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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피우는 여자’ 여기 있다

<홍승은의 질문교차로> 담배가 뭐라고



서른 살이 되고 내게 일어난 변화.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꽤 기억할만한 변화다. 이상형이 ‘비흡연자’일 정도로 담배를 싫어했던 내가 직접 담배를 피우게 되었으니까. 흡연을 시작한 그렇다 할 이유는 없었다. 인도에서 돌아온 동생이 “언니, 담배 피우는 거 괜찮더라고. 우리가 아빠 담배 냄새에 시달리다 보니까 괜히 싫어하게 됐던 거야”라고 말한 게 계기라면 계기였다. 본격 ‘흡연자’가 된 지 4개월 차. 나는 전에 겪지 못한 부대낌을 일상에서 느끼고 있다.

 

막 흡연을 시작한 어느 날, 어설프게 담배를 들이마시고 기침하는 내 모습을 보더니 남자후배가 물었다. “왜 굳이 담배를 배우려고 해요?” 그는 7년 째 흡연 중이었다. 내가 “너는 왜 담배를 피워?”라고 물으니, 이미 자신은 중독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기왕이면 누나는 하지 말라 했다. 여자는 임신도 하는데 건강에 좋지 않다는 말을 늘어놓으며 후배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후배처럼, 자신은 담배를 피우면서도 여자에겐 피워선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내가 만났던 애인 몇 명은 흡연자였다. 당시 담배를 싫어했던 나는 애인의 담배를 끊게 하려고 “너 자꾸 그러면 나도 피운다!”라고 협박했다. 그러면 그들은 “안 돼. 너는 절대 피우지 마”라고 말했다. 내가 담배를 물고 조금이라도 피울 듯이 행동하면 무슨 큰일이 날 것처럼 구는 애인의 모습을 보며, 내 작전이 성공하려나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내가 담배를 피우면 정말 큰 일이 벌어지려나, 생각했었다.

 

어느 오후, 길 한구석에서 사람들과 담배를 피우는데 지나가던 아저씨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아니 째려보았다. 나를 지나치더니 고개를 돌리면서까지 한 번 더 나를 째려봤다. 함께 흡연 중인 남자 둘이 더 있었지만 그 아저씨의 시선이 향한 곳은 오직 ‘나’였다. 그 점을 다른 사람들도 의식했는지 ‘참 세상 안 변했다’고 말했다. 나 역시 문제 의식에 동의하며 맞장구를 치다가 불현듯 두려움을 느꼈다. 만약 내가 혼자였다면, 아저씨가 한마디 하지 않았을까? 다짜고짜 욕을 하진 않았을까?

 

▶ 담배 피우는 여자  ⓒ새벽

 

# 금기: 숨어서 담배 피우는 여성들

 

지난 글쓰기 모임에서는 대학 때부터 담배를 피웠던 A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대학 내에 흡연실이 따로 있었는데, A는 흡연실에 가는 게 눈치 보여서 3학년 때까지 학교 뒷산에 올라 몰래 담배를 피웠다고 했다. 자신뿐 아니라 여자 친구 대부분이 남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흡연했다고 한다. 하루는 뒷산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왜 자신이 숨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고, 그 뒤로 흡연실에 가서 당당하게 피웠다고 했다. 그것도 4학년이 되어서야 가능했던 일이다. 그때에도 여전히 흡연실에 여자는 자기뿐이었다고.

 

A의 말을 듣고 문득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가 담배 피우는 모습을 처음 봤던 건 내가 스무 살 무렵이다. 엄마는 가족들이 모두 외출한 뒤, 베란다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고 향수와 방향제로 냄새를 덮었다. 내가 슬쩍 엄마에게 물어보자 엄마는 놀라서 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때 나는 엄마에게 ‘괜찮으니 이제부터 담배 피우지 말라’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아빠가 담배 피우는 모습을 그렇게 봐왔으면서, 나는 엄마가 담배를 피우는 사실이 낯설고 싫었다. 단지 엄마의 건강이 걱정돼서, 담배 냄새가 불편해서는 아니었다. 엄마는 아빠보다 건강한 사람이었고 흡연 후 깔끔하게 뒷정리하는 사람이었는데도 나는 그렇게 인식하고, 말했다. 아빠는 당당하게 가족들 앞에서 담배를 피웠는데, 엄마는 숨었다. 멀쩡한 흡연실을 두고 뒷산에 갔던 A처럼 엄마도 자신의 집에서 첩보작전을 펼치듯 몰래 담배를 피웠다.

