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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택 구속은 시작일뿐, 연극계가 변화하고 있다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미투가 폭로한 침묵의 카르텔’ 포럼 개최



3월 23일 밤, 다수의 여성단원에 대한 성폭력 혐의로 조사를 받던 연희단거리패 전 예술감독 이윤택씨가 구속됐다. 다음 날인 24일,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은 이윤택 구속을 환영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연극 환경의 변화를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성명 ‘이윤택 구속을 환영한다’ (facebook.com/theaterwithyou)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은 이윤택 사건을 비롯하여 연극계 성폭력을 폭로하는 미투(#MeToo)가 연달아 발표된 후, 피해자들을 지지하면서 연극계 내 변화의 필요성을 느낀 백여 명이 넘는 연극인들이 모여 밤샘 토론을 했던 지난 2월 21일에 만들어졌다. 이들은 수평적인 연극인 결의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하며, 대표가 없는 체제로 약 30명의 실무진이 운영팀과 대외협력팀, 온라인팀, 피해자 지원팀 등으로 업무를 분배하여 활동하고 있다.


매주 정기 모임을 갖는 가지고 있으며, 익명의 성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대신 전하기도 하고, 심리치유 특강을 열고, 연극학과가 있는 대학 측에 학내 성폭력을 더 이상 좌시하지 말라며 대책을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하는 등의 활동도 진행 중이다.


뿐만 아니라 연극인들이 함께 문제의 본질을 찾고 해결책을 강구할 수 있도록 다양한 토론을 끌어내기 위한 연속포럼을 기획했는데, 그 첫 번째 자리가 3월 25일(일) 저녁 6시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다목적홀에서 열렸다. 주제는 ‘미투가 폭로한 침묵의 카르텔’. 연극계의 부당권력은 왜 감시와 견제의 대상이 되지 못했는지 구조적인 문제를 논의했다.


연출가, 비평가, 교수, 배우가 말하는 연극계의 문제점


이진아 교수(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는 “연극계 동료들과 함께 고민해 보고 싶다”며 예술대학의 특징을 이야기했다. “여타 단과대학과 달리 예술대학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있다”는 것.


“고등학교 때부터 타깃 대학과 그 대학 교수의 성향과 관심사에 맞춘 입시교육을 받으며, 진학 이후에는 교수의 작업을 돕고 선후배와의 인맥 속에서 커리어를 쌓는 것이 ‘교육’이고 ‘업계 진출’로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교수에게 절대 권력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논문과 학술활동으로 평가되는 다른 단과대학 교수들과 달리, 예술대학 교수들은 공연과 전시회, 연주회 등이 연구 점수에 포함되고 그 작업에 학생들이 동원되며 그 과정이 ‘현장학습’, ‘실습’으로 둔갑되는 관행이 뿌리 깊다”고 분석했다.


연극평론가 김숙현씨는 “현재 예술계열 학과 교육이 실기 중심 체제로 완전히 바뀌고 이론과목이 대폭 축소된 것은 실기과목 교수들에게 힘을 실어준 문제만 있는 게 아니라, 학교 안에서 인문학을 접하고 사고할 수 있는 토양을 상실해버렸다는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숙현 평론가는 지금까지 ‘평론은 연극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무관심했던 것인가, 몰랐던 것인가?’, ‘연극 과정에 대한 비평은 왜 이루어지지 않는가?’ 등의 제기된 물음에 대하여 평론가의 입장에서 “작품을 제대로 보고 비평하지 못한 안이함이 있었던 것 같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사람이 안보이고 사람이 삭제된 연극, 문제적인 성적 이슈를 마주해도 서구의 미학적 용어로 해석해 주기 바빴던 연극평론가들의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성찰의 목소리를 냈다. 또한 “연극비평이라는 작업이 작품을 평하는 사후 작업이다 보니, 과정까지 일일이 보기 힘든 구조적인 문제들이 있다”는 점도 짚었다.


▶ 포럼 발제자들. 왼쪽부터 최진아 연출가, 이진아 교수, 김숙현 평론가, 이리 배우 (출처: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극장(현장)의 침묵은 어떻게 발생했는가’를 주제로 발표한 최진아 연출가는 “이윤택이 그랬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못 들었던 건 아니었지만 믿지 못했다”며, “나 스스로가 불미스러운 일과 거리두기를 통해 안전한 영역에서 살고 있었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는 말로 발제를 시작했다.


연극의 특수성, 연출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구조에 대해 “연출에게 어떤 권한과 책임이 주어지는 건 사실이고, 이것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역할 분담을 해야 할지… 그래도 연출은 연출의 일을 해야 하는 것 같다”며 고민을 토로한 최 연출가는 “문제는 작업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함께 창조하고는 것,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존중 받고 작업하는 것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리 배우는 ‘왜 연극계 안에서 여성연대는 이뤄지지 않았나?’라는 주제로 여성 연극인들이 연극계에서 놓여 있는 열악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스트 연극인연대’라는 연대체를 만들었던 과정을 설명했다.


이리 배우는 “2016년에 #문화예술계_내_성폭력이 진행되었던 흐름 속에서 연극계(공연계)의 폭로가 매우 미비했던 점”을 들며 ‘왜 우리는 여태껏 연대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답을 “폭력적 젠더 위계가 연극계에 내재화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제시했다.


