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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판과 오미네산은 여성이 입장할 수 없다?!
전통으로 포장된 성차별, ‘여인금제’를 해제하라
올해 4월 일본 교토 마이즈루경기장에서 열린 전국스모대회에서, 스모판에서 쓰러진 마이즈루 시장을 도우려고 다가간 여성에게 주최 측이 스모판에서 내려가도록 요구한 일이 발생해 큰 논란이 일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스모의 ‘여인금제’(女人禁制, 종교의식 등의 이유로 여성의 입장을 금함)가 화제에 올랐다.
항의가 쏟아지자 일본스모협회는 여성차별이 아니라는 견해를 표명했다. 그러나 나카가와 토모코 다카라즈카시(효고현) 시장이 스모협회에 요청서를 제출한 것을 비롯해, 고시 나오미 오즈시(시가현) 시장도 ‘여인금제’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등 항의가 계속되고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지금도 ‘여인금제’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현의 오미네산도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오미네산 여인금제 개방을 요구하는 모임’ 공동대표인 미나모토 준코 씨의 기고를 싣는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 일본 스모판에는 여성이 올라갈 수 없다는 ‘여인금제’가 시행되고 있다. (이미지: pixabay)
‘여인금제’ 신성한 곳에 여성은 들어갈 수 없다
‘여인금제’란 어떤 특정한 영역을 정하고 그 장소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다. 이는 유엔의 ‘여성차별철폐조약’의 정의에 있는 ‘성에 기인한 구별, 배제, 혹은 제한’에 해당되는 여성차별이다. 하지만 ‘여인금제’에 대해 성차별이라고 정의내리기 어렵다며, 지금까지도 일본 스모판이나 오미네산 등에 이 습속이 남아있다.
‘여인금제’가 성차별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기원과 이유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러다 보면 ‘여인금제’의 과학적 근거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여인금제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으며, 헤이안 시대(794-1185년, 교토가 수도)로 추정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여성이 배제되었던 사실과 이유는 명확하다. 10세기, 궁정제사가 진행될 때 죽음·월경·출산을 ‘부정한 일’(<엔기시키> 헤이안 시대의 율령 시행 세칙)로 보고, 임신 중이거나 생리중인 여성은 참여를 배제했다. 또 사체(소, 말 등의 6종의 가축 포함)도 배제하여, 궁정제사장의 신성한 의미를 강화했다. 출산 7일 이내와 죽음 30일 이내의 사람들도 배제하며, 월경하는 사람은 제사 전날에 퇴출된다고 되어 있다. 궁정제사가 부정을 타는 것은 신의 도리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헤이안 시대 불교의 히에이산(788년 개장)과 다카노산(816년 개장)의 ‘여인금제’는 불교사상에서 ‘여자는 부처가 되지 못한다’는 여인오장(여자는 범천왕, 제석천, 마천, 전륜성왕, 부처가 되지 못하는 5개의 장애를 가지고 있다), 부정, 삼종(아버지, 남편, 아들을 따른다)의 몸이라는 이유로, 여성은 부정한 존재로 인식되고 그 부정함에는 기한이 없다고 여겨졌다.
산악 불교의 일파인 수험도(나라 시대의 밀교의 한 파)도 11세기, 산을 남성의 수행장으로 보고, 그 장을 신성시하여 후지산, 데와산, 이시즈치산, 오미네산 등 많은 산을 ‘부정한 여성’을 배제하는 ‘여인금제’로 정했다.
