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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를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성폭력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

성폭력 가해자가 모의법정에서 가중 처벌받은 이유는?



성폭력 피해자가 무고로 역고소 당하는 현실

 

작년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유명 연예인에 의한 성폭력 사건. 당시 해당 연예인과 소속사 측은 고소인들이 허위로 고소했다며 무고로 역고소했다. 연예인 소속사 측의 압박으로 성폭력 고소를 취하했던 한 여성은 올해 1월 ‘무고’죄로 징역 2년이라는 중형을 선고 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형법 제156조는 무고죄에 대해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의 사실을 신고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성폭력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을 ‘무고’로 역고소해 피해자들이 처벌을 받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또 피해자가 중간에 고소를 취하하거나, 가해자가 성폭력 소송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을 경우, 검사가 피해자를 무고로 인지해 수사하고 기소하는 사례도 있다.

 

자신이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임에도 무고 건의 ‘피의자’가 되어 수사재판기관의 추궁을 받을 수도 있는 현실이다 보니, 성폭력 피해자들은 “무고로 고소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피해신고를 꺼리게 된다.

 

모의법정서 ‘무고죄’로 가중 처벌받은 가해자

 

한국성폭력상담소와 이화여자대학교 젠더법학연구소가 ‘2017년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성폭력 판례뒤집기 모의법정’ <누가 무고를 두려워해야 하는가? -성폭력 가해자의 역고소에 대한 피해자의 반격>을 주최했다.

 

6월 2일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관에서 열린 이번 모의법정은 검찰, 법원 등 수사재판기관에서 성폭력 가해자가 피해자를 무고로 역고소한 것을 ‘무고’로 인지해 가중 처벌할 것을 제언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무고죄를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성폭력 피해자가 아니라 “성폭력 가해 사실이 없다”고 범행을 전면 부인하며 도리어 피해자를 역고소하는 가해자라는 것.

 

▶ 한국성폭력상담소,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 공동주최  모의법정 <누가 무고를 두려워해야 하는가? --성폭력 가해자의 역고소에 대한 피해자의 반격>이 6월 2일 이화여대 법학관에서 열렸다. ⓒ일다

 

모의법정에서 다룬 사건은 대학 내에서 일어난 준강간 사건이다. 동아리 선배였던 피고인은 피해자의 집에서 만취 상태의 피해자를 강간했다. 피해자가 고소하자, 가해자는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 “피해자가 나를 좋아했는데 성관계 이후 사귀어주지 않자 보복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피해자에게 지속적으로 고소 취하를 종용하고 합의를 시도하며 “고소를 취하하지 않으면 무고죄로 고소하겠다”고 협박까지 일삼았다. 피해자가 끝까지 고소를 취하하지 않자, 가해자는 피해자를 무고로 역고소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검찰은 불기소(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이번 모의법정에서는 피해자, 피해자의 친구, 상담소 활동가 등이 증인으로 참석해 진술했다. 두 시간 가까이 지속된 공방 끝에, 모의법정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징역 3년의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가해자의 준강간죄가 성립했음은 물론이고, 피해자를 무고로 역고소한 것도 무고가 성립되어 형량에 반영됐다”고 밝혔다.

 

“범행 이후에도 계속 범행을 부인하다가 피해자로부터 고소를 당하자, 다시 피해자를 무고하는 등 죄질이 불량한 점, (…) 무고의 경우 상당한 수사 및 재판기관의 비용과 인력이 낭비되어야 하는 등 그러한 범행의 예방을 위해서도 강력한 처벌이 필요한 점” 등이 참작된 것.

 

“준강간에 대해서 징역 3년형을 선고하나 피고인이 과거 형사처벌 전력이 없다는 점이 참작돼 1년이 감경되었다. 하지만 ‘무고죄’로 인한 가중 처벌로 다시 1년형이 보태져 3년 형량을 선고했다”고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설명한다.

 

역고소한 가해자를 가중 처벌한 실제 판례 있어

 

이번 모의법정은 2007년 3월, 대법원이 미성년자 의제강간 미수를 한 가해자에 대해 성폭력 범죄 유죄 판결뿐만 아니라, 피해자를 무고죄로 고소했던 건에 대해 가해자의 무고 혐의까지 병합해 판결한 실제 사례에 토대를 두었다.

