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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관리사’ 나에겐 자긍심 넘치는 이름

<기록되어야 할 노동> 가정관리사 김재순 씨를 만나다


※ <일다>는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과 공동 기획으로, 지금까지 기록되지 않은 여성노동자들의 ‘일’을 이야기하는 인터뷰를 싣습니다. “기록되어야 할 노동” 연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보도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김재순 씨(54세)는 40대 초반부터 가사노동자로 일해왔다. (출처: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안산지부)


저녁 시간은 나를 위해 쓰고 싶었다


김재순 씨(54세,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안산지부장)가 가정관리사로 처음 일을 시작한 때는 2006년 5월 30일이다. 13년 전, 그 날짜까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김재순 씨는 무엇 때문에 그날을 이토록 특별히 기억하게 된 것일까.


“9시부터 5시까지 일하고 77만 원을 준다고? 나에게 딱 맞는 일이다!”


김재순 씨는 ‘사회적 일자리’ 모집공고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근무 조건이 그에게 딱 맞았다. 당시 그는 40대 초반이었고, 제과점에서 판매일을 하고 있었다. 자녀 둘은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닐 때였다. 아이들은 이제 엄마 손을 덜 탔기에, 오후 5시까지 일하고 저녁 시간은 자신을 위해 쓰고 싶었다.


김재순 씨는 당장 전화를 걸어 일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 그런데 사회적 일자리 모집은 이미 끝났다고 했다. 그래서 비슷한 조건의 일자리를 소개받았다. 경기도에서 산후관리도우미 바우처(사회복지서비스 이용권) 사업을 시작한 때라 그 일부터 시작했다.


사실 77만 원 월급에,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는 조건이 남들이 보기에는 딱히 좋다고 할 만한 일자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김재순 씨가 “나에게 딱 맞는 일”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된 데에는 ‘저녁 시간의 여유’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다.


“불교대학에 가고 싶었어요. 안산에 그즈음 불교대학이 생겼거든요. 저는 절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어릴 때부터 엄마를 따라 절에 다니곤 했다는 김재순 씨는, 불교대학에서 불교를 깊이 배우고 싶었다. 경전도 알고 싶고, 스님들의 말씀도 체계적으로 듣고 싶었다. 결혼한 지 20년 남짓. 맞벌이로 살림과 육아, 일을 병행해오며 늘 분주하게 살아온 그에게,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가정관리사 김재순 씨의 노동 현장. (출처: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안산지부)


그림자 노동, 하루살이, 법 밖의 노동


김재순 씨가 현장에서 가사노동자로 일한 때는 40대 초반으로 보통의 가사노동자들의 연령보다 젊은 축에 속한다. 일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가정관리사협회실에서 가사서비스를 연계해주는 상담 일을 해보겠냐는 제안을 받고,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었다. 사무직은 육체적으로 크게 힘들지 않았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적지 않았다.


“내가 절에 다니지 않았다면, 나 여기에 있지 못했어요. 스트레스로 진작 때려치웠겠죠. 힘든 일이 많으니까요. (서비스 연계하는 상담은) 들어주어야 하는 일이잖아요.”


김재순 씨는 일하면서 꾸준히 불교대학에서 공부하고 강의를 들었다. 공부는 일하면서 겪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역할을 했고,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었다.


주로 가사서비스 연계 상담을 해오던 그가 요사이 다시 현장 일을 겸하고 있다고 했다.


“저는 현장 경험은 많지 않아요. 상담 일을 하면서 입주청소 들어오는 걸 했거든요. 요새 들어 가정관리사로 일을 더 하는 거예요. 가사서비스 의뢰는 들어오는데 일하러 갈 사람이 없어서 제가 나가게 되었고. 한 번 맺은 인연은 쉽게 바꾸는 거 아니라고, 고객들이 요청해서 꾸준히 하게 되었죠.”


가사서비스 수요가 느는 반면 가정관리사협회에 새로 유입되는 가사노동자들은 많지 않고, 기존의 가사노동자들은 고령화되어 공급을 맞추기가 힘들다. 현장 일을 하면서 어려운 점을 피부로 더 느끼고 있다는 김재순 씨에게 어떤 점이 힘든지 들어보았다.


