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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디펜스를 배운 여성들이 더 안전할까?
[최하란의 No Woman No Cry] 자신감과 자존감
※ 여성을 위한 자기방어 훈련과 몸에 관한 칼럼 ‘No Woman No Cry’가 연재됩니다. 최하란 씨는 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이자, 호신술의 하나인 크라브마가 지도자입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2013년, 미국 오레곤 대학교 예술과학대학 잡지 CASCADE 봄 호에 “Are Women Safer When They Learn Self-Defense?”(셀프 디펜스를 배운 여성들이 더 안전할까?)라는 칼럼이 실렸다. 리사 롤리(Lisa Raleigh)가 쓴 이 칼럼의 제목을 읽자마자 ‘당연하지! 제목이 너무 진부한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셀프 디펜스를 배운 여성들이 더 안전하다”는 내 확신과는 달리, 주위에서 “저항하는 게 더 위험한 거 아닌가요?”라는 질문을 받거나 “공격자는 거의 남자라서 남성들이 변해야 하는데 왜 여성들이 셀프 디펜스를 배워야 하나?”라는 반응을 접하게 된다.
2013년 미국 오레곤 대학의 연구 결과
2013년, 오레곤 대학의 사회학자 조셀린 홀랜더는 한 학기 10주 30시간 셀프 디펜스(자기방어, 호신술) 수업을 수강한 여학생 117명과 그렇지 않은 169명의 여학생들을 조사했다. 첫 번째 그룹에서 75명과 두 번째 그룹에서 108명이 추적 조사나 인터뷰에 참가하는 것을 동의했다. 홀랜더의 연구는 미국 대학에서 전체 학기에 걸쳐 긴 ‘셀프 디펜스’ 코스를 들은 여성들을 관찰한 첫 번째 연구였다.
결과는 분명했다. 셀프 디펜스 수업을 받은 여성들이 수업을 받지 않은 여성들보다 원치 않는 성 접촉을 당한 경우가 훨씬 적었다. 모든 유형의 사건들에서 확실히 적었다.
▶ 미국 오레곤 대학에서 한 학기간 ‘셀프 디펜스’ 수업을 수강한 여학생 그룹(75명)과 그렇지 않은 그룹(108명)을 관찰한 연구 결과. (숫자는 비율) ⓒ출처: CASCADE 2013 봄 호
이 도표는 30시간 셀프 디펜스 수업을 들은 학생(파랑)과 그렇지 않은 학생(빨강) 두 그룹이 1년 동안 여러 유형의 원치 않는 성 접촉을 당한 비율을 보여준다. 수업을 받지 않은 여성들 중 3%가 ‘강간을 당했다’고 보고했다. 수업을 받은 여성들 중 ‘강간을 당했다’고 보고한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전체적으로 추적 조사 기간에 셀프 디펜스 그룹에서는 여성들 중 12%가 어떤 형태로든 성적인 침해를 당했는데, 반대 그룹에서는 30%나 되었다. 사실 후자의 경우는 거의 세 명 중 한 명꼴인 미국 여대생의 성적 피해 경험율과 거의 일치한다.
2015년 캐나다 대학생들이 겪은 성폭력 추적
2015년, 의학 분야의 최고 권위지로 꼽히는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는 캐나다에서 여성들이 성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을 감지하고 스스로 방어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수업에 관한 연구가 실렸다.
이 연구는 윈저 대학교, 캘거리 대학교, 궬프 대학교에서 실행한 12시간의 “저항” 프로그램에 참가한 여학생 그룹과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지 않은 여학생 그룹의 결과를 4년 동안 추적했다. 대부분 1학년 때 심리학 수업을 들은 17세~24세 여성 893명이 선발됐는데, 그들의 절반은 기숙사에서 살았다. 두 개의 비교 그룹은 무작위로 선정됐다. “저항” 프로그램에 참가한 그룹의 약 90%는 12시간 수업 중 적어도 9시간 이상 참가한 학생들이다.
▶ 상대가 강압적인 섹스를 시도한다면 나는 ___할 것이다. ⓒ 원 그래프 출처: The Globe and Mail 2015-06-10
위 설문 조사 결과는 참가자들에게 “데이트 중인 상대거나 아는 남자가 내게 강압적으로 섹스를 하려고 시도한다면, 나는 ____할 것이다.” 라는 문장을 완성하게 한 것이다. 왼쪽은 셀프 디펜스 수업을 받지 않은 그룹이고, 오른쪽은 셀프 디펜스 수업을 받은 그룹이다.