1872년, 메이지 정부가 ‘신사, 불각의 여인제한 지역을 폐지하고 등산, 참배를 자유롭게 한다’는 태정관(메이지 시대 전기의 최고 관청, 현재의 내각에 해당) 포고를 발표했다. 이로써 히에이산, 다카노산, 후지산의 여인금제는 해제되었다. 단, 수험도는 같은 해 ‘수험도폐지령’에 의해 종파 존속과 관련한 문제가 발생하면서, ‘오미네산’의 ‘여인금제’ 문제를 논할 게재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스모대회의 여인금제가 생긴 것은 1990년의 국기관(國技館) 설립 당시, 제의와 국기로서 스모판은 남자가 올라가는 신성한 싸움과 단련의 장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살펴 보면 ‘여인금제’는 여성을 부정한 존재로 보고, 종교적인 의미를 가진 신성한 장소에서 배제하며, 그것을 ‘전통과 문화’로 온존시켜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성차별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 여성의 입산이 금지된 오미네산에 있는 청정대교의 ‘결계문’과 ‘결계석’ ⓒ미나모토 준코 제공
세계문화유산인 “오미네산을 여성에게 개방하라”
‘오미네산 여인금제 개방을 요구하는 모임’은 ‘기이 산지의 영지와 참배길’(Sacred Sites and Pilgrimage Routes in the Kii Mountain Range and Surrounding Cultural Landscapes)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다는 것에 놀란 나라현의 여성들을 중심으로 2003년 12월에 결성되었다. ‘여인금제’인 오미네산을 포함한 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우리 모임은 가장 먼저 ‘세계문화유산 등록에 앞서 오미네산 여인금제 개방을 요구하는 요청서’를 작성하고 서명운동을 벌였다. 국립공원이나 공도가 포함되어 있었지만, 결국 2004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고 말았다.
‘오미네산 여인금제 개방을 요구하는 모임’은 그 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관련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여인금제 Q&A>와 <현대의 ‘여인금제’>, <이로하 시가(히라가나 47자를 한 자도 중복하지 않고 의미 있게 배열한 7·5조의 노래)로 읊는 여인금제>를 출판했다. 또 수험도의 긴푸 산사 등 본산 세 곳과 다섯 개의 고지원 사찰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웹사이트와 페이스북 페이지 개설 등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올해 ‘마이즈루경기장’ 사건 직후인 4월 6일, 일본스모협회에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여성차별인 ‘여인금제’를 근본부터 다시 검토할 것”을 골자로 항의문과 요구안을 보냈다. 4월 15일에는 공익재단법인인 스모협회를 관할하는 내각부에 “차별적인 체제와 운영을 재검토하고 합리적 근거 없는 ‘여인금제’를 즉각 폐지하도록” 요청문을 보냈다.
같은 날 스모협회와 세 본산, 다섯 곳의 고지원에 ‘여인금제’에 관한 공개질의서를 보냈다. 질의서에 대한 회신은 없었지만 스모협회는 이사장 담화를 발표했고, 오미네산 관계자 중 본산의 한 사찰을 제외하고는 답신을 보내왔다. 양쪽 모두 “여인금제는 성차별이 아니며, 여성을 부정한 존재로 보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 ‘오미네산 여인금제 개방을 요구하는 모임’ 공동대표 미나모토 준코 씨는 여인금제와 같은 명백한 성차별에 대해 항의 목소리를 높이고, 이를 해제하도록 여론을 모으자고 호소한다. ⓒ페민
언제까지 성차별을 ‘전통과 문화’라고 놔둘 것인가
스모판이나 오미네산 등의 ‘여인금제’가 오늘날까지 남아 개방되지 않는 이유 중에는, 이 문제에 대해 많은 여성들이 무관심하거나 남의 일로 여겨왔다는 점도 크다. 가령 직장 내 성희롱 문제와 비교했을 때, 많은 여성들이 이를 자신의 문제로 생각했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늘었으며 여론을 모아 재무성 사무차관을 사퇴로 몰아내기도 했다.
한편으로, 스모대회가 신에 대한 제의이며, 오미네산은 수험도라는 종교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도 ‘여인금제’가 유지된 한 이유이다. 그것이 ‘전통 문화’라고 얘기해버리면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여인금제’가 차별이라는 인식조차 희박하다.
그러니 여인금제 해제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모아지지 못해 스모협회에도, 오미네산 관계자에게도 압력이 되지 않는 것이다. 스모판은 남자가 싸우는 장이라고 하지만 선수나 관계자가 아닌 일반 남성은 올라갈 수 있으며, 수험도 신자가 아닌 남성도 오미네산에 오를 수 있다. 이처럼 명백한 성차별이자, 이치에 맞지 않는 ‘여인금제’가 지속되는 것에는 일본 사회 구성원들도 책임이 있다.
언제나 닫힌 문을 여는 것은 당사자들이었다. 그리고 함께 목소리를 내는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성차별 ‘전통 문화’에 속지 말고, 이러한 문제를 무시하지 말고, 관심을 가지고 개방을 위해 큰 목소리가 모아지길 바라고 있다.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미나모토 준코 님이 작성하고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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