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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성추문…여성에겐 어떤 경험인가

<치마 속 페미니즘> 섹슈얼리티와 권력 2.


※ 글 쓰고 그림 그리고 퍼포먼스를 하는 예술가 홍승희 씨의 섹슈얼리티 기록이 연재됩니다. _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 존경하는 선배와의 찝찝한 섹스

 

한 문화기획단체의 대표였던 남성과 그의 사무실에서 대화할 때였다. 맥주를 한잔 하면서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일과 오랜 고민을 털어놨다. 나는 문화기획 선배였던 그의 조언과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그도 그걸 알았다.

 

이야기가 무르익을 무렵, 우리 사이에 두었던 촛불을 끄고 그가 내게 다가왔다. “키스해도 돼?” 키스는 괜찮았다. 하지만 옷을 벗기려는 그의 손이 불편했다. 그와 섹스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누군가 들어올지도 모르는 그의 사무실이었다. 내가 그의 손을 잡으며 거부하자, 그가 물었다. “내가 싫어?” 나는 그가 싫은 게 아니라, 이 상황이 불편할 뿐이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어물쩡 대답했다. 지금 그를 매몰차게 거절하면, 그와 관계가 껄끄러워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면 도움을 받기도 힘들고, 그를 다시 보지 못할 수도 있다고 느꼈다.

 

그는 내 몸 이곳저곳을 애무하더니 성기를 삽입했다. 몇 번의 피스톤질 후, 내 배 위에다 사정을 했다. 사무실에 붙어있던 화장실에 들어가 뜨거운 물로 몸을 씻었다. 불쾌한 표정을 숨기고 서둘러 그 사무실을 나와 골목을 걸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는 이후 우리 언니에게도 똑같은 방식으로(촛불, 맥주, 은은한 음악, 사무실, 일거리) 접근했다고 한다. 다른 여자들에게도 비슷한 방식으로 섹스어필하려다, 성추문으로 잠시 활동을 중단한 적도 있다.

 

주변 남성들에게 이런 내 경험을 말했을 때, 그들은 권력 있는 남자에게는 언제나 붙어 다니는 티끌인 것처럼 말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성매매 동영상을 보면서 “저 사람도 남자구나” 하며 통쾌해하던 주위 남자들처럼. 그들에게 ‘그’들의 성추문은 그저 섹스 에피소드, 웃긴 가십거리였다. 하지만 당사자인 내게는 그렇지 않았다. 아직도 그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을 동료로 보는 게 아니라, 가슴과 질이 있는 여자로 보고 접근할지 생각하면 그의 주변에 바글거리는 여성들이 걱정된다.

 

# 호의와 관계를 볼모로 ‘성’을 요구하는 권력

 

그는 시종일관 여유롭고 느긋했다. 권력은 처음부터 억지로 강간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다. “우리 애인할까?” “편하게 지내고 싶어(편하게 안고 싶어)”, “너를 사랑해” 때로는 “성에 대해 개방적이어야 해” 라는 말로 쉽게 접근한다. 특별히 힘을 쓰지 않고도 자신의 요구를 밝히고 조금의 압박을 가하면, 원하는 대로 된다는 걸 그들은 안다. (알면서도 잊은 척 하거나.) 그에게 기본적으로 호감을 가지고 있던 후배, 제자인 사람에게는 그가 하는 말이 달콤하고 무색투명하게 느껴지기 쉽다. 아니, 그렇게 믿어야만 그와의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성폭력은 모르는 남자에게 골목길에서 당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내 밥줄을 쥐고 있거나 나를 도와줄 수 있는 관계에서 발생한다. 교수와 제자, 상담자와 내담자, 선배와 후배 등. 도움을 주고받는 입장이 명확한 관계에서 권력은 작동된다. 권력은 경제적 조건 뿐 아니라 같은 네트워크 안에 속한 사람일수록, 그래서 함께 얽힌 관계가 많을수록 더 강해진다. 조직 내 신뢰도, 경력, 사회적 신뢰도, 인지도, 명예와 같이 사회적 권력을 쥐고 있는 가해자는 여성에게 친절과 호의, 관계를 빌미로 몸을 침범한다. 그들은 “내가 너의 밥줄을 쥐고 있다”고 말로 협박하지 않는다. 그것은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사실이니까. 그보다 “너와 편안한 사이가 되고 싶다. 나는 너를 아낀다” 같은 말로 자신의 ‘호의와 친절’을 거부하기 어렵게 만든다.

