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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셀프 디펜스, 수업노트

[최하란의 No Woman No Cry] 세계여성폭력 추방기간 특별수업


※ 여성을 위한 자기방어 훈련과 몸에 관한 칼럼 ‘No Woman No Cry’가 연재됩니다. 최하란 씨는 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이자, 호신술의 하나인 크라브마가 지도자입니다.   Feminist Journal ILDA 

 

십대~오십대 여성들과 함께한 자기방어훈련

 

2013년 7월 23일에 나는 한국에서 셀프 디펜스(self-defence) 수업을 열었다.

 

특별행사 같은 형태가 아니라 거의 매일 열리는, 학교수업 같은 수업이다. 지금까지 3년 반 동안 이런 수업을 지도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감사하다. 함께 해온 학생들의 티셔츠에 인쇄된 로고는 이제 희미해져서 알아보기 힘들 정도가 됐다. 이 수업들은 내게 소중한 경험을 선사해주었다. 학생들은 내 고민을 재촉하고 안일함을 깨부수는 엄격한 스승이었다.

 

이듬해 봄부터 나는 ‘여성’ 셀프 디펜스를 전할 더 많은 기회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운 좋게도 작년 가을, 딴지일보 벙커1에서 특강과 8주 코스를 열었다. 올해는 점점 더 많은 기회를 찾았고, 다가올 2017년에는 더 다양한 곳에서 여러분을 만나게 될 것 같다.

 

▶ 2016년 세계여성폭력 추방기간 특별수업  ⓒ스쿨오브무브먼트

 

이전 칼럼에서 소개했듯이 매년 11월 25일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부터 12월 10일 ‘세계 인권선언의 날’까지가 세계 여성폭력 추방기간이다.

 

올해 11월 26일에는 서울 합정동에서 ‘No Woman No Cry’ 여성을 위한 셀프 디펜스 수업을 열었다. 이어 12월 3일에는 서울 청담동에서 ‘Girls, Be Brave!’ 여성 셀프 디펜스 수업을 열었다. 이 수업은 한 의류업체 후원으로 열린 무료 수업이다. 외국에서는 이렇게 기업의 후원으로 여성들이 무료로 셀프 디펜스 수업을 듣거나, 기업이 자사 여성직원들을 위해 수업을 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 여성(과 아동, 청소년) 셀프 디펜스 수업이 초중고, 대학교에서 열리거나, 의료기관 또는 상담기관과 연계돼 정부 지원을 받기도 한다.

 

12월 6일에는 여성 셀프 디펜스를 위한 책 <미녀, 야수에 맞서다>(엘렌 스노틀랜드 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역, 사회평론) 출판 기념 북콘서트가 열렸다. 이어 12월 10일에는 ‘저항은 가능하다’ 수업을 열었다. 참가비 전액이 한국성폭력상담소에 후원됐고 나와 강사들과 사진사 모두 재능을 기부했다. 영하의 날씨였지만, 이 날 참석한 33명의 여성들은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뛰고 달리고 때리고 차고 웃고 박수치고 외쳤다.

 

이 글은 올해 세계 여성폭력 추방기간 동안 십대 여성부터 오십대 여성까지 참가했던 셀프 디펜스 특별 수업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달리기

 

워밍업을 위한 달리기는 잠깐이고, 러닝머신 위에서 할 수 없는 좋은 달리기들을 한다. 장애물이 등장하기도 하고, 혼잡한 곳에서 신속하지만 안전하게 달리거나 호각 소리에 따라 방향을 바꿔 달리거나 쫓고 쫓기는 달리기를 한다.

 

사실 우리 대부분은 일생 동안 달리는 양의 삼분의 일을 그 시기에 달린다고 할 만큼, 달리기를 진정으로 사랑한 어린아이였다. 다만 그렇게 달리기를 사랑하는 인간인 채 성인으로 성장할 기회가 거의 없었을 뿐이다.

 

▶ 달리기  ⓒ스쿨오브무브먼트

 

셀프 디펜스에는 네 가지 요소가 있다. 육체적(physical), 정신적(mental), 기술적(technical), 전술적(tactical) 요소다. 달리기는 육체적 요소의 첫째다. 위험을 감지하면, 그것과 거리를 벌려야 한다. 즉 멀어져야 한다. 위험에 처했다면, 가능한 신속히 거기서 빠져나와야 한다. 이 두 가지 상황 모두에서 달리기가 준비된 것과, 강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십년 만에 재빨리 달려야하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다.

 

안전하고 신속하게 이동하려면 집중해야 한다. 무엇이 더 안전할 것인지 판단도 해야 한다. 그때 주변을 확인하는 스캐닝(scanning)이라는 기술적 요소를 경험한다. 짝을 지어 쫓고 쫓기는 달리기에서 선생이 “체인지!”라고 외치는 소리에 따라 쫓고 쫓기는 역할을 바꾸며 달린다. 호흡이 가빠지고 심박이 올라가며 교감신경이 극대화되며 긴장되고 정신적, 육체적 활동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현실에서는 누군가 “체인지!”라고 외쳐주지 않겠지만 스스로 ‘더 이상 앞서가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다’, ‘이제 곧 따라 잡힐 것 같다’, ‘차라리 뒤돌아서 위험을 마주 대하는 편이 낫겠다’는 전술적 결정을 내린다면, 게임에서 했던 것처럼 신속하게 뒤로 돌며 ‘방어(+반격) 모드’로 변경해야 할 것이다.