“일터에서 크게 다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화장실은 워낙 미끄러운 곳이잖아요. 삐끗하다 다치는 일이 빈번해요. 일은 일대로 못해서 돈을 못 벌고, 병원비는 병원비대로 나가고.”


가사노동자의 일터는 보통의 가정이다.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이 그들에게는 곧 일터다. 집집마다 환경에 차이가 나지만 보통 습식 화장실인터라 청소하다가 사고가 나기 쉽다. 가사노동자는 대개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 일하다 다쳤는데도 자비로 병원 진료를 해야 한다. “일당제”로 일하기 때문에 아파서 일하지 못하는 기간에 소득이 없다.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이 아픈 몸을 이끌고 일을 한다. 완치할 때까지 충분히 쉬지 못하고, 병치레를 오래 하게 된다.


어째서 가사노동자들은 법 밖의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일반적인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기초 법률인 근로기준법에서 가사노동자를 “근로자”로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가사서비스를 중개해서 파견하는 곳도, 가사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용자인 개인 가정도 가사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4대 보험 가입의 의무도 없다.


작년 6월 16일 국제가사노동자의 날을 기념하여 전국가정관리사협회는 광화문 광장에서 “가사노동자는 당당한 노동자다” 기자회견 및 사회인식 개선 캠페인을 벌였다.  (출처: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안산지부)


아줌마, 이모, 여사님→가정관리사, 직업으로 인정돼야


“가사노동을 ‘그림자 노동’이라고들 하는데, 우리가 숨어서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요양보호사처럼, 국가에서 ‘가정관리사’를 직업으로 인정해 주면 일하는 사람도 부담감 없고 직업으로 당당히 밝히고 일할 텐데. 아직도 우리한테 아줌마, 이모라는 호칭을 많이 쓰고, 약간 높임말로 여사님을 쓰더라고요. 하지만 호칭을 제대로 써주는 게 더 좋죠.”


가사노동은 누구나 알고 있듯 존재하지만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진다. 따라서 적절히 직업으로 호명하는 일은 가사노동을 드러내는 데 중요하다. 김재순 씨는 아직까지 자신의 일을 당당히 드러내지 못하는 동료들을 떠올리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도입되면서 가정 내 돌봄이 공적 영역으로 들어와 “요양보호사”라는 직업군을 만들었던 것처럼, 가사서비스 바우처 제도가 생기면 가사노동자도 “가정관리사”라는 직업으로 인정될 수 있기를 바란다.


지난 2017년에 정부는 ‘가사근로자 고용 개선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입법 예고하면서 2019년부터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의 가사노동과 육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가사서비스 바우처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정부가 인증한 가사서비스 제공회사가 가사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고, 이용자는 회사와 계약해 가사서비스를 이용하게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이렇게 전환된다면 가사노동자는 기업에 고용되어 4대보험 의무가입, 유급휴가 등의 노동권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이런 제도 개선으로 서비스 비용이 오르는 것에 대해, 정부에서는 바우처를 구매해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는 등 인센티브를 주거나, 이용자에게 세액 공제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현재 전국가정관리사협회와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이같은 제도 도입을 위해 2008년부터 법 제정에 힘써왔지만, 국회에는 관련 법안이 계류 중이다.


“4차 산업, 5차 산업혁명이 된다고 하더라도 가사노동은 사람 손으로밖에 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한부모 가정이나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중장년에게 가사서비스가 필요해요.”


점차 기술의 발달로 가사노동의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있지만, 김재순 씨의 생각은 달랐다. 물론 IoT(사물인터넷) 기능이 탑재된 고도화된 가사서비스가 보편화되는 과정에서 가사노동의 내용과 범주는 달라질 것이다. 한국 사회는 초고령화 사회이고, 1인가구가 증가하여 가사서비스는 점차 ‘돌봄’의 한 영역으로 그 필요성이 커질 전망이다.