 

권력이 있는 그들은 강압적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은근하다. 거부하면, ‘왜 내가 이렇게 부드럽게 말했는데 정색을 해?’라는 표정을 지으며 상대를 분위기 파악 못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성적 접근에 불쾌함을 표현하면, ‘어린 애도 아니고 다 큰 성인들끼리 이럴 수도 있는 거지’라며 상대가 자신의 섹스어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쿨하지 않고 딱딱하고 미숙한 인간이라는 듯 취급한다. “네가 너무 매력적이라서 그렇잖니” 라며, 자신이 섹스어필을 하는 이유가 ‘나의 섹시함’ 때문이라는 듯 내게 화살을 돌린다. 스킨십을 거부하면 “내가 싫어?” 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써서, 쉽게 거부할 수 없도록 만든다. 관계를 볼모로, 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 섹스 후에 남는 찝찝함과 수치심은 모두 여자의 몫이 된다. 특히 존경하는 멘토 스승 선배로부터 받은 성희롱, 성폭력은 감정과 관계가 미묘해서 그것이 폭력이었는지 뒤늦게 깨닫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랬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던 나는 그들이 영악하게 뱉는 요구와 말들을 믿는 척 속아주었다. 그만큼 그들이 내게 소중하다고 혼자 생각했으니까. 한참 후에서야 나는 그들이 ‘나’라는 인격체가 아니라 자기 앞에 있는 ‘여자의 몸’이라는 기호식품을 한번 먹어보고 싶어서, 지금까지 말하고 행동해왔단 걸 알게 되었다.

 

# 이 사람에게도 나는 ‘여자’일 뿐인 건가


오랫동안 좋아하던 작가를 찾아간 적이 있다. 그의 집 근처에서 도란도란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처음 보는 내게 친절하고 진중했다. 그만큼 차분하고 진지한 글을 쓰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갈 차편이 없었고, 그의 집에서 하루 머물게 되었다. 그는 섹스는커녕 스킨십도 전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인간적인 호감만 있던 사람이었다. 나는 편안한 마음이었고, 우린 다른 방에서 잠들었다.

 

깊은 새벽쯤 그가 내 옆으로 왔다. “편안하게 안고 자자.” 몇 시간 전에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눈 우리였기에, 친한 친구와 하듯이 편안하게 팔을 감싸고 잠이 들려던 찰나였다. 그가 갑자기 잠깐만 기다려보라며 바지를 주섬주섬 벗었다. ‘설마 나랑 하려는 건 아니겠지. 더워서 그러는 거겠지’ 생각했다.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나는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잠을 청하려 했다. 그는 잠시 주춤하더니 이내 부드럽게 나의 이름을 불렀다. “잠깐만 이쪽으로 누워봐.” 그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나직하고 근엄해서 나는 그쪽으로 향했다. 내 바지를 벗기려는 손에 저항했지만, 그는 힘 있게 내 바지를 끌어내리면서 말했다. “잠깐만, 잠깐이면 돼. 가만히 있어봐.” 그는 필사적으로 힘을 쥐고 있는 내 다리를 비집고 삽입했다.

