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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여성혐오는 함께 갈 수 없다
[이가현의 젠더 프리즘] 탁현민 퇴출을 요구하며
※ 세상을 바라보는 20~30대 페미니스트들의 관점과 목소리를 싣는 ‘젠더 프리즘’ 칼럼입니다. 필자 이가현님은 불꽃페미액션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젠더감수성 공언한 정부에서 여성혐오 인사라니…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전부터 높은 젠더감수성을 갖춘 ‘성평등 정부’를 공언하며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임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된 지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성차별, 여성혐오 인사 논란이 일면서 큰 실망을 안기고 있다.
먼저 법무부장관 후보로 지명됐던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은 사귀던 여성의 도장을 위조해 몰래 혼인신고를 하는 범죄를 저질렀던 것으로 밝혀졌다. 피해여성의 ‘혼인무효 소송’ 사실이 밝혀지면서 드러난 사건이다. 폭력적이고 여성혐오적인 안경환의 여성관은 최근 출간한 <남자란 무엇인가>(2016년 11월)에서 성매매를 정당화하는 대목에 여실히 드러나 있다.
“젊은 여성의 몸에는 생명의 샘이 솟는다. 그 샘물에 몸을 담아 거듭 탄생하고자 하는 것이 사내의 염원이다”, “여성은 술의 필수적 동반자다. 이는 만국에 공통된 음주문화다”, “아내는 한국의 어머니가 대부분 그러하듯이 자녀교육에 몰입한 나머지 남편의 잠자리 보살핌에는 관심이 없다.”
안경환의 법무부장관 후보 사퇴 후, 책을 통해 ‘여성혐오자’임을 인증한 또 다른 인물의 인사 문제가 드러났다. 문재인 정부가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 임명한 탁현민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다. 그는 2007년부터 비교적 최근인 2012년까지 세 권의 저서에서 일관되게 성차별적이고 여성비하적인 여성관을 ‘공언’했다.
“콘돔 사용은 섹스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등과 가슴의 차이가 없는 여자가 탱크톱을 입는 것은 남자 입장에선 테러를 당하는 기분”, “이왕 입은 짧은 옷 안에 뭔가 받쳐 입지 마라.” <남자마음설명서>(2007)
“첫 성 경험, 좋아하는 애가 아니라서 어떤 짓을 해도 상관없었다. 친구들과 공유했던 여자”,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훨씬 더 바람피울 확률이 높은 이유 중 하나는 여자가 결혼해서 집안에 들어앉으면서 별다른 성장이 없는 반면, 남자는 밖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점점 개선된 여자들을 만난다는 사실 때문이거든.” <말할수록 자유로워지다>(2007, 공저)
“캐릭터로서 내가 오빠라고 하는 것은, 수없이 많은 괴로운 혹은 외로운 여성들에게 나라도 오빠가 되어주어야겠다는 일종의 살신성인인 거고, 약간 마초처럼 보이거나 남자 냄새를 풍기는 이유는 내 성 정체성이 너무 명확하기 때문이에요. 엄마 빼놓고는 난 누구에게나 남자이고 싶어요.”<탁현민의 멘션s>(2012)
인공임신중절이 온전히 여성의 몫이 되고 낙태죄가 여성을 범죄자로 만드는 현실에서 섹스할 때 콘돔을 사용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아내가 성장이 없어서 남편이 바람을 피울 확률이 높다고 얘기하고, 어떤 여자에게나 ‘오빠’가 되어주고 싶다고 밝히는 사람에게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 역할을 맡길 수 있단 말인가? 많은 여성주의자들이 탁현민 사퇴와 경질을 요구했음에도 지금까지 꿈쩍 앉고 있는 상황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신뢰마저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누가 더 나쁜 놈이냐’고?
지금 온라인에서는 탁현민 경질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탁현민 퇴출을 촉구하는 상식을 탑재한 사람들’은 7월 5일 자정까지 탁현민 경질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서명운동 결과를 담은 성명서를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 6월 23일 청와대 앞에서 불꽃페미액션이 ‘탁현민 해임’을 요구하며 피켓팅을 벌였다. ⓒ불꽃페미액션 제공
이에 앞서 불꽃페미액션은 6월 23일에 청와대 앞에서 ‘탁현민 해임’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뇌에 섹스만 찬 남자 탁현민을 해임하라” 성명서를 발표하고 피켓팅을 했다. 이 내용이 언론에 사진기사로 보도되자, SNS 상에 300개가 넘는 반응이 달렸다. 문재인 정부 지지자들이 대부분인데, 크게 두 가지 유형이다. ‘남자는 원래 그래’와 ‘홍준표, 정우택 먼저!’.
