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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계층도 반려동물과 함께 살 수 있는 사회로

저소득 가구의 ‘반려동물 돌봄’ 실태조사 결과 발표돼



‘반려동물 가구 1천만 시대’, ‘4가구 중 1가구가 반려동물 가구’. 이제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을 보는 것이 흔한 일이 되었다. 친구들과 만나도, 심지어 처음 만나는 사람과 낯선 분위기 속에서도 반려동물 이야기를 하면 순식간에 공통점을 발견하고 재미있게 대화를 나누게 되는 경험도 늘어나고 있다.


왜 이렇게 반려동물 가구가 증가하고 있는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1인가구 증가와 저출산 및 고령화’가 그 주요 원인으로 거론된다. 그렇기 때문에 반려동물 가구는 앞으로 더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2016년 농림축산식품부의 보도 자료에 따르면 반려동물 산업은 2015년 기준 약 2조원, 2020년에는 약 6조원 규모가 될 것이라고 한다.)


▶ 반려동물 가구 수 비율은 2010년 17.4%, 2012년 17.9%, 2015년 21.8%로 증가 추세다. (참고: 농림축산식품부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 의식조사 결과’)


반려동물과 관련된 이슈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또한 반려동물 논의가 길고양이와 유기동물로, 또 실험동물과 축산 환경으로 이어지며 동물권,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빼놓지 말아야 할 주제 중 하나는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다양한 가구에 대한 실태 조사와 더불어, 그 중에서도 취약계층인 노인 가구 또는 저소득층이 반려동물과 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인가에 대한 점검이다. 반려동물 가구가 증가하는 주요 원인이 ‘1인가구 증가와 저출산 및 고령화’임을 고려하면 특히 더 그렇다.


지역 사회에서 취약계층이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는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이하, 우리동생)과 ‘마포구 사회적경제 통합지원센터’는 지난 2월 23일 서울 망원동의 한 카페에서 ‘취약계층의 반려동물 돌봄과 과제’라는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반려동물과의 삶이 취약계층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


반려인과 반려동물이 보다 건강한 삶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포구 기반의 협동조합 ‘우리동생’은 2015년 국내 최초로 협동조합 동물병원을 개원했다.


“개원할 때부터 늘 지역사회를 위한 활동을 고민해 왔다”고 밝힌 김현주 우리동생 사무국장은 “지역 내 취약계층이 반려동물과 살면서 겪게 되는 문제, 특히 반려동물의 건강과 돌봄” 문제를 논의해왔다고 말했다. “비용이 드는 부분이니까 ‘해보자’라는 이야기만 늘 하다가 조합원이 구조한 유기동물을 치료하는 케이스를 하나, 둘 하게 되면서 2017년에 정말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이야기가 되었어요.”


그렇게 ‘무료 의료나눔 사업’이 시작되었다. 단순히 무료 진료에 그치지 말고, 사업 활동을 기록하고 더 나은 방향을 찾는 연구를 해보자고 판단해 연구팀을 모집했다. 반미희 조합원(성균관대 사회학과)이 통계와 관련한 설문조사를 기획했고, 장봄(연세대 문화인류학과) 조합원이 면접조사 결과를 분석했다. 그리고 임정기 교수(용인대 사회복지학과)가 지도를 맡았다.


▶ ‘취약계층의 반려동물 돌봄과 과제’ 사업 연구결과가 담긴 보고서


마포구 성산동과 망원동 내 저소득층 주민들(기초생활수급권자, 차상위계층, 중위소득 80% 미만)을 대상으로 작년 8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 이 사업은, 공고를 통해 대상자를 선정했다. 대상자 46명(실분석은 23명)이 우리동생 병원을 방문해 반려동물 진료 및 치료를 받았고, 그 과정에서 설문조사가 진행되는 방식이었다.


반미희 연구원에 따르면, 대상자의 34.8%가 ‘반려동물과 나 혼자 산다’고 밝혔고 그 외는 가족과 사는 경우였다. 반려동물을 입양한 경로는 ‘가족, 이웃 등 지인을 통해 무료로 분양 받았다’가 43.5%로 가장 높았다. 그 다음은 ‘동물병원 등에서 본인이 직접 돈을 주고 구입했다’가 21.7%였다.


반려동물에 대한 애착 정도는 ‘가족(사람)만큼 애착을 가지고 있다’가 65%, ‘가족(사람)보다 큰 애착을 가지고 있다’는 15%로, 전체의 80%가 반려동물에 대한 강한 애착을 드러냈다. 이는 연구팀에서 비교대상으로 설정한 우리동생 조합원 설문조사 결과인 88.4%와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반려동물의 병원 방문을 주저한 경험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35%가 ‘있다’고 밝혔다.(비교대상의 결과는 28.6%) 그 이유는 ‘비용이 너무 비싸서’와 ‘반려동물을 맡길 사람이 없어서’가 27.3%로 동률을 기록했다. 또 반려동물에 드는 비용 부담 정도는 ‘매우 부담’(17.4%), ‘부담스러운 편’(39.1%)으로 전체의 56.5%가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비교대상의 결과는 42.3%)


대상자(반려인)의 건강상태는 ‘건강이 나쁜 편’이 47.8%로 가장 높았고 ‘건강한 편’이 21.7%였는데, 이는 비교대상인 조합원들의 ‘건강이 나쁜 편’ 1.9%, ‘건강한 편’ 66.3%와 큰 차이를 보였다.