 

그 전에 그와 함께했던 소소한 시간과 깊은 이야기들을 떠올리려 했지만,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 글을 적는 아직까지도 그와 나눴던 이야기가 기억나지 않는다. ‘이곳에서도, 이 사람과도, 나는 여자일 뿐인가.’ 좌절감이었을까 배신감이었나. 다리에 힘이 풀렸다. 저항할 기운도, 필요도 느끼지 못할 만큼 그에 대해, 그리고 이 상황에 대해 환멸이 들었다. 내가 여자라는 사실이 벗길 수 없는 딱딱한 껍질 같았다. 여자인 내 몸이 질긴 감옥처럼 느껴졌다. 역겨웠다. 나를 여자로 보는 그보다도 여자인 내 몸이!


▶ 여자라는 껍질, 수치심.  ⓒ홍승희 


그가 질 내에 사정한 후 말했다. “사랑해.” 그는 정말 이 상황이 로맨틱하다고 생각했던 걸까? 시체처럼 누워있는 인간의 질 속에 허락도 없이 들어와 사정을 하고. 하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그와 함께했던 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임신이 쉽게 되진 않는다고 걱정 말라며 나를 다독이다가 금방 잠들었다. 하지만 나는 밤새 두드러기가 일어날 것 같은 찝찝함에 몸을 떨었다.

 

다음날 아침, 사후피임약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내가 불편해하는걸 눈치 챘는지 그는 미안한 얼굴로 나를 배웅해줬다. ‘내가 잘못한 걸까’ 생각했다. 이곳에서 자는 게 아니었는데. 집으로 돌아와 샤워 타월로 살을 벅벅 밀었다. 샤워를 하다가 문득, 몇 년 전 기억이 올라왔다. 종종 연락하던 교수와 헤어지고 나서도 나는 이렇게 벅벅 살을 밀면서 샤워를 했었다.

 

# 멘토의 말, “네 몸이 너무 이쁜 걸 어떡해”

 

존경하던 그 작가처럼, 오랫동안 존경했던 교수가 있다. 그는 대학 내 분위기와 다르게 보기 드문 진보적인 교수였다. 촛불집회를 나가면서 사회 문제에 더더욱 관심을 갖게 된 언니와 나는 그의 수업을 꼭 챙겨들었다. 수업시간 말고 술자리에서도 만나서 사회와 삶과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수업시간마다 폴리아모리 철학을 말했다. 일대일 독점연애관계가 아니라 자유로운 연애관계가 필요하다고 설파했다. (문단 내 성폭력 피해자들의 증언을 보면, 가해자들은 폴리아모리를 종종 즐겨 썼다. 폴리아모리를 오용하는 성폭력범들이 많다.) 그의 폴리아모리에서는 ‘소유하지 않고 존중하는 성숙한 관계’보다 ‘자유로운 섹스’ 서사만 강조됐다. 그러면서 개방적이고 유연한 성생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그가 학내에서 성추문이 있었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들었지만, 나는 그를 믿었다. 그는 술자리에서 종종 자신을 변호하듯 페미니즘을 욕했다. “페미니스트는 성추행이 마치 남자 개인만의 문제라는 것처럼 한사람의 사회적 생명을 죽여 버려. 너무 극단적이고 사람 질리게 만든다니까.” 나도 페미니스트가 너무 지나치게 성폭력을 공론화시킨다고 생각했다. 살다보면 모든 남녀관계에서 섹스 에피소드가 있기 마련이니까. 그때의 나는 강압적인 섹스도 폭력이 아니라 섹스라고 생각했다.

 

나는 고민이 있을 때마다 그 교수를 찾았다. 그는 나의 어린 시절의 상처와 심리적 문제, 사회적 부조리와 실천, 인간관계의 갈등 등 내 삶의 전반적인 문제를 털어놓을 수 있는 멘토였다. 그는 나의 고민을 섬세하게 듣고 경청해주었다.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언도 아낌없이 해주었다.

