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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페미당이 필요하다

<이가현의 젠더 프리즘> 정치의 패러다임을 바꾸려면


※ 세상을 바라보는 20~30대 페미니스트들의 관점과 목소리를 싣는 ‘젠더 프리즘’ 칼럼입니다. 필자 이가현님은 불꽃페미액션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무늬만 페미니즘인 정치인, 정당, 정책

 

조기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정치인들이 앞 다투어 페미니즘 색깔의 정치를 호소하고 나섰다. 2015년부터 이어지는 페미니스트들의 힘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정치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어딘가 석연치 않거나 답답하거나 어이가 없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지난 1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생리는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므로 생리대를 수도나 전기처럼 공공재로 다루자는 제안을 올렸다. 이에 여성의 신체를 출산과 연결시키는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의 뭇매를 맞고, 급히 해당 부분만 삭제했다. 이렇게 생리대 가격을 문제 삼고 여성들을 위한 정책을 내놓았다고 해서 다 페미니스트인 것은 아니다.

 

▶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페미광장이 주최한 페미니즘 정치포럼 ‘정치의 패러다임을 싹! 바꾸자’에서  ⓒ이가현

 

유력한 대선 주자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지만, 그는 지금 페미니스트들이 원하는 페미니스트 정치인은 아니다. 그는 지난 2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만난 비공개 면담 자리에서 ‘동성혼은 국민 정서상이나 현행 법 체계에서 허용되고 있지 않다. 동성애나 동성혼을 위해 추가적인 입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 ‘우리 당 입장이 확실하니까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괜찮다’며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도입하는 것에도 반대 입장을 밝혔다.

 

페미니스트라면 소수자들의 인권을 ‘나중으로’ 미뤄서는 안 된다. 다른 무언가와 거래해서도 안 된다. 지금 당장 차별과 혐오로 목숨을 잃어가고 폭력을 마주해야 하는 사람에게 ‘나중’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금까지 나중으로 미뤄진 삶들이 모여서 운동으로 만들어온 게 페미니즘이다. 여성주의 의제도, 지금까지 여러 사회 의제에서 항상 ‘나중에’ 소리를 들어왔다. 민주당 예비후보들은 ‘낙태죄 폐지’처럼 첨예한 여성주의 이슈에는 언급을 피하고 있다. 페미니즘 정책의 내용도, 신념도 갖춰지지 않은 정치인이 어떻게 페미니스트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최초의 여성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대선에 출마할 수 있었던 것은, 마치 지정성별이 여성이면 모든 여성을 대변할 수 있는 것처럼 손쉽게 이미지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박근혜가 여성이 아니라 박정희의 화신이자 공주일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박근혜의 선거운동 과정을 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박근혜는 보수여성단체를 찾아가 산업화시기 여성들의 노고를 인정하는 발언들을 하며 중년여성들의 마음을 얻었다. 박근혜를 찍었다는 여성유권자들의 인터뷰에는 ‘이번엔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찍었다’, ‘남성들이 그녀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것을 보고 싶었다’는 발언들이 나왔다.

 

사실은 정치인이 여성들의 삶을 대변하려면, 생물학적 성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페미니스트여야 한다. 페미니스트도 아닌 정치인이 ‘여성대통령’ 슬로건으로 출마하여 대선에 당선된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 여성주의 정치세력이 미미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로운 정치를 원한다!

 

지금까지 정치인들의 행보를 보아, 페미니스트들이 기성정치인에게 ‘제발 페미니즘 정치를 해달라’ 읍소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진보정당은 좀 다를까? 정의당은 지난 총선에서 여성혐오가 짙은 노래를 만든 중식이밴드와 공식테마송 협약을 맺어서 논란이 되었다. 정의당 지도부는 또, 메갈리아4를 후원하는 티셔츠(GIRLS Do Not Need A PRINCE)를 입었다는 이유로 김자연 성우를 부당 교체한 넥슨에 대해 문화예술위원회가 비판하는 논평을 낸 것을 중앙당 직권으로 취소시키기도 했다.

 

평등한 세상을 위해 노력한다는 진보정당에서조차 당원 모임에도 나가기 어려운 불평등 문화가 존재하고, 페미니즘 의제는 후순위가 되어왔다. 물론 진보정당 내 여성주의자들이 발 벗고 뛰며 정당 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진보정당조차 성차별과 여성혐오에서 자유롭지 않은 실정이니,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자신들을 대변하는 정당과 정치인이 없다고 느껴 답답해하고 있다.

 

▶ 2월 23일 연세대에서 열린 페미니즘 정치포럼 ‘정치의 패러다임을 싹! 바꾸자’  패널들. ⓒ이가현

 

지금은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페미니스트들과 페미니즘 운동이 정치적으로 엄청난 파급력과 힘을 가지고 있다. 국가는 계속해서 여성을 ‘애 낳는 기계’취급을 하지만, 여성들은 이에 밀리지 않고 보건복지부의 인공임신중절 처벌 강화안을 막아냈다. 페미니스트들은 혐오발언과 성폭력이 없는 평등한 집회를 요구하며, 매주 토요일 박근혜 퇴진 집회에 참여해 ‘페미존’을 운영했다. ‘페미니스트 시국선언’을 통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보는 페미니스트들의 입장과 더불어, 여성주의 정치에 대한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우리는 새로운 정치를 원한다. 지난 2월 23일 연세대에서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페미광장’이 주최한 ‘정치의 패러다임을 싹! 바꾸자’는 제목의 페미니즘 정치포럼이 열렸다. 광장에서 정치를 다시 시작하고 싶은 페미니스트들이 돌아가면서 자신들이 당면한 문제를 이야기하고, 사회에 하고 싶은 말들을 마음껏 했다.

 

우리에게는 광장이 필요하고, 지금까지 침묵 당해왔던 이야기들을 터뜨릴 곳이 필요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들의 권리를 재지 않을 정당과 정치인이 필요하다. 다양한 페미니스트들의 힘을 모아 페미니스트 정당을 건설할 때가 된 것 같다. 우리에게는 페미당이 필요하다.  -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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