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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가슴은 두려움보다 강하다

<홍승희의 치마 속 페미니즘> 클리토리스 감수성


※ 글 쓰고 그림 그리고 퍼포먼스를 하는 예술가 홍승희 씨의 섹슈얼리티 기록, “치마 속 페미니즘”이 연재됩니다. -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 첫 오르가슴, 그 강렬한 경험

 

초등학교 졸업반, 인생의 별 낙이 없이 살아가는 하루하루였다. 밤이면 아빠가 내뿜는 담배연기를 피하고자 이불 속에서 자야 했다. 여느 날처럼 이불 속으로 들어가 코를 박고 잠자리에 들려던 참이었다. 바지 안에 손을 넣고 클리토리스(그때는 클리토리스인지 몰랐지만)를 만지작거리면서 누워있었다. 겨드랑이를 만지는 것처럼, 내 성기를 만지는 일도 무심한 습관이었다.

 

클리토리스는 생김새가 특이하고 느낌이 독특해서 자주 만지작거렸다. 몸에 있는 이상한 기관이었다. 오줌이 나오는 구멍 위로 윗입술같이 생긴 작은 돌기가 톡 튀어나왔고, 돌기를 살짝 들어 올리면 그 안에 또 다른 분홍색 돌기가 있었다. 오줌이 나오는 구멍도 아니고 자지가 들어갈 구멍도 아닌데 이것은 뭘까. 요도의 지붕 같은 건가? 생각했다. 비밀을 간직한 것처럼 생긴 그곳에 자극을 주면(샤워기로 그곳을 자극하거나, 의자 모서리에 그 부분이 닿을 때)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날따라 클리토리스를 만지는데 전과 다른 이상한 느낌이 감지됐다. 손바닥으로 클리토리스와 질 입구 전체를 만지기 시작했다. ‘끝까지 만져보면 어떻게 될까?’ 모험심에 손바닥으로 요도의 지붕 같은 그곳을 살살, 조용하고 빠르게 문질렀다. 그렇게 몇 분을 문질렀을까, 얼얼해진 성기가 경련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더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으면서도 더 만지고 싶은 손바닥의 탄성을 따라 움직였다. 갑자기 오줌이 마려운 느낌이 들고 못 참겠다고 느끼는 그 순간, 그것이 왔다. 오르가슴이.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자궁인지 항문인지 심장인지, 아니면 내가 누워있는 이불 밑 어딘가 알 수 없는 심연에서 몸을 빨아들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끝을 알 수 없는 곳에서부터 펑! 튀어 올라가면서 온몸에 전기가 통하는 짜릿한 쾌감이 느껴졌다. 끔찍한 쾌감이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쾌감, 혹은 모든 게 끝나버릴 것 같은 쾌감, 이런 쾌감이라면 악마와도 거래할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게 되는 쾌감. 이대로 죽어도 좋을 것 같은 쾌감 말이다.

 

이런 느낌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몇 초 후 몸이 이완되면서 배꼽 아래쪽에서 샘물이 콸콸 솟아나는 것 같았다. 찰나의 순간이 지난 후 음소거되었던 텔레비전 소리, 아빠의 한숨 소리, 냉장고가 윙윙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서둘러 팬티에서 손을 빼고, 콩닥거리는 가슴에 손을 얹어놓았다. 무미한 일상은 그대로였지만, 오르가슴을 느끼기 전과 후의 내 몸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누군가 그때 나를 봤다면 내 눈은 어둠 속에서도 반짝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내 몸에 이런 신비한 능력이 감춰져 있다는 게 놀라웠다. 한껏 달아올랐던 몸이 식으면서 피곤이 몰려왔다.

 

# ‘남자들의 자위’ 얘기만 무성한 사회에서

 

이 신비로운 경험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친한 친구들, 친언니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왠지 더럽고 추잡해 보일 것 같았다. 자위에 대해서 나 자신도 그렇게 느꼈다. 내가 이상한 건지 궁금했지만, 여성의 자위에 대해 정보를 얻을 곳은 없었다. 다른 친구들도 나처럼 자위를 할까 궁금해서 친구들에게 운을 떼 봤다. “남자애들은 맨날 자위한데.” 친구들은 더럽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흔한 성교육 시간에는 남자애들의 자위 얘기만 해줬다. 사춘기 남자애들은 원래 그렇다고 덧붙이면서. 여자애가 오이를 질 속에 넣고 자위를 하다가 오이가 부러져서 병원에 갔다는 이야기가 우스갯소리로 들리는 게 전부였다.

