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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인권을 삭제하지 않는 ‘성평등’으로

[잇을의 젠더 프리즘] 문재인 정부에 바란다


※ 세상을 바라보는 20~30대 페미니스트들의 관점과 목소리를 싣는 ‘젠더 프리즘’ 칼럼입니다. 필자 잇을님은 언니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 문재인 대통령의 성평등 공약이 이행된다면…

 

▶ 제19대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정책공약집 중에서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임명과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 내정에 신선한 관심이 일고 있다. 공공부문에서 여성대표성을 재고하고 남녀동수 내각 구성에 노력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성평등 공약 일환으로 해석된다. 새 정권은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하고, OECD 가입국 평균 수준으로 성별임금격차를 해소하고, 일‧가족‧생활 균형 및 육아 정책, 젠더폭력방지법 마련 등을 추진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의 성평등 공약은 최근 몇 년의 페미니즘 운동에 힘입은 바 크다. ‘여성들의 외침’은 술과 약물을 이용한 성폭력, 소위 ‘몰카’ 및 촬영물 유포, 주로 여성들을 향하는 (전/현) 연인‧배우자의 폭력 행위 등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수십 년간 제재 없이 유지되던 ‘소라넷’을 폐쇄하는 등 사회를 흔들었다. 결집된 행동의 경험은 시민사회를 달라지게 했다. 지난해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이 던진 충격적 깨달음과 과제 역시 선명하다. 타오른 광장의 촛불에는 반드시 차별과 혐오폭력을 종식하고 새 시대를 열고자 하는 외침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가 성평등 공약을 실제 이행한다면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시 공약에서 그동안 디지털성범죄 피해자가 자비로 온라인상의 촬영물을 삭제조치 해왔던 것에 대한 시정조치로, “디지털 기록 삭제 서비스에 대한 국가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국내외 법적 대응 방안과 전담 수사 인력 체계 마련 및 국제적 법률망 구축”을 통해 또 다른 ‘소라넷’ 방지를 꾀하겠다고 했다.

 

또한 공약에는 “스토킹 및 데이트폭력 처벌법을 마련”하고, “가정폭력 정책 방향을 ‘가정보호’에서 ‘피해자 권리보장’으로 전환”하고, 현재 산발적이며 충돌을 일으키기까지 하는 “성폭력 관련 법 조항을 재정비”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이는 일선에서 상담운동을 하고 있는 여성운동 현장의 요구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더불어 민주당 정책공약집 <나라를 나라답게> 중 ‘11. 지속가능하고 성평등한 대한민국’ 참조)

 

# 젠더폭력 방지하려면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통령이 실질적 성평등을 공약했고 그것이 실현되기 시작한 이때, 참담한 소식이 들려왔다. 이틀 전인 5월 24일, 육군 내 동성애자 색출조사로 구속된 A대위가 동성애 처벌조항인 군형법상 추행죄로 유죄(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를 선고 받았다. 더구나 사법기관은 수십 명의 다른 ‘A대위’들을 기소하고 수사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성소수자 인권은 여성가족부, 교육부, 법무부, 지자체, 대선후보 할 것 없이 외면하는 것이었고, 또 한 번 잔인한 실형 선고로 짓밟힌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나와 내 친구들이 머물 공간은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좁아지고 있다고밖에 할 수 없다. 이것이 ‘성평등’을 이야기하는 시대의 현주소다.

 

▶ 지난 4월 14일 국방부 앞. 육군의 동성애자 군인 색출 수사와 인권침해 규탄 긴급 기자회견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침해 차별신고 및 지원을 위한 네트워크

 

