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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계에서 ‘여성’으로 일하기, 살아남기

지금 여기, 사진계 여성들의 목소리를 모으는 ‘HIDE & SEEK’



지금 여기, 사진계에서 여성의 자리를 이야기하는 행사 ‘HIDE & SEEK’(하이드 앤 시크)가 6월 초부터 한 달간 서울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이론가, 비평가, 기획자들이 페미니즘과 사진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현재 활발히 활동 중인 사진가들이 자신의 작업을 소개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다. 이 행사는 유지의 사진연구자, 이정민 큐레이터를 중심으로 사진계에 몸담고 있는 열 명의 기획팀이 도모했다.

 

▶ ‘HIDE & SEEK’ 행사 중 하나로 기획된 사진계 페미니스트들의 오픈토크. (이서연 출판사진노동자, 신선영 시사IN 사진기자, 정운 사진작가, 임미주 전시기획자)  ⓒ일다

 

‘여성’ 사진가가 마주하는 문제

 

6월 17일, 서울 합정동 <말과 활>에서는 네 명의 사진계 페미니스트들의 오픈 토크가 열렸다. 이서연 출판사진노동자, 신선영 <시사IN> 사진기자, 정운 사진작가, 임미주 전시기획자는 사진계에서 여성으로 일하면서 마주치는 문제들에 대해 얘기했다.

 

“제가 일하는 출판사진 분야는 남자 사진가들이 훨씬 많고, 제가 만나서 사진을 찍어야 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남성이에요. 사진 찍을 때 ‘이런 포즈 취해주세요’라고 주문하면 ‘아, 여자가 시킬 땐 해야지. 야, 여자가 시키는 대로 해줘’라는 식의 농담을 해요. 돌아오는 피드백도 ‘그때 분위기 사근사근하게 만들어줬던 그 기자 다시 보내줘’ 이런 식이죠.”(이서연 출판사진노동자)

 

“저는 여름에 더운 걸 싫어하고 옷을 자유롭게 입는 편인데, 한번은 내로라하는 남성 사진가들이 모이는 자리에 그렇게 입고 갔어요. 옆에 앉은 사진가가 윗옷을 건네면서 다리를 덮으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예전에 OO선생이 여대에 가서 강의를 하다가 여자애들 다릴 보니까 꼴려서 강의를 못 하겠다고 분필을 던지고 나갔다더라’는 얘길 하는 거예요. 제 다릴 덮어준 직후에 그런 얘길 하는데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더라고요. ‘왜요? 저 보고 꼴리세요?’라고 대응을 못하고 넘어갔어요. 왜 아무 말도 못했을까, 시간이 지나도 계속 (그 기억이) 돌아와요.”(임미주 전시기획자)

 

그뿐 아니다.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역할,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사진계 여성들에게 ‘여성 사진가가 생산해 내는 특정한 이미지’를 요구하기도 한다.

 

“제 키가 173cm인데 현장취재 나갔을 때 남성 사진가가 ‘아, 여성 사진가는 보통 섬세한 걸 찍는데 정운은 (키가 커서) 남성이랑 동등한 시야까지 가졌으니 얼마나 좋은 사진기자가 되겠냐’고 칭찬이랍시고 말하더라고요. 또, 저는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니까 왜 ‘여성 사진’ 안 하냐고…”(정운 사진가)

 

▶ 여성의 임신중단권을 요구하는 시위를 촬영한 정운 사진가의 작품

 

‘주체적 男 수동적 女’ 공식에서 스스로 자유롭지 않아

 

사진계 페미니스트들의 오픈토크에서는 자신들이 겪은 부당한 경험을 성토하는 것을 넘어서, 사진을 찍고 편집하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권력’에 대한 성찰적 이야기도 오고갔다. 자신이 ‘권력’을 가졌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여성 사진가들 또한 ‘여성’을 특정한 이미지로 소비하는 사회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끊임없이 스스로를 점검하고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는 것.