지난 4월 27~29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국제가사노동자연맹(IDWF:International Domestic Workers Federation) 아시아 회의에 참석한 김재순 씨.  (출처: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안산지부)


국제가사노동연맹 아시아 회의에 다녀오다


김재순 씨는 지난 4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국제가사노동자연맹(IDWF:International Domestic Workers Federation) 아시아 회의에 다녀왔다. IDWF는 당사자조직만 가입자격이 주어진다.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안산지부 역시 현장에서 가사노동을 한 경험자만이 지부장이 될 수 있다. 김재순 씨는 2010년에 지부장으로 선출되었다. 그 후 줄곧 현장 일과 대표 역할을 겸해왔던 터라 국제가사노동자연맹에도 공식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이번 회의에서는 국제노동기구(ILO) 총회를 앞두고 ‘일 세계에서의 폭력과 괴롭힘 종결’(Ending violence and harassment in the world of work)과 관련한 190호 협약에 대한 논의를 했고, 각국의 대응에 대해 공유하는 자리를 가졌다.


2011년 6월 1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ILO 100차 총회에서 ‘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협약’(C189)이 채택됐다. 협약에는 가사노동자를 고용하는 경우에도 기존 노동자와 똑같이 급여와 노동조건, 노동시간 등을 명시한 계약서를 반드시 작성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19년 현재, 한국 정부는 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협약에 찬성표는 던졌지만 현재까지 비준을 하지 않았다.


김재순 씨는 IDWF 아시아 회의에 다녀오고 아시아 각국의 가사노동자들이 겪는 폭력 피해의 심각성에 놀랐다고 전했다. 한국에 비해 해외 이주민 가사노동자의 비율이 높았고, 더 취약한 조건으로 일하고 감금, 폭행 등 인권 침해와 사망에 이르는 끔찍한 일들을 벌어지고 있다.


작년 11월 16~19일 열린 IDWF(국제가사노동자연맹) 총회 모습. 2013년 창립된 국제가사노동자연맹(International Domestic Workers Federation)은 전 세계 가사노동자들의 노동조합으로, 현재 47개국 50만 명이 넘는 가사노동자가 함께하고 있다.  (출처: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안산지부)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가사노동협약과 관련해 어떤 활동이 있었을까. 김재순 씨는 가장 핵심적인 활동으로 사회 인식 개선 활동 중의 하나인 ‘호칭 개선’ 운동과 성희롱 예방교육, 그리고 성별 임금 격차에 저항한 3·8여성대회 3시 스탑 조기퇴근 시위를 꼽았다. 가정관리사협회 회원은 모두 여성이다. ‘남성 정규직’으로 대표되는 기존 노동자와 비교하면, 많은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저임금, 불안정한 고용에 시달린다.


수년째 가사노동자들은 자신을 “가정관리사”로 소개해 왔다. 하지만 아직도 “가정부” 취급하고, “아줌마”라고 부르며 하대하는 일이 있다. 김재순 씨는 호칭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사용자와 노동자 간의 평등한 관계를 맺는 기본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성희롱 예방교육’은 여성노동자에겐 생존이 걸린 문제


“가정관리사가 일로 인정을 못 받고 있어서, (역설적으로) 내가 이 일을 계속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후배들을 위해서 직업으로 인정되도록 투쟁해야죠.”


김재순 씨는 가정관리사로 일하기 전에는 “다양한 알바”를 했다. 학습지 교사, 액세서리 판매 등 1~2년 단위로 계속 일을 했다. 일반 회사나 식당일을 생각해보지 않은 게 아니다. 일과 살림을 병행하는데 야근을 한다거나 장시간 노동은 부담되었다. 가정관리사는 하루 한 곳에서 8시간 넘게 근무하는 경우는 드물다. 4시간 단위로 일하는 게 일반적이다.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 오후 2시에서 6시까지이다. 종일 또는 반일 정해진 시간만 일하는 것은 소위 “일-가정 양립”의 근무 조건에 맞는다. 그런데 김재순 씨는 이것이 도리어 온전한 노동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구실이 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성운동가들이 지적하듯이, 어떤 직업이 여성들이 주로 일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저임금이 된 것인가, 저임금이라서 여성들의 일자리가 된 것일까? 여성들에게 문턱이 낮은 일자리들은 대개 일반적인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며,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단지 여성들이 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은 아닌지.


