 한 번씩 보수교육을 받는다. 전국에 있는 수화통역사들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그곳에서 각자가 일하는 곳의 노동조건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중에 센터는 “정말 일자리를 찾지 못했을 경우에 오는 직장처럼 그렇게 인식”이 되어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황소라 씨도 처음에 센터에 대해 가졌던 좋은 이미지가 정작 일하면서 퇴색됐다고 한다. 이유가 뭘까.


만성 인력 부족에 호봉도, 승진도 없는 일터


영상과 문자로 중계하는 수화통역은 비장애인들끼리 전화로 소통하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건 기본이다. 하지만 한 번도 중계사 정원 40명을 채워본 적이 없어서 이용자들의 대기시간은 줄어든 적이 없다. 긴 시간을 기다렸다가 중계사와 어렵게 연결이 되면 다짜고짜 반말에 욕설을 하는 이용자들도 있다.


“40명 정원인데 많게는 38명, 적게는 26명이 일한 적도 있어요. 2018년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후 2019년 공채를 두 번이나 했어요. 영상중계사를 10명 이상 신규 채용해야 하는데, 지원자도 10명이 채 안 되었고 영상중계사의 1,2차 공채 합격자 인원은 총 6명이에요. 진흥원에서 크게 오해를 하는 게, 공공기관 네임벨류가 있으니까 공채에 무조건 많이 응모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1차 때 깨진 거죠.”


동종업계 수화통역사의 처우는 ‘같은 지역 내 사회복지시설에 준함’이 대체적이다. 연차가 있으면 호봉이 올라가고 승진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호봉과 승진이 없는 센터는 동종업계와 출발선부터 다르다. 그러다 보니 센터가 아무리 공공기관 소속이라고 해도 지원자가 많지 않다.


현재 센터의 응대율은 40%대다. 10명이 통역을 요구하면 4명밖에 응대를 못하고 있다. 인원수를 늘려달라고 끊임없이 요청하지만 예산 때문에 어렵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일하다 보니, 좋은 이미지는 진흥원이 다 챙기고 민원 피해는 개인이 알아서 해야 했다.


일의 특성상, 감정노동을 수반하는 일이다 보니 이용자로 인한 감정소비도 높은 편이다. 중계가 길어져서 끊고 다시 연결해달라고 요청하면 욕부터 하는 이용자도 있다. 이용자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중계통역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그래도 성이 풀리지 않으면 민원을 넣는다. 홈페이지에 민원을 올리는 이용자, 홈페이지 담당자 이메일로 민원을 넣는 이용자, 다양한 방식으로 민원을 제기한다. 그런데 진흥원은 민원에 어떻게 답변했는지 내용을 알려주지 않는다. 공개를 요구하면 ‘추후에 하겠다. 회의 중이다. 곧 할 것이다’라는 회신만 돌아올 뿐이었다.


그런 경험이 쌓이자 일에 대한 회의가 생겨서 그녀는 이직을 하려고 했지만, 휴가를 낼 수 없어서 다른 곳에 면접을 보지 못했다.


▲ 수화통역 중계를 하는 일은 감정노동을 많이 수반하지만, 황소라 씨는 늘 밝은 모습으로 이용자들을 만나려 노력한다.


노동조합이 생기면서 밝혀진 것들


중계사들의 월급은 최저임금을 넘지 않았다. 게다가 관리자와 이용자로부터 당하는 성희롱에 노출되었지만 아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중계사들이 자주 바뀌었다. 그 무렵 알게 된 것이 노동조합이었다. 2017년에 KT새노조의 도움을 받아 ‘손말이음센터지회’를 만들었다.


노조가 만들어지고 제일 먼저 했던 일은 야간중계사들의 체불임금을 받아내는 일이었다. 진정을 넣고 3개월 만에 체불임금을 받아내면서, 진정에 참여하지 않은 중계사들도 체불임금을 받게 되었다. 이후로 노조 탈퇴를 강요하는 관리자를 부당노동 행위로 고발하였다. 결국, 국정감사에서 2014년에 있었던 음란중계 사건까지 거론되었고, 진흥원은 여당과 야당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노조가 없었다면 중계사들이 겪은 이야기를 세상에 알릴 수 없었을 것이다.


어느 회식 날, 황소라 씨는 앞에 앉은 동료직원에게 관리자가 성추행을 하는 걸 앞에서 목격했다. 너무 놀라 빠르게 대응을 못 했다. 피해자에게 억지로 술을 먹이고 허벅지에 손을 올리는 장면을 목격하고 황소라 씨는 피해자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나중에 알았지만, 가해자는 성희롱과 성추행을 일상에서 상습적으로 행했다. 일터에서는 누가 더 이쁘다는 등의 외모 품평을 많이 하기도 했다.


