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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을 해야만’ 위험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최하란의 No Woman No Cry] 셀프 디펜스 수업에서 배우는 것
※ 여성을 위한 자기방어 훈련과 몸에 관한 칼럼 ‘No Woman No Cry’가 연재됩니다. 최하란 씨는 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이자, 호신술의 하나인 크라브마가 지도자입니다. Feminist Journal ILDA
▶ 고양이와 개.
고양이가 잔디밭에 앉아 햇볕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 고양이와 놀고 싶은 개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그러나 고양이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개가 거의 코앞에 다가오고 나서야 고양이는 이 상황을 알아차렸다. 고양이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잠깐이지만, 고양이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그대로 있었다. 그러고는 재빨리 주변을 살핀 다음, 한 방향을 선택해 달아났다.
만약, 훨씬 더 일찍 고양이가 개를 발견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더 일찍 잘 피했을 것이다. 만약, 피할 수 없었다면? 고양이는 그 자리에서 큰 소리로 그르렁 거리며 털을 세워 자신을 크고 화나 보이게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개는 깜짝 놀랐을 것이고 그 사이 고양이는 도망갔을 것이다.
위험에 대한 반응: 투쟁, 도주, 얼어붙음
“투쟁 도주 반응”(Fight or Flight Response)은 하버드 의대 교수였던 월터 브래드포드 캐넌(Walter Bradford Cannon)이 1915년에 정의한 생리학 용어다. 인간을 포함해 동물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거나 위험에 빠질 때,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보이는 반응을 가리킨다.
‘투쟁 도주 반응’이 일어나면 자율 신경계 중 교감 신경계(sympathetic nervous system)가 활성화된다. 호흡이 가빠지고, 얕은 숨을 쉬게 되고, 심박수가 증가하고, 소화 기능이 떨어지고, 근육이 긴장되고, 청각이 차단되고, 주변 시야가 손실(tunnel vision)되고, 몸이 떨리게 된다.
개를 보고 놀란 고양이가 선택한 것은 ‘도주’였다. 그런데 도주하기 전에 고양이는 잠깐 동안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있었다. 이것은 무엇일까? 상황이 너무 급작스러운 나머지 수습할 능력을 잃고 두려움으로 마비된 것이다. 이러한 반응을 투쟁 도주에 덧붙여 “투쟁 Fight, 도주 Flight, 얼어붙음 Freeze 반응”이라고 부른다.
인간의 경우, 얼어붙는 반응은 주어진 상황에서 살아남거나 벗어날 수 없다는 공포에 휩싸일 때 생겨난다. 그래서 교통사고, 재난, 성폭력, 강도, 습격, 해고 통지 등을 당한 사람이 얼어붙은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 얼어붙는 반응이 길어지면 공황 상태에 빠지거나 호흡 곤란으로 기절할 수도 있다.
▶ 인간의 자율신경계 ⓒ 출처: fvlt.cz
※ 극심한 스트레스와 위험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반응은 3F로 요약될 수 있다. 셀프 디펜스 수업에서 우리는 학생들이 ‘얼어붙음’ 반응을 최대한 빨리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1. 투쟁 Fight: 육체적 충돌뿐 아니라 분명한 말, 단호한 표정과 몸짓, 행동도 투쟁이다.
2. 도주 Flight: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3. 얼어붙음 Freeze: 글자 그대로 얼어붙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셀프 디펜스 수업에서 ‘얼어붙음’ 반응을 극복하는 것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왜냐하면 얼어붙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위험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문제가 일어나는 상황, 위험 상황은 당연히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다. 한마디로 당혹스럽다. 그리고 급작스럽다. 우리를 해하려는 사람들은 모종의 계획이 있다. 아는 사이든 모르는 사이든 성폭력이든 다른 범죄든, 최소 3초 전이라도 그들은 우리보다 먼저 생각하고 행동에 옮긴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더 유리하고 우리에게 더 불리한 조건을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들의 ‘행동’에 적절히 ‘반응’해야 한다.
