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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만 번의 죽음을 애도하며

[머리 짧은 여자, 조재] 얼굴을 가진 존재



아빠와 한 식탁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서로 생활 패턴이 약간씩 어긋나는 까닭이다.

 

작년 부산에서 먹었던 빨간 고기 생선구이가 갑자기 생각나 며칠 아빠를 보챘고, 그날은 바로 그 빨간 고기를 먹는 날이었다. 내가 빨간 고기의 가시를 발라 열심히 먹는데 집중하는 동안, 아빠는 TV를 틀었다. 계속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끝없는 도전 끝에 억대 매출을 올리게 된 부부의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토하라는 민물새우의 양식에 성공했고 그게 꽤 값이 나가는 모양이었다. 나도 밥을 먹으며 아무 말 없이 관성처럼 TV를 시청했다.

 

양식에 성공한 토하를 잡아 다른 민물새우와 분류하고 그걸로 젓갈을 담그는 장면이 나왔다. 장독에 살아있는 토하들을 집어넣고 동일한 양의 소금을 부어 마구 버무렸다. 토하가 마구 펄떡거렸다. 펄떡거렸다, 마구. 억대 매출의 주인공은 몇 년 숙성시킨 천연소금을 써서 젓갈이 더 맛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른 여러 과정들을 거치고 숙성 시간을 거쳐 만들어진 토하젓갈을 화면에 보여줬다. 아빠는 그것 참 맛있겠다고 입맛을 쩝 다셨다.

 

억대 매출의 주인공은 미리 담가놓은 젓갈에 살아있는 토하들을 또 부어버리더니 방망이 같은 것으로 으깨기 시작했다. 펄떡거리던 토하들이 방망이에 짓이겨졌다. 입맛이 뚝 떨어져 괜히 식탁 위에 빨간 고기를 바라봤다. 이놈의 빨간 고기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우리 집 식탁위에 올라왔을까. 비린내가 나는 것만 같다.

 

▶ 얼굴을 가진 존재   ⓒ일러스트레이터 조재

 

단체 카톡방에 페이스북 글을 캡처한 사진이 올라왔다. “AI 생매장으로 희생된 2천만 생명을 위한 위령제.” 글은 서울시 인구보다 약 두 배 많은 생명들이 산채로 흙에 묻힌 사실과, 식용이라는 이유로 애도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슬픔을 이야기했다. 2천만 마리의 죽음이 아닌 2천만 번의 죽음, 하나의 사건이 아닌 2천만 번의 사건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AI(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한 가금류들의 죽음에서 산채로 소금에 절여지는 토하들이 보였다. 펄떡거리는 토하들이 생각났다. 나는 갑자기 얼마 전 있었던 일이 퍼뜩 생각나 얼굴이 화끈 거렸다.

 

며칠 전, 우리 카페에서 진행하는 행사가 끝나고 뒤풀이가 있었다. 사람들과 닭갈비집으로 이동해 자리를 잡았고, 닭갈비가 익는 동안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눴다. 행사에 대한 이야기, 각자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 등. 그러다 닭갈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자연스레 AI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가 넘어갔다. 나는 얼른 말을 꺼냈다. 아빠가 전기구이 통닭을 파시는데 안 그래도 안 되는 장사, AI 때문에 더 안 될 것 같아 걱정이라고. 나는 장사가 안돼서 가계가 어려워 질 것을 걱정했다. 닭갈비를 한 점 집어 맛있게 먹으며.

 

살아있는 토하를 짓이겨가며 젓갈을 담가 억대 매출을 올리는 것에 집중하는 사람들과, AI로 2천만 생명들이 생매장 당하는 상황에서 매출 걱정을 하고 있는 내가 무엇이 다를까. 내가 그토록 혐오해 마지않던 사람들과 나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 안녕   ⓒ일러스트레이터 조재


지난 12월 24일. 그들을 기리는 위령제가 열렸다. 나는 그 자리에 함께하진 못했지만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찾아본 닭들은 생매장 당한 닭들은 아니었지만, 과연 이들이라고 그들의 삶과 크게 다른가 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오래 들여다보고 오래 이 얼굴을 기억하고 싶다.   일다 Feminist Journal IL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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