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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에타이, 와이끄루, 핑크 그리고 여성 낙무아이

[최하란의 No Woman No Cry] 태국 무에타이 캠프 수련기(하)


여성을 위한 자기방어 훈련과 몸에 관한 칼럼 ‘No Woman No Cry’가 연재됩니다. 최하란 씨는 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이자, 호신술의 하나인 크라브마가 지도자입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태국의 무에타이 잔치


아침에 나랑 스파링했던 15세 소년 뜽의 경기를 저녁에 보러갔다. 뜽은 내가 뭐만 할라치면 팁(푸쉬킥)을 했고, 떼람뚜와(미들킥)를 매섭게 내 팔꿈치와 무릎 사이를 뚫고 넣었다. ‘어, 그런데 저녁에 경기가 있었네.’


전에 방콕에선 비싼 입장료를 내는 상설 경기장, 룸피니에서 경기를 봤고 핏사눌록에선 토너먼트 타이틀전을 봤다. 이번에 까오야이에선 입장료도 없이 밥과 간식을 무한리필 공짜로 주는 야외 풀밭의 경기장을 갔다. 옛날식으로 마을잔치였다. 원래 무에타이도 씨름이나 택견처럼 동네에서 즐기는 내기놀이 성격이 강했다.


덕분에 이싼 지방 매콤한 쏨땀과 찰밥, 알록달록 찰떡,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마음껏 즐겼다. 온가족이 함께 풀밭에 돗자리 깔고 앉아, 밤이 깊어지자 털모자를 쓰고 이불을 덮고 즐기는 올나잇 파티였다.


▶ 무에타이 시합은 마을잔치, 까오야이 ⓒ스쿨오브무브먼트


우리 체육관 식구들은 뜽의 승리에 돈을 걸었다. 1, 2라운드는 뜽이 잘 했는데 3, 4라운드는 좀 밀려서 결국 무승부가 됐다. 걸었던 돈은 모두 돌려받았다.


며칠 뒤에는 왕복 네 시간을 트럭 짐칸에 옹기종기 스무 명이 타서 사라부리까지 이동했다. 엄청 큰 야시장에서 시합이 잡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수도 그냥 트럭 짐칸에 타고 갔다. 그 다음 주 목요일에는 왕복 여섯 시간을 봉고차로 달려 펫차분 야시장 경기에 갔다.


축제 경기든, 야시장 경기든 둘 다 방콕의 상설 경기장보다 열기가 훨씬 뜨거웠다. 링사이드에는 사다리를 개조한 대여료 50밧(한화 1천850원)짜리 의자 위에 도박하는 사람들이 앉거나 서 있었다. 어린이들은 그냥 무대 위에 올라가 관람했다.


이날은 뜽이 멋지게 승리했다. 체육관 식구들도 돈을 땄다. 하지만 딴 돈은 모두 뜽에게 합장하며 건넸다. 동갑내기 아이(가 이름이다)도 출전했다. 상금이 두 배나 높았지만 아쉽게 패했다. 아이는 속상함에 눈물을 참으려고 애썼고, 아버지는 등과 가슴을 두들기며 달래주었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방콕의 상설 경기장 라차담넌으로 응원하러 갔다. 2000밧(한화 7만2천원)이나 하는 링사이드 좌석이었지만, 어쩐지 흥이 떨어졌다. 레이저 포인터로 선수를 비추며 뭐라뭐라 외치고, 움직임 하나하나에 열광하고, 돈을 걸고, 또 돈을 걸라고 부추기는 오성조에 빛나는 태국어 향연이 없었기 때문이다.


복싱, 스포츠, 그리고 도박


무에타이(muay thai)는 “타이 복싱”이란 뜻이다. 그래서 현지인들은 서양 복싱을 “인터내셔널 복싱”이라 부르고, 그냥 복싱이라고 하면 타이 복싱을 뜻할 때가 많다. 타이 복싱 즉 무에타이는 서서 하는 타격과 서서 얽히고 넘기는 기술들이 함께 사용된다. 타격은 두 주먹, 두 팔꿈치, 두 무릎, 두 정강이를 다양한 방향으로 사용한다.


3분 5라운드 경기이며, 휴식은 2분씩이다. 대체로 1, 2라운드가 탐색전이고 3, 4라운드에 불붙는다. 끝까지 치열한 경기도 있지만, 대체로 5라운드에는 쉬엄쉬엄 하거나 때로는 거의 싸우지 않고 가볍게 움직인다. 서로 두 팔을 높이 들어 승리를 자부하거나 춤을 추듯 가볍게 링 안을 돈다.


