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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강함을 찾아 나서자고 말하고 싶어요”

[최하란의 No Woman No Cry] 셀프 디펜스를 하는 여성들(3)


여성을 위한 자기방어 훈련과 몸에 관한 칼럼 ‘No Woman No Cry’가 연재됩니다. 최하란 씨는 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이자, 호신술의 하나인 크라브마가 지도자입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이십대 대학원생 연구원 C의 운동 이야기


재작년 9월, 그를 처음 만났다. 운동하러 오면 열심히 운동하고, 끝나면 “안녕히 계세요!” 인사하고 바로 가는 스타일이라 일 년 가까이 거의 수업 때 같이 운동하고 오갈 때 서로 인사만 나눴다.


그러다가 그가 불편한 용기의 “편파판결 불법촬영” 규탄 집회와 비웨이브의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 시위에 빠짐없이 참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운동(exercise)으로 만나서 운동(movement)으로 이어진 계기였다. 우리는 함께 거리에서 불법촬영 범죄와 웹하드 카르텔에 맞서 싸웠고, 임신과 출산에 대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라고 외쳤고,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故 김용균의 죽음에 분노했고 항의했고 행진했다.


인터뷰는 오랜만에 미세먼지 지수가 낮은 날 서울 합정동에 있는 카페 야외 테이블에서 진행했다. 작은 자연이라고 해도, 생명체들은 다 찾아내는 것 같다. 작은 나무 안으로 모여든 참새들이 유난히 짹짹대고 있었다.


인터뷰 주제는 운동과 셀프 디펜스(Self-Defense)였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헌재 판결이 얼마 남지 않은 ‘낙태죄’에서 시작해 인종차별, 심리학, 사회과학, 뇌과학, 면역학, 대사증후군 사이를 오갔다.


▶ 비웨이브의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 시위에서, C와 함께 ⓒ최하란


-어떻게 운동하러 오게 됐어요?


“페이스북을 하다가 선생님의 인터뷰가 실린 허핑턴포스트 기사를 봤어요. 기사를 읽고 바로 스쿨오브무브먼트에 오고 싶었지만, 바빠서 반 년 정도 지나 그해 가을에 오게 됐어요.


그 기사에 선생님이 어렸을 때 목 졸렸던 경험을 말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런 경험을 생생하게 말해주고, 위험에서 안전해지는 방법에 대해 얘기를 하니… 여기 가서 배우면 여성들이 실제로 할 수 있는 실전적인 것들을 배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인터뷰 기사 속의 선생님은 강인해보였어요. 이런 강인한 여성상이 존재한다는 것이 놀라웠어요.”


-훌륭한 여성 운동선수들과 지도자도 많은데 왜 제가 강인한 여성상이 된 거예요? 


“선생님 말씀대로 훌륭한 여성 운동선수들이나 지도자도 많죠. 심지어 격투기 선수들도 있고요. 그런데 훌륭한 격투기 선수들조차 운동계에서는 실력보다 예쁜 선수로 마케팅을 하더라고요. 또 운동선수들이나 선수 출신 지도자들은 아예 엘리트 체육인이고요. 즉 저같이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죠.


선생님은 평범한 사람도 강해질 수 있겠구나… 하는 그런 현실적인 강인한 여성상이었어요. 선생님은 선수가 아니라 일반인이지만 포스가 느껴져요. 그리고 카리스마가 있죠. 그런데 제가 스쿨오브무브먼트에서 다른 분들과 같이 운동하면서 느끼는 건데요. 일반인이라도 꾸준히 운동을 한 여성들은 다들 묵직해 보이는 어떤 카리스마가 느껴져요. 그래서 저도 강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번에 수업 시간에 신입회원이 본인을 보고 멋있다고 우와! 했을 때 어땠어요?


“내가 여기서 시간 낭비한 것은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사실 저는 아직 매우 낮은 레벨입니다. 그런데 새로 오신 분이 제가 하는 걸 보고 갑자기 멋있다고 하시니까 쑥스러웠어요. 하지만 처음 왔을 때보다는 향상됐다는 것을 느껴요.


처음에는 운동하는 게 힘들었어요. 많이 힘들었어요. 툴 수업(교정과 체력운동을 하는 수업)에서는 케틀벨 스윙할 때까지 6개월 정도 힘들었고요. 크라브 마가(Krav maga, 현대 셀프 디펜스 개념을 시작한 호신술의 일종)는 P2레벨 딸 때까지 1년 넘게 힘들었어요. 제가 완전 ‘몸치’거든요.”


