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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소언니 우대” 대출에 숨은 비밀

<나한테 왜 빌려줬어요?> ①성산업과 대부업의 공모



금요일 저녁 8시에 강남 테헤란로에 가봤다. 유흥주점과 바(Bar)와 노래방이 줄지어 있는 골목의 길바닥에서 ‘일수대출’이라고 쓰인 명함들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일수대출: 신용조회X, 자영업자, 업소언니 우대”

“당일대출: 신용불량자 가능, 원‧투룸 보증금 대납, 무담보 당일 대출”

 

도대체 뭘 믿고 빌려주겠다는 것일까? 담보도 없이, 게다가 신용불량자까지 당일에 대출을 해준다니? 더군다나 ‘업소여성’을 ‘우대’해준다고 한다. 인터넷에도 이런 ‘여성 우대 대출’ 광고가 범람하고 있다. 비밀 보장도 해줄 테니 걱정 말고 돈을 빌리라고 한다.

 

▶ 금요일 저녁 강남 테헤란로 길바닥에는 ‘일수대출’ 명함이 즐비하다.  ⓒ일다

 

돈이 있고 담보가 있는 사람들은 제1금융권인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다. 은행에서 거절당한 사람들은 제2금융권(신탁회사, 신용카드사, 캐피탈사), 제3금융권(대부업체)이나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려야 한다. 뒤로 갈수록 이자가 높아진다.

 

이자가 높다는 건 갚아야 할 돈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직업도 없고 소득도 없는 여성들에게 돈을 빌려줘서 어떻게 회수하겠다는 걸까? 여성에게는 돈을 더 쉽게 빌려준다고 하니, 마치 여성이 특권인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지난 10월 27일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활동가들이 강남역 부근에서 캠페인을 벌였다. 캠페인의 제목은 ‘대출은 추심! 나한테 왜 빌려줬어요?’다.

 

<이룸> 활동가들은 캠페인에 참가한 시민에게 ‘뻥이요’ 과자와 빨대를 꽂아먹는 요구르트를 나눠줬다. ‘뻥이요’는 대부업자들의 거짓말을 뜻하고, 요구르트는 ‘약탈적 금융’이 여성의 등에 빨대를 꽂아 빨아먹는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유나 활동가는 캠페인 기획 배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서울에만 3천9백여 개의 대부업체 영업점이 있는데 그 중 강남, 서초에만 1천2백 개 정도가 있어요. 지도에 점을 찍어보니 유흥업소 분포랑 비슷하더라고요. 대부업체와 유흥업소가 이렇게 같은 곳에 몰려있는 이유가 뭘까요? 그리고 제2, 제3 금융권이든 불법 사금융이든 이들이 자선단체가 아닌 이상 빈곤한 (성매매) 여성들한테 돈을 빌려주고 싶어 하는 건 분명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뭘 믿고 돈을 빌려주는 걸까요? 이 질문을 시민들이랑 같이 해보고 싶었습니다.”

 

▶ 10월 27일 강남역 부근,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대출은 추심! 나한테 왜 빌려줬어요?’ 캠페인  ⓒ일다

 

유흥업소에서 알바를 했던 22살 다연씨 사례

 

22살 다연(가명, 여성)씨는 대학에 가는 게 꿈이었다. 1년 동안 수능 공부에만 전념하기 위해서는 돈을 모아야 했다. 각종 알바를 전전했지만 겨우 최저임금 수준인 시급으로는 아무리 일을 해도 돈이 모이지 않았다. 어느 날 자주 방문하는 알바 모집 사이트에서 유흥주점에서 일하면 단기간에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광고를 보고 전화를 해 봤다.