신입 가정관리사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김재순 씨의 모습.  (출처: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안산지부)


“요새 모바일 앱 시장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어요. 사용자 중심의 서비스죠. 1회성으로 많이 가고, 그렇다 보니까 일하는 사람이 보호받을 수 없어요.”


김재순 씨는 급증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우려했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가사 서비스 플랫폼 제공회사의 규율에 종속되지만, 현재 노동법상 근로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더욱이 플랫폼은 서비스 중개로 수익을 챙기지만, 플랫폼 노동자는 그들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반면 노동자 유니온 성격의 협동조합이나 협회는 소속된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안전장치이자 울타리가 되어준다. 가사노동자가 겪는 어려움을 대처하게 하는데 교육이 필수적인데, 그 중 ‘성희롱 예방교육’은 여성 노동자에게는 생존 기술이다.


“가정관리사 중에 한부모가정인 걸 알고 남자 고객이 사귀자고 했어요. 여러 번 문제가 반복되면 서비스를 중단시켜요. 협회에서 나서야죠. 고객을 교육시킬 수 없으니깐 우리가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는 거죠.”


가정관리사로, 여성노동 활동가로 일하며 성장하는 기쁨


김재순 씨는 가정관리사로 일하면서 가정관리사협회 활동을 하고 ‘활동가’로 성장한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저는 여기 와서 일한 게 너무 좋아요. 어디 가서 제가 교육을 가보겠어요. 선거가 있으면, 정세교육도 하고요. 여성들이 힘을 받을 수 있는 여성주의 교육도 하고요. 여성노동자들의 강점교육도 하고요. 전국에 있는 가정관리사들이 1박 2일 모여서 가정관리사들에게 필요한 교육과 공동체 놀이를 함께하면서 서로 힘을 주고받으면서 힐링을 해요.”


김재순 씨는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소통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디 가서 할 수 없는 얘기를 매주 회의를 하면서 나누었다. 서로 자주 만나 힘을 주고받으면서 의지하는 시간이 있었기에 연대할 수 있었다.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 우리나라 대부분 가부장적이잖아요. 우리 사무실을 한국여성노동자회랑 같이 써요. 그쪽은 여성주의가 발달되어 있잖아요. 언니, 이렇게 하면 안 돼. 다 같이 하는 거야. 도와주는 게 아니야.”


가사노동자로 일하고 활동가로 성장하며 김재순 씨는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많이 배우게 되었다고 했다.  (출처: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안산지부)


가사노동자로 일하고 일상을 꾸려가면서 김재순 씨는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가족 내에서도, 동료들과의 일터에서도 평등해지고자 노력한다. 남편이 자녀들에게 “내가 네 엄마 많이 도와주지?”라고 말하자. 딸이 곧장 “아빠, 집안일은 함께 하는 거지!”라고 대꾸했다. 김재순 씨는 곧 결혼을 앞둔 아들에게도 “집안일, 같이 해야 한다. 혼자 절대 안 된다”고 계속 이야기한다며 활짝 웃었다.


“주변에 저를 지지해주는 사람이 한 열 분 넘게 계세요. 현장에도 있고, 활동가들 사이에도 있고 하니까. 그분들에게 힘을 받아요. (정부의 사회적 일자리에서 출발한) 자활기업 참여자로 이 일을 시작했는데, 이제는 가정관리사이자, 활동가로 성장했지요.”


그는 가사노동자로서 자기의 목소리를 내는 활동가임에 자부심을 드러내면서도, 누군가는 맡아서 할 일을 하는 것뿐이라며 담담히 말했다. 긴 호흡으로 지금까지 걸어온 그와 그의 동료들에게 곧 그들이 바라는 소식이 들려오길 기대한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 “기록되어야 할 노동” 기획 연재를 위해 자문해주신 분들입니다. 고주영(공연예술 독립프로듀서), 박준우(프리랜서 작가), 이민영(비전화공방서울), 이충열(여성주의 현대미술가), 최하란(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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