‘남자는 원래 그런 놈들이야. 세상을 너무 모르는구나’, ‘원래 남자란 인간들 뇌에는 섹스만 가득 차 있어’, ‘남자와 여자가 생리학적으로 다르다는 것도 모르냐?’
얼핏 보면 남성비하가 아닌가 싶지만, 이러한 반응은 남자는 원래 그런 놈이니 탁현민의 저술을 문제 삼지 말라는 얘기다. 남자와 여자가 ‘생물학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남자들이 여성을 섹스 상대로만 바라보고, 여성의 몸에 서열을 매기고, 섹스 상대를 같은 남자들끼리 ‘공유’하고, 섹스할 때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민주주의(신분제가 있는 봉건이 아닌) 사회에서 납득된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청와대 앞 그 더운 땡볕에 페미니스트들이 나온 이유는 ‘원래 그런 남자는 없다’는 것을, ‘남자는 원래 그래’라는 말 뒤에 수많은 여성폭력이 자행되고 묵인되어 왔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불거졌을 때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탁현민을 두둔하는 두 번째 반응은 ‘홍준표, 정우택 먼저!’ 유형으로, 앞서 ‘남자는 원래 그래’보다는 나은 편이다.
‘홍준표 정우택한테 혹시 이렇게 해보셨나요. 그땐 겁났나요. 지금은 만만한가요’, ‘음모털주에 빤스 빤 술 처먹는 놈이 있고, 돼지발정제 가지고 강간미수 한 놈이 있고, 책에 일반남자들의 생각을 쓴 사람이 있다. 누가 더 나쁜 놈이냐.’
홍준표, 정우택과 탁현민 중 ‘누가 더 나쁜 놈이냐’를 묻는다면 ‘그 놈이 그 놈이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보수 정당의 남성정치인들이 성추행과 여성혐오 언행을 통해 폭넓은 강간문화를 조성해왔고, 그것에 탁현민의 계보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지적하였다. 보수 정당의 여성혐오 정치인들 수준으로 문재인 정부가 하향 평준화되길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 6월 23일 청와대 앞 불꽃페미액션 회원들의 ‘탁현민 해임’ 퍼포먼스 ⓒ불꽃페미액션 제공
성평등 정부에 ‘오빠는 필요없다’
자극적인 여성혐오와 여성비하 책으로 마초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자기 역사를 추후 문제가 되자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로 입 씻고 넘어갈 수는 없다. 공언과 공직에는 책임이 따른다.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가면 앞으로 또 어떤 성차별주의자, 여성혐오자가 국정의 주요 임무를 맡게 되더라도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게 된다.
지난 대선 시기, 홍준표 후보자의 30년 전 돼지발정제 강간 모의를 줄지어 비판하던 사람들은 페미니스트뿐만 아니었다. 문재인 지지자들도 한마음이었다. 그런데 몇 달 뒤(문재인 대통령 당선 후), 책 발간을 통해 성차별-여성혐오 의식을 확산시킨 사람을 경질하라는 요구에는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수구꼴통페미‘라는 낙인을 찍고, 페미니스트들이 누구(어느 정당)의 지시를 받아서 움직이는 거냐며 ‘배후’를 의심한다.
<오빠는 필요없다>(전희경, 2008)라는 책에서 진보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조직 내 성폭력 사건이 알려지면, 타 정파가 자신들의 조직을 깨기 위해 성폭력 사건을 조작한 거라며 성폭력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음모론’을 펼쳤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1980년대 진보의 가부장성을 비판한 책의 이름이 “오빠는 필요없다”이고, 이 말이 정확히 탁현민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인 것은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박근혜 탄핵으로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는 얼마큼 진보할까. 여성인권은 나중으로 남겨져 퇴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성평등 정부를 공언한 문재인 정부는 답해야 한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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