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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삶을 위한 ‘발’ 이야기

[최하란의 No Woman No Cry] 발과 신발 (상)


여성을 위한 자기방어 훈련과 몸에 관한 칼럼 ‘No Woman No Cry’가 연재됩니다. 최하란 씨는 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이자, 호신술의 하나인 크라브마가 지도자입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발에 주목하다


인체는 외부의 정보를 다섯 가지 감각(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몇 가지 감각들이 더 있다. 그중 하나가 고유수용성감각(proprioception)이다. 이 감각은 외부의 자극을 느끼는 오감과 달리 신체 내부의 변화를 느끼는 감각으로 움직임, 균형과 관계된다.


인체의 발은 정교하다. 한쪽 발에 26개의 뼈, 33개의 관절, 107개의 인대, 19개의 근육, 38개의 힘줄이 있다. 인체의 거의 4분의 1이 발에 있는 셈이다. 그만큼 고유수용성감각을 받아들이는 수용체가 많고, 덕분에 미세한 움직임이 가능하다. 발의 미세한 움직임은 서거나 걷고 달릴 때 균형을 잡고 지탱할 수 있게 하며, 몸에 가해지는 충격을 흡수한다.


▶ 발은 인체의 주요 기지국


인체의 움직임은 이렇게 수많은 신호에 반응하는 신경계의 작용으로 이뤄진다. 인체를 휴대폰에 비유하면, 발은 주요 기지국인 셈이다. 애초부터 인체는 움직이기 위한 것이다. 인체의 오리지널 디자인 그대로 움직일수록 건강에 좋다. 따라서 발이 더 많은 신호를 잘 잡을수록 좋은 것이다. 그런데 발의 감각이 무뎌지고 움직임이 제한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십여 년 전, 중증 알콜중독증 환자와 조현병 환자 그리고 치매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3년 동안 요가와 명상, 운동을 교육했다. 어르신들은 대부분 발가락이 오그라들고 뒤틀려져 있었다. 단학을 오래 하셔서 유연하고 다리도 곧고 호흡도 잘하시는 어르신이 계셨는데, 역시 발가락들이 변형돼있으니 일어서면 다른 어르신들처럼 거동이 불편했다.


중증 알콜중독증과 조현병 환자들도 손발을 잘 펴지 못했다. 이십대 초반의 환자도 어르신들처럼 발가락이 오그라들어 있었다. 등이 구부정한 것은 예상했지만, 손발 특히 발가락의 기능저하는 뜻밖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신경 발달 순서가 종두지미(head-to-tail) 방식이고 퇴화는 그 반대인 점을 고려하면, 이해할만한 일이었다.


이 경험들을 통해서 나는 발에 주목하게 됐고, 자연스레 우리가 신는 신발들을 살펴보게 됐다.


발의 적이 돼버린 현재의 신발들


현재 우리가 신는 신발에는 문제가 많다. 키높이 신발이나 좁은 앞코의 구두뿐만 아니라 스포츠 브랜드의 최신 운동화들도 그렇다.


▶ 루이14세 초상화


17세기 유럽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높은 뒷굽 신발(하이힐)은 성별과 상관없이 부자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들은 가마를 타고 다녔고 부축해줄 시종들이 있었고 노동할 필요가 없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높은 뒷굽의 유행을 따라 한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현재는 운동화도 쿠션이 너무 높다. 마사이족은 절대로 신지 않을 괴이한 모양의 ‘마사이 신발’도 한때 유행했고 이름은 달리기 신발, 걷기 신발인데 쿠션이 6cm가 넘는 것도 많다.(신발 외부로 보이는 쿠션 모양이 아니라 신발 내부에서 측정하는 뒷부분 높이를 말한다.) 신발 앞코가 좁지 않고 쿠션이 3cm 이하인 운동화는 정말 찾기 어렵다.


높은 굽이나 쿠션은 지면의 상태(기울기, 경도, 습도)를 느껴야 하는 발의 감각 기능을 저해한다. 민감하고 유연하게 설계된 발이 감각 불능의 탱크에 갇히는 셈이다. 기지국이 멀수록 신호가 약해지듯이 발이 바닥과 멀수록 신호들도 약하다. 물론 감각 신호를 잡아내고 반응하는 인체의 능력 문제도 있지만, 이 글에서는 신발만 주목하겠다.


