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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미투, 지지집단이 없으면 불가능한 싸움

체육계 성폭력 논의한 국회토론회 ‘정부와 체육계는 응답하라’



“가해자의 항소가 지난 7월 26일 기각되면서 징역 10년형이 확정되었습니다.”


전 테니스 선수이자 현 테니스 코치인 김은희씨의 발언을 듣고 청중들은 박수를 쳤다. 김은희 코치는 사회 각계에서 미투(#MeToo)가 이어지던 와중에도 유독 조용한 집단이었던 체육계에서, 용기 있게 성폭력을 고발하고 재판의 승리를 이끌어 낸 피해생존자다.


초등학생 시절 자신을 성폭행한 코치를 10년이란 시간이 지난 후 강간치상 혐의로 법정에 세워 징역 10년 형을 확정받기까지, 김은희씨가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한 자리는 국회의원회관 세미나실이다. 지난 20일 더불어민주당 유은혜 의원실과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체조협회임원 김OO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공동 주최한 토론회 <체육계 성폭력 문제의 원인분석과 해결방안 모색을 위하여>에 발제자로 참여했다.


▶ 국회토론회 <체육계 성폭력 문제의 원인분석과 해결방안 모색을 위하여> 참석자들. 왼쪽부터 김은희 코치, 정용철 교수, 함은주 문화연대 집행위원(사회자), 주종미 교수, 정희준 교수, 이병진 대한체육회 감사실장 ⓒ일다(박주연 기자)


체육계에서는 왜 미투(#MeToo)가 나오지 않고 있는가? 체육계의 성폭력 실태는? 성폭력과 폭력의 연결고리는? 이날 토론회에서는 피해생존자의 생생한 증언과 함께 “별천지이고 무인도”로 비유되는 체육계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을 고발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모색하는 중요한 논의가 이어졌다.


피해자의 무거운 침묵…‘학습된 무기력과 길들여짐’ 


정용철 서강대학교 교수는 “현재 체육계의 미(Me)와 투(Too) 사이에 있는 쉼표(,)는 거대하다”며 “미(Me)들이 쉼표를 넘어 투(Too)로 넘어가지 못하는 이유, 이 쉼표 안에 무엇이 침묵을 강요하는지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침묵의 이유를 심리적인 요인에서 3가지로 분석했다. 첫 번째는 “고통의 크기가 클수록 침묵의 기간이 늘어나는데 체육계에서 벌어진 고통의 크기가 너무 크고 일상적이었다는 점이 문제”라고 설명했다.


“몇 해 전, 여자핸드볼 선수들이 겪은 폭력/성폭력을 알리기 위해 가까스로 선수들을 몇 명 겨우 설득한 후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지만, 지금까지도 아무 반응이 없다”는 경험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처럼 피해자들이 고통을 깨고 나오기도 힘들지만 “과거의 고통을 억지로 깨고 목소리를 내도 아무도 듣지 않거나, 들어도 아무도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침묵을 지속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 <체육계 '미투', 왜 없는가?>에 대해 설명하는 정용철 서강대학교 교수 ⓒ일다(박주연 기자)


정용철 교수는 “지난 5월 체육교육과 지도교수 정OO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 이OO의 주장에 대해,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이나 “얼마 전 안희정 사건이 1심에서 무죄 판결 받은 것 등이 피해자와 주변인들의 무기력증을 심화한다”고 말하며 “만연하게 학습된 무기력증”을 또 하나의 침묵의 원인으로 꼽았다.


또한 “사건의 트라우마가 삶의 이야기를 산산조각 냄으로써 하나의 서사로 인식되지 못할 정도로 만드는 점,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스스로조차 믿지 못하게 되는 점” 또한 피해자를 침묵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이 부분에 대해선 토론에 참여했던 정희준 동아대학교 교수도 비슷한 지적을 했다. “체육계 성폭력의 피해자는 대부분 청소년/학생이며, 그렇기 때문에 사건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아예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믿기 위해 사건을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이들이 스스로 사건을 조각내고 침묵하는 큰 이유는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며, 피해자들이 가지는 부담과 자책에 대해 설명했다.


주종미 호서대학교 교수는 체육계가 가진 특수성을 밝혔다. “절대 권력자인 지도자(감독, 코치)에 의해 합숙소 등지에서 집단적이고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운동부의 현장”과 “한번 운동을 시작하면 공부와 멀어지게 되고, 운동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그런 상황에서 복종에 길들여져 온 선수일 경우, 성폭력 피해를 입고도 고발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선수의 학습권 보장하고 여성지도자를 공개 채용하라


체육계 내 성폭력에 대해 연구를 지속해 온 주종미 교수는 “운동선수 인권 가이드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그동안 조금씩 대안이 나오고 변화도 이루어졌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체육계의 구조를 개혁한다”고 주장했다.


▶ 체육계 성폭력 사례들을 분석하여 그 특징을 설명하고 있는 주종미 호서대학교 교수 ⓒ일다(박주연 기자)


주 교수가 세부적으로 제안한 방안들 중 ‘합숙소 전면 폐지’, ‘지도자에게 몰려있는 절대 권력을 분산시키는 시스템 마련’, ‘지도자 선발 및 채용 시 검증체계 강화’, ‘실효성 있는 인권교육 강화’, ‘권고 사항으로 머물러 있는 협회의 규제 강화’도 중요한 부분이지만, 조금 더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다.


먼저 ‘지도자의 고용/처우 개선’을 언급했는데 이는 “현재 대다수의 감독/코치들이 비정규직으로 신분이나 급여가 불안정하며 ‘운동부의 성과’가 재임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성과’에 매달리게 되는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과 위주의 환경에선 학생선수들의 인권이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는 지적이다. 체육계의 성폭력이 노동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지적은 분명 논의가 필요한 부분으로 보인다.