 

유흥주점 ‘마담’은 “우리 업소는 2차 강요 안한다. 한 번 와서 일해보라”고 말했다. 2차를 안 나가도 된다는 얘기에 다연씨는 딱 6개월만 악착같이 일해서 돈 모아서 나오자고 생각하며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업소 근처에 방을 얻어야 해서 원룸 보증금에 당장의 생활비, 일할 때 입을 옷들, 핸드폰 비 연체료 등을 내려고 하니 대략 8백만 원 정도의 돈이 필요했다. ‘마담’은 다연씨가 직장도 없고 담보도 없으니 큰돈을 한꺼번에 빌리기는 힘들다면서, 자기가 소개해 주는 대부업체 세 곳에서 2백~3백만 원씩 나눠서 빌리라고 했다. 8백만 원은 부담스럽고 큰돈이었지만, 계산해보니 하루에 10만원씩 갚으면 석 달 안에 상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머지 석 달 동안은 돈을 모으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생리통 때문에 평일에 결근을 했더니 벌금 20만원, 부모님 집에 다녀오느라 주말에 결근했더니 벌금 30만원이 생겼다. 마담이 소개시켜주는 화장품과 옷 방문 판매자에게 물건을 샀더니 몇 십만 원이 훌쩍 넘는 돈이 또 빚이 되어 있었다.

 

다연씨는 업소 일을 시작한지 2주만에 2차를 나가지 않고서는 결코 빚을 갚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알고 보니 먼저 들어온 여성들도 처음에는 2차를 안 나갔지만 빚을 갚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2차를 뛰는 눈치였다. 하루에 2차를 7~8개씩 뛰는 언니도 있었다.

 

그러나 2차를 나가기가 무서워서, 다연씨는 일을 나가지 않고 잠수를 타버렸다. ‘마담’에게서는 아무 연락이 없었지만, 대부업체는 빚 독촉 문자를 하루에 수십 통씩 보내왔다. 급기야 “몸을 팔아서라도 갚아라”, “부모에게 알리겠다”는 협박까지 나왔다. 다연씨는 대부업체에서 차용증을 쓸 때 주민등록번호와 집 주소를 적었었다. 대부업자들이 집에 찾아오는 건 시간 문제였다.

 

도움 청할 곳이 없는 다연씨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무료로 금융상담을 해주는 한 센터와 온라인 상담을 했다. 상담사는 “개인회생을 신청하려면 5년 동안 소득의 일정 비율의 금액을 상환해야 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직장을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파산을 할 수는 없는지 묻자 “빚이 3천만 원 이하인 경우에는 법원에서 파산이 기각되는 추세여서 파산 신청을 하기에는 빚 액수가 너무 적다”고 했다. 그러면 빚을 더 내란 말인가?

 

상담사는 “다연씨가 돈을 빌린 대부업자는 법정 상한 금리인 25%의 열 배인 250%의 이자를 뗀 것”이라면서 경찰에 신고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다연씨는 끝끝내 유흥업소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밝힐 수 없었다.

 

(※ 위 사례는 성매매 피해여성 지원 상담소에 접수된 사례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비밀1. 성산업과 대부업의 긴밀한 공모

 

▶ 여성 대출 유인물을 패러디한 홍보물.  ⓒ 이룸 제작


2004년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이하 성매매처벌법)이 제정됐다. 이 법의 제10조는 ‘성매매 알선자 등이 성매매 행위와 관련하여 성을 파는 행위를 하였거나 할 사람에게 가지는 채권은 그 계약의 형식이나 명목에 관계없이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포주(알선자)가 성매매를 전제로 지급하는 ‘선불금’이 불법 채권이 됐고, 여성들이 이를 입증하면 그 돈을 갚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성매매 여성을 상담하고 지원하는 활동가들은 성매매처벌법 제정 이후, 성산업은 “선불금을 선불금이 아닌 것처럼, 성매매 업소가 성매매 업소가 아닌 것처럼, 알선이 알선이 아닌 것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다양하고 교활하게 진화하며 변태하였다”고 전한다. (손정아 여성인권지원상담소 느티나무 소장, ‘성매매 여성의 탈성매매를 막는 경제적 족쇄’, <여성과 인권> 2016년 상반기 [통권 제15호] 한국여성인권진흥원)

 

그 중 하나가 위의 다연씨 사례처럼 포주가 직접 선불금을 주는 게 아니라 대부업자에게 돈을 빌리게 하는 방식이다. 업소 전속 사채업자를 두는 경우도 많다. 대부업체나 사채업자는 “성매매 하는 줄 몰랐다, 돈만 빌려준 거다”라고 오리발을 내밀면 그만이다. 사실상의 선불금이 성매매와 아무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는 ‘개인의 빚’으로 위장되는 것이다.