비행기 승무원들이 안전 훈련을 반복하듯
그래서 셀프 디펜스의 첫 번째 과제는 공격자의 모종의 계획을 뒤흔드는 것이다. 최대한 빨리 공격자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살인의 심리학> 저자이자 미 육군사관학교 심리학과 교수와 아칸소 주립대학 군사학과 교수를 지냈던 데이브 그로스만(Dave Grossman)은 이렇게 말한다.
“심박수가 분당 145를 넘으면 나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복잡한 운동기능이 나빠집니다. 한 손으로 일을 하는 게 아주 어려워집니다. 175가 되면 인식 작용이 전면 붕괴됩니다.”
이런 이유로 그로스만은 평상시에 911(미국은 범죄, 화재, 응급 신고가 911로 통합돼 있음)을 누르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상시에는 전화기를 들고도 정말 기본적인 번호조차 누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심박수가 치솟고 운동 조절 능력이 떨어지게 되면 사람들은 언뜻 기억나는 숫자, 즉 911 대신 411을 누르거나, 통화 버튼을 누르는 것을 잊어버린다. 때로는 어떤 숫자도 떠올리지 못한다.
“연습을 해야 합니다. 연습만 하면, 911이 우릴 도울 수 있습니다.”
비행기 승무원들은 안전을 위해 정기적으로 위험물 훈련, 보안 훈련, 비상 장비 훈련, 비상 착수 훈련, 응급처치 훈련 등을 반복한다. 승무원들의 순간적인 판단과 지도가 수백 명 승객들의 안전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얼어붙음’을 최대한 줄이고, 좋은 반응과 좋은 결정을 신속하게 내리고 실천하는 연습을 한다면, 우리 자신을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조금 더 안전하게 할 수 있다.
▶ 셀프 디펜스 수업 중인 학생들. ⓒ 스쿨오브무브먼트
Q: 크라브마가를 배우고 나서 자신의 행동에 변화를 느낀 적이 있나요?
A: 네. 행동이나 생각이 많이 변했어요.
그리고 훨씬 덜 불안하고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아요. 예전엔 배우지 못해서 몰랐던 것 같아요. 뭐랄까, 사회적 분위기가 여자들에게 “네가 조심해야지” 하고, 말괄량이나 여자가 큰 소리 내는 걸 안 좋게 보잖아요.
크라브마가(Krav Maga; 자기방어 시스템, 호신술의 하나)를 배우기 전에는 성추행이나 성희롱에 대해서 인식을 잘 못하다가, 문제가 한참 진행된 후에야 알게 되곤 했어요. 또 일상생활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면 아무 생각이 안 났어요. 충격을 받고 멍해지는 거죠. 예를 들어, 평소에 누가 상을 당했다는 전화를 받으면 심장이 쿵쿵 뛰면서 어찌할 바를 몰랐을 정도예요. 그런데, 이제 어떤 문제가 생기면 ‘내가 뭘 해야 하는 거지?’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느껴요.
작년에 친구와 함께 살던 집에 도둑이 들었어요. 현관문이 깨지고, 문이 다 따있고, 기르던 고양이도 없어지고… 놀란 친구가 저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마침 그 전화를 못 받았어요. 친구는 제가 잘못된 줄 알고 패닉에 빠져서 소리 지르고 난리였다고 하더군요. 옆 교회에서 사람들이 뛰쳐나올 정도로 소리를 질렀나 봐요. 30분 쯤 후에 부재중 전화를 보고 친구에게 전화를 했는데, 그 친구는 제대로 말도 못하고 있었어요.
그때 제가 친구에게 경찰에 신고하고, 위험하니 밖에서 기다리라고 말했어요. 예전의 저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어요. 그래도 불안해서 다시 통화를 해보니까 그 친구는 여전히 패닉 상태로 어떻게 신고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112에 전화해서 신고하고, 경찰 조사에 응하고, 친구의 약혼자에게도 연락하고, 문을 고치고, 방범도 강화하는 일들을 했습니다. 사건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정신을 찾은 친구가 제게 이렇게 말했어요.
“아무것도 못 하던 네가 운동을 배우러 다니더니 뭔가 배워왔나 보다.”
-2015년 9월, 학생과의 인터뷰 (최하란/ 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 Feminist Journal IL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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