 

그의 도움은 좋았지만, 이따금 나의 생각과 충돌하기도 했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그는 가끔 이런 농담을 했다. “어떤 여자가 신혼 첫날밤에 남자와 잤는데, 그 사람들이 검은색 콘돔을 썼데. 관계 후 남자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흑인이 방으로 들어와 여자를 강간하고 사라졌는데, 여자가 흑인 아이를 낳았데. 남편은 검은색 콘돔을 써서 흑인 아이가 나왔구나! 라고 말했대.” 재밌다는 듯 말하는 그에게 나는 말했다. “근데 교수님, 이런 이야기는 농담으로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닌 것 같아요.” 그러자 그는 “아, 이게 여자와 남자의 차이구나. 여성들은 강간을 당한 게 중요하겠구나” 하면서 멋쩍어했다.

 

이후로도 그와 이야기하는 게 불편해졌다. 편하게 만나는 자리에서도 사소한 주제로 대화를 나눌 때, 내가 그의 주장과 반대되는 주장을 하면 그는 말했다. “나는 너와 싸움 상대가 아니야. 나와 논쟁하려 하지 말고, 편안하게 들어.” 그는 자신의 주장을 묵묵히 받아들일 것을 내게 요구했다. 자신이 늘 우위에 있으려는 듯, 나를 가르치려드는 그의 태도가 불편해져서 조금씩 그와 거리를 두게 되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 쯤 지났을까. 어느 날 교수님께 안부전화가 왔다. 마침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던 나는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회적 실천에 대한 고민, 잠을 못자고 악몽을 자주 꾸는 이야기, 소소한 고민들까지. 울음을 참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던 어느 날 밤, 교수와 전화통화를 하던 중에 그가 말했다. “지금 우리 집으로 올래?” 나는 알겠다고 했다. 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통화를 하면서 느꼈던 분위기와 다르게, 교수는 자신의 집 문을 열쇠로 열면서 “네 발로 온 거야”, “이런 건 사실 위험해. 이거 혹시나 아무에게도 얘기하면 안 되는 거 알지?” 라며 농담처럼 말했다. ‘누가 뭐랬나?’ 느낌이 이상했다. 하지만 나는 힘든 상태였고, 이렇게 힘든 상태인 내 몸을 그가 건들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집에 들어와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가 갑자기 내 말을 자르고 말했다. “한번만 안아 봐도 되니?” ‘포옹쯤이야.’ 생각했다. 잠시 포옹을 하고, 떨어져서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새벽이 깊어 집으로 돌아가기 애매해지자 그가 편안하게 여기서 자라고, 자신은 침대 밑에서 잘거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나는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운 상태로 침대에 누웠다.

 

얼마 안 있어 그가 침대위로 올라왔다. 내가 말했다. “저, 이건 좀.” 교수가 물었다. “싫어?” 나는 정말이지 “싫어?”라고 묻는 그 말이 싫었다. 당신이 싫은 게 아니라 당신과 스킨십을 하기 싫은 건데, 당신은 “내가 싫어?” 라는 뉘앙스로 묻고 있다. 다음날 아침 출근해야 하는데도 늦은 새벽까지 내 이야기를 들어준 고마운 멘토에게 나는 “싫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그가 내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다 똑같다’는 엄마의 말, 친구와 선생님, 책과 미디어에서 나오던 음향이 들리는 것 같았다. 이 교수도 어쩔 수 없는 남자라는 걸 내가 바보같이 잊고 있었다. ‘그래, 이렇게 그가 흥분한 이상 그를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없어. 그리고 내가 거부하면 이후 관계도 더 껄끄러워 질 거야’ 생각했다. 무엇보다 나는 깊은 고민을 털어놓았고, 그가 해준 말들로 한껏 기운을 충전 받고서 다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새로운 희망에 힘껏 고무된 밤이었다. 그가 침대로 올라오기 전까지 내겐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나는 그날 밤의 기억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어서 사정을 끝내고 평상시처럼 진정되고 차분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그를 존경하지만 그와 자고 싶은 건 아니야.’ 마음속에서 계속 이 말이 울려왔지만, 꾹꾹 누르며 참았다.

