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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너와 나는 사랑했을까

<질문교차로 인문학카페36.5º> 이 시대의 사랑



꿈이 뭐냐고 물으면 그는 망설임 없이 ‘돈 많이 버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자수성가해서 여러 채의 건물을 소유한 부모님을 닮고 싶다고 했다. 너희 부모님 때와 다르게 ‘노오력’만으로도 안 되는 게 있어, 내 말에 그는 그런 말은 핑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의 세계는 너무나 질서정연하고 또렷했다. 그는 원하는 상위권 대학교에 들어갔고, 경영학과에서 차곡차곡 스펙을 쌓았다. 1년 동안 편입을 준비하다가 떨어지기도 했지만, 그는 그 시기를 청춘이니까 겪을 수 있는 고비이자 도전으로 기념했다. 편입에 실패했을 뿐, 많은 부분이 그의 노력만큼 이뤄졌다.

 

스물한 살 때 나는 그와 처음 만났고, 3년 동안 연애를 했다. 그는 노래와 시로 사랑을 고백할 줄 알았고, 음악과 음식을 곁들이며 분위기를 연출하는 법도 알았다. 나이가 들어서도 함께 해외여행을 즐기는 부모님이 롤 모델이라며,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고 말하곤 했다. 그를 통해서 나는 타인과 가족 같은 관계가 된다는 게 어떤 건지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주위 사람들이 “애인으로 ○○만한 사람 없어, 내가 본 남자 중에 최고야.” 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대외적으로 검증된 로맨티스트였다.

 

하지만 그의 뚜렷한 세계는 종종 내 불확실한 세계와 충돌했다. 일찍부터 이혼하고 각자의 애인이 있었던 내 부모님의 관계는, 그와 그의 부모님에게는 낯설고 위협적인 환경이었다. 그의 부모님은 내 ‘불우한’ 가정환경을 두고두고 염려했다. 번듯한 그의 학벌과 대비된 내 고졸 검정고시와 전문대 학벌도 이질적인 요소였다. 그는 나에게 어머니가 공무원을 좋아하니 준비해보면 어떠냐고 물었고, 나는 그의 안락한 세계에 편입하고 싶어서 그에 맞춰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함께한 3년 동안, 그와 나의 세계는 서서히 벌어졌다. 사회복지를 전공했던 나는 점차 사회 부조리에 눈을 떠 촛불집회에 나가고 여러 진보단체에서 활동을 하며 소위 운동권이 되었다. 경영학을 전공했던 그는 ‘외국기업의 투자와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 노동조합을 탄압해야 한다’는 경영 마인드를 깊이 새겼다.

 

한 공간에서 사랑을 속삭였지만, 우리는 언제든 서로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차린 맛있는 밥을 먹으며 당시 한참 인기 있던 예능을 볼 때였다. 여자들이 남자의 고충을 알아야 한다며 군대 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이 나왔다. 나는 방송 취지가 잘못됐다고 말했고, 그는 나에게 “그냥 좀 편하게 보면 안 돼?”라며 불편함을 드러냈다. 가끔 100분토론을 같이 보는 날이면 밤새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 “너 당신 그대 사랑. 나는 너를 모른다 너는 나를 모른다.”  ⓒ칼리

 

그는 자신의 주변을 잘 챙겼다. 나에게도 ‘주위 사람을 사랑하라’고 말했다. 한 번은 그 앞에서 아빠 욕을 한 적이 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침부터 아빠에게 욕을 듣고 오후에도 전화로 ‘미친년, 썅년’ 소리를 듣고 화가 났던 참이었다. 전화를 끊고 내 입에서 흘러나온 말 “아, 씨발.” 나의 말에 그가 정색하며 물었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나는 아빠에게 언어폭력을 당해왔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그래도 부모님에게 그렇게 욕을 하면 되냐고 당장 그 말을 취소하라고 나를 다그쳤다. 내가 싫다고 하자, 너 진짜 실망이다, 라며 휙 돌아서서 가버렸다.

 

당시에는 그가 좋은 사람이어서 내가 부모님을 미워하지 않도록 도와준다고 생각했기에, 얼마 안 가 그에게 사과했다. 그는 나에게 “부모님에게 아무리 화나도 그러면 안 돼. 다 널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라며 자식 된 도리를 말하곤 했다.

 

그렇지만 그가 말하는 사랑의 범위는 한정적이었다. 함께 길을 걷다가 일용직 건설노동자들이 술을 마시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갑자기 그가 “어휴, 일한 걸 술 먹느라 다 쓰고 생각 없이 사니까 저렇게 살지” 라는 말을 뱉었다. 나는 발끈해서 따졌다. “그게 무슨 말이야? 네가 건설노동을 해봤어? 일이 고되니까 술 한 잔 먹을 수도 있지, 저분들은 술도 먹어선 안 돼?” 그렇게 그날도 저녁 내내 다투며 데이트가 끝났다.

 

그는 몰랐다. 그가 손가락질하며 ‘저렇게 산다고’ 비난했던 사람이 알코올중독이었던 우리 엄마일 수 있다는 걸, 엄마가 만났던 일용직 노동자인 아저씨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소중한 사람일 수 있다는 걸 그는 몰랐다. 땀 흘려 정직하게 일하고, 고된 노동 강도 때문에 술을 먹으며 아픈 몸을 푸는 어떤 세계를 그는 몰랐다. 세상에는 같은 노력으로도 같은 결과를 얻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걸, 그의 부모님처럼 성실한 사람들의 가계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건 의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그의 집은 단지 그 무너짐을 살짝 비껴갔을 뿐이라는 걸 그는 몰랐다.

 

또 그는 몰랐다. 어떤 부모자식 관계는 남보다 더 아프고 폭력적일 수 있다는 걸, 그런 아픔에 ‘마땅한 도리’를 들이대는 게 얼마나 섣부른 판단이고 폭력이 되는지 그는 몰랐다.

 

그렇게 틈새가 걷잡을 수 없이 벌어져 더 이상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게 됐을 무렵,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별했다. 만약 그와 함께였다면 나는 그의 확실한 세계에 편입되기 위해 이미 내가 목격하고 경험하고 알게 돼버린 복잡하고 불확실한 세계를 외면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가족을 사랑했고, 동료를 사랑했고, 애인을 사랑했다. 그 사랑은 안락하고 다정했지만, 그의 눈길이 미치는 범위까지만 닿았기에 나는 고독했다. 내 세계는 이미 그의 눈이 닿지 않고 상상력이 닿지 않는 곳까지 걸쳐있었지만, 그는 그런 내 세계를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자신이 모르는 세계를 외면하는 게 얼마나 손쉬운 일인지, 복잡다단한 세계에서 ‘마땅한 도덕적 잣대’와 ‘개인의 노력’을 들이미는 게 얼마나 폭력적인 일인지, 지금쯤 그는 알게 되었을까? 사랑이 내 세계를 깨고 상대의 세계를 기꺼이 맞이하는 일이라면, 그 시절 그와 나는 사랑했다고 할 수 있을까.

 

최승자의 시 <일찌기 나는>에는 이런 시구가 있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그의 사랑에는 ‘너, 당신, 그대, 사랑’이 있었지만 ‘나’는 없었다.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내가 살이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 (홍승은)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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