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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은 되는데 무상생리대는 안 돼?
[이가현의 젠더 프리즘] 월경을 둘러싼 정치
※ 세상을 바라보는 20~30대 페미니스트들의 관점과 목소리를 싣는 ‘젠더 프리즘’ 칼럼입니다. 필자 이가현님은 불꽃페미액션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 5월 28일 세계 월경의 날을 맞아, 광화문 광장에서 여성환경연대가 벌인 퍼포먼스 ⓒ불꽃페미액션 제공
1. 감추어야 하는 월경
중학교 때 쉬는 시간에 학교 매점에 가면 구름떼처럼 몰려든 학생들과, 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침착하게 꺼내주는 매점 아주머니가 기억난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생리를 시작했다. 매점에 가서 생리대를 살 때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학생들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조심스럽게 “생리대 하나 주세요” 했더니 아주머니는 낱개로 신문지로 포장한 생리대를 주면서 “다음부터는 이렇게 오래 기다리지 말고 입모양으로 ‘그거’ 라고 말하면 꺼내주겠다”고 하셨다. 여학생들의 마음을 알아주는 매점 아주머니가 참 고마웠다.
일상적으로 생리대를 사려고 슈퍼마켓에 가면, 슈퍼에서 쓰는 흰색 비닐봉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검은색 봉지를 꺼내서 생리대를 담아주었다. 이런 서비스가 ‘배려 깊은’ 것으로 간주되고, 별 생각 없이 생리대를 투명 비닐이나 하얀 비닐에 넣어서 건네주면 ‘여성고객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또 어딜 가나 여자화장실에는 ‘여성용품’을 타인에게 불쾌감 주지 않게 휴지로 잘 싸서 버리라고 적혀 있었다.
이렇게 모두들 나의 생리를 ‘드러나지 않도록’ 친절하게 배려해주고 감싸주는 사이에, 생리는 더더욱 부끄럽고 불쾌하고 숨겨야 하는 것이 되었다.
2. 월경과 여성혐오
그만큼 사회에는 월경과 관련된 부정적인 편견이 가득했다. 이러한 편견은 월경을 하는 존재에 대한 혐오, 즉 여성혐오로 이어졌다. 영화에도 공공연히 등장하는 “너 생리해?”라는 대사를 생각해보자. 남성이 마치 상대 여성이 생리하는 것을 배려해 줄 것처럼 말한다 해도, 그것은 여성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타자화시키는 표현이다.
▶ 너 오늘 왜이렇게 까칠해? 생리해? 영화 <러브액션>에서 남주인공의 대사. 여주인공은 화를 낸다.
다큐멘터리 <3×FTM>에 나온 한 트랜스젠더는 월경 경험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이 “그건 여자들이 하는 거잖아요” 라고 말했다. 트랜스젠더로서 ‘몸’에 대한 그의 특수한 상황이 존재하지만, 나는 생리하는 여성으로서 불편함을 느꼈다.
(남자와 달리) 예민하고 히스테리 부리는 여자들, 이성적이지 못한 여자들… 우리 사회 남성들은 여성의 일상과 삶에 대한 감수성이 너무나 부족하다. 남성중심의 역사에서 애초에 여성의 경험과 고통은 이해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기 때문일까?
요새는 월경통에 대한 다양한 영상들이 나왔다. 월경통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남성들의 시도도 있다. 갑작스럽게 하루에도 몇 번씩 윗몸일으키기 150회를 하거나, 배에 전기 자극 패드를 붙이고 미션을 수행한다든지 하는 실험영상도 보았다. 이 영상에서는 남성이 이해할 수 있게 생리통을 설명한다. 바늘로 몇 분에 한 번씩 쿡쿡 쑤신다는 사람, 배를 쥐어짜는 느낌이 든다는 사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은 공동체에서 기본적인 ‘사회화’ 과정이기 때문에, 남성들이 생리통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3. 월경용품에 대한 정보, 왜 몰랐을까
월경에 대해 쉬쉬 하다 보니, 과학적인 정보나 제대로 된 건강 지식이 없어서 그냥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하거나, 월경통을 해소하는 방법은 생각지도 못하고 그저 견뎌내거나, 탐폰 같은 생리대 이외의 월경용품에는 막연한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다.
어느 날은 텔레비전 광고를 통해서 탐폰을 접했다. 엄마에게 탐폰에 대해 물어봤지만, 엄마는 “탐폰은 별로”라고 했다. 근데 엄마도 실제로 써 본 적은 없었다. 질 안으로 뭔가 이물질을 넣는 것이 싫다는 것이 이유였다. 엄마의 얘길 들으며 나도 모르게 ‘건강하려면 생리대를 써야지’ 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과학적인 근거는 없고, 그냥 심증으로 말이다.