 

이런 말들도 있다. ‘유치원 선생님들이 사실은 뒤에서 담배 피우고 가래침 뱉는다’, ‘요조숙녀인 척하는 여자가 주머니에서 담배 재가 나온다.’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여자 아이돌이나 여자연예인에게 남자 MC들이 ‘이제 담배는 끊었어요?’라고 말하며 놀리고, 그러면 여자들은 ‘아니요, 저 안 피워요!’라고 변명하는 모습이 개그 코드로 등장한다.

 

담배와 관련된 대화를 하다가 한 친구가 말했다. “예전에는 그런 얘기도 있었어. 여자가 길에서 담배를 피우려면 백 명의 남자가 불을 붙여줄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듣자마자 꽥 소리가 나왔는데, 그 말은 여자는 남자가 불을 붙여줘야 담배를 피울 수 있을 뿐더러, ‘감히’ 여자가 길에서 담배를 피우려면 그만큼 매력적으로 보여야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그렇지 않은 여성이라면? ‘감히’에 ‘감히’가 더해져 정당한 분노의 대상이 된다.

 

담배를 피우면서 같은 질문이 맴돈다. “대체 담배, 뭘까?” 담배에 관심이 없었기에 딱히 느끼지 않았던 불편함이 흡연자가 되면서 하나둘 다가오고 있다. 그 불편함은 흡연 그 자체가 아니라, ‘여자’인 내가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에서 오는 것이다. 여자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게 기본 값이니까. 오랫동안 나 역시 담배는 아빠를 비롯한 남자와 연관된 ‘무엇’이라고 생각했다. 냄새가 불쾌하고, 재와 가래침 때문에 더럽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냄새가 몸에 닿아 무기력을 안겨준, 나와는 상관없는 금기로 여겼다.

 

남성은 오히려 반대인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군대에 다녀온 지인은 군대에서 선임이 권할 때,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그것 하나 못 하는 애’라는 시선을 감내해야 한다고 했다. 남자들의 흡연 문화도 술 문화처럼 뒷 정이 오가기 때문에 집단 흡연의 장에 빠지기 어렵다고도 말한다.

 

# 여성성과 흡연: ‘센’ 혹은 ‘싼’ 여자

 

사회가 정한 ‘여자다움’의 공식에 흡연은 없다. 철 지났지만 견고한 이 인식 때문에 담배 피우는 여자는 특이하고 드센 여자라고 여겨진다. 소위 ‘센’ 혹은 ‘싼’ 여자라는 시선이 그것이다. 여성은 엄마가 되어야 하며 몸에 ‘유독’ 담배가 안 좋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여성의 건강이 그렇게 걱정된다면 지금도 수치를 훨씬 웃도는 미세먼지와 GMO식품, 데이트 폭력과 강간, 살인에도 같은 경각심을 가지라고. 그리고 엄마가 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것도 아닌데, 함부로 개인의 인생을 성별로 점치지 말라고도 일러주고 싶다.

 

▶ 담배 피우는 시간  ⓒ새벽

 

글쓰기 모임에서 머리가 숏컷인 팀원 조재가 사람들에게 매번 “머리를 길러라”, “여자가 그게 뭐냐”는 고나리질을 듣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한 번도 머리를 짧게 잘라본 적 없던 나는 그녀의 경험이 생소했다. 여자는 일정 정도 머리가 길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머리 짧은 여성이 겪는 불편함을 들으며, 내가 우연히 ‘여성성’이라는 기표 안에 포함되기 때문에 당연하게 누려온 것들을 돌아보았다.

 

담배, 타투, 주체적 섹스, 자위 등. 개인의 선택이므로 존중받아야 하는 행위가 실제로는 성별로 제한된다. 내가 타투를 하거나, 계속 눈에 띄는 곳에서 흡연한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굳이 다이어트를 하지 않고, 머리를 짧게 치고, 얌전하게 있지 않고, 내가 하고자 하는 대로 살아갈 때 나에게는 어떤 세계가 펼쳐질까.

 

세밀하고 견고하게 짜인 ‘여자다움’의 기준은 피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앞으로도 내가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선에 걸려 넘어질지 도무지 가늠되지 않는다. 내 주위에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선들이 얼마나 많이 존재할지도. 나도 모르는 새 그 선 안에서 제한적인 자유를 누리는 건 아닌지 두렵기도 하다. 일상에 담배 한 개비 추가됐을 뿐인데, 고민이 산처럼 쌓였다.

 

아침에 일어나 베란다에 나가서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아직은 찬 공기와 함께 담배 연기를 마시고 뱉으니 머리가 뿌옇게 흐려지며 탁한 생각이 지워졌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경멸하지, 생각하고 재를 탁탁 털고 밥을 차렸다. 당신이 그렇게 경기를 일으키는 ‘담배 피우는 여자’가 여기 있다. 그리고 당신과 상관없이 식전 담배는 맛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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