그런 구조 하에서 “많은 연극인들이 성폭력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혹은 인지가 늦었거나, 피해자가 연대할 사람이 없거나, 연대해도 제대로 처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는 진단이다.


이리 배우는 특히 “예술과 연극이라는 이름하에 만연하게 벌어졌던 성폭력은 어떤 성추행 행위뿐만 아니라, 여성 배우들에게 주어졌던 배역”과도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엄마, 아내, 비서, 술집작부, 기생, 미친 여성, 히스테릭한 중년 여성, 삼신할매, 치매 할머니, 되바라진 여고생 등등의 역할과 여성 배우가 작품에서 이용되는 방식 등 불평등한 젠더 인식과 관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리 배우는 “이제껏 없었던 여성 연극인들의 연대가 생기는 것, 이것을 잘 키우고 지키지 않으면 또 많은 동료들을 잃게 될 것이다. 그들을 지키고 작품을 보고 함께 연대하고 작업해야 한다. 우리는 다시 그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연극도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던졌다.


▶ 3월 25일 진행된 ‘미투가 폭로한 침묵의 카르텔’ 포럼 현장. (출처: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연극인들, 차이를 드러내며 계속 말하고 듣자


이어 진행된 토론에서는 학생, 작가, 배우, 연출가 등 다양한 연극인들이 각자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했다.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부분도 있지만, 견해 차이를 보이거나 혼란스러워 하는 부분도 있었다.


▷가족 같은 친밀함을 강요하는 극단


토론 참가자들이 현재 연극계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으로 꼽은 것 중 공통된 이야기는 ‘가족 같은 분위기의 극단과 그 안에서 강요된 친밀함’이다. 한 발언자는 “관계가 지나치게 가까워서 문제인 게 아닐까?”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가깝다’, ‘친밀하다’는 인식이 성폭력 가해자에게는 변명이 되고, 피해자에게는 신고나 폭로를 망설이게 하는 원인이 되며, 주변인들이 ‘성폭력’을 인지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또한 ‘친밀한 가족(같은) 관계’라고 하는 구조 안에서 여성들이 ‘여성적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한 발언자는 “단원이나 동료들을 만나면 살갑게 ‘밥은 먹었냐’, ‘잘 지내냐’ 등의 안부를 묻고 무언가를 챙겨주는 행동을 의식적으로 하지 않는, 개인적인 실험을 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말했다.


▷권력을 가진 자는 누구인가?


포럼에 참여한 연극인들은 연령대도 다양했고, 맡고 있는 역할도 달랐다. 여성이 확실히 많았지만 남성들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권력’에 대한 생각과 해소 방안 논의는 다소 차이를 보였다.


‘정말 모든 권력이 연출가 1인에게 있는가?’ 어떤 이는 그렇다고 했고, 어떤 이는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연출가에게 상당한 권력이 주어진다는 걸 받아들이고, 연출가가 항상 그 인식을 하고 자신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지 않도록 동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함께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한 발언자도 있었다. “작품을 이끌어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연출의 역할이 있다. 그 과정이 폭력적이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라는 의견도 나왔다.


“연출가의 역할과 극단 대표의 역할을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도 있었다. “현재 연극 제작 시스템은 자본이 없고 금전적 여유가 없는 이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다 보니 제작 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연출이 독단적으로 이끌고 갈 수 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분석한 이도 있었다. 분명한 것은 포럼 참가자들이 ‘권력이 몰리는 걸 경계해야 한다’는 데에 동의한다는 것이다.


▷위계 폭력과 젠더 폭력


커다란 가족 체제의 연극계, 그 안의 가부장 역할을 수행하는 연출가가 가진 권력, 이로 인해 발생하는 위계 폭력과 젠더 폭력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지금 미투로 폭로된 성폭력은 ‘권력’에 따른 위계가 원인 아닌가? ‘여성’이라는 젠더가 그 원인인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밝힌 이도 있었다.


그에 따라 논의는 ‘권력의 분산 방식’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열악한 예술인들의 상황이 연출에게 의존하는 권력 집중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에, “기본소득이나 최저시급을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자”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너무나 오랫동안 고정되어 온 여성과 남성의 위치와 역할, 즉 성별에 이미 위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나, 위계 문제나 젠더 문제 어느 한 쪽만 해결된다고 여성/여성연극인이 놓인 환경이 변화하기는 어려운 현실에 대해 조금 더 세밀한 논의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나 연극계 침묵의 카르텔을 분석한 이번 포럼은 ‘연극밖에 모르던 연극인’들이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이라는 연대체를 만들고, 온/오프라인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결성 한 달 만에 만들어 낸 토론의 시작이었다. 생계를 꾸리기도 벅찬 많은 예술인들이 주말 저녁 4시간을 쏟아 붓고 서로의 이야기를 귀담아 경청하는 모습에서 변화에 대한 갈망과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미투로 성찰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얼마 전에 어떤 극단에서 언어폭력의 피해를 입었지만 내부적으로 서로 감싸기만 하는 모습을 보고 실망했다. 우리는 연극인들을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어느 참가자의 질문에, 이리 배우는 “신뢰할 수 없다. 하지만 전 오늘 여기 와 있는 여러분을 믿는다”고 말했다.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과 연극인들이 만들어 낼 변화, 이제 시작이다. (박주연)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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