▶ 세계 월경의 날을 맞아 여성환경연대에서 주최한 기자회견에 참여해 발언 중인 필자. ⓒ불꽃페미액션
지난 3월, 여성환경연대가 국내에 시판 중인 생리대와 팬티라이너 10여 종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됐다고 밝혀 한바탕 뒤집어졌던 적이 있다. 나는 지금껏 생리대를 그냥 있는 대로 구매해왔고, 어떤 생리대가 좋은 생리대인지 그런 건 전혀 몰랐다. 그런데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여성들이 건강에 유해한 생리대를 아무것도 모르고 구매해왔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깔끔하고 건강한 이미지를 사용해서 마케팅을 하고, ‘순면’임을 강조해서 자연친화적인 것처럼 광고하는 생리대 제조 기업들이 제대로 된 검증도 없이, 전체 성분을 표시하지도 않고 지금까지 그 많은 여성들에게 생리대를 팔아왔다는 사실을 알고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여성환경연대는 ‘생리대 전성분표시제’와 ‘생리대 유해물질 규제’를 요구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나를 비롯한 많은 여성들이 월경컵이나 면 생리대와 같은 생리용품은 그 존재조차 모르고 살았다. 소수의 여성들이 생리대에서 탐폰으로, 면 생리대로, 생리컵으로 사용 영역을 넓혀왔다. 국내에서 허가되지 않은 생리컵을 해외에서 공동 구매하기도 하고, 그러다 공동 구매가 일괄적으로 취소되는 난관을 겪기도 했다. 최근에는 월경컵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기 위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월경에 관한 다큐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과 비용은 온전히 여성들에게 부과된다는 점에서, 월경은 여전히 여성의 ‘사적인 일’로 취급받고 있는 듯하다.
4. 생리공결, 생리휴가는 그림의 떡?
나는 생리공결이나 생리휴가는 꿈도 못 꿔봤다. 학창 시절엔 생리한다고 말하는 것 자체도 못해서 ‘그거’라고 표현했는데, 어떻게 ‘그거’ 때문에 조퇴까지 해야겠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심지어 여자고등학교에서도 생리통으로 인한 조퇴는 학교에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학생들은 입술에 비비크림을 발라서 다 죽어가는 얼굴로 분장하고 교무실에 가서 여우주연상급 연기를 해야만 겨우 조퇴를 허락받을 수 있었다.
직장에 다닐 때에도 ‘생리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생리통이 심해도 그날 출근을 할까 말까 계속 고민했다. 생리통 때문에 쉬면 ‘몸이 약해서 쓸 만하지 못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여자는 어쩔 수 없어’라는 식의 인식이 퍼질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끝까지 꾹꾹 눌러 참으며 일을 하려고 노력했다. 결국 생리통을 앓아도 항상 출근을 했다가 극심한 통증 때문에 도중에 못 참고 돌아오는 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생리통이 심한 월경 첫날이면 무슨 일이 있건, 어떤 예약을 잡아놓았건 간에 모두 취소하고 집으로 직행한다. 대변이나 소변이 마려우면 누구든 언제든지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고 화장실에 갈 수 있어야 하듯이, 생리통이 심하면 누구든 언제든지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 여성환경연대의 세계 월경의날 행사가 끝나고 불꽃페미들과 한 컷
5. 휴지와 비누, 생리대가 놓인 공중화장실을!
작년 5월, 한 생리대 제조 회사에서 생리대 가격을 올리겠다고 밝혀 비난 여론이 크게 일어났다. 저소득층 여성청소년이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 신발 깔창으로 대신한다는 소식이 사람들을 울린 것도 그 즈음 일이다.
이후 정부는 저소득층 여성청소년들에게 생리대를 무상으로 지원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나, 공개된 장소에서 가난을 증명해야 한다는 딜레마가 있어서 비판을 받고 있다. 월경은 여성 보편의 경험인데 왜 개인이 모든 부담을 져야 할까? 나는 생리대가 무상 제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여성청소년들에게 생리컵을 하나씩 제공하든가.
공중화장실에 가면 휴지와 비누는 배치되어 있는데 왜 생리대는 놓여있지 않을까? 뉴욕시는 모든 공립학교와 교도소 등에 생리대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한다. 위스콘신주에서도 학교와 공공건물의 화장실에 무상 생리대를 놓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생리용품은 필수품이기 때문에 누구든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무상 급식은 ‘권리’의 개념을 높였다. 청소년들이 교육받을 권리와 더불어서, 그 교육받을 동안 배고프지 않을 권리도 사회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무상 급식은 되는데 무상 생리대는 왜 안 되나? 여성의 몸을 가지고도 일상을 불편하지 않게 살아갈 권리가 분명히 있다. 남성들은 이미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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