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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이 내게 남긴 ‘질문들’ 그 답을 찾아서

생존자가 쓴 책 <다크 챕터>와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고작 5~6살이었던 나를 성추행 한 가해자는 누구였을까? 난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게 없다. 기억나는 것도 없다. 사람의 기억이란 잔인하게도, 가해자의 얼굴이나 이름을 남긴 게 아니라 그가 나에게 어떤 걸 요구했고 그가 했던 행동이 무엇이었는지만 선명하게 남겼다.


그 일은 나에게 ‘금기’ 같은 거였다. 그 당시에 누구에게 말을 한 적도 없었고 이후에 종종 그 일이 생각날 때마다 그게 나의 꿈이나 환상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왜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야 했는지 알 수 없었던 나는 그 기억을 지우고 묻어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다른 사람들과 좀 다른가? 이상한가?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라고 날 의심하거나 책망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그 기억이 매섭게 날 쫓아왔다. 마치 ‘그런 일을 겪었기 때문에 넌 망가진 거야.’ 라고 말하는 것처럼.


정말 오래 전에 일어난 과거의 일 하나 가지고 뭘 아직도 이야기 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고 대수롭지 않다고 여길 수도 있다. 성인이 되고 나서 가족한테 이야기를 꺼냈을 때도 그런 반응이었다. 나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어색한 침묵과 화제를 돌리려고 하는 움직임만 있었을 뿐, 나에게 그 일에 대해 더 묻지 않았다. 그 뒤로 다시 언급하는 일도 없었다. 내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렇게 그 일은 당사자인 나도 풀지 못하는 끔찍한 미스터리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가해자는 대체 누구였을까? 그는 왜 그런 짓을 한 걸까?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나는 왜 피해자가 되었을까? 무엇이 날 그렇게 만들었을까? 피해 경험이 미치는 영향을 왜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았을까? 나는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는 걸까? 수많은 물음과 함께 말이다.


이런 물음, 자기 자신의 것이기도 하고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의 것이기도 한 그 물음에 답을 하고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은 두 명의 여성이 있다. 자신이 겪은 성폭행을 기반으로 소설 <다크 챕터>(Dark Chapter, 한길사)를 쓴 위니 리와, 강간의 역사를 정리한 페미니즘 고전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Against Our Will, 오월의봄)을 쓴 수전 브라운밀러다.


▶ 위니 리 소설 <다크 챕터> 표지(한길사, 2018)


가해자는 왜 그랬을까?


위니 리는 서른 살이던 2008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를 여행하다 15살인 남성에게 강간을 당한다. 그 사건은 위니 리의 인생을 완전히 바꿨다. 그리고 약 5년이 흐른 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다크 챕터>는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이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비비안은 작가와 비슷한 점이 많긴 해도 작가 본인이 아니라 그가 만들어 낸 가상의 인물이다. 가해자인 조니도 기본적인 설정은 실제 이야기에서 가지고 왔지만 작가의 상상으로 만들어졌다. 이야기는 비비안의 이야기, 조니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강간 장면 또한 비비안과 조니의 시선이 왔다 갔다 하면서 만들어진다.


작가는 어떻게 가해자의 시선과 감정이 담긴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무엇보다도 놀랍다고 느낀 건, 가해자를 이해하고자 하는 작가의 모습이었다. 가해자를 연민하기 위한 이해서가 아니라, ‘왜 그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내가 그런 일을 당했는지’에 대해 정말 이해하고 싶은 그 절실한 집념이 너무 잘 보였기 때문이다. 작가의 그런 의지는 피해자의 속성이라고 예상되는 연약함을 훨씬 넘어서는 강단이었고, 생존자의 힘처럼 보여서 내게 위로가 되기도 했다.


성폭력은 위계폭력이라는 말의 의미는?


다크 챕터의 이야기는 지금 한국에서 언급되고 있는 ‘권력형 성폭력’, ‘위계폭력’에 대한 의미를 되짚게 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흥미롭다. 비비안은 하버드대학 출신의 엘리트로 영화제작자로서 경력을 쌓고 있던, 사회적으로 성공한 위치에 있는 30살의 여성이다. 조니는 유랑민으로, 기초적인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15살의 청소년이다. 비비안의 사회적 위치가 조니보다 훨씬 높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비비안은 조니에게 강간을 당했다.


만약 이러한 사건이 지금 한국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성폭력은 위계폭력’이라는 말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이상해 보일 것이다. 비비안의 피해 사실을 믿지 않을지도 모른다. 소설에서 조니가 주장하듯이 ‘그녀가 먼저 유혹했어요’ 라는 말에 더 공감하거나, ‘설마 성공한 엘리트인 30살 여성이 15살짜리한테 당하겠냐’ 하면서 비비안을 비난할 지도 모른다.


