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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존중하기와 경계 설정하기

[최하란의 No Woman No Cry] 폭력을 예방하는 지름길


여성을 위한 자기방어 훈련과 몸에 관한 칼럼 ‘No Woman No Cry’가 연재됩니다. 최하란 씨는 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이자, 호신술의 하나인 크라브마가 지도자입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경계란 무엇인가


스스로 보호하고 지키는 방법들을 설명하거나 교육할 때면, 우리는 안전을 위한 경계를 설정할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가이드라인을 소개한다.


경계란 무엇일까? 삶의 기술로서 경계의 개념은 ‘사적 경계’(personal boundaries)라는 표현으로 1980년 중반 미국에서 자기계발과 심리상담 분야에서 널리 사용됐다.


경계란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합리적이고 안전하게 허용할 수 있는 행동을 확인하기 위한 지침, 규칙 또는 한계를 뜻한다. 폭력을 예방하거나 폭력에 대처하는 셀프 디펜스 기술로서 경계는 덧붙여 누군가 내 경계를 침범했을 때 대응하는 방법까지 포함한다.


▶ 경계는 합리적이고 안전하게 허용할 수 있는 행동을 확인하기 위한 지침이다.


사적 경계는 가족, 애인과 같은 친밀한 관계에서부터 친구, 직장 동료 관계, 모르는 사람들까지 모든 사회관계 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물리적 경계, 신체적 경계, 심리적 경계, 정서적 경계, 성적 경계 등이 있다.


경계 존중하기


경계는 나를 신체적, 정신적으로 보호하는 선이다. 누구나 신체적, 심리적 경계를 서로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 사적 경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경계도 존중돼야 한다. 또, 나이, 성별, 인종, 종교, 장애, 성적 지향, 직급, 빈부 등에 상관없이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친밀한 가족, 애인, 친구 관계에서도 원하지 않는 신체적 접촉을 하지 않아야 하고, 직장에서 일과 관련 없는 사적인 대화나 관계를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 서로의 경계를 존중한다고 더 번거롭거나 불편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삶이 더 편리해지고 안정될 것이다.


경계에 따른 대응을 해야 될 때는 에둘러 표현하는 것보다 분명한 의사표현이 낫다. 상대에게  직접적이고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다.


▶ 경계를 침범 당했을 때는 직접적이고 분명한 의사표현을 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친밀한 관계일수록 또는 위계관계에서 하위에 있을수록 경계를 존중받기가 더 어렵다.


합리적인 사적 경계의 설정과 그 경계를 진지하게 존중하는 태도는 경험과 사회적 학습으로 형성된다. 우리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교육이 중요하지만 일방적인 교육으로는 어렵다. 진정한 학습은 사회적 변화와 함께 이뤄지는 토론과 경험일 것이다.


경계 설정하기


다음은 셀프 디펜스 훈련을 통한 경계 설정과 존중에 관해, 내가 직접 들을 수 있었던 사례들이다. 사회적 변화에 비해 개별적이고, 심지어 일시적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변화에 대한 열망과 영감을 주기에는 충분해 보이는 목소리다.


“불편한 행동에 대해서 ‘하지 마세요!’ 말하는 거요. 처음에는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왜 그런 말이 필요한 지 이해하고, 입 밖으로 내는 연습을 하니까 별일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제가 사회생활에서 ‘하지 마세요!’라고 똑같이 외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내 주장을 하는 연습이 큰 도움이 됐어요.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분명히 말할 수 있게 연습이 됐어요. 전에는 ‘내가 그냥 참고 넘어가면 되지’ 하면서도 마음이 불편했는데, 오히려 제 생각을 말하고 나니 서로 편해졌어요.”


“저는 수업에서 배우는 여러 테크닉들도 훌륭하지만, 자기 의사표현 하는 법을 배우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지금도 말을 잘 하는 편은 아니지만, 제 의사를 좀 더 분명히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거든요. 그래도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 상대방에게 분명히 거절 의사를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 경계를 존중하는 것은 폭력을 예방하는 지름길이다. ⓒ최하란


“작년 세계 여성의 날 기념 No Woman No Cry 수업에서 ‘하지 마!’라고 소리치는 걸 배우고 나서 집에 가는데 기분이 정말 묘한 거예요.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느꼈어요. 삶의 태도가 바뀐 것 같아요. 전에는 거절하지 못하고 불편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내가 사회생활을 잘 못하는구나.’ 자책했어요. 그런데 셀프 디펜스를 배우고 나서 내 문제가 아니라 상황과 관계가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됐어요.”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니 여러 사람과 함께 일해야 되는데 남성과 같이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회의 하자는 핑계로 일이라는 핑계로 밤늦게 술자리나 회식 자리에 부르는 일들이 적지 않아요. 저는 술도 못 하고 그런 자리가 정말 싫었거든요. 그런데 싫다는 말을 못 했어요. 그런데 작년 겨울에 이 회사랑 다시는 일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술자리에 부르지 마시라. 이렇게 전화하시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단호하게 거절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 다음 날 미안하다고 문자가 오고, 절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더군요. 오히려 일이 깔끔해졌어요.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서 입금도 느린 편이었는데 완전히 초스피드로 들어왔어요. 그 일 이후로 이제는 일을 함께 할 때 제가 일하는 스타일, 밤늦은 회의, 회식자리 등에 관한 제 생각들을 미리 말씀드려요. 정말 큰 변화랍니다. 전에는 불편한 것이 있어도 참았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요.”


“자존감이 높아졌습니다. 대부분 범죄자가 남자다 보니 덩치 큰 남자들이 좀 무섭기도 했어요. 그리고 위계나 서열을 갖고 성희롱이나 성추행, 부당한 상황을 만드는 사람들이 ‘아저씨’들이다 보니 아저씨들이 싫고 무서웠어요.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남자를 성별이 다른 사람으로 더 인간적으로 함께 일하고 만날 수 있는 것 같아요.”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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