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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디펜스, 모의연습이 중요하다

[최하란의 No Woman No Cry] 실제상황, 타임라인, 모의연습


여성을 위한 자기방어 훈련과 몸에 관한 칼럼 ‘No Woman No Cry’가 연재됩니다. 최하란 씨는 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이자, 호신술의 하나인 크라브마가 지도자입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실제상황: Real-Life Situations


셀프 디펜스(self-defense) 교육을 하면 참가자들에게 여러 질문을 받는다. 크게 두 가지 종류다. 하나는 실제로 자신이 직접 경험한 폭력에 대한 대처법이고, 다른 하나는 간접 경험한 폭력에 대한 대처법이다. 그래서 사례 연구(case study)가 중요하다. 크라브 마가(Krav Maga) 이래 현대 셀프 디펜스의 가장 큰 장점이 사례 연구를 통한 모의연습(simulation exercise)이다.


직접 경험한 폭력은 특히 공평한 관점을 갖고 분석해야 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음에도 무능한 피해자로 느끼거나, 전적으로 폭력을 휘두른 가해자의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는 자신에게서 잘못을 찾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그날 당신은 자신을 용감하게 지켰습니다. http://ildaro.com/8248)


간접 경험한 폭력은 대중매체를 통해 알게되거나 지인에게 들은 폭력이다. 이 경우는 실제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이 필수적이다. 대부분 전후 사정이나 맥락 없이 강렬하거나 자극적이었던 부분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폭력은 진공 상태가 아닌 우리가 사는 실제 사회 속에서 일어난다.(관련 기사: 더 흔한 폭력과 더 두려운 폭력 http://ildaro.com/8018)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는 크고 작은 문제 상황과 위험 상황, 폭력 상황들은 사실 셀 수 없이 많다. 이 모든 상황들에 대한 하나하나의 대응방법을 모색하거나 연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차분히 살펴보면 실제 상황에는 몇 가지 두드러진 경향이 있다.


공격자는 손쉬운 공격 대상을 고르려고 한다. 우리의 방어 태세가 공격자의 공격 의도를 의외로 쉽게 무산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범죄자들의 인터뷰를 보면 공격이 성공하기 어려워 보이는 사람은 걸렀고, 애초 계획과 달리 공격이 성공하기 어려울 것 같아 보이면 도중에 포기하기도 했다.


또 공격자의 공격은 공격 대상을 고르기 위해 지켜보고, 가까이 다가오고, 상황을 파악하고, 공격을 실행하고, 공격이 목표물로 향하는 일련의 전개 과정이 있다.


타임라인: Time-Line


타임라인은 “중요한 사건을 분, 초까지 정밀하게 예정한 시각표”라는 뜻이다. 폭력의 실제상황은 앞서 말했듯 우리 입장에선 급작스럽게 발생하지만 사실은 일련의 전개 과정이 있다. 이 과정을 이해하고 대응을 연습한다면, 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다음은 여러 타임라인 중에서 공격자와 방어자 사이의 거리에 따른 일반적인 대처 방법이다. 당연히 보다 특수한 상황에 놓인다면, 다른 선택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먼저 기본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격자는 칼을 들고 있다. 그러므로 방어 뿐 아니라 강력한 반격을 하는 하드 솔루션(hard solution)이 필요하다.


▶ 타임라인: 먼 거리  ⓒ스쿨오브무브먼트 


먼 거리


문제 상황, 위험 상황, 폭력 상황을 이른 시점에 감지했다. 공격자가 아직 공격을 하지 않았다. 때로는 공격자가 나를 공격하려고 선택하고 다가오지 않은 상태인데도 그 사람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이럴 때는 최대한 멀리 떨어지고, 도망간다.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위험을 알리고 위험인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좋다. 사진과 같이 위험인물이 칼을 들고 있다면, “저기 까만 옷 입은 사람이 칼을 들고 있어요!” “피하세요!”라고 말할 수 있다.


112에 신고해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범인의 인상착의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면 좋다.

 

▶타임라인: 중간 거리 ⓒ스쿨오브무브먼트


중간 거리


방어나 반격을 하지 않고 그냥 도망가기에는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거리다. 그리고 팔을 뻗어서 방어하고 반격하기에는 닿지 않을 정도로 떨어져있다. 이때는 다리를 사용해 반격하는 게 효과적이다. 다리는 팔보다 길고, 일반적으로 다섯 배는 더 강하다. 


여기서 킥은 방어이자 반격이다. 명치보다 위를 차면 공격자가 뒤로 넘어갈 수 있고, 명치보다 아래를 차면 공격자가 앞으로 고꾸라지는 경향이 있다. 급소를 공격할수록 효과적이다. 급소는 턱, 목, 명치, 낭심, 무릎 등이다.  

  

방어와 반격을 한 다음, 주변의 위험요소를 살피고 최대한 위험인물과 멀리 떨어지고 안전한 곳으로 피신한다. 