‘학생선수들의 학습권 보장’도 방안으로 언급되었다. 주종미 교수는 “단순히 최저학력을 보장하기 위한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정말 학습의 기회를 학생들에게 줘야 한다”며 “선수 이외의 다른 대안이 있는 학생은 절대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했다. 정희준 교수도 “스포츠 강국이라고 하는 다른 나라들은 운동을 ‘방과 후’에 한다”며 선택이 제한적인 상황에선 “부모조차도 자식이 폭력/성폭력의 피해자가 되어도 외면한다. 왜? 대학에 가야하고, 다른 데 갈 데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체육계에서 성폭력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힘든 이유, 침묵의 카르텔이 유지되는데 현재 교육 시스템이 역할을 하고 있다는 따끔한 비판이다. 성폭력 해결 방안으로 ‘성교육’ 혹은 ‘인권교육’만 언급되는 상황에서 ‘교육 시스템의 문제’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만연해 있는 ‘성차별이 해결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주종미 교수는 “여성지도자 비율 확대 및 공개 채용의 의무”을 주장하며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 루니 룰(Rooney Rule) 도입”을 설명했다.


“‘적극적 우대조치’는 지원자의 자격이 동등한 경우 소수자를 우대 채용하는 방식”으로 미국에서는 대학 입학 시 소수인종에게 적극적 우대 조치를 적용하는 방법 등이 논의되었고 실제로 진행 중이다. “루니 룰은, 미국 미식축구 NFL 피츠버그 스틸러스 구단주 다니엘 루니(Daniel Rooney)의 제안으로 만들어 진 것”으로 “NFL 구단 감독 지원자 중 소수인종이 있을 경우, 그들 중 1명 이상이 반드시 최종 인터뷰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성중심적인 체육계에서 여성이 뛰어넘어야 하는 장벽을 낮춰주고 여성지도자를 늘림으로써 기울어진 운동장의 균형을 맞춰야 강압적인 환경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주 교수는 또 “이 제도를 어길 경우 구단은 엄청난 벌금을 내야 한다. 참고로 현재 이 규제를 어긴 걸로 조사를 받고 있는 오클랜드 라이더스는 위반이 확인될 경우 약 10억8천만 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어느 가해자 개인이 아니라 운영 구단이나 관리자에게도 큰 책임을 지게 하여, 성폭력 문제 해결엔 사회적인 책임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줘야 성폭력이 개인적인 것으로 취급 받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체육계 성폭력이 발생하면, 피해자가 선뜻 신고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발제를 한 김은희 코치는 초등학교 시절 테니스 코치였던 가해자의 성폭력을 고발, 고소하고 법정에 세워 강간치상 혐의로 징역 10년형 선고를 받기까지 경험한 체육계의 신고 시스템의 문제를 정리했다.


김 코치는 먼저 자신의 사건 개요를 간략히 설명했다. “성폭력 사건 이후 약 10년이 지난 뒤, 대학생이었던 2012년, 조두순 사건으로 법이 개정(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가 성인이 될 때까지 공소시효를 중지)됐다는 뉴스를 보고 ‘1366’에 전화를 걸었지만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진행이 되지 않았다. 그 후 지도자 과정 중이었던 2016년 가해자와 우연히 마주치게 되고, 그가 여전히 지도자 생활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사흘 동안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힘들어하다 고소를 결심하게 되었다.”


▶ 김은희 코치는 체육계 성폭력 사건의 신고와 고소의 과정에서, 모든 것을 피해자 홀로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문제 제기했다. ⓒ일다(박주연 기자)


김은희 코치는 신고와 고소의 과정에서 “증거를 모으기 위해 뛰어다니며 혼자 겪어내야만 했던 힘든 과정”들을 토로하며 “정부와 협회의 미비한 지원”을 비판했다. “대한체육회(스포츠인권센터)는 신고 메일을 보낸 지 약 1년 4개월만에 징계 결과를 통보했고, 문화체육관광부(스포츠비리센터)는 신고 메일을 보낸 후 담당자 배정에만 15일이 걸렸으며 약 1년 8개월이 걸린 후에 징계 결과를 통보했다는 것.”


“저는 과거의 일이었지만, 만약 피해자가 현재의 사건의 신고했는데 담당자 배정에만 15일이 걸리면, 피해자에게 그 시간은 어떻게 느껴질까요?”


김 코치는 “지금도 광주여성의전화로부터 의료비 지원을 받고 있다”며, “체육단체가 아닌 여성단체에서 왜 지원을 계속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피해자에게 무심한 체육계의 환경을 꼬집었다.


“성폭력 피해자는 정보가 없어서 소송에서 진다는 말을 듣고, 스스로 비슷한 사건들을 찾아보고 법 조항도 알아보고 변호사를 구하러 다녔다. 너무 힘든 과정이었다. 피해자에겐 그 어떤 것보다도 지원과 지지자가 필요하다.”


김은희 코치는 “그냥 가해자와 합의할까? 라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지만, 진술서를 써 주고 전화하면 한 시간 넘게 상담에 응해주는 지지자가 있었기 때문에 끝까지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혼자가 되지 않는 시스템의 중요성을 재차 언급한 것이다.


체육계 성폭력의 특징과 문제점에 대해 날 선 비판과 함께 해결할 수 방안과 대책이 논의된 이번 토론회를 마무리하며, 정용철 교수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체육계 성폭력 관련 문제로 몇 번이나 발언을 했지만 아직 변화를 보지 못했다. 정말 이번엔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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