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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참 짧으시네요”

[머리 짧은 여자] 연재를 시작하며 * Feminist Journal ILDA


전에 봤던 아주 무례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2016년 3월의 이야기다. 그날도 나는 카페를 지키고 있었다. 저녁쯤 됐을 때 누군가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카페에 들어왔다. 젊은 남자였다. 그는 어리바리하게 다가와서는 여기가 인문학카페가 맞느냐는 말을 했다. 상당히 정중한 사람이었고, 우리 카페 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수도권에서 왔음에도 불구하고 춘천까지 와서 활동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췄다.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그가 갑자기 뜬금없는 말을 했다.

 

“근데 머리가 참 짧으시네요. 멀리서 보고 남자인줄 알았어요. 얼굴도 예쁘신데 머리를 왜 이렇게 짧게 하고 다니세요?”

 

세 문장으로 나를 이렇게 기분 나쁘게 만드는 사람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초면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용기가 아닌가! 아마도 본인 입장에서는 칭찬의 말이었겠지만 말이다.


▶ 머리 짧은 여자   ⓒ일러스트레이터 조재 

 

나는 여성이다. 나는 머리가 짧다. 나는 ‘여자애가 머리가 왜 그렇게 짧아?’라는 질문을 아주 자주 듣는다. 식상하다. 가끔 ‘남잔 줄 알았어요.’라는 말도 듣는다. 굉장히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기분 나빠하면 네가 머리를 짧게 하고선 뭘 기분 나쁘다고 하느냐는 게 일반적인 반응이다. 자신이 무례한 것은 모르고, 그저 내 탓만 하기 바쁘다.

 

나는 머리가 짧고, 키가 작고, 눈썹이 부드럽고, 발이 칼발이고, 쌍커풀이 짝짝이다. 나에게 머리 짧다는 것은 단지 이러한 나의 외형을 표현하는 많은 것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머리가 짧음’이라는 속성은 ‘여성’이라는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모양이다. 다들 이렇게 많은 관심을 가져주니 말이다. “너는 여자애가!”

 

(생각해보니 중년 이상의 여성들은 머리가 짧은 게 대부분인데, 이들에게는 여자가 머리가 왜 이렇게 짧냐는 말을 하지 않는다. 아마도 중년 이상의 여성은 이미 ‘여성’이라는 범주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여성’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것은 젊은 여성에 한정될 뿐인 것이다.)

 

내가 짧은 머리를 유지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취미로 하던 운동에서 긴 머리가 불편했고, 앞짱구머리에 긴 머리는 두피에 쫙 달라붙어 머리숱을 빈곤해보이게 만들었다. 나는 머리를 짧게 잘랐고, 짧은 머리의 내 모습이 썩 마음에 들었다. 단지 그거다. 다른 이유는 다 제쳐놓더라도 나는 짧은 머리의 내가 좋다.

 

가끔 ‘남자들은 짧은 머리 안 좋아해.’라는 헛소리를 정성스럽게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는데, 엿이나 먹으라고 하고 싶다. 내가 왜 불특정 다수의, 보편적 남성들의 기호에 나를 맞춰야 하나? 여자들은 그런 헛소리하는 남자를 안 좋아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 머리 짧은 여자   ⓒ일러스트레이터 조재


타인의 외모에 대해 칭찬이든 험담이든 지적하는 것 자체가 오만한 것이고 무례한 것이다. 자신에게 그런 권력이 있다고 착각하는 멍청이들은 입을 닫고,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님의 말씀을 빌려 ‘주제파악’부터 하길 바란다. 부디.  Feminist Journal ILDA

 

“중요한 것은 무지가 아니라 무지를 깨달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뭘 모르는지 모르는 사람. 이런 사람이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할 때 ‘걸어 다니는 재앙’이 따로 없다. 특히, 남성은 결핍을 결핍한 완전한 존재다. 자기 위치를 알기 어렵다. 물이 흐르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포말이 일 때이다. 큰 물줄기 타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포말이 클 때이다. 그나마 대안은 24시간 긴장, 타인 존중, 말 줄이고 경청, 자기 몸을 작게 하기. 중단 없는 주제 파악. 나부터.” -<정희진처럼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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