어떤 중계사는 회식을 하고 관리자와 집이 같은 방향이어서 함께 가게 되었는데, 관리자가 중계사의 집 앞에서 화장실이 급하다며 화장실만 사용하게 해달라고 했다. 거절하기 어려웠던 중계사는 부탁을 들어주었는데, 관리자는 집에 들어가자 중계사에게 강제로 입을 맞추려고 했다.


피해자가 너무 많아 한꺼번에 진술서를 받았는데 3~4년 전의 일까지 드러나게 되었다. 결국 2017년 10월 국정감사가 열리던 날 성희롱을 한 관리자는 격리되었다. 그리고 2018년 1월 31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으로부터 직장내 성희롱 사건으로 인정받았다. 이후 관리자는 회사에서 영원히 퇴출되었다.


음란행위 영상에 속수무책 노출된 중계사들


PC프로그램만 사용하다가 한참 스마트폰이 나올 때쯤 센터도 앱을 개발했다. 앱을 개발하면서 개인정보보호법을 이유로 센터는 이용자에 대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도 수집하지 않았다.


2014년 12월, 영상화면을 통해 이용자의 음란행위가 중계사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음란행위에 대한 매뉴얼은 존재하지 않았다. 중계사들이 음란중계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동안 관리자는 ‘증거확보’ 차원으로 영상을 켭쳐하라는 지시만 했다. 하루 10번 가까이 음란중계를 받았던 적도 있었지만, 휴식은 주어지지 않았다.


음란중계 얘기만 들어도 무섭다고 했던 직장동료는 “너 왜 이렇게 담담하게 얘기했냐. 그런 건 비뇨기과에서나 보여준다”고 하면서 캡처 화면을 보자마자 울면서 말했다. 그때는 너무 당황스럽고 두려워서 관리자가 하라는 대로 했다. 처음에는 음란영상인지도 몰랐다. 상황을 인식한 뒤 너무 놀라 책상 밑으로 숨어서 떨었고, 계속 올라오는 음란영상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울면서 접속을 종료시키기도 했다.


범인을 바로 잡지도 못한 채 6개월 동안 중계사들은 음란화면에 노출됐다. 진흥원은 화면을 캡처하라고 했지만, 처음 화면을 봤을 때 인식조차 할 수 없었다. 캠 조절을 안 해서 다리나 다른 신체 부위가 보이는 줄 알았다. 그 일로 산재를 신청하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더 긴 시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게 얘기를 하는 게 힘든데, 안 하면 사람들이 모르고 내가 괜찮을 거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


중계사 2명을 제외한 모두가 음란영상 피해자들이었다. 하루에 최소 10번 이상, 6개월 동안 음란영상 피해를 보는 동안 진흥원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았다. 나중에 범인이 잡혔지만, 진흥원은 그가 어떤 벌을 받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중계사들 입을 통해 집행유예였는지 벌금이었는지 받았다는 소문만 무성할 뿐 범인의 얼굴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2017년 10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가 지적되어 여야가 함께 진흥원을 질타했다. 국정감사에서 얘기할 것을 미리 준비해갔지만 2014년 사건을 다시 말할 때는 호흡이 가빠지고 손이 떨려 진정제를 먹고서야 겨우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캡쳐해서 관리자에게 보낸 자료가 진흥원에 모두 보고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다. 진흥원에서 일부러 누락시킨 건지, 관리자가 아예 진흥원으로 제출하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음란영상 사태의 후유증은 지금도 나를 괴롭힌다


그녀는 2017년부터 현재까지 정신건강의학과를 통해 상담을 받고 있다.


“전조증상이라고 해야되는지 모르겠는데, 음란중계가 들어올 때쯤, (모바일 중계영상) 천장을 먼저 보여주면서 자기(가해자) 얼굴은 보여주면 안 되니까, 중계사 얼굴을 여성인지 남성인지 확인하고 그 행위를 하는 거예요. (이후부터) 화면을 손으로 조정을 하다 보니까 살색이 많이 보이거나 그러면 이 사람이 그런 짓 하는 게 아닌 걸 알면서도 불안하고 손도 떨리고 심장도 빨리 뛰고, 그러니까 그 불안함이 계속 가는 거예요. 이게 많은 시간이 흐르고 치료도 계속했고 조금씩 괜찮아져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제가 그걸 붙잡고 있는 건지 아니면 정말 치유가 되고 있는데 제가 모르는 건지, 아니면 그대로인 건지 모르겠는데,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아직도 불안하니까.”