 

여성의 질 안은 예민하므로 무엇이든 넣는 게 좋지 않다는 조언은 들었지만, 뭔가를 삽입하지 않고 클리토리스를 만지작거리는 것만으로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내가 성욕이 많은 건가? 내가 또래 친구들보다 성적으로 문란한 건가 걱정했다. 자위하는 것도 문란하다고 느낄 만큼 14살의 나에게 오르가슴은 너무 낯설었다. 특히 여자인 내가 또래 남자애들처럼 자위를 하는 게 부끄럽게 느껴졌다.

 

▶ 자위  ⓒ홍승희, 2017


그래도 자위는 멈출 수 없었다. 오르가슴은 그러한 두려움을 거뜬히 누를 만큼 강력한 쾌감이었다. 나는 종종 자위를 했다. 시험공부를 하기 싫을 때 책상에 앉아 바지 속에 손을 넣고서, 학교에서 돌아와 집으로 왔는데 열쇠가 없어 들어가지 못할 때 아파트 복도에서, 자기 전에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혼자 샤워를 하면서 샤워기로, 남자친구와 주고받던 문자를 보면서, 핸드폰 진동이 울릴 때 다리 사이에 끼고서….

 

손가락을 깨끗하게 씻지 않고 자위를 한 다음 날은 오줌이 자주 마렵고 아랫배가 아팠다. 성인이 되어서야 이런 증상이 방광염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이후로는 손가락을 깨끗하게 씻고 자위를 했다. 손가락으로 클리토리스를 살살 치거나 좌우-위아래, 둥글게, 혹은 알파벳 a부터 z까지 그리는 것처럼 문질러주면 2분 많게는 5분 내에 느낄 수 있었다. 클리토리스 뿐 아니라, 질 입구 아래쪽에 튀어나온 두 세 개의 돌기를 살짝 건드려도 쾌감이 느껴졌다.

 

클리토리스를 건들면서 질 입구에 촉촉하게 맺힌 물기를 가져다가 성기 전체에 문지르고, 다시 클리토리스를 자극하고. 이것을 반복하다보면 오르가슴이 올라왔다. 한번 느낀 후 몸이 이완되고, 다시 간지러운 느낌이 들 때 클리토리스를 만지면 그 전과 다른 느낌의 쾌감을 또 느낄 수 있다. 체력(정력)이 좋을 땐 그렇게 두 번, 세 번 더 오랫동안 만지면서 오르가슴을 여러 번 느꼈다.

 

클리토리스를 건드리는 것은 손가락 하나로도 충분했다. 내 손가락으로 직접 강도와 속도를 조절하면서 하는 게 효율적이고, 느낌도 좋았다. 사람마다 오르가슴을 느끼는 방식은 다를 것이다. 나는 클리토리스 자극만으로 먼저 천국을 맛보았기 때문에 별다른 모험심이 생기지 않았다. 성인이 된 후에 가지에 랩을 싸거나 딜도에 콘돔을 끼고 질 속에 넣어보기도 했지만, 역시 클리토리스를 함께 건드려주어야 강력한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손가락 하나 마디만한 알 모양의 바이브레이터는 클리토리스를 자극하기 알맞았다.

 

자위할 때 자연스럽게 다리와 엉덩이에 힘이 들어가는데, 그 힘에 따라 오르가슴의 속도와 감각이 배가됐다. 너무 많이 힘을 주면 종아리에 경련이 일어나는 것처럼 떨리더니, 다음날까지 알이 배긴 것처럼 엉덩이와 다리가 아팠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항문에 힘을 주면서 질을 수축하는 이 느낌이 여성의 성감을 높여주는 케겔운동이었다. 중학교 때 선생님은 ‘남자의 성기를 잘 조여주기 위해서, 질이 헐거워지지 않기 위해서’ 하는 여성의 질 수축 운동이라고 케겔운동을 소개했다. 그러나 케겔운동은 오르가슴에 도달하기 위한 내 성기의 자연스러운 호흡이었다. 남자에게 만족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성감을 위한 것이었다.

 

# 섹시한 몸매가 중요한 게 아니야

 

청소년기엔 친구들과 섹스에 대해선 많이 말했지만 자위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동성 친구들과 자위와 오르가슴에 대한 솔직한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나는 무서운 사실을 발견했다. 대부분의 친구가 자위를 해본 적이 없고, 남자와 섹스할 때 오르가슴을 느끼기는커녕 오르가슴을 느끼는 척 연기하는 감정노동을 하는데 신경을 쓰고 있었다. 오르가슴을 느껴본 적도 없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친구에게 간곡하게 말했다. ‘제발, 집에 가서 꼭 자위를 해봐.’

 

대부분의 남성은 일찍이 자위를 하고 자신의 성감을 충분히 알게 된 뒤에 섹스를 한다. 여성들은 남성들과 달리 자신의 몸과 클리토리스, 오르가슴과 친구가 되어 볼 기회가 적다. 적절한 신음소리와 섹시한 몸매를 가지는 것, 혹은 순결하게 보호해야 하는 것으로 여성을 조명하는 포르노와 강간문화 속에서, 여성이 자기 욕망에 집중할 틈이 있겠는가.