 

“보도 사진을 찍으면서 ‘아, 이 사진을 찍으면 잘 터지겠다’ 이런 생각을 계속 하게 돼요. 촛불을 들고 있어도 아저씨가 아니라 예쁜 여자분이나 아이들을 찍는 게 더 잘 먹히기 때문에 고민을 하게 돼요.”(신선영 사진기자)

 

“인터뷰 사진을 찍더라도 남성은 좀 더 당당하고 주체적이고 여성은 수동적이라는 이미지 공식이 있어요. 본인들도 그게 더 편하다고 하시고. 정상성에 가까운 이미지, 이성애중심적인 이미지들, 기존 이데올로기에 편승하는 이미지들을 만들어 내는데 내가 상당히 기여하고 있다는 데 자괴감이 들었어요.”(이서연 출판사진노동자)

 

이들은 어떤 사진을 찍는가와 어떤 사진이 골라지는가, 어떤 사진이 유통되고 소비되는가는 결국 이 사회의 이데올로기와 동떨어져 있을 수 없고, 이걸 성찰하면서 “우리가 (여성으로서) 놓인 위치가 더 많이 예민할 수 있고 더 많이 문제 제기할 수 있는 위치”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아이 키우는 사진가 셋, 서로를 기록하다

 

이날 같은 장소에서, 솔네 작가와 박미진 작가의 오픈 토크도 진행됐다. 두 작가는 결혼하고 출산한 이후 남성 사진가에 비해 여성 사진가들이 일할 기회도 더 적고, 아이를 키우면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여성 사진가가 많지 않은 사진계 현실을 지적했다.

 

▶ 솔네 작가와 박미진 작가 오픈토크. 박미진 작가 뒷모습을 찍은 솔네 작가의 사진을 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유지의

 

솔네 작가는 “아이를 낳고나서 일이 확 줄었다”고 했고, 박미진 작가는 “아이가 태어난 지 50일 됐을 때부터 일하러 다녔다. 일이 끊길까봐 두려웠다”고 했다. 두 작가와 또래 아이를 가진 니나 안 사진가 셋은 의기투합해 “서로를 기록해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는 것이다.

 

아이를 데리고 함께 만나서 사진 작업을 하는 건 녹록치 않다. 울거나 보채는 아이들을 끊임없이 다독여야 하고, 아이 사진을 찍으려고 아이를 세워놓고 거리를 만드는 순간 아이는 걸어서 엄마에게 다가오니 이마저도 쉽지 않은 일이다.

 

솔네 작가는 아이를 앞으로 매고 한쪽 팔엔 카메라 가방, 한쪽 팔엔 아기물건이 든 가방을 매고 사진을 찍는 박미진 작가의 뒷모습을 포착했다. 찍는 사람, 찍히는 사람 모두 ‘역할’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자기 고유의 정체성과 존엄함을 지키려는 애씀이 느껴지는 사진이다.

 

사진계 성폭력,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

 

작년 10월부터 SNS상에서 #문화예술계_내_성폭력 폭로가 연이어 터져 나올 때, 사진계에서도 성폭력 피해 경험을 털어놓는 여성들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사진계 성폭력 감시자 연대’라는 그룹이 만들어져, 올해 1월 392명의 서명을 받아 사진계 성폭력과 이를 가능케 하는 권력 구도에 경종을 울리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진계에서는 그 외에 뚜렷한 움직임이 없었고,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사진가가 사진계에서 별 타격을 받지 않고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유지의 사진연구자는 “사진계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고 더 보수적인 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예술사진계가 있고 상업사진, 사진기자도 있고, 따지고 보면 실질적으로 폭은 넓은데 무언가 공론화할 수 있는 장은 좁아요. 그래서인지 어떤 이슈가 나와도 흐지부지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죠.”

 

유지의 사진연구자는 “사진계에 여성 사진가나 기획자들이 사실 적지 않고, 일하면서 여성으로서 겪는 고충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지금까지는 이런 것들이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얘기됐고 목소리를 모았던 적은 없었다”고 진단하며, “이번 ‘HIDE & SEEK’가 사진계 내에서 여성들의 목소리를 모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나랑 기자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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