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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영화가 아니라 폭력이다
<남순아의 젠더 프리즘> 존엄이 지켜지는 현장 찾기
※ 세상을 바라보는 20-30대 페미니스트들의 관점과 목소리를 싣는 ‘젠더 프리즘’ 칼럼입니다. 필자 남순아님은 페미니스트 영화인입니다. feminist journal ILDA 바로가기
영화판은 원래 그래!?
처음 영화 현장에서 가장 놀랐던 것은 일이 ‘빡세다’는 것이었다. 감독들은 한 테이크라도 더 가고 싶어 했고, 정해진 시간과 예산에 비해 찍어야 할 컷들은 항상 많았다. 다 찍지 못하면 일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새벽에 집합해서 다음 날 새벽이 되도록 집에 못 간 적도 많았다. 힘들다고 말하자, 나보다 훨씬 경험이 많은 누군가 충고를 했다.
“영화는 원래 다 그래. 그래도 이정도면 쉬운 편인데, 넌 장편영화는 못하겠다.”
내가 현장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은 누가 더 힘들고 후진 상황을 겪어 봤는지 경쟁하듯 말하곤 했다. 그 대회에서는 가장 열악한 곳을 경험해본 사람이 승자였다.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좋고 이 일을 계속 하고 싶기 때문에 힘들어도 참는 것이며, 모든 것은 영화가 잘 나오면 용서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내가 그 정도로 영화를 좋아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들에 비해 내 열정이 작아 보이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나 또한 착취당한 경험들을 모아 이기거나 지는 놀이를 즐겼을 뿐, 그 열악함을 개선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 한국 영화 현장의 안전불감증에 대한 문제 의식을 담은 트윗
가끔 가시처럼 걸리는 것들이 있기는 했다. 낚시하는 장면을 찍기 위해 살아있는 물고기의 입천장에 낚시 바늘을 찌르는 것을 보았을 때, 배탈 난 스탭 때문에 촬영이 늦어진다며 감독이 욕하는 것을 들었을 때, 쓰레기통에 일회용 종이컵을 넘치도록 눌러 담았을 때, 가구가 인물에게 넘어지는 장면의 리허설을 위해 배우 대역으로 섰는데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사소한 것들이 수없이 마음에 걸렸지만 더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런 것들까지 신경 쓰면 영화를 찍을 수 없다고 배웠다. 다들 잠도 못자고 고생하는데 작은 일로 피곤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완성된 영화 중 어떤 영화는 상을 받았다. 그러나 보람이나 기쁨보다는 ‘이 영화가 그렇게까지 해서 만들어질 가치가 있나’ 라는 회의감이 들었다.
중견 배우에게 성추행을 당하다
한 번은 60대 남성 캐릭터가 나오는 영화의 조감독을 맡은 적이 있는데, 그 나이대의 배우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다행히 한 배우를 알게 되었으나 감독에게 검증된 전작이 없었고, 시나리오에서 캐릭터의 비중이 적어 배우가 확답을 주지 않았다. 배우와 함께 만나기로 한 날, 감독과 나는 그 배우를 꼭 캐스팅하고 싶었기 때문에 확답을 받아내자고 다짐했다.
그 날 감독과 나는 배우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우리는 그에게 반복해서 시나리오는 어땠는지, 영화에 출연해줄 수 있는지 물었고, 그는 ‘고민해 볼 테니 일단 술이나 마시자’며 우리가 그의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아주 뻔한 레퍼토리처럼 그는 우리를 데려간 술집에서 딸 같다는 우리의 손을 잡고 놔주질 않았고, 부인과 사이가 소원한 것을 피력했으며, 계속해서 우리 셋이 여관에 가서 술을 마시자고 했다. 감독과 나의 가슴 크기를 비교해보겠다며 주먹을 내밀고 우리에게 가슴을 대보라고 하기까지 했다.