직업적으로 구두를 오래 신어야 하는 사람들


직업적으로 구두를 오래 신고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정말 근무시간 내내 구두가 꼭 필요한 업종인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업무 성격과 전혀 상관없이 노동자로 하여금 구두를 신게 하는 직장도 많기 때문이다. 노조가 있고 단체협약을 할 수 있어서 신발과 복장을 더 편하게 바꿀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서비스 직종에는 구두를 신고 서 있는 업무가 있을 텐데, 이 경우에는 구두를 벗고 쉴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


2017년에는 백화점, 면세점 판매노동자들이 직접 자신의 발을 찍은 사진을 게시하면서 건강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2018년 10월에 발표된, 고려대 보건과학대 김승섭 교수 연구팀과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이 2,806명을 상대로 진행한 근무환경 및 건강실태 조사에 따르면 백화점, 면세점 서비스직 노동자들이 의료기관에서 진단받은 비율은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들보다 족저근막염 15.8배, 하지정맥류 25.5배, 척추측만증 55.5배, 무지외반증이 67배나 높았다.


▶ 판매직 여성노동자들이 스스로 찍은 발사진.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제공)


발이 편한 신발을 신을 수 있고 충분히 쉴 수 있어야 하지만, 판매노동자의 현실은 ‘유니화’(유니폼처럼 일할 때 신어야 하는 구두)를 신어야 한다. 게다가 앉아서 쉴 수 있는 분위기, 시간, 편하게 쉴 수 있는 휴게공간도 허락되지 않는다. 백화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혼자 일하는 경우가 많아서 화장실도 마음대로 가지 못한다.


최근 화장품 판매노동자들이 ‘화장실 사용’ 관련한 인권침해 문제를 제기하며, 다시 건강권 보장을 위한 싸움에 나섰다. 우리는 이러한 싸움을 지지하고 연대해야 한다.


건강한 발을 위한 개인적 자구책


직업상 구두를 포함해 발을 옥죄는 딱딱한 신발을 신어야 한다면, 신지 않아도 되는 때에는 최대한 안 신는 게 좋다. 예를 들어 근무시간이 끝나면 최대한 작업화 즉 구두, 안전화, 군화에서 빨리 벗어나는 게 좋다.


예를 들면 운동선수들도 직업적으로 야구화, 축구화, 골프화, 육상화를 신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그 신발들을 최대한 덜 신으려고 애쓰는 정상급 선수들이 있다. 건강보다는 성과를 위해 설계된 신발들이라서 장기적으로 몸에 좋지 않다는 점을 선수들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군화도 똑같다. 군화는 전투를 위한 신발이지 건강을 위한 신발이 아니다. 공사장과 공장에서 신어야 하는 안전화도 마찬가지다. 직장에서 구두를 신어야 하는 상황도 비슷하다.


▶발도 휴식이 필요하다 ⓒ최하란


발(발가락과 발과 발목)을 옥죄는 스트레스가 몸 전체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회복에 좋은 활동과 휴식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괜찮은 신발을 신고 밖에서 산책하기, 실내에서 맨발로 운동하기, 공을 이용한 간단한 발 마사지, 스트레칭(몸의 뒷면은 발바닥에서 시작한다) 등을 해줄 수 있다.


그리고 맨손 맨발을 풀어주는 것과 맨손 맨발 운동은 기초적인 신경 회복에도 좋다. 장시간 노동과 학습, 스트레스, 다중작업(멀티태스킹)은 특히 신경계를 소진시킨다. 이럴 때 발을 신발에서 해방시키고 맨발 맨손으로 바닥을 딛고 움직이는 활동을 하면 신경계 회복에 도움이 많이 된다.


지금쯤 운동화, 캐주얼화, 슬리퍼, 샌들 등을 선택해서 신을 수 있는 환경이라면, 어떤 걸 신는 게 좋을지 의문이 들 것이다. 다음 편에는 신발을 고를 때 고려해야 할 사항과 발의 건강을 회복하는 방법을 소개하겠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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