올해 6월 말 산재 기간이 종료되는 시점이라 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근로복지공단에 재심을 받으러 갔다. 그러나 가족이 아니면 심판장에 들어올 수 없다고 해서 동행했던 노무사도 들어갈 수 없었다. 너무 불안한 나머지 평소 차분한 성격답지 않게 흥분한 채로 이의를 제기했다. 결국 노무사가 들어왔지만, 노무사가 답을 하려고 하면 공단 측은 가로막았다.


전문의와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 5명은 그녀에게 ‘지금 회사 다니고 있으니까 괜찮은 거 아니냐, 안 괜찮으면 왜 여기 계속 다니냐’고 했다. 모멸감이 들었다. “왜 내가 아픈 건데, 왜 내가 자꾸 증명을 해야 되고, 내가 잘못한 것처럼 생각이 들게 하고…” 그래서 5명의 전문가들 앞에서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진짜 회사를 다니고 있어서 괜찮은 거면 내 상태는 왜 이럴까… 이후로 의욕이 많이 떨어졌어요. 다 하기 싫고, 내가 이렇게까지 해서 뭐하나. (관리자가 음란화면을) 캡쳐하라고 할 때 그냥 못하겠다고 하고 하지 말지…”


지금은 악성 이용자를 신고할 수 있도록 원스톱 버튼이 만들어졌다. 화면이 캡처돼서 자동으로 관리자에게 가고, 중계사의 화면은 저절로 꺼지게 만든 시스템이다. 이마저도 노동조합이 생긴 2017년 이후의 일이다. 완전히 예방을 할 수는 없지만 그나마 다행인 셈이다.


진흥원은 일 년에 두 번 감정노동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일상에서 시달리는 감정노동인데 상하반기 두 번 프로그램으로 해소하는 건 어림도 없다.


“제가 정신과 약을 처음 먹는 거고, 맨 처음에는 수면제가 들어가지는 않았어요. 중간에 잠을 오래 못 자고 중간에 깨고 해서 수면제를 먹었어요. 수면제 부작용으로 어떤 분들은 뭘 막 먹기도 하고, 돌아다니기도 하고. 올해 몇 달 전에 보니까 제가 SNS에 답글을 달아놨는데 다행히 욕을 하지는 않았더라구요. 그런데 오타도 없고. 제가 기억이 안 나는데, 자고 일어나니까 SNS에 답글 달았었고… 그래서 먹던 수면제를 끊고 수면을 좀 길게 할 수 있는 다른 약을 추가해서 지금 먹고 있어요.”


수화통역사가 행복한 직업이 될 수 있기를


그녀에게 노조는 어떤 문제든 해결해주는 ‘자판기’인 줄 알았다. 노조 일을 하면서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처음에는 그랬다. 거창한 사명감 따위는 없었다. “거지같이” 살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어쩌다 보니 지회장이 된 거고, 학교에서 순번 정하듯이 된 것일 뿐이라고 겸손해했다.


하지만 노조를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은 있다. 직원을 보호해줄 수 있는 직장, 무기계약직이어도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생활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생활이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그것이다.


그녀에게는 무엇을 하자고 하면 함께 해주는 조합원이 제일 큰 힘이다.


“그게 연륜은 무시할 수가 없잖아요. 우리 조합원 중에는 나이 헛먹은 분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부족한 것을 비난하지 않고 지적해주시고 어려운 것 있으면 위로도 많이 해주고.”


▲ 언어는 인권이다. 수화통역사의 노동이 사회적으로 더 인정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장애인들이 손말이음센터를 통해서 본인 의사를 표현하는 것을 보면서도 힘이 생긴다. 작은 것 하나라도 누군가에게 부탁해야 했지만, 지금은 자기의 의지로 중계를 요청할 수도 있고, 민원도 넣을 수 있게 되었다. 비장애인들에게 너무 쉬운 일일지 몰라도 장애인들에게는 크나큰 어려움이자 번거로움일 수밖에 없었던 일들이다.


“짜장면 먹고 싶을 때 짜장면 먹고, 짬뽕 먹고 싶을 때 짬뽕 먹고, 본인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잘 된 것 같아요.”


짜장면 주문부터, 딸에게 주려고 따놓은 산딸기를 마치 딸에게 말하듯이 그녀에게 가져가라고 하는 어느 어머니의 다정다감한 얘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이어주는 황소라 씨와 같은 수화통역사들은 장애인권이 아직도 낮은 우리 사회에선 산소호흡기 같은 존재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서 수화통역사들이 행복한 직업으로 인식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기대해본다. 누군가의 소통을 돕는 아름다운 손짓과 몸짓을 지닌 황소라 씨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매일 피어날 수 있도록.  (변정윤 기록)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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