“저는 여성이며 성소수자인데 여성과 성소수자로 저를 반절씩 나눌 수 있습니까?” 지난 2월 16일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이 싱크탱크 국민성장 주최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제7차 포럼(주제 ‘새로운 대한민국, 성평등으로 열겠습니다’)에서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에게 항의하며 했던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젠더폭력방지기본법(가칭)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법률로써 젠더폭력(gender-based violence)을 정의하고 아우르려 한다면, 위 메시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당신들이 말하는 성평등에 성소수자는 없는가?’ 여성 성소수자는 젠더폭력의 ‘드러나지 않는’ 피해를 겪고 있다. 성차별과 성소수자 혐오, 그리고 여성 성소수자의 상황과 여성 성소수자에 대한 악의적 편견이 만났을 때의 폭력, 그것은 피해자를 반절씩 나눠서는 드러낼 수 없는 통합적 피해다. 젠더폭력의 대부분이 남성에 의해 여성에게 일어나는 폭력이라 하더라도, 이를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만이 겪는’ 폭력으로 등치할 수는 없다. 또한 사회 전반에서 성소수자를 배제하고 삭제하면서 젠더폭력을 방지할 수도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약에서 “젠더폭력방지기본법을 통해 여성에 대한 증오범죄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체계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여성에 대한 증오범죄’는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증오범죄 처벌은 사후적이지만, 차별금지법은 일종의 제동 장치다. 기존의 범죄 양태로 이미 드러나고 있고, 앞으로도 드러날 증오범죄는 계속 ‘묻지마 범죄’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증오범죄에 대한 판단 기준을 세우고 한국의 수사재판기관이 이를 적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담보하는 일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한다면, 그 과정에서 우리의 삶을 잠식하고 있는 차별의 초미세먼지를 공적 공간에서 환기시키고 토론하는 ‘사회적 합의과정’이 필수적으로 따를 것이다. 이를 통해 증오범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가장 적극적인 성평등 정책일 수 있다.

 

▶ 2월 16일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제7차 포럼>에서 성평등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에게,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이 차별금지법에 대한 입장을 묻고 항의하는 모습.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 학교 성교육표준안은 폐기되어야 한다

 

한편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폭력예방교육과 성교육 강화”를 공약한 만큼, 2015년부터 시행되어 논란이 되어온 교육부의 학교 성교육표준안을 폐기하고, 성차별과 소수자 혐오를 성찰할 수 있는 성교육 가이드라인을 다시 마련하기를 기대한다.

 

‘A대위’에 대한 군사법원의 유죄 선고가 드러낸 것은 성소수자를 향한 증오와 동시에,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된 지 20년 이상 흘렀음에도 여전히 성폭력 ‘범죄’와 개인들의 존중되어야 할 ‘섹슈얼리티’가 분간되지 않거나 뒤바뀐 광경이다. (군형법 제92조의6의 ‘항문성교와 그 밖의 추행’은 강제가 아닌 동성 간 성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학교 성교육표준안은 차별적 성별 고정관념을 공고히 하고, 성폭력을 여성이 ‘남성의 참을 수 없는 성적 충동’을 잘 거절해야 되는 문제로 다루며, 무엇보다 성소수자는 성교육에서 다루면 안 되는 존재로 규정했다. 성폭력은 나쁜 것이라는 차원의 단편적 교육이 아니라, 타인은 언제나 나와 다를 수 있다는 점과, 그런 타인을 존중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성교육에서 시작해 교육과정 전반으로, 누구도 성 정체성을 이유로 그 존재가 찬반에 부쳐질 수 없다는 인간존엄성을 가르쳐야 한다.

 

# 우리를 갈라 치지 않는 사회를 원한다

 

대선 TV 토론회에서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말했을 때, 그에 항의한 활동가들이 연행되고 ‘태도’를 훈계당할 때, 숨 막히는 독방에 떠밀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희망이 꺾인 순간, 그 다음에도 우리는 계속 살고 있다.

 

어제 오전, 군형법상 추행죄 폐지안 발의를 알리는(정의당 김종대 의원 대표발의, 정의당 심상정, 노회찬, 이정미, 추혜선, 윤소하 의원,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권미혁 의원, 무소속 김종훈, 윤종오 의원 등 10명)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다시는 ‘A대위’들이 색출되지 않는 사회, 성폭력피해자에 한정짓지 않는 임신중단권을 보장하여 내 몸의 결정이 국가에 볼모로 잡히지 않는 사회, 더는 우리를 잘게 쪼개서 차례로 미끼를 주고 갈라 치지 않는 사회가, 내가 바라는 ‘성평등’한 사회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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