 

지쳤는지 아니면 발기가 잘 되지 않아 민망했는지, 그는 배 밑으로 내려와 옆에 누워서 갑자기 이런저런 말을 했다. “이런 얘기하기 조심스러운데, 너에게 혹시 섹스중독이 있을지도 몰라. 어린 시절에 상처가 많고 애정이 결핍된 여성들이 섹스에 중독되는 경우가 많거든.” 우습게도 그때 나는 정말 내가 섹스중독인가 생각했다. 왜냐하면 섹스 상대로 상상도 하지 못했던 당신과 잤으니까. 수치스러웠다. 이어서 그는 자신이 나의 몸을 만진 게 내 탓이라는 듯 말했다. “네 몸이 너무 이쁜 걸 어떡해. 나 이제 눈 버렸어. 다른 여자 어떻게 만나.” 그런 말에 내가 좋아할 줄 알았을까. 하룻밤 사이에 나는 그의 제자가 아니라 ‘여자’제자가 됐다.

 

그의 집에서 나온 후에도 종종 그와 전화통화를 했다. 전화로 그는 나의 섹스중독을 염려해주었다. 나는 얼마 안가 연락을 끊었다. 한참 동안 누구에게도 그날 밤에 있었던 일을 말하지 못했다. 취약한 상태였던 나를 그가 이용한건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렇게 생각해버리면 내가 정말 비참해질까봐 애써 감정을 외면했다. 몇 년 후에 그가 여대생 제자와 지나가는 모습을 몇 번 본 게 전부다. 그리고 그 교수가 우리 언니에게도 비슷한 성추행을 시도했다는 걸, 몇 년 전 언니에게 들었다. 그는 불편함을 표하는 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도 승희처럼 성적으로 좀 개방적일 필요가 있어.”

 

# 죄책감과 수치심은 여성인 나의 몫

 

교수와의 일로 애써 비참하고 수치스러운 느낌을 지우려 했던 몇 년 전처럼, 나는 그 작가와 있었던 그날 밤의 기억을 잊으려고 노력했다. 찝찝하고 기분 나쁜 섹스일 뿐이었다고. 그가 ‘어쩔 수 없는 남자’라는 걸 알면서도 그의 집에서 잔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 성폭력 경험을 증언하는 여자에게 “쯧쯧. 그러게 여자가 몸 간수를 잘했어야지. 집에는 왜 따라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처럼, 나도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작가와 헤어지고 며칠 후 연락이 왔다. 계좌번호를 보내달라고 했다. “왜요?” 내가 물었다. “네가 저번에 보여줬던 그 그림도 사고 싶고, 지난번에 찾아와준 게 고마워서 생활비라도 보태고 싶은 마음”이라고 그는 말했다. 나는 그림을 보내주겠다고 하고 계좌번호를 알려줬다. 그는 거액의 돈을 부쳐줬다. 문득, 서늘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몸을 판 건가.’ 아니야, 내 그림을 사고 싶은 거겠지. 그게 아니더라도… 나는 그에게 혹사당한 육체노동(?) 혹은 괴롭고 찝찝한 감정에 대한 보상금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는 이후로도 내게 종종 돈을 보내주고 필요한 일들을 해결해줬다.

 

그는 내게 “사랑해”, “보고 싶어” 라며 애정표현을 했다. 수많은 강간범이 피해자에게 하는 말이란 걸 이제는 안다. 그의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중요하지 않다. 이제 난 그의 글을 읽지 못한다. 책 속의 그럴싸하고 아름다운 구절들은 그날 새벽에 몽땅 지워졌다. 아니 내 몸과 함께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가 찢어 놨다. 나는 그날 밤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그는 사랑을 속삭이던 별이 반짝이는 밤으로 기억하겠지만.