경기는 아슬아슬할수록 성공적이다. 도박이 이 스포츠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이기는 경기는 인기가 없고, 그런 선수는 시합 잡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 뜽의 무에타이 시합, 펫차분 야시장  ⓒ스쿨오브무브먼트


실제로 근대 스포츠의 맹아기에 관중이 선수와 자신을 동일시한 것은 전적으로 도박 때문이었다. 돈을 걸었으니 열광하는 것이다. 당시 달리기와 복싱은 내기와 도박의 일부였다. 규칙이 간단하고 거의 맨몸으로 맨땅에서 열 수 있는 경기라서 도시 프롤레타리아(노동자 계층)의 유흥거리였다. 게다가 대체로 내기 시간이 짧고 승부 조작도 쉬운 편이라 더 매력적이었다.


역사상 동서양 모두에서 귀족이나 왕족이 스스로 링에 오른 적은 없다. 싸우는 선수는 거의  하층민 출신이었다. 그러나 핵심 영역은 돈 많은 엘리트들이 조종해왔다. 프로모터, 스폰서, 미디어, 그리고 국가는 사람들이 경기에 열광하게 만드는 요인을 크게 늘렸다. 학연, 지연, 인종, (특히) 국적 그리고 변덕스런 취향들까지 동원돼 관중과 선수 사이의 일체감을 조장했다.


마이크 마커시의 책 <알리, 아메리카를 쏘다>는 원래 더 멋진 제목이었다. “구원의 노래: 무하마드 알리와 1960년대의 정신”이다. 이 책에는 가난과 복싱에 대한 통찰이 있다. “[권투는] 인간의 원초적 공격성이나 본능적 폭력 성향 따위와도 관계가 없다. 권투의 문화는 오히려 자제력, 자기수양, 고진감래 같은 것이다. 이는 가난이라는 무정부 상태와 대조되는 잘 짜여진 대응이자 안락한 피난처다.”


그러나 이와 같은 “땀내 물씬한 평등주의”와 달리, 최종적으로 최정상에 서는 선수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타이 복싱 즉 무에타이도 비슷하다. 다만, 국제적 수요 덕분에 더 많은 소수가 궁핍한 환경을 빠져나와 교육도 받고 안정된 생계 기회를 얻긴 한다.


와이끄루 람무에이, 복서가 추는 출전의 춤


와이끄루(wai khru)는 스승에게 존경을 표하는 태국의 전통 의식이다. 태국의 학교들은 학년이 시작될 때 와이끄루 의식을 한다. 무에타이의 경우, 와이끄루 람무에이(wai khru ram muay)라 불린다. ‘와이’는 합장, ‘끄루’는 스승, ‘람’은 전통춤, ‘무에이’는 복싱을 뜻한다. 의역하면 “복서가 스승에게 경의를 표하는 출전의 춤”이다.


▶ 아이의 와이끄루 람무에이, 펫차분 야시장  ⓒ스쿨오브무브먼트


이 춤은 지역마다 도장마다 다르고 같은 도장에서도 선수들 사이에 차이가 있다. 선수마다 관중에게 어필하고 싶은 움직임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핵심은 비슷하다. 사각의 링에 올라가면 반시계 방향으로 링을 돌며 각 코너에 기도하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절하고 활갯짓을 한 다음, 한 무릎을 세우고 앉아 다시 활갯짓을 하고, 일어나 굼실거리며 한 다리로 서서 로프 가까이 걸어가며 춤을 춘다.


그동안 다양한 와이끄루 람무에이를 봤다. 하나같이 예쁘게 보이려 노력한다. 거울을 보며 화장을 하는 움직임도 있다. 화장이 마음에 안 든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하고는 다시 화장을 고치고 이제는 마음에 든다며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로프 가까이서 춤을 추는 것도 여러 가지다. 새처럼 훨훨 날갯짓을 하거나, 활시위를 당기고 멀리 내다보는 시늉도 있고, 눈앞에서 손을 살랑살랑 흔들기도 하고, 발을 예쁘게 놀리며 몸을 씰룩씰룩하기도 한다.


내가 하면 그런 예쁜 태가 나지 않는다. 와이끄루 람무에이는 무에타이의 폭발적인 움직임, 중심 잡고 넘기기 등의 바탕이 된다. 스승에 대한 존경이라는 문화도 흥미롭고 보기에 아름답기도 하지만 인체의 역동적 움직임들 속에 포함된 중심 이동, 회전, 연결성 등이 담겨 있어서 특별히 관심이 간다.


핑크는 고귀한 색


2014년 무에타이 경기를 처음 직접 보기 위해서 룸피니 경기장에 갔을 때, 선수들의 차림새에 매우 흥미를 느꼈다.


맞으면 뼈가 으스러질 것 같은 강력한 킥, 안면에 꽂히는 팔꿈치 공격, 맞붙어서 힘을 겨루다 바닥에 내다꽂는, 힘과 힘이 부딪치고 거친 소리와 피땀이 섞이는 경기장에 분홍색 몽콘(머리띠), 분홍색 트렁크에 커다란 흰색 리본을 달고, 분홍색 발목 보호대, 분홍색 팔뚝 띠를 한 선수를 봤다.