▶ 반려동물과의 삶이 취약계층의 ‘우울 정도’ 감소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다


반려동물과의 삶과 ‘우울 정도’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반려동물과 살기 전에 ‘매우 자주 그랬다’가 19%였으나, 반려동물과의 생활 이후 ‘매우 자주 그랬다’는 0%로 감소한 점이 눈에 띈다. 또 이전에는 ‘가끔씩 그랬다’가 33.3%, ‘별로 안 그랬다’가 19%였던 우울 정도 수치가, 반려동물과 함께 살며 38.1%, 23.8%로 소폭 증가했다.


반미희 연구원은 “저소득 취약계층과 우리동생 조합원 간의 반려동물 양육 형태는 큰 차이가 없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소득 수준이 영향을 미친다기보다 반려동물에 대한 사회적 인식 수준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반려동물과의 삶이 취약계층의 우울 정도 감소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려동물 돌봄, 경제적 부담뿐 아니라 다양한 장벽 있어


심층 면접 결과를 발표한 장봄 연구원은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논의와 관련해, 몇 가지 사례를 들려주었다.


“집이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아들이 교회에 소원으로 ‘강아지를 가지고 싶다’고 써서 냈는데 교회 지역장님이 마침 10만원 주고 사온 강아지를 못 키우게 되서 저희한테 준 거에요. 그 때 제가 정신적으로 어려워서 예민했었어요. 바깥 소리도 위험하다고 느끼고. 그랬는데 강아지가 짖어주니까 마음의 안정을 찾았어요.” (반려동물을 입양한 이유)


“돈이 없으니까. 특별히 병원에 가지는 못하고 설탕물을 타서 먹인다던가. 먹지 않고 속을 비우게 한다던가. 물을 먹인다던가. 그런 식으로 그냥 그렇게 넘어가야지 어떻게 해. (3인 가구 월 80만원 정도의 소득) 병원에 다니기 힘드니까 되도록 아프지 말라고 나갔다 오면 꼭 씻기고. 식구라고 생각하니까 부담스러워하면 안 되잖아? 부담스러워도 안 키울 순 없는 거 아냐. 식구인데.” (저소득층의 반려동물 건강 돌봄 부담)


“솔직히 지금 돌려보내고 싶은 마음도 있긴 한데. 아들이 중학생이니까 말이 없잖아요. 근데 강아지 때문에 말을 하는 거야. 가족 간에 친화력이 생기는 것 같아요. 딸도 엊그제 왔다 갔는데 목욕을 시키고 갔더라고. 내 딸인가 싶을 정도로 잘하더라고.” (반려동물과의 삶이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


대상자들은 공통적으로 어려운 경제조건 속에서 반려동물 돌봄에 드는 비용에 큰 부담을 느끼면서도, 반려동물과의 삶을 포기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같이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 연구 발표가 끝나고 토론 중인 패널들. 왼쪽부터 석명선 사회복지사, 추예진 사회복지사, 반미희 연구원, 장봄 연구원, 김현주 우리동생 사무국장. ⓒ일다(박주연)


발표 자리에 함께 참석한 마포구 정신건강증진센터의 추예진, 석명선 사회복지사는 자신들이 겪은 사례도 이야기했다. 알콜중독이며 우울증을 겪고 있던 1인가구 반려인이 반려견과의 생활로 정서적 안정에 도움을 받았지만, 3개월 입원 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반려견과 떨어질 수 없고 (내가 입원 중에) 돌봐줄 사람도 없다’는 이유로 치료를 거부했다는 것. 이처럼 때로는 반려동물과의 삶이 취약계층의 치료를 어렵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토로했다.


또,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던 반려인이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하려고 했으나 반려견이 너무 짖는 바람에 지역 주민들과 사이가 더 안 좋아져서 상황이 더 악화된 사례도 말했다. ‘취약계층 반려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이런 상황들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되는지, 현실적인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누구나’ 반려동물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


우리동생 이현주 사무국장은 2014년에 동물권 및 동물복지에 대한 논의가 상대적으로 많이 이루어진 나라인 독일, 영국의 실태를 접하고 온 경험을 이야기했다. 특히 취약계층 주민을 위한 직영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영국의 ‘왕립동물학대방지연합’(RSPCA, Royal Society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 to Animals) 사례를 소개했다.


▶ 왕립동물학대방지연합(RSPCA, Royal Society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 to Animals) 담당자가 활동을 설명하는 모습. (출처: 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


RSPCA에서도 매년 ‘취약계층의 반려동물과의 삶’을 주제로 토론이 열린다는 것이다. ‘본인의 의식주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주민)들이 동물을 반려하는 것이 서로의 복지에 좋은가? 많은 자원을 들여 이 일을 지원하는 것이 맞는가?’ 고민한다고 한다.


취약계층의 반려동물에 대해 의료 지원을 하는 것을 단순히 ‘취약계층이니까 지원이 필요하다’고만 보지 않는 문제 의식은 우리 사회에도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왜? 그리고 어떤 지원이 필요한가? 우리는 무엇을 함께 나누어야 하는가?’ 등과 같은 주제로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이렇게 말한 대상자도 있다. “외로우니까. 독거노인이라든지 그런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키우는데, 사회적으로 이웃 간에 도와줘야 한다고. 교육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반려동물 키우는 사람들이 모임이라든가 교류를 해서, 짖는 것도 고치고 배변 문제도 논의하고. 그래야 하는데…” 경제적 지원만이 아니라 반려동물과의 안정적이고 행복한 삶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며, 지역사회 환경이 이를 뒷받침해야 할 필요성을 얘기해주고 있다.


‘반려동물 가구 1천만 시대’라며 산업적 측면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아직 조명 받지 못한 반려인들이 겪는 문제들을 살펴보고, 나아가 반려동물과 질적인 삶을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어떤 대안이 마련돼야 할 지 모색해봐야 한다. (박주연)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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