 

나를 가장 힘들게 한건, 남자친구의 반응이었다. 용기를 내서 남자친구에게 그동안 그 작가, 교수와 있었던 일들을 털어놓았다. 누구에게라도 솔직하게 내 아픔을 털어놓고 싶었다. 남자친구는 생각보다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더니, 경멸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는 내가 그들로부터 당한 모욕과 고통보다도, 자신과 사귈 때 다른 남자랑 잤다는 것에 대한 배신감과 자신의 수치감을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에게 내가 서운하다고 언성을 높이자, 그는 그만하라며 이렇게 말했다. “너, 돈 받고 남자랑 잤다고 사람들한테 말한다?” 유일하게 내가 믿었고 고백했던 그 또한 모든 게 내 탓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는 집으로 들어갔고, 연락을 끊었다. 그와 헤어진 후, 나는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 무엇인지, 이것들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을 추슬러야 했다.

 

그날 밤, 그 작가의 집에서 일어난 일이 강간이었다는 걸 인정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용기가 필요했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고 생각할 때는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적어도 자존심은 유지할 수 있었으니까. 그와의 찝찝하고 기분 나쁜 섹스는 섹스가 아니라 강간이었다는 걸 직면했을 때, 나는 내 몸이 비참하고 수치스러웠다. ‘그가 욕정이 많아서’, ‘우리가 대화가 잘 통했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내가 그의 집에서 잠든 탓’으로 섹스를 하게 된 게 아니다. 허락도 없이 타인의 질 속에 자신의 정액을 쏟아버리는- 관계의 권력을 이용해 내 다리를 비집고 들어와 질 속에 자신의 페니스를 넣은- 강간이었다. 그에게는 사소한, 손쉽게 만지고 넣고 쌌던 섹스였겠지만. 남성의 시선으로 포장되지 않은 까칠한 진실의 맨얼굴을 마주했을 때, 나는 뒤늦게 큰 상처를 받아야했다.

 

# 그들은 ‘그래도 되니까’ 그렇게 한다

 

사실 이런 경험은 다양한 관계에서 일어났다. 지난 섹스를 되돌아보며 놀란 것은 기분 나쁜 섹스 대부분이 강간이었다는 사실이다. 선배, 스승, 멘토 뿐 아니라 연인관계에서도 그랬다. 내게 말하지 않고 질 내 사정을 한 남자친구는 많아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강간은 흔했다. 믿었던 사람들이라서 당하고 나면 더욱 힘들었다. 유일하게 말이 통할 것 같아서 찾아간 인간, 나를 인간으로 대할 줄 알았던 인간에게 당한 강간은 충격적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것처럼 혐오스럽다.

 

OO계 성폭력 생존자들의 증언에서 등장하는 남성들의 똑같은 레퍼토리를 읽으면서 공감 이전에 소름이 끼쳤다. 가해자는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녀도 딱히 저항하지 않았어’ 라고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을 한다. 그들은 자신의 권력과 위치를 잘 알고 있으면서 (알고도 모르고 싶었거나) 뒤늦게 모르는 척 한다. 그녀들과 다르게 그들에게 강간은 사소한 ‘섹스 에피소드’일 뿐이다. 그들은 강압적이지 않다. ‘편안한’ 관계를 빌미로 애인 같이 섹스하자고 말하고, ‘껄끄럽지 않은 관계’를 인질로 요구를 거부하기 힘들게 만든다. 너의 입술이 너무 섹시하고 너의 눈동자가 너무 아름다워서 어쩔 수가 없노라고 덧붙이면서.

 

그들이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특별히 섹시해서도 아니고, 그들이 특별히 성욕이 많기 때문도 아니다. 그들은 ‘그래도 되니까’ 그렇게 한다. 그렇게 해도 아무도 그들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으니까. 죄책감과 수치심은 오직 여성의 몫이 되니까.