▶타임라인: 가까운 거리 ⓒ스쿨오브무브먼트


가까운 거리


방어나 반격을 하지 않고 도망가기에는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거리다. 그리고 다리를 쭉 뻗어서 반격하기에는 가까운 거리다. 


한쪽 팔은 방어하는데 사용하고, 다른 쪽 팔은 공격하는데 사용한다. 둘 다 강해야 한다. 그러려면 공격적으로 돌진해야 한다. 그래야 팔 힘이 아니라 체중과 몸 전체 힘을 동시에 이용할 수 있다.  


주변의 위험요소를 살피고 최대한 위험인물과 멀리 떨어지고 안전한 곳으로 피신한다. 


안전한 곳에 도착하면, 다친 데가 없는지 확인한다. 극도로 긴장된 상태에선 몸이 일종의 갑옷처럼 조여져 출혈이 지연될 수 있다. 베이거나 찔린 곳이 없는지 옷 안으로 손을 넣어 구석구석 확인한다. 그리고 피해사실 등을 신고하거나 주변에 알린다.  


▶거리에 따라 칼을 든 공격자에 맞서 스스로 방어하는 방법 ⓒ스쿨오브무브먼트


모의연습(Simulation Exercise)의 효과


어린이 셀프 디펜스 수업에서 아이들에게 위험 상황에 대한 얘기를 꺼내면,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안돼요!” “싫어요!” “도와주세요!”를 다함께 외친다. 학교에서 배웠다고 한다. 


“안돼요!” “싫어요!” “도와주세요!”를 배우는 건 훌륭한 일이다. 아이들도 낯선 사람이든 아는 사람이든 가족이든 자신에게 원치 않는 접촉, 요구, 폭력을 행사할 때 거부의사를 밝힐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조력자를 구하는 노력은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중요한 셀프 디펜스의 하나다. 


그런데, 학교에서 모의연습은 안한 것 같다. 왜냐하면 앉아서 합창처럼 외치던 아이들이 일대일 모의연습에 들어가면, 대부분 입도 뻥끗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얼어붙는 것이다. 


모의연습이란 실제상황과 비슷하지만 더 간단한 시나리오에 따라 연출된 상황을 스스로 해결하는 연습이다. 


몸으로 할 일은 몸으로 연습해야 몸이 기억한다. 특히 아이들일수록 연습과정이 즐겁고 긍정적인 기억이 되게 해야 한다.   

모의연습의 효과에 대해서는 2011년 Dateline NBC의 <Girl Power>에 나온 아리엘라의 경험을 소개하고 싶다. 


아리엘라는 7학년(한국의 경우 중학교 1학년)인 열두 살에 난생 처음 친구들과 함께 댄스파티에 가게 됐다. 어린이에서 청소년이 되는 의미가 있는, 가슴 설레는 날이었다. 


그런데 친구들과 함께 파티에 들어서자마자 9학년 남자 아이들이 팔짱을 끼고 에워싸서 몸을 만지고 옷을 만지면서 치마 속으로 손을 집어넣으려고 했다. 그 순간 아리엘라는 친구들의 얼굴에서 공포심을 읽었다. 친구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아리엘라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다. 


4년 전인 여덟 살 때 셀프 디펜스 수업을 들었기 때문이다. 남자 아이가 블라우스로 손을 뻗을 때 4년 전 배웠던 것, 체중을 실어 발을 힘껏 밟기가 기억났다. 그리고 팔꿈치로도 때렸다. 그러자 남자애는 고꾸라졌고 아리엘라와 친구들은 풀려났다. 오래 전의 경험이 순간 불현듯 떠오른 것이다. 


이처럼 모의연습은 한참 뒤에도 필요한 순간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반면에 한국에서 한 살인 사건의 생존자는 범인들의 근거지로 끌려간 상황에서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죽은 척 할까?’였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곰을 만나면 죽은 척 해야 해’ 같은 얘기 외에 적절히 떠올릴 기억이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공격자들이 큰 실수를 했고 생존자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탈출에 성공했다. 


▶ 모의연습하기 ⓒ스쿨오브무브먼트


두 가지 사례를 통해서 나는 모의연습의 중요성을 더욱 절감했다. 시나리오 형태의 신중한 모의연습 뿐 아니라 더 단순한 방식들도 효과적이다. 달리기, 구르기, 뚫고 나가기, 심박을 올리는 움직임, 눈감기, 제자리 돌기, 소음, 굉음, 접촉 같은 스트레스 요인과 감각방해요소를 폭력 상황과 결합시킨다. 이렇게 하면 실제상황의 얼어붙음 반응(freeze), 터널 비전(tunnel vision), 심박 상승, 교감신경의 활성화 등을 비슷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   


셀프 디펜스 훈련은 일종의 재난 대비 훈련과 같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매우 불평등해서 폭염이나 폭우처럼 폭력도 우리들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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