 

이처럼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슨 일을 해서라도 갚아야 하는 원금과 높은 이자는 여성들이 성매매를 지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고 있다.

 

<이룸>의 유나 활동가는 “지역의 다방이나 안마시술소 같은 데는 여전히 업주가 (선불금을) 땡겨주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서류상로는 채권자가 업주가 아닌 경우가 훨씬 많아졌다”고 말한다. 업주가 대부업자나 사채업자를 소개시켜준다거나 (업주가 아닌) 제3의 인물 명의로 차용증을 쓴다는 것이다. 사실상 불법 성매매 선불금인데, 마치 성산업 바깥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돈을 빌려주는 시스템으로 옮겨갈 수 있었던 것은 “대부업에 대한 규제가 없기 때문”이라고 유나 활동가는 강조했다.

 

손정아 여성인권지원상담소 느티나무 소장 역시 <여성과 인권> 통권 제15호(2016년 상반기)에서 “업주들이 선불금을 직접 지급하지 않고 개인 빚처럼 위장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일은, ‘사채천국’이라 일컬어지며 먹잇감을 찾는 거대한 사채시장이 형성돼 있는 우리나라의 환경에서는 너무도 쉬운 과정이었다”고 밝혔다.

 

한국에서는 2002년 ‘대부업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대부업법)이 제정됐다. 정부로부터 인허가를 받을 필요 없이 누구나 단순 등록만으로 합법적으로 대부업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대부업자들이 활개 치기 시작했다. 현재 등록 대부업은 연 27.9%, 무등록 대부업은 연 25%의 이자율을 적용받고 있다. 한때 대부업의 법정 상한 금리가 연 66%(2002년~2007년)인 적도 있었으니 한국은 가히 ‘대부업의 천국’이라 할만 하다.

 

그러나 대부업자들이 법정 상한선보다 높은 이자를 매겨도 처벌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지난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대부업법 위반 사건 선고현황’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2.1~2016.6) 대부업법을 위반한 사람은 총 4천624명이다. 그러나 이중 실형을 선고받은 인원은 겨우 171명인 3.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벌금형을 선고받은 경우가 52%, 집행유예 선고가 28.6%였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몸이 성매매를 통해서 손쉽게 돈으로 전환된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는 대부업자들에게 젊은 여성들은 좋은 먹잇감이다. 여기에 대부업자나 사채업자들이 불법 고금리를 매겨도 성매매 여성들이 이를 고소하기 힘들다. 설사 법에 걸린다고 해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다는 사실까지 더해지면, 대부업자들에게 ‘업소여성 대출’은 그야말로 무법천지인 셈이다.

 

이것이 바로 ‘업소여성 우대 대출’에 숨어있는 첫 번째 비밀이다.

 

비밀2. 성매매 여성에게는 빚 독촉이 쉽다

 

▶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일다


‘업소여성 우대 대출’에 숨어있는 또 하나의 비밀은 그녀들이 여성이라서, 게다가 성매매 여성이라서 아무리 큰돈이라도 반드시 회수할 수 있다는 대부업자들의 자신감이다. 실제로 대부업자들은 “여성이라서 더 쉽게 추심(빚 납부 독촉)을 할 수 있다”고 대놓고 말한다고.