 

여성의 섹시함은 끔찍할 정도로 관심을 받지만, 여성의 성욕은 소외되는 지독한 아이러니다. 이 사회는 여자가 남자의 욕망 대상으로 자신을 ‘섹시함’에 가두는 행위를 응원하고, 자신의 욕망에 집중하는 관능적인 여성은 배척한다. 오르가슴을 느끼는 여성을 마녀로 몰아붙이던 역사는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여성들이 섹시함을 의식할수록, 정작 자신의 원초적 감각에서 멀어진다. 그러나 마초와 가부장이 만들어놓은 섹시함보다 더 관능적이고 야성적인 성적 에너지가 우리의 몸에 존재한다.

 

“나는 오르가슴을 경험한 여성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을 지니고 살아왔다. 성적으로 억압당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억압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억압당하지 않는 여성은 누구도 가로막을 수 없다. 만일 모든 여성이 오르가슴을 경험한다면 세상은 훨씬 평화로운 곳이 될 것이다” -델 윌리엄스

 

# ‘삽입 오르가슴’이라는 가부장제 신화를 넘어

 

▶ 바다를 나는 나비  ⓒ홍승희, 2016


나는 클리토리스가 그냥 ‘돌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클리토리스는 엄청나게 복합적이고 부피 있는 신경다발이자 ‘기관’이라고 한다. 눈에 보이는 클리토리스의 면적은 빙산의 일각인 것이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클리토리스도 발기가 되고 오르가슴을 느낄 때는 꾸물꾸물 떨기도 한다. 삽입 아니 흡입 섹스에서 느끼는 질 오르가슴도 강렬할 수 있지만, 대게 질 오르가슴은 클리토리스 오르가슴과 함께 느낄 때 강렬하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지-스팟이라고 불리는 부위의 성감도 실은 질이 아니라 클리토리스의 커다란 신경 조직을 자극해서 느껴지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이 연구 결과를 전적으로 믿는다. 클리토리스 오르가슴만큼 강렬하고 아름다운 것을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번 사정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연속으로 여러 번, 계속해서 느낄 수도 있는 오르가슴의 화산. 꿀 같은 유토피아가 내 클리토리스 안에 있다.

 

가부장제는 남성 중심의 섹스 판타지를 통해 견고해진다. 섹스에서 주도권은 남성이 쥐어야 하며, 여성은 성욕이 없거나 남자보다 적을 거라고 간주하고, 여성은 자위도 안할 거라는 환상 위에서 강간문화는 힘을 얻는다. 여성의 오르가슴은 남성의 성기가 여성의 질 안으로 들어와야만 느낄 수 있을 거라는 오만한 착각이 남성들로 하여금 여성을 정복하고, 지켜주고, 따먹어야 한다는 환상을 부추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착각과 다르게 여성은 자지가 없어도, 꼭 질 안에 무언가가 들어와 주지 않아도 얼마든지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다.

 

성인이 된 후엔 파트너와 섹스를 하면서도, 혼자 있을 때에도 자유롭게 자위했다. 몇 년 전부터는 오르가슴을 느끼는 순간, 눈을 감은 상태에서 만다라 형상이 보였다. 분홍색, 연두색, 노란색 생명 만다라 형상, 초록색 새싹이 두 갈래로 갈라지거나 나비 날개가 양쪽으로 펼쳐지는 형상이 보인다. 그때 다리를 활짝 벌리면 하늘을 날아다니는 나비가 된 느낌이다. 다리는 나비의 날개, 클리토리스는 나비의 몸체가 된 것처럼. 이런 현상은 호흡명상의 효과와 같다고 한다. 빠르고 깊게 호흡하면서 생명의 원초적 형상이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자위를 할 때 의식적으로 깊게 들이쉬고 내뱉으며 호흡한다. 자위는 원초적인 명상이다.

 

어린 시절 쾌쾌한 담배연기를 피해 들어간 이불 속에서 오르가슴을 느꼈던 것처럼, 내게 오르가슴은 여전히 쾌쾌한 현실의 해방구다. 도피로서의 해방구가 아니라, 나의 감각 속으로 들어가는 내밀한 해방구다. 다른 여성들도 자신의 성기와 대화하고, 자신의 클리토리스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면. 힘겨운 날, 외로운 날, 우울한 날, 아무렇지도 않은 날, 심심한 날, 기쁜 날, 언제라도 클리토리스를 만지작거리면서 오르가슴 속에서 자유할 수 있다면. 수천 억 개의 세포가 분출되는 세계에서 헤엄치고,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나비처럼 자유할 수 있다면…. -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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