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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와 남, 그 지독한 이름표

[머리 짧은 여자] ‘남자 같음’을 사유하다

 

▶ 수영장 ⓒ일러스트레이터 조재


올해 8월말부터 수영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물을 무서워해 평생 수영이라곤 배울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다보니 덜컥 강습을 등록하고 지금까지도 수영장에 다니고 있다.

 

카페에서 일하는 시간이 오후 1시부터 10시까지라 오전반을 등록해야 했다. 강습 시간표와 강사 선생님들을 쭈욱 살펴봤다. 너무 이른 새벽은 어차피 등록할 일도 없었지만 진작 정원초과. 내가 등록할 수 있는 적당한 시간은 오전 10시 초급반뿐이었다. 당연히 강사 선생님을 선택할 기회 같은 건 주어지지 않았다.

 

선생님이 좋은 분이었으면… 하는 기대를 가지고 강습을 시작했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일주일 뒤에 담당 선생님이 바뀌었다. 바뀐 분이 여자 선생님이었기에 괜히 기분이 좋았다. 알고 보니 선생님은 2년 전 내 친한 친구를 가르쳐주셨던 담당 선생님이었고, 출산휴가를 마치고 복귀하신 듯 했다. 성격이 서글서글하고 사람들에게 말 붙이기를 좋아하셨다. 가끔 회원들에게 물을 뿌리는 장난을 치기도 했다. 강습 시간엔 자세도 꼼꼼하게 봐주셨기 때문에 수영장 다니는 재미를 붙게 만들었다.

 

“아~ 그 남자 같은 선생님?”

“그래. 그 목소리 괄괄한 여자 선생님 있잖아.”

 

탈의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옷을 입고 있는데 사람들이 대화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보니 나를 가르쳐주시는 수영 선생님을 말하는 듯 했다. 남자 같은 선생님이라니? 도대체 ‘남자 같음’의 정체가 무엇인지 나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 수영  ⓒ일러스트레이터 조재

 

사람들이 나에게 붙이는 ‘남자 같음’과 선생님에게 붙이는 ‘남자 같음’은 그 성격이 조금 달랐다. 나의 경우 머리가 짧아서 가만히 있어도 드러나는 모습에 그런 표현이 붙었다면 선생님은 허스키한 목소리와 서글서글한 성격, 장난치는 모습 등에 ‘남자 같다’는 표현이 붙은 것이다.

 

나와 선생님 사이에는 공통분모가 거의 없어서 ‘남자 같음’이란 정말 남자 같다는 게 아니라 ‘다른 어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 같음’보단 ‘여자 같지 않음’이라는 의미에 더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그게 곧 같은 말로 쓰이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대부분 성별이란 단 두 가지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니 ‘여자 같지 않음’이란 곧 ‘남자 같음’이 되는 것이다.

 

지긋지긋한 이분법이다. 원치 않아도 획득하게 되는 ‘-같음’, ‘-다움’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지독한 이름표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나를 드러내는 것들은 대부분 성별로 나뉘어 사회적으로 다르게 평가됐다. 내가 운동을 하면 여자애가 운동을 하는 것이 되고, 내가 머리를 짧게 자르면 여자애가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것이 되고, 내가 타투를 하면 여자애가 타투를 하는 것이 됐다. 그리고 그것들은 대부분 여자 같지 않음에 가까웠고, 곧 남자 같음이 되었다.

 

부디 나라는 인간을 설명할 때 성별이 부차적인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자 같지 않음이 곧 남자 같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다움이라는 말로 이야기되었으면 좋겠다. 성별이 결코 이분법적으로 나뉘지 않으며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것처럼, 나다움은 그 사이를 자유롭게 여행하는 것이기를 바란다.  (조재 글. 그림)  Feminist Journal IL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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