 

스탠스(stance)

 

셀프 디펜스의 네 가지 요소 중에서 스탠스(stance)는 처음에는 육체적이고 기술적인 요소다. 그러나 능숙해지면 전술적 요소가 될 수 있다. 즉, 주어진 상황에서 전술상 유리한 스탠스를 선택할 수 있다. 발전하면 점차 정신적 요소가 된다. 자동적으로 나오거나, 또는 전술적으로 선택해 취하는 스탠스가 이제 정신적으로 여러분을 경계 모드 또는 방어/반격 모드로 이끄는 것이다. 스위치가 바로 켜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패시브 스탠스(passive stance)

 

손을 내리고 발을 어깨 너비 정도로 벌린 평범하게 서 있는 모습이다. 서 있다면, 실제로 대부분의 상황은 여기서 시작된다. 이때는 행동의 주체가 공격자라는 의미에서 수동적인 자세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모든 걸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무릎은 느슨하고 체중은 살짝 발 앞에 실리고 손은 올리지 않고 있다.

 

-세미 패시브 스탠스(semi passive stance)

 

양손을 벌려서 얼굴보다 앞에 어깨 높이 정도로 든다. 방어자가 미리 손을 들고 있으니 덜 수동적인 자세다. 손이 이미 올라와 있기 때문에 유리하다. 파트너가 당신의 어깨를 잡으려고 하고 당신은 패시브 스탠스(passive stance)와 세미 패시스 스탠스(semi passive stance)에서 그것을 막는 비교 실험을 해보자. 손이 올라가 있을 때 방어가 훨씬 더 신속하고 유리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세미 패시브 스탠스에서는 적절한 말과 함께 대화 제스처와 중재 제스처를 사용할 수 있다.

 

대화 제스처: 가장 낮은 단계의 위험 징후에서 사용한다. 어떤 형태든 손을 들고 있는,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대화 자세다. 말하면서 손을 많이 쓰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고, 공손하게 손이나 팔을 모은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경계하고 있다거나 방어를 하겠다는 의도는 드러내지 않는다. 의도를 드러내지 않는 경계다.

 

중재 제스처: 이것은 의도를 표출할 수 있다. 그러나 역시 도망, 방어, 경계의 의도가 아니다. 상대의 흥분을 가라앉히거나 물리적 충돌을 원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중재와 진정의 의도를 전달하는 신체 언어다. “하지 마세요”, “진정하세요”, “가세요”라는 말과 함께 사용할 수 있다. 중재 제스처는 상대 뿐 아니라 스스로를 진정시키는 효과도 크다. 또한 이 상황을 볼 수 있는 다른 사람들(CCTV 포함)이 있다면, 그들에게 당신은 곤경에 처한 방어자로 인식될 것이다.

 

▶ 제너럴 레디 스탠스(general ready stance)  ⓒ스쿨오브무브먼트

 

-제너럴 레디 스탠스(general ready stance)

 

위험 단계가 높아졌고, 당신이 방어(와 반격)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하게 보여야 하는 상황이다. 양손을 든 상태에서 오른손잡이는 왼발을, 왼손잡이는 오른발을 앞에 둔다. 뒷발을 앞발보다 뒤에 놓는다. 앞발과 앞다리를 살짝 안으로 돌려놓고 뒷발의 발뒤꿈치를 살짝 들어서 바로 재빨리 움직일 수 있게 한다. 딱 봐도 반격의 스탠스라서, 흔히 파이팅 스탠스라고도 부른다.

 

“하지 마!”, “저리 가!”, “안 돼!”, “도와주세요!” 등의 외침을 적절하게 사용한다. 양손을 펴서 중재 제스처까지 더하는 것을 권한다. 이 단계에서 만약 이미 공격을 당했다고 해서 ‘끝났다’며 자기 방어를 포기할 이유는 없다. 냉철하게 말하자면 그 공격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

 

360디펜스

 

갑자기 몸을 향해 뭔가 오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손을 사용해 바깥쪽으로 쳐내는 반응을 보인다. (심지어 총격을 당하는 사람들도 그럴 정도다.) 이 본능적인 반응을 다듬어서 공격의 위험 부위를 내 몸에서 강하게 멀리 보내는 테크닉이 360디펜스다.

 

360디펜스는 크라브 마가(Krav Maga)의 기본 방어 테크닉으로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접근과 접촉, 공격을 막는 데 사용한다. 머리를 만지거나, 뺨을 만지거나, 뺨을 때리거나, 머리채를 잡거나, