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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애들 이성교제 못하게 해주세요”

<백목련의 젠더 프리즘> 성교육 강사가 듣는 말


※ 세상을 바라보는 20~30대 페미니스트들의 관점과 목소리를 싣는 ‘젠더 프리즘’ 칼럼입니다. 필자 백목련 님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열림터 활동가입니다. -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십대의 상황과 거리가 먼 어른들의 감수성

 

“저희 애들 이성교제 못하게 해주세요.”

 

수화기 너머 들리는 상대방의 말이 당황스럽다면 당신은 성교육 초짜. 십대에게 연애를 금기시한 건 2000년대 이전의 규범이라고 생각했지만, 성교육 의뢰를 받다보면 현재 십대 성문화와 상당히 동떨어진 기성 세대의 불안을 자주 접할 수 있다.

 

물론 몇 년 전에 비해서는 훨씬 연애금지와 관련된 주문이 줄었지만 비슷한 종류로 “애들끼리 스킨십이 너무 진해서 눈 뜨고 보기 힘들어요”가 있다. 십대가 연애하는 상황을 두고 호소하는 불안 혹은 연애 금지 사유도, 예전에는 면학 분위기 조성이나 ‘학생의 본분은 공부’였다면 지금은 원치 않는 임신이나 성적 위기 경험 방지 등과 같이 미세하게 변하는 걸 느낄 수 있다.

 

물론 내가 저런 의뢰를 수락할리도 없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내게 성교육 참여자들의 연애를 중단시키거나 유예시킬 만한 강력한 힘도 없다는 사실이다. “하지 말란다고 애들이 안 하지는 않는다는 거 알고 계시죠?” 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교내에서 지나친 스킨십을 해서 어른 세대가 어디다 눈을 둬야할지 몰라 너무 불편하다거나, 가끔씩 교복을 입은 채 동네에서 스킨십을 하는 게 지역주민의 심기를 거슬러 ‘교사의 관리감독 부실’이라며 민원이 제기되었다는 설명도 듣곤 한다.

 

▶ 청소년 대상으로 성교육을 하고 있는 필자의 모습.  ⓒ제공: 서울시립동작청소년성문화센터

 

성교육 현장에서는 교육 참여자인 십대의 상황과 교사, 부모, 지역주민의 감수성이 다른 입장에서 부딪히는 상황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당사자인 십대에게 필요한 지원의 내용과, 어떤 관점에서 어떤 자원을 십대에게 제공할지를 결정하는 성인 세대의 선택이 한참 어긋나 있을 때, 잠깐 스쳐만 가야하는 성교육 강사로서 나의 위치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그나마 “친밀한 관계에서의 성행동이 모두가 문제가 아니라, 선생님이 호소하는 것처럼 공공장소에서의 스킨십 에티켓을 고민해보게 해야 한다”고 설명하면, 대부분 수긍하는 편이다. 스킨십 에티켓 뿐만 아니라 연애를 자신이 왜 하는지, 하고 싶은지 아닌지에 대해 성찰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연애 성교육의 목표가 된다. 짝사랑, 고백, 스킨십 제안과 거절, 데이트 비용, 기념일, 집착, 이별 등 최근 십대들이 성교육 시간이나 쪽지 질문에서 자주하는 질문에 답해줄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이때 가상 사례에 대한 또래상담 방식을 활용해 친밀한 관계에 대한 고민의 폭을 넓히는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일장연설과 같은 강의보다는 조별 토론 후 발표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겪어봄직한 사례에 대해 또래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 안에서 해결책을 찾게 하는 방법을 교육 참여자들이 더 ‘현실적’이라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동성애는 언급하지 말아주세요”

 

하지만 관문은 하나 더 남아있다. “저는 ‘이성교제’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거든요” 라고 얘기하면, 대부분 나의 의도를 잘 파악하지 못한다. “모든 십대들이 이성애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성교제’라는 말은 차별이 될 수 있어서 ‘연애’라는 말을 씁니다.” 이쯤 말하면 반응은 몇 가지로 좁혀지는데, 아주 소수의 경우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고 넘어간다.