▶ 핑크 트렁크에 예쁘게 하얀 리본을 매고 경기하는 선수, 룸피니 경기장  ⓒ스쿨오브무브먼트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올 핑크로 입고 트렁크에 리본까지 예쁘게 묶은 선수를 봤는데. 혹시 그 선수가 게이일까?” 그랬더니 “아닐 걸. 태국 선수들은 원래 분홍색을 사랑해. 리본도 많이 달고.”


그러고 보니 다들 분홍색을 몹시 좋아한다. WBC 두 체급 세계복싱챔피언을 지낸 태국 복서와 운동한 적이 있는데, 이름은 생각이 안 나고 마약운반죄로 감옥도 다녀온 사람이었다. 그런데 올 핑크의 사나이였다. 분홍색 티셔츠, 분홍색 트렁크, 분홍색 핸드랩, 분홍색 글러브, 심지어 분홍색 타월까지.


사실, 태국에는 분홍색이 참 많다. 택시도 강렬한 분홍색이고, 건물이나 광고물들도 각종 분홍색들이 넘친다. 분홍색을 사랑한다. 연꽃색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태국에서 핑크는 성별을 단정 짓는 색도 아니다. 고귀한 색이다. 불교에서 연꽃은 부처님의 꽃이다. 싯다르타가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 동서남북으로 일곱 발자국씩 걸을 때마다 땅에서 연꽃이 솟아올라 떠받들었다. 진흙에 뿌리를 두되 하늘을 향해 피어나는 꽃. 그 꽃이 강렬한 분홍색이다.


내 친구는 여성 낙무아이


쁘리야랏은 우리를 지도하는 뻐능 선생의 아내이며 세 아들의 엄마다. 체구는 작지만, 7개월짜리 막내를 한 손으로 턱턱 잘도 들고 다닌다. 애가 갑자기 배고프다고 울어 젖히자, 젖을 물린 채 비포장 산길을 수동으로 운전했다. 전에는 방콕에서 치앙마이까지 여덟 시간 거리를 그렇게 애들을 데리고 혼자 운전해서 갔다 왔다고 한다.


강단 있는 모습에 놀라 자세히 물어봤더니, 쁘리야랏은 무에타이 선수(낙무아이)였다. 챔피언 벨트를 두른 사진도 있다.


▶ 쁘리야랏이 낙무아이 시절 두른 주 챔피언 벨트(위)와 여러 개의 우승 트로피(아래) ⓒ쁘리야랏(preeyarat)


“응. 예전에 싸웠지. 사진은 십년 전, 열일곱 살 때야. 첫 아이를 가지면서, 7년 전에 싸우는 건 그만했어.”

“와아! 멋지다. 게다가 너, 챔피언 벨트를 차고 있는데?”

“내 고향 르이 주 챔피언 벨트야. 큰 경기들에서 이겨서 여러 트로피들을 들어 올렸어.”


“몇 살에 시작해서 얼마나 싸웠어?”

“11세에 시작했고, 9년 동안 200전에서 300전 사이를 뛰었어.(십대에 200전 넘게 싸우면 흔히 본인 기록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어떤 날은 하루에 두 번 경기를 치른 적도 있어.”


“왜 무에타이를 시작했어?

“우리 아버지가 체육관 관장이셔. 체육관에 남자 선수들이 많았고, 나는 싸우는 것이 좋았거든.”


“여자 무에타이 경기도 인기가 있어? 여자 선수들도 유명해?”

“여자 무에타이 경기 엄청 인기 있어. 그리고 여자 선수들도 남자 선수들만큼 유명해.”


“여자 선수들도 남자 선수들만큼 파이트 머니를 받아?

“당연하지. 몇몇 선수들은 남자 선수들보다 더 많이 받아.”


“네 아들들에게도 무에타이 가르칠 거야?” 

“그럼 가르쳐야지. 그리고 아이들이 원한다면, 무에타이 선수가 되면 좋겠어.”


▶ 낙무아이 출신의 쁘리야랏과 함께, 라차담넌 경기장 ⓒ최하란


우리는 방콕의 라차담넌 경기장에서 다시 만났다. 우리 체육관 선수가 승리해서 모두 흥분해 있었다. 내가 쁘리야랏에게 물었다. “경기를 보면, 다시 싸우고 싶니?” 그녀는 다시 싸우고 싶다고 했다.


나는 싸우는 게 좋아서 무에타이를 시작했다는 그에게 다시 물었다. “왜 싸우는 것이 좋았어?” 대답은 분명했다. “나는 형제들(체육관 식구들)이 싸우는 걸 봤어. 그래서 나도 싸우길 원했지!”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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