 

당시 대법원은 판결 요지에서 “(성폭력 가해로) 고소당한 범죄가 유죄로 인정되는 경우에, 고소를 당한 사람(가해자)이 고소인(피해자)에 대하여 ‘고소당한 죄의 혐의가 없는 것으로 인정된다면 고소인이 자신을 무고한 것에 해당하므로 고소인을 처벌해 달라’는 내용의 고소장을 제출하였다면, 설사 그것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방어권의 행사를 벗어난 것으로써 고소인을 무고한다는 범의를 인정할 수 있다”고 적시했다. (대법원 2007. 3. 15 선고, 2006도9543 ‘판결 요지’ 중에서)

 

그러나 정작 현실에서는 성폭력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무고죄로 고소당하거나 처벌까지 받게 되는 일이 더 많다. 가해자는 자신을 ‘방어’한다는 명목으로 피해자를 협박하려고 무고죄를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검사는 무고죄를 기준으로 성폭력 통념에 근거해 피해자를 의심한다.

 

▶ 이번 모의법정에는 고소인 역할에 배우 정다솔, 피고인 역할에 배우 류성국이 연기자로 참여했다.  ⓒ일다   

 

‘피해자다움’ 통념이 피해자에게 ‘무고’ 누명 씌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감이 활동가는 “성폭력 친고죄가 폐지된(2013년) 후부터 검찰이 <검찰 사건사무규칙> 제70조 ‘혐의없음 결정 시 유의사항-검사가 고소 또는 고발 사건에 관하여 혐의없음에 대하여 결정하는 경우에는 고소인 또는 고발인의 무고 혐의에 유무에 관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를 기준으로 성폭력 사건을 판단하는 일이 빈번해졌다”고 설명한다. 검찰이 성폭력 사건을 수사하면서 ‘이것이 무고인지 아닌지’를 내내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

 

이에 대해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피해자를 무고로 의심하기 이전에 수사재판기관이 성폭력에 대한 통념을 갖고 있지 않은지, 가해자에 대한 조사와 판결에 문제가 없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무고죄가 성립하려면 피해자의 진술에 정말 아무 근거가 없거나, 아무 일도 없었는데 피해자가 오직 가해자를 처벌받게 하기 위해서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야만 합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신고할 때, 그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기억이 왜곡될 여지나 약간의 과장이 있을 수는 있지만, 이걸 두고 무고라고 단정할 수는 없어요. 결국 무고에 대한 판단에는 통념이 작용합니다. 당당한 피해자, 별로 힘들어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 피해자, 자기 권리를 강하게 주장하는 피해자 등 수사재판기관의 통념에 들어맞지 않는 피해자를 의심하는 것이죠.”(감이 활동가)

 

이번 모의법정에서도 피고인(가해자)과 피고인의 변호인은 “피해자는 자존심이 세고 자기주장이 강하다”고 강조했다. 성폭력 가해자 측이 피해자의 이런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은 ‘피해자다움’에 걸맞지 않는 이미지나 태도가 성폭력 피해를 의심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사회가 성폭력 피해자에게 강요하는 ‘피해자다움’의 굴레를 깨지 않는 한, 피해자가 무고죄로 수사를 받거나 처벌까지 당하는 부정의가 생길 수밖에 없다. 모의법정에서 피해자가 한 최후 진술을 우리 사회는 귀담아 들어야 한다.

 

“성폭력 피해 자체보다 사람들이 저의 진술을 의심하고 저를 비난하고 욕하는 것이 더 무섭고 힘들었어요. 누군가는 제가 완전무결한 피해자가 아니기 때문에 성폭력이 아니라고 말했어요. 누군가는 제가 피해를 유발했다고 했어요. 또 이름 모를 많은 사람들은 제가 꽃뱀이나 미친년이라고 말했죠. 그 사람들 사이에서 고소하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매순간 저의 피해 사실을 증명하지 않으면 도리어 제가 무고죄로 고소당할 수 있기 때문이죠. 피해자에게 애꿎은 무고죄를 씌우는 사회가 변하지 않는 한, 어떤 피해자는 고소를 포기할 것이고 어떤 피해자는 무고죄와 싸워야 하겠죠. 그러는 사이에 가해자들은 잘 먹고 잘 살겠죠.”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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