 

“‘연애’라고 하면 좀… 속된 말 같은데요.” 혹은 같은 이유로 “교장 선생님이 싫어하실 텐데요” 라고 응답하는 경우도 있다. 학교뿐만 아니라 미디어에서도 친밀한 관계를 격식을 차려 지칭하는 용어로 ‘이성교제’를, 성행동이나 연애기술 등과 관련해서는 ‘연애’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잠깐 뜸들이다 “동성애자가 아닌 학생이 수업 시간에 그런 얘길 듣고 휘둘리고 그럴 수도 있지 않나요?” 하거나, 간혹 “성교육 표준안대로 동성애는 언급하지 말아주세요” 라고 응답하는 교사도 있다. 이럴 때는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보기에는 주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이성애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단순히 수업만으로는 특정 성적 지향이 확산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자기 정체성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는 것이지, 강사가 특정 성적 지향을 권유하거나 홍보(?)하지 않는다는 지점도 덧붙인다.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공무원 스타일의 교사에게는 ‘아무리 지침이 있다고 해도 누군가를 차별하고 비난하거나, 있는 사람의 존재를 없는 것처럼 여기는 방식이 교육자로서 적절한지’ 질문한다. 또한 십대들이 먼저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에 대해서 물어보기 때문에, 특히 성에 대해서 성인 세대와 교류나 소통이 없었던 교육 참여자들의 질문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부분이 ‘합의’되지 않으면 성교육을 할 수 없다.

 

때로는 너무 당연한 것들을 구구절절 설명하고 합의해야 할 때, 이런 과정에서 교육자로서 나의 자질을 의심받을 때, 정말로 내가 이상한지를 스스로에게 되묻게 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동화 속에만 있는 건 아닌 것 같고, 성교육이 부재한 수준이었던 성인 세대에게도 성 인식 교육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데에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졌다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제공: 서울시립동작청소년성문화센터

 

“연애하는 친구들이 불편해요”

 

우여곡절을 거쳐 교실에 들어가면, 거기서 새로운 문제와 마주한다. 같은 반 친구 커플의 스킨십이 꼴불견이라는 가상 고민 사례에 대해 ‘여러분도 연애하는 친구들이 불편하냐’고 물어보면, 놀랍게도 대부분 ‘그렇다’고 대답한다.

 

십대가 불합리한 사회 규범에 저항할 것이라고 보통 생각하지만, 이들도 연애 권하는 사회에 사는 평범한 인물들이다. ‘연애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나’ 혹은 ‘연애 안 하고 싶은데 자꾸 안 하냐고 물어봐서 불편한 나’로서는 연애하는, 그것도 눈앞에서 잔망 떠는 커플들이 편할 리가 없긴 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가끔 요즘도 “학생(청소년)은…”으로 시작하며 친구들을 계도의 대상으로 보는 십대도 있긴 하다.

 

한편으로는 현재 견뎌야 하는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그런 얘긴 생각하기도 싫어하거나, 어쨌든 강사가 원하는 답이 있을 거라 지레짐작하고는 연애와 관련한 많은 갈등의 해결 방법을 그냥 ‘헤어진다’로 대충 대답하고 마는 십대도 있다. 갈등 자체를 불편해 하는 사회적 분위기 탓도 있을 것이다. 빡빡하게 짜여진 일상 속에서 갈등을 해결할 에너지가 바닥났기 때문에 갈등을 직면하고 다루기보다 단절하는 편이 더 간편하게 여겨진다는 느낌도 든다.

 

한편 “저는 연애해 본 적이 없어서요”, 아니면 “저는 이런 문제없었는데요?”와 같은 상상력의 부재를 자랑하는 친구들도 있다. 그럴 땐 역시 “여러분, 여러분은 상상과 추론이 가능한 나이거든요?” 하며 갈등 상황을 자기 문제로 생각해볼 수 있도록 공을 다시 넘기곤 한다.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진 것 같다. 오늘 소개한 연애 성교육 에피소드들은 청소년 성교육자들이 가져야 할 가치관과 태도는 어떠한지, 교육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지점을 어떻게 운동의 차원으로 가져가야 하는지, 여전히 인고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설명해 주는 것 같다.

 

“하아….”

 

옆자리 앉은 동료 활동가의 한숨이 오늘따라 더 크게 느껴진다. 

 

[백목련 필자 소개] 성에 관한 호기심을 나눌만한 친구도, 질문에 대답해 주는 어른도 없이 혼자 성교육 책을 읽으며 십대를 보냈다. 당연한 관심을 두고도 나와 같이 외로운 시간을 보내는 십대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십대 성교육을 시작했다.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를 비롯해서 유쾌한섹슈얼리티인권센터, 광진 및 동작청소년성문화센터 등에서 성교육을 하며 지내다, 오래 지지고 볶는 관계를 맺기 위해서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열림터에서 활동하고 있다. -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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