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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문제를 빼고 여성인권 논할 수 없어

[완두의 젠더 프리즘] 성매매 현장에서 목격하는 일들


※ 세상을 바라보는 20~30대 페미니스트들의 관점과 목소리를 싣는 ‘젠더 프리즘’ 칼럼입니다. 필자 완두님은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 feminist journal 일다 ILDA

 

“콜센터에서도 일해 봤고… 다른 일반적인 일도 여럿 해봤어요. 한 번은 일하다가 갑자기 쓰러진 적이 있는데 쪽팔려서 그냥 바로 나와 버렸어요. 그랬는데 어떻게 다시 아무렇지 않게 나가겠어요. 저는 이 일이 저한테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내가 시작하고 싶을 때 시작하고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둘 수 있으니까. 내가 이런 상태라도 ‘나오지 말라’고 하는 사람 없고, 주변 사람 눈치 볼 필요도 없고요….”

 

나는 그녀와 그녀의 집 근처에 있는 신경정신과와 산부인과를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다. 그녀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만나기로 한 장소에 서서 30분이 넘게 기다렸다. 그때마다 그녀는 길을 잃고 헤맸다고 말했다. 그녀의 집 앞으로 마중을 나간 날, 서른 살의 그녀는 자신이 성매매를 하는 이유에 대해 위와 같이 설명했다. 그녀는 그 뒤로도 몇 차례 길을 잃었다.

 

그녀가 진료실에서 나오면, 병원 로비 소파에 앉아 있던 나는 몸을 일으켜 수납처 간호사에게 결제할 카드를 내밀었다. 간혹 병원 관계자는 그녀와 함께 온 나에게 둘의 관계를 물었다. 나는 반성매매 운동을 하는 활동가이며, 현재 성매매피해지원상담소에서 상담을 매개로 성매매 여성들을 만나고 있다. 하지만 난 아직까지 의료 지원을 목적으로 내담자와 방문한 병원에서 정확하게 내 소속을 밝힌 적이 없다. 그녀 역시 꽤 여러 달 만난 신경정신과 의사에게 본인의 성매매 경험을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 성매매피해지원상담소는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전국 27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성매매 집결지 현장 방문과 더불어 여성들에게 법률, 의료 지원을 하고 심리상담, 자활센터, 쉼터 등 필요한 자원을 연계한다.)


▶ 나는 반성매매 운동을 하는 활동가이며, 상담을 매개로 성매매 여성들과 만나고 있다.  ⓒ완두

 

강요 vs 자발, 성매매 여성에 대해 틀에 박힌 이미지

 

성매매피해지원상담소에서 일하지만 스스로를 ‘성매매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내담자의 피해 회복을 지원하고 관련자를 고발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법적 개념이자, 사람들에게 각인된 ‘피해자’라는 개념이 성매매 여성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담아내기엔 너무나 협소하다고 느낀다.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은 ‘성매매 피해자’를 위계, 위력, 이에 준하는 방법으로 성매매를 강요당한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나에게 성매매 여성을 만나는 일은, 그 여성이 타인과 관계를 맺고 자원을 이용할 때 겪는 차별과 구체적으로 만나는 일이다. 지원 내용도 그와 연관된 것이 많다.

 

한국 사회에서는 폭행, 감금으로 대표되는 ‘강요에 의한 성매매’나, 소위 텐프로와 명품백 이미지를 근거로 하는 ‘자발적 성매매’가 성매매 여성의 맥락을 설명하는 거의 유일한 담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매매 여성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와 그로 인한 낙인은 성매매 여성의 심리적, 신체적 증상을 단일한 경험의 결과로 ‘피해자화’한다. 또, 범죄 피해자로서 권리의 회복을 시도할 때는 극악한 폭력과 그에 무력해진 ‘피해자다움’을 요구한다.

 

때문에 많은 내담자들은 경찰서에서, 병원에서, 학교에서, 택시에서 ‘성매매(했거나 하고 있는) 여성’으로 보이는 것을 경계한다. 성매매 경험이 노출됐을 때 마치 ‘나에 대해 다 안다’는 듯, ‘무시해도 되는 사람’으로 볼 거란 걸 알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과거 그리고 현재의 성매매 경험은 사회적 낙인이기 때문에 성폭력, 몰카, 데이트 폭력, 사기 등의 피해를 겪어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협박이 된다. 친구, 연인, 가족, 동료에게 비난을 받고 배제당하는 이유가 된다. 탈성매매를 해도 업주나 사채업자에게 위치가 발각될까봐 결혼, 주민등록, 주소 이전을 미루게 된다. 남성에겐 성을 사는 경험이 사회생활의 일부로 별 문제될 것이 없는 반면, 여성에겐 성을 판 경험이 설명할 수 없는 사회적 공백으로 남아 구직에 어려움을 겪는다. 성매매 여성의 ‘피해’는 물리적 폭행, 감금 때문만이 아니라 이렇게 일상으로 파고드는 구체적인 상황과 맞닥뜨리면서 누적된다.