‘구두 경고를 하겠다’와 ‘육체적 반격을 하겠다’는 답변 모두 셀프 디펜스 수업을 들은 그룹에서 더 높게 나왔다. 그리고 ‘육체적 반격을 하겠다’는 답변에 대한 두 그룹의 격차는 ‘구두 경고를 하겠다’는 답변의 격차보다 두세 배 정도 높았다.
다음은 설문 조사 참가자들이 겪은 성폭력을 추적한 결과다.
▶ 조사 참가자들이 겪은 성폭력 추적 결과. (1년 후) ⓒ 원 그래프 출처: The Globe and Mail 2015-06-10
셀프 디펜스 수업을 받은 학생의 경우, 수업을 받고 1년 후까지 합의하지 않은 성폭력에 대한 보고를 집계한 것이다. 모든 항목에서 셀프 디펜스 수업을 들은 그룹이 겪은 성폭력 비율이 일관되게 낮다. 여성들이 위험한 상황을 피하는 방법을 배우고, 상황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강압적인 행동을 중단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폭력에 맞선 여성들의 저항은 예상보다 흔하다. 심지어 (셀프 디펜스 훈련을 받지 않은 여성들을 포함해서) 그들은 자주 ‘성공한다’. 수많은 연구가 이 점을 증명해왔다. 이런 연구들에 비하면 셀프 디펜스 훈련이 여성들의 위험을 줄여주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 적지만, 최근에 급속히 늘고 있는 추세다. 이 연구 결과들은 셀프 디펜스를 배운 여성이 훨씬 더 안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복잡한 사회적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동시에, 폭력에 저항하는 개인의 행동도 필요하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회적 변화에 비해, 셀프 디펜스 능력을 기르는 것은 훨씬 더 짧은 시간에 가능하다.
셀프 디펜스는 나를 안전하게 하는 모든 것이다
다음 세 가지 이야기는 리사 롤리의 “셀프 디펜스를 배운 여성들이 더 안전할까?” 칼럼에 소개된, 셀프 디펜스 수업을 받은 오레곤 대학교 여학생들의 경험담이다.
“전날 밤 술집에 들어가는데 어떤 남자가 카우걸 모자 뒤쪽을 움켜잡는 거예요. 내가 돌아섰는데도 계속 움켜쥐고 있었어요. 그래서 나는 그 남자의 눈을 똑바로 보고 ‘우린 모르는 사이잖아요. 나 건드리지 마세요’ 라고 말했어요. 이것은 저한테 엄청난 거였어요. 저는 이전엔 남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얘기한 적이 없었고, 뭔가를 말할 때도 대부분 사람들이 잘 못 알아들을 정도로 너무 작게 말하거든요.”
“버스 정류장에서 어떤 남자가 제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그러고는 자신이 하는 행동에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려고 수작을 부리더군요. 그는 나와 농담을 주고받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내 손목 근처를 잡았습니다. 저는 배운 대로 손목 풀기 테크닉을 하면서, 귀찮게 하지 말라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작은 저항이었는데 그에겐 상당히 큰 저항으로 느껴졌나 봐요.”
▶ 셀프 디펜스는 육체적 반격뿐 아니라 분명한 말과 몸짓, 표정으로 큰 힘을 발휘한다. ⓒ최하란
“축구 경기를 하고 있었는데 술 취한 남자가 사방을 쿵쿵거리면서 다니더니 저를 팔로 끌어안는 거예요. 평소 같았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 뭐야, 취했으니까 그냥 내버려 두자’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실제로 저는 ‘손 치워요!’ 라고 크게 말했습니다. 전에는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이었어요. 그러자 그는 ‘아, 미안해요. 제가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 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한 일이 먹힌 거예요. 그건 정말 작은 것이었지만 매우 큰 힘을 발휘했죠.”
셀프 디펜스는 나를 안전하게 하는 모든 것―관찰, 판단, 말, 표정, 몸짓, 행동이다. 강력한 육체적 반격뿐 아니라 분명한 말과 행동은 큰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우리는 셀프 디펜스를 배움으로써 폭력을 예방하거나 해결하는 것 이상의 혜택을 얻기도 한다. 위험을 올바로 인지할 수 있다면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은 줄어든다. 친구, 동료, 지인 혹은 낯선 사람들과 낯선 환경에서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자신감이 생기고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안정된 자존감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최하란 여성주의 저널 일다
※ 미국 오레곤 대학 사례가 실린 칼럼: “Are Women Safer When They Learn Self-Defense?” Lisa Raleigh, CASCADE Spring, 2013 http://bit.ly/2dlZjiC
※ 캐나다 연구 도표 출처: “Teaching women self-defence still the best way to reduce sexual assaults: study”, Erin Anderssen, The Globe and Mail, Jun. 10, 2015 http://bit.ly/1B9mfZ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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