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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에선 찾아보기 힘든 ‘여성들의 저항’

[최하란의 No Woman No Cry] 불안한 나라의 앨리스


※ 여성을 위한 자기방어 훈련과 몸에 관한 칼럼 ‘No Woman No Cry’가 연재됩니다. 최하란 씨는 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이자, 호신술의 하나인 크라브마가 지도자입니다.   Feminist Journal ILDA

 

<일다>에 첫 번째 칼럼 “자기방어 훈련을 하는 세계 여성들과 만나다”가 올라가고 한 시간쯤 지나, 스쿨오브무브먼트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SBS입니다. 셀프 디펜스(자기방어) 관련해서 최하란 선생님과 말씀 나누고 싶은데, 계신가요?”

 

나는 그 시간, 크라브마가(Krav Maga; 자기방어 시스템, 호신술의 하나)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베이징에 있었다.

 

▶SBS스페셜 454회 <불안한 나라의 앨리스> 편.  ⓒSBS

 

한국에 돌아와 SBS스페셜 PD 그리고 작가 분과 다큐멘터리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크라브마가 수업을 촬영했고, 학생들을 인터뷰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는 10월 30일 <불안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제목으로 방영됐다. 

 

다큐멘터리는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불안감, 두려움, 공포심을 인터뷰했다. 그들이 겪은 폭력, 성추행, 성희롱, 스토킹의 사례를 통해 불안은 실제 경험에서 시작된 것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의 생활과 두려움에 대한 대응 방법들을 보여주며, 여성의 안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과 대안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우리는 정말 불안한 사회에서 살고 있을까?

 

살인 사건 피해자 중 여성 비율 51%, G20(Group of 20) 국가 중 1위

살인, 강도, 강간, 방화 범죄 중 여성 피해자 비율 84.7% 

살인, 강도, (성폭력을 포함한) 강간, 방화 범죄 중 (성폭력을 포함한) 강간 비율 72.6%

 

▶ 살인, 강도, 강간, 방화 범죄 중 여성 피해자 비율 (2014년, 대검찰청 범죄분석)  ⓒ출처: 한겨레

 

경찰청과 검찰청, UN마약범죄사무소 등에서 나온 이러한 통계들은 <불안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한 여성들의 경험이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2013년 성폭력 실태 조사를 한 결과, 여성의 78.5%가 ‘밤늦게 귀가하거나 택시를 탈 때 무슨 일이 생길까봐 두렵다’고 했다. 76.3%는 ‘집에 혼자 있을 때 낯선 사람의 방문이 무섭다’고 답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으며, 심각한 수준이다. 

▶ 살인, 강도, (성폭력을 포함한) 강간, 방화 범죄 중 (성폭력을 포함한) 강간 사건 추이 [2011년 경찰청 범죄백서]  ⓒ출처: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13년 성폭력 실태 조사

 

미디어에서는 ‘자기 방어’를 찾아보기 어렵다

 

<불안한 나라의 앨리스>를 본 여성들 중 몇몇은 내게 소감을 나눠주었다.

 

“너무 여성을 피해자화 하는 것 같았어요.”

“어? 어! 이렇게 끝나는 거야? 그래서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을 해주는 줄 알았는데…”

“여성들이 더 불안함만 느끼게 되는 것 아닐까 걱정스러웠어요.”

“셀프 디펜스 배워서 어떤 게 변했는지 이런 것 좀 다뤄주지…”

 

여성에 대한 폭력이 심각하게 널리 퍼져 있다고 해서, 여성들이 폭력을 마주할 때 수동적이라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연약하다’, ‘소극적이다’, ‘수동적이다’라는 성역할로 포장된 신화는 여성의 성공적인 저항을 감추고 있다. 그러나 현실의 여성들은 도망가고, 싸우고, 폭력을 멈추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자신을 방어하고 있다.

 

실제로 성폭력 피해 여성의 72.9%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자리를 옮기거나 뛰어서 도망갔고’, ‘소리를 질렀고’, ‘힘으로 저항하고 싸웠으며’, ‘신고한다고 협박했고’, ‘주위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미디어가 다루는 전형적인 여성의 모습에서 자기 방어는 찾아보기 어렵다. 폭력의 피해자들을 약하거나 소극적이거나 수동적이라고 특징짓는 것은 잘못이다. 모든 종류의 성폭행 시도 중 적어도 75%가 성공적으로 저지된다는 설도 있다. 폭력에 맞서고, 폭력을 피하고, 폭력을 최소화하고, 피신하는 행동들은 소극적이거나 수동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세계 여성 폭력 추방의 날을 앞두고

 

많은 여성들이 폭력에 육체적으로 저항하고, 그 저항이 자주 성공한다는 사실은 모든 여성이 반드시 폭력에 저항해야 한다거나, 자신을 피해자로 만든 책임이 있다는 걸 뜻하지 않는다. 피해자에게는 당연하게도, 아무 책임도 없다. 항상 책임은 오직 가해자에게 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폭력의 현실과 여성의 저항을 함께 봐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변화를 위해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의 ‘저항’ 그리고 집단의 ‘저항’은 그동안 수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껴지지만 성폭력상담소, 피해자 보호센터, 긴급 전화, 무료 법률상담 등이 마련되고 성폭력에 대한 법률이 만들어지고 개정되었다. 그리고 이제 데이트 폭력, 부부 사이 강간, 스토킹, 훔쳐보기 등도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오는 11월 25일은 세계 여성 폭력 추방의 날이다. 이 날이 제정된 계기는 도미니카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다 살해된 세 자매를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독재는 마치 낙태를 불법화하여 여성들을 처벌하는 것처럼, 국가가 국민에게 저지르는 큰 폭력이다. 폭력에 맞서는 여성의 저항은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우리는 더 나아갈 수 있다. (최하란)  Feminist Journal IL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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