 

내담자를 조력하기 위해 공적 자원을 이용하는 상담원 역시, 내담자의 성매매 경험이 노출되는 것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린 때때로 서로의 친척, 동료, 지인이 된다. 사실, 나는 내담자 옆에 서서 간호사에게 나를 지인이라고 소개할 때 이것이 내담자의 정체성을 보호하고 내담자를 위하는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체성에 대한 회피는 회복과 자기 긍정의 기회를 늦추는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삶에서, 여성으로서 연결된 억압을 목격한다

 

▶ 성매매 여성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차별은 여성이라면 공통적으로 겪는 차별과 연결되어 있다. 


최근 <씨네21> 대담에서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김홍미리는 “폭력이란 누군가의 삶의 반경을 점점 좁히는 것”([스페셜] 영화계 내 성폭력 다섯 번째 대담: 여성학자와 활동가 - 조혜영·송란희·권김현영·김홍미리, 2016년 12월 7일자)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또한 ‘가해’는 당사자 간의 폭력을 포함해 “내 말을 무시하는 것,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 것, 나를 눈치 보게 하고, 왜 신고했냐고 얘기하는 것” 등 성차별 사회에서 가해 행위를 부추기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 자체가 다 독립적인 가해”라고 말했다. 그러니 개별 사례에 대한 대응 지침을 넘어 “전반적인 폭력과 차별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치료와 구제의 대상을 질병이나 침해된 권리가 아닌 ‘성매매 여성’이라는 정체성으로 인식하는 사회에서, 성매매 여성이 살아가는 삶의 반경이 좁아지는 건 당연하다. 상담소에서 만나는 여성은 십대부터 노년까지 다양하다. 상담 과정에서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성매매 여성이 경험하는 차별은 원치 않은 성적 요구와 외모와 나이에 따른 멸시부터 자원에 대한 통제권이 결여되는 일까지, 여성에 대한 차별과 밀접한 연결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성매매 여성이 경험하는 일상적인 차별을 가시화하는 일은 전체 여성의 권리를 확대하는 일과 닿아 있다.

 

그러나 가시화해야 하는 영역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지원금으로 운영하는 성매매피해지원상담소는 법에 근거해 정해진 범위 안에서 성매매 여성을 지원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에 지원 내용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상담원과 내담자의 관계 맺기는 내담자가 경험한 ‘피해’ 내용을 우선으로 파악하며 시작한다. 법률, 의료, 자활 등 관련 지원을 필요로 하는 내담자에게 정해진 지원금을 기준으로 자원을 연계하는 식으로 만나기 때문에, 상담원이자 활동가인 우리의 위치를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성매매 여성이 상담과 지원을 받는 것은, 여성이 오직 피해로만 점철된 무력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자르는 행위에는 비용을 마련하고, 나에게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을 찾고, 미용실을 알아보고, 예약을 하고, 예약 시간에 맞춰 나가는 등 다양한 자원과 접촉할 수 있는 힘을 필요로 한다.

 

상담도 마찬가지다. 상담을 받는다는 것은 문제 상황을 인식하고, 주변 자원을 이용해 스스로의 일상을 통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이때 상담자인 나는 내담자를 ‘돕는’ 사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상담자와 내담자로 만나는 우리는 각자의 ‘말하기’를 통해 여성으로 살아가는 삶에서 겪는 연결된 고통을 목격한다. 서로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 목격하면서 여성으로서 경험하는 공통의 억압을 확인하고, 그에 대항해 다른 사회를 만드는 일로 나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성매매 여성이 자기 몸 상태에 따라 일상생활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도록 도움이 될 만한 병원을 알아보고, 수면의 어려움이나 복용약물을 살피고 조절할 수 있게 조력하는 일은 내가 생각하는 의료 지원의 목표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페미니스트로서 나는 성매매 여성 개인이 호소하는 지금 당장의 문제를 지원하는 데만 머물지 않으려 한다. “내가 이런 상태라도 나오지 말라고 하는 사람 없”다는 내담자의 말은, 성매매 현장에서 여성의 신체적, 정신적 여건이 잘 고려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이는 그 여성이 어떤 상태든 여성이기만 하면 상품으로서 가치가 있는, 성매매라는 ‘일’의 성격을 알게 해준다.

 

고통을 강조하지 않고도 권리를 말할 수 있어야

 

나는 인간의 고통을 줄이는 일에 관심이 있다. 개개인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는 고통을 가하는 사회 구조를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성매매 현장에서 느끼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고통을 강조하지 않고도 권리를 말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앞으로는 고통을 느끼는 나와 고통을 가하는 세계에 어떻게 반응하고 말하고 행동할지 더 이야기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더 많이 목격하고 질문하고자, 상담을 매개로 더 많은 여성들을 만나고 싶다. 지금의 남성 사회를 최전방에서 마주하고 있는 성매매 여성들과 연결되지 않고는 페미니즘을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다)  feminist journal 일다 IL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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