▶ 가방에 크라브 마가 P2레벨 패치 장착  ⓒ최하란


-그렇게 힘들었는데 왜 계속한 거예요?


“하루는 크라브 마가 수업 시간에 킥을 연속으로 하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진짜 힘든데... 정건 선생님이 ‘그래도 나아지고 있잖아요!’ 라고 하셨어요. 그때 그 말이 뇌리에 꽂히더라고요. 나아지고 있다는 말을 들으니 정말 힘든데 오히려 힘이 났어요. 힘들지만, 이걸 해야 하는 이유가 생긴 거예요.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 싶었어요.


저는 평소에 정신이 좀 ‘헬렐레’ 했어요. 그런데 살다 보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각 잡아야 할 때’가 있잖아요. 이제는 일상에서 필요할 때 정신이 차려집니다.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한 때 생각의 방향을 정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그리고 집중력이 길러지고요.


저는 강해지고 싶어서 스쿨오브무브먼트에 왔어요. 감정적으로 예민하고, 드라마틱한 것도 있어서 제가 갖고 있는 기본 욕구 중 하나가 강해지고 싶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여기 오기 전에는 운동을 제대로 해본 적도 없고 잘 모르니, 처음에는 근육을 키우고 싶었어요. 근육을 키우면 강해진다고 생각했거든요.”


-강해진 것 같아요?


“나아진 것 같아요. ‘강함’에 대한 생각이 변했어요. 전에는 근육이 크고 할리우드 배우처럼 몸 좋고 강해보이는 게 답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겉만 보고는 강한 것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여전히 강해지고 싶지만, 예전과 다르게 강해지고 싶어요. 정신적으로 강해지고 싶어요. 정신적 안정감을 갖고 싶어요. 살면서 벌어지는 여러 상황과 사건에 그저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내가 판단하고 결정하고 싶어요. 이것이 셀프 디펜스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죠.


몸과 마음 모두 중심이 딱 잡힌 사람이 되고 싶어요. 툴 수업이나 크라브 마가 수업이나 선생님이 코어(core)를 사용하고 중심을 잡으라고 강조하시잖아요. 육체적으로 힘들어도 그 말이 또렷이 들려요. 운동을 하면서 그것이 삶의 태도와 연결이 되고 생각이 정리되더라고요.”


▶ 대학원 연구실 생활 ⓒ인터뷰이 제공


-운동을 하면서 삶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것에 대한 얘기를 더 듣고 싶어요.


“셀프 디펜스를 배울 때 에고 파이팅(ego fighting)을 하지 말라고 강조하시잖아요. 제 경우 ‘에고 파이팅 하지 않는 것’이 실생활에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전에는 의견이 충돌하거나 상대가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극단적으로 반응했어요. 자존심을 부린 거죠. 심지어 교수님이 뭐라 하시면 비꼬는 태도로 심하게 대하고, 싸운 적도 있어요. 교수님과의 의견 다툼이 심해지니 대학 생활이 어려워져서 휴학해야 하기도 했고요. 그때는 잘 몰라서 힘들지 않았는데, 무지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힘겨움이 몰려왔어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갈등과 대립을 겪게 돼요. 그렇게 보면 삶 자체가 싸움일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전략적인 태도가 중요해요. 자잘한 갈등에 모두 다 반응하고 대응하면 삶이 너무 피곤해요. 진짜 싸움을 잘 하려면 쓸 데 없는 싸움은 피하고 꼭 필요한 싸움에 제대로 된 일격을 날려야 합니다. 이걸 운동하면서, 셀프 디펜스를 배우면서 알게 된 거예요.


운동을 하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정말 중요해요. 제가 암세포를 키우는 실험을 하면서 대사와 관련된 연구와 공부를 하고 있는데, 운동하기 전에는 운동을 과학적으로 생각해보는 것에 1도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보는 시각이 달라져서 면역학, 신경학, 뇌와 운동의 관계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운동을 하면 새로운 뉴런이 만들어지고 신경세포 간 연결고리가 탄탄해지고 사고가 확장되고 전체적인 신체기능도 향상되고 삶이 긍정적으로 변화됩니다. 제가 이곳에 오게 된 것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생소한 운동에 도전해서 내 뉴런의 영역을 확장하고 싶다는 욕구도 있었어요. 운동이 신경발달, 창의력, 사고력 증진에 도움이 되는지 확인하고 싶었고요.