그의 행동에 당황했지만, 그게 성추행이라고 인지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그를 가해자라고 생각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를 캐스팅하지 못하면 영화를 찍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2차까지 간 술자리에서 나는 감독을 두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나왔다. 그 배우는 나를 배웅해주겠다며 따라와선 뽀뽀해주지 않으면 보내지 않겠다고 버텼다. 그에게 억지로 뽀뽀를 해주고 나오면서, 그제야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
▶ 페미니스트 영화/영상인 모임 <찍는페미> 박효선님의 트윗
얼마 후 감독에게서 집에 간다는 연락이 왔다. 배우가 계속 여관 가서 술을 마시자는 걸 뿌리치고 집에 와버렸다고 했다. 나는 내가 그 자리를 떠난 뒤 감독에게 더 큰 피해가 없었다는 것에 두고두고 감사하고 있다. 지금도 감독에게 미안한 마음이지만, 만약 더 큰 피해가 있었다면 나는 커다란 죄책감에 시달리며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음 날 감독과 나는 그 배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놀라운 것은 우리가 그 배우와 계속 작업을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대신 우리는 그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그는 사과했지만 끝까지 “너희가 딸 같고, 너무 예뻐서 그랬다”고 헛소리를 지껄였다.
감독과 나는 배우가 촬영장에서 다른 여성 스탭 혹은 배우를 성추행할 가능성이 있으니 스탭 및 배우들과 이 일을 공유하고 여성 스탭이나 배우를 그와 단 둘이 두지 말자는 결론을 내렸다. 이 논의 결과를 들은 다른 스탭이 우리에게 물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그 배우랑 작업해야 해?” 그 말을 듣고 나는 펑펑 울었는데, 그의 말이 옳았고, 그렇게까지 작업을 진행하려던 우리가 이전에 우리를 착취했던 사람들과 매우 닮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우리는 그와 함께 작업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다른 60대 남성 배우와 함께 영화를 완성했다. 그 영화는 영화제에서 상영되지 못했다. 그러나 뒤늦게라도 그 배우와 함께 작업하지 않기로 결정함으로써 우리의 존엄을 지켰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현장을 만들기 위하여
나와 감독이 겪었던 일은 다른 현장에서도 비일비재할 것이다. 시간과 예산이 더 많이 투자된 영화일수록, 영화라는 목적을 달성하고자 그 외의 것들을 사소하다며 넘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취적이고 새로운 영화를 만드는 것만큼, 영화를 만드는 우리가 딛고 있는 곳의 윤리를 고민하고 변화를 만들려는 사람들도 있다.
▶ 페미니스트 영화/영상인 모임 <찍는페미>에서 #그건_영화가_아니라_폭력이다 해시태그를 제안하며 올린 글
얼마 전 SNS에서는 <찍는페미> 주도로 ‘#그건_영화가_아니라_폭력이다’ 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영화라는 대의를 위해 제작진들이 어떤 것들을 무시하고 일해왔는지, 관객들은 어떤 환경에서 제작된 영화를 보고 싶은지 이야기하는 트윗들이 올라왔다. 올라오는 트윗들을 보면서, 과거 내가 자랑으로 여겼던 일들이 영화에 대한 ‘진정성’과 ‘열정’이란 이름으로 나를 비롯한 타자의 생명권과 존엄을 침해하는 일이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나 역시 작은 현장의 결정권자로서 다른 이들의 권리를 침해했던 것을 반성했다.
여태까지 영화라는 목적을 위해 많은 것들이 무시되어도 괜찮다는 걸 보고 배운 우리가 다른 현장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아마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테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거나 타협하며 스스로를 경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전의 작업 방식으로는 우리가 버티질 못할 것이므로, 우리는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현장을 찾아내야 한다. 더 이상 작은 것들을 사소하게 여길 수 없는 사람들이 변화를 도모할 것이다. feminist journal ILDA 바로가기
[남순아 필자 소개] 페미니스트 영화인. 영화 안과 영화 바깥에서 페미니스트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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