 

나는 스스로를 자책하고 수치심에 떨며 지냈다. 하지만 그들은 태연하게 자신의 권력을 모르는 척, 모든 책임의 화살을 내게 돌렸다. 남자는 원래 늑대인데, 늑대 집에 간 여자가 잘못이고, 여자의 몸이 너무 섹시하고 매력적이라 남자들이 섹스하고 싶을 수밖에 없고, 남자는 원래 성욕을 통제 못하니까 여자가 해줘야 하는데 강력하게 제어하지 못한 여자가 제 몸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것이 된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들이 바라는 대로 수치심에 떨지 않는다.

 

▶ 이제 나는 나를 의심하지 않는다.  ⓒ홍승희

 

# 내 감정과 내 언어를 믿지 못했던 날들

 

나는 왜 불편한 요구와 강압에도, 그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아등바등 애썼을까. 나는 왜 “싫다”고 말하고 밀쳐내기 두려웠을까. 나는 그런 일들을 숱하게 당하면서도 왜 또 다른 ‘남자’ 선배, 교수, 선생, 스승, 멘토를 찾아다녔을까.

 

나는 내 느낌과 감정을 믿지 못했다. 그건 기분 나쁜 섹스가 아니라 폭력이었다고 인정하기 어려웠다. 두들겨 맞은 것처럼 몸을 떨었지만, 그것이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의 불쾌함은 사소한 것이고, 나의 찝찝함은 내가 그의 집에서 잤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내 착오고 내 잘못이라고 느꼈다. 내가 느끼는 불편함과 강압이 사소하다고 느꼈다. 그런 나와는 다르게, 그들은 자신의 감정과 행동에 확신에 차 있었다.

 

그들 주변에는 고민을 털어놓고, 취약한 자신의 상태를 상담하기 위해 대기 중인 사람들이 있었다. 자기 확신으로 가득 찬 인간들이 성행하기 좋은 사회다. 삶과 사회 문제에 ‘사이다’ 발언과 한 토막 진리가 인기를 끄는 것처럼. 불확실한 삶의 문제들과 복잡한 사회현상 속에서 사람들은 한 번에 명쾌한 답을 주는 메시아를 원한다. 그들은 그 고민을 해석하고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자처해 사회의 의사 역할을 맡은 셈이다.

 

이 세상이 ‘그’들에게 쥐어주는 그 권력만큼, 나도 내 삶의 문제와 이 사회의 문제를 해석하고 인식하고 판단하고 답을 내놓을 수 있는 권위를 그들에게 주었다. 그런 그들과 편하고 끈끈한 관계가 되었다 싶으면, 그들은 어김없이 성적으로 접근하고 접촉했다. 그 관계의 끈에서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끌려 다녔다. 나는 그들을 믿었고, 내 사소한 감정을 늘 의심했다.

 

나는 내 감정과 언어가 불확실하고 논리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남성적 언어에 익숙해졌으니까. 좋아하는 작가, 교수님, 그들에게 삶의 ‘확실한’ 조언을 구하려던 나는 번번이 넘어졌다. 하지만 모든 경험과 삶의 모습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확신의 언어로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하기나 한가.

 

나는 나의 경험을 믿지 못했다. 그래서 나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쓰는 지금 이 행위가 곧 투쟁이라는 걸 안다. 많은 여성들이 성폭력 경험을 증언하며 자신의 언어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지금, 이 과정 자체가 중요한 투쟁이다. 내가 보고 듣고 만나고 느낀 것들을 나는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이제 나는 ‘그’들을 찾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사회정의와 사회담론, 인간 삶에 대한 정신병리적 분석과 심리학적 판단도 내 삶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내 삶에서 권위를 얻고 있는 것은 오늘 꿨던 꿈과, 꿈에 대한 나의 느낌, 타로카드와 캔버스와 물감, 기타 줄을 튕기는 손가락, 그리고 나의 언어와 감정을 존중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다.

 

“왜 여자들은 자신의 역사를 끝까지 지켜내지 못했을까? 자신들의 언어와 감정들을 지키지 못했을까? 여자들은 자신을 믿지 못했다. 하나의 또 다른 세상이 통째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여자들의 전쟁은 이름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중에서  _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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