지금 한국에서는 ‘자신은 그 때 권력도, 뭣도 없는 사람이었고…’ 라는 말이 성폭력 가해 행위를 부인하는 근거처럼 이야기된다. ‘맞아, 그땐 권력이 없었는데 지금은 있으니까 상대방이 이제 와서 뭘 뜯어먹으려고 그러는 거다’ 라며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성폭력은 위계폭력’이라는 말을 오해하고 있다. 이 사회는 특정 성별(sex)에 이미 권력을 쥐어주었다. 그 권력이란 사회를 움직이는 대단한 힘이 아니라, 여성을 쉽게 성적 대상화하고 여성이 자신의 성적 욕구 해소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으며 그걸 실행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소설에서 조니는 10년형을 선고 받았고 실제 위니 리의 가해자는 8년형을 선고 받았다.(지난 3월 29일 카페 <두잉>에서 열린 북 토크에 참가한 위니 리는 범죄가 일어나고 재판이 진행된 곳이 북아일랜드였기 때문에 8년형이 나온 거고, 미국이었다면 20년형 이상이 나왔을 거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권력형 성폭력’, ‘위계폭력’이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한국에서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 1975년 출간된 페미니즘의 고전, 수전 브라운밀러의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번역서 표지.(오월의 봄, 2018)


무엇이 성폭력을 용인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혼란스러워 하는 성폭력에 대하여, 그 중에서도 강간에 집중하여 그 원인을 집요하게 파고든 수전 브라운밀러는 (한국어판 기준) 약 700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의 책을 써냈다.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는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그 두께 때문이 아니라 인류가 기록을 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역사 속에 있었던 강간에 대해, 인류가 어떻게 강간을 용인하고 유지해 왔는지에 대해 글을 읽는 것은 썩 유쾌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겪어야만 했던 경험’으로 가졌던 수많은 의문과 물음들, 2016년의 ‘#OO계 내 성폭력’ 발화와 그 뒤로도 해결되지 않은 많은 사건들, 그리고 올해의 미투(#MeToo)와 지금의 상황을 보면서 반복적으로 든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


“고대 가부장들에게 여성은 남성 소유의 부속물이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니 남성들이 강간을 여성의 동의 여부에 달린 문제로 생각할 리 없었을 뿐 아니라, 여성이 신체 온전성을 유지할 권리에 기반을 둔 강간 정의를 용납했을 리도 없다”(30쪽), “가부장의 관점에서 강간은 새로운 거래 방식을 위반하는 범죄로 정의되었는데, 한마디로 처녀성 절도로서 공정가격을 치르지 않고 가부장의 딸을 도용하는 죄였다”(31쪽) 등의 문구를 읽으면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어떤 사고방식이 남성문화를 지배해왔는지 알 수 있다.


왜 성폭력은 계속되는가?


작가는 성폭력이 ‘성적 욕구 해소’라는 목적만이 아니라, 여성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쓰인 점을 짚어낸다. 어떤 일을 하길 거부한 여성을 처벌한다는 명목으로 남자형제들이 그녀를 마을 남성들에게 윤간의 대상으로 넘긴 사례를 들며 “여성의 일탈은 친족의 유대마저 개의치 않고 즉각적이고도 직접적인 조치를 취해야만 하는 위기로 여겨진다”(441쪽)고 분석한다. 수전 브라운밀러는 성폭력이 ‘성의 문제’만이 아니라 더 복잡한 것임을 상기시킨다.


굉장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남성 연대가 얼마나 견고하게 강간 문화를 지키고자 발버둥쳤는가에 대한 다양한 예시였다. 특히 (잔혹)동화인 <푸른 수염>이 만들어지는데 영감이 된 프랑스 귀족이자 군인이었던 질 드 레 이야기의 실제 피해자는 어린 소년 및 젊은 남성이었다고 한다. ‘마치 실제로 질 드 레가 저지른 잔혹 행위는 남자들에게 너무 공포스럽기 때문에 대중적인 상상 속에 있는 그대로 보존할 수가 없어서, 희생자를 여성으로 바꿔 남성들의 공포가 충분히 줄어들 수 있도록 누가 변형시키기라도 한 듯하다’(451쪽)라고 서술된 부분을 읽으며 ‘정말 버둥거리면서 지켜왔구나’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그 외에도 이 책은 강간에 관해 정말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독자들은 어떤 부분에서는 수전 브라운밀러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고, 책 속의 미국 상황이 한국과는 조금 다르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한 여성의 말하기가 수십 년이 지나 다른 여성의 말하기로 이어지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그건 그것대로 또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주최로, 서울 청계광장에서 3월 22일, 23일 계속된 ‘2018분의 이어말하기’ 현장에서. ⓒ일다


계속해서 말하고, 쓰고, 함께 읽자


난 나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 책들을 읽었다. 심리적인 공감과 나의 고민에 대해서는 <다크 챕터>를 통해서, 이론적인 궁금증에 대해서는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를 통해서 그 답을 찾았다. 사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용기 있는 여성들의 발언을 통해 이미 많은 도움을 얻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의문이 해소된 건 아니다. 나의 물음은 ‘왜 나는 피해를 당했는가’에 종착점이 있는 게 아니라,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있기 때문이다. 그 답을 쟁취하는 순간까지, 더 많은 피해자/생존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고, 쓰고, 또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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