확실히 좋아졌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제일 간단하게는 체력이 좋아지니까 실험과 공부를 더 열심히 잘 할 수 있게 됐고요. 연구실 분들도 제가 체력이 좋아졌다고 인정하세요. 제 키가 170cm인데 스쿨오브무브먼트에 처음 왔을 때는 51~52kg이었어요, 지금은 58kg인데요, 제 목표는 60kg이에요.”


-보통은 운동을 해서 살을 빼고 싶어 하는데, 목표체중이 60kg이라는 이유가 궁금해요.


”제 키에는 60kg 정도가 안정감 있는 체중이라고 생각해요. 대학생 때는 마른 게 목표라서 49kg을 원했어요. 그런데 51~52kg일 때와 58kg인 지금의 몸의 느낌과 체력이 달라요. 힘이 세 진 게 느껴져요. 세게 열어야 열렸던 문이 이제 너무 쉽게 열려서 문이 쾅 닫혀요. 연구실 사람들이 문 부수겠다고 살살 열라고 해요.


몸무게가 늘었다고 몸이 무겁게 느껴지거나 숨이 차거나 그런 것은 없어요. 건강하게 몸이 커지고 강해진 거죠. 말랐을 때는 쉽게 지쳤고 금방 졸렸어요. 힘이 들 때는 쉽게 무기력감과 우울감을 느꼈고 상당히 예민해졌어요.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면 좋겠어요. 또 여성들이 살 빼는 거 말고,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면 좋겠습니다. 마른 게 미덕인 사회에서 많은 여성들이 마르고 싶어 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아요. 제 주변 사람들도 정말 조금 먹어요. 조금 먹는 여성들은 항상 힘이 없어요. 그런데 저는 사람들이 더 먹고 싶지만 숟가락을 놓는다는 걸 알거든요. 다이어트 강박 사회인거죠. 저는 자유롭게 먹고 있지만, 예전 경험이 있어서 뭘 먹을 때면 자동으로 칼로리 계산이 대충 돼요.”


▶ 삶의 태도가 바뀌다 ⓒ스쿨오브무브먼트


-다른 여성들에게도 셀프 디펜스를 권하고 싶나요?


“당연히요. 사람들과 같이 운동을 하면서 서로 몸을 부딪치며 정이 들어요. 여럿이 같이하니까 재미있어요. 현대인들은 거의 움직이지 않고 앉아서 지내잖아요. 그런데 운동을 하면서 발라당 눕고 구르고 마사지하면서 설명 듣고 그러면 현실과 다른 세계… 낙원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어요.


처음 집회에 나간 게 여성들만 참가하는 집회였어요. 그래서 제가 셀프 디펜스를 배워서 시위하는 사람들이 위협이나 어려움을 겪으면 나서서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키가 크고 성격도 있으니 뭐가 좀 될 수 있겠지 싶었던 거죠.


그런데 운동 첫날, 알아버렸어요. 제가 ‘쪼렙’(레벨이 낮다는 뜻)이라는 것을 바로 깨닫고 지금은 겸손해졌습니다. 제가 ‘쪼렙’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중요합니다. 덕분에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고, 묵묵히 훈련하는 것의 결과도 알게 됐습니다.


배우고 훈련하면 자연스럽게 안정된 자존감을 갖게 됩니다.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죠. 그리고 과학적으로도 신경시스템이 좋아집니다.


마지막으로, 강함에 의존하지 말고 함께 강함을 찾아 나서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C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사회경제학자들과 사회의학자들은 역학조사를 통해서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스트레스가 더 많고 더 차별하고 더 적대하고 결국 사회 구성원들이 더 건강하지 못하다고 지적해왔다.


그래서 우리는 개인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운동이나 셀프 디펜스가 아니라 '사회 변화'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더 평등한 사회는 그냥 오지 않는다. 언제나 많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행동이 필요하다.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꾸준히 운동하러 다니는 학생들 덕분에 우리는 그들의 변화와 성장을 지켜볼 수 있었다.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학생들에게 늘 더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리고 때로는 함께 운동(exercise)과 운동(movement)을 할 수 있어서 더욱 기쁘고 행복하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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