 

“사채업자나 신용정보회사(채권추심회사)에서 추심을 할 때 여성이 사회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다는 걸 적나라하게 활용해요. 여자들은 물리적인 힘이 약하다보니 전화로 욕을 하거나 물리적으로 위협하면 대응을 잘 못하는 게 사실이에요. 실제로 엄마한테 찾아가서 딸이 성매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린 경우도 있었고, 부모나 가족들에게 알리겠다는 말만으로도 엄청난 협박이 돼요. (대출해 줄 때는 비밀 보장해 준다고 꼬드겼지만) 비밀이라는 것 자체가 약점이 되는 셈이죠.” (유나 이룸 활동가)

 

포주나 사채업자는 성매매 여성들이 자원 없이 고립돼 있다는 점, 사회적으로 낙인 찍혀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합법, 불법을 넘나드는 추심 행위로 성매매 여성들을 압박한다.

 

성매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겠다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여성들은 “더 많은 선불금을 주는 열악한 업소, 흩어져있는 사채 빚을 모아서 금액을 높여 정리해주는(즉 더 큰돈을 빌려주는) 조건의 다른 사채업자를 찾아가는 등의 대책을 강구하게 되고, 이는 여성들을 더욱 위험하고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게 한다.” (손정아 여성인권지원상담소 느티나무 소장)

 

돈을 갚지 못하는 여성들은 대부업체로부터 반복적인 추심을 당하거나 민사소송을 당한다. 몇 년 전에 이미 빚을 다 갚았는데도 여성이 차용증을 회수하지 않아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차용증이 채권추심회사로 넘어가서 추심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성매매 여성들이 포주와 사채업자, 채권추심업자들에 의해 경제 사범으로 피소되고 처벌받는 상황이지만, 공권력도 여성들의 편은 아니다.

 

“성매매 여성이 경제사범으로 조사를 받게 될 때는 성매매 ‘피해자’의 위치를 갖기 힘들어요. 경찰이 ‘돈 빌려 놓고 3일밖에 일 안 한 건 너무 한 거 아니냐.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지’ 라고 말해요. 성매매 여성이 채무자인 한, 강제로 성매매를 했든 자발적으로 했든 그냥 범죄자가 돼 버리는 거예요. 공권력이 채권자 편이기 때문이죠.” (유나 활동가)

 

가난한 여성을 노리는 ‘약탈적 금융’의 폐해

 

제윤경, 이헌욱이 쓴 <약탈적 금융사회>(부키, 2012)는 ‘약탈적 금융’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주식이나 부동산을 살 때는 투자 위험을 투자자가 부담해야 한다는 통념이 지배적이다. (…) (마찬가지로) 금융은 원리금을 상환할 능력이 있는 채무자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을 전제로 삼아야 한다. 만약 갚을 수 없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준다면, 그것은 다른 방식으로 이득을 취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채무자의 상환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다른 방식, 예컨대 고금리, 과도한 채권 추심, 높은 수수료, 담보권 실행 등으로 이득을 취하려는 행위는 약탈일 수밖에 없다.”

 

<이룸> 활동가들은 이번 캠페인을 통해 성매매 여성들을 먹잇감으로 삼는 바로 이 ‘약탈적 금융’에 대한 문제제기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지”라고 말하기 전에 “그 돈을 왜 빌려줬냐”고 문제 제기하자는 것.

 

갚을 능력이 없는 빈곤한 여성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그들이 ‘믿는 구석’은 바로 ‘여성은 몸을 팔아서라도 반드시 빚을 갚을 것이며, 그 몸을 사고파는 성산업은 한국 사회에서 언제나 호황’이라는 신념이다.

 

<이룸> 활동가들은 “이것이 일부 성매매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닌 ‘여성 빈곤’의 문제와 맞물려 있다”고 지적한다.

 

“성산업 안에 있는 성매매 여성들만 약탈적 금융의 먹잇감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대부업자들이 ‘여성 우대 대출’, ‘여성이면 무조건 대출 가능’이라고 광고하는 건 어떤 여성이라도 빚을 못 갚으면 성산업에 들어가서 돈을 벌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거예요. 여성대출은 결코 ‘여성 우대’가 아니라 ‘여성 빈곤의 상징’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유나 활동가)

 

※ 참고자료: 김주희, <한국 성매매 산업의 금융화와 여성 몸의 ‘담보화’ 과정에 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2014학년도 박사학위 청구논문   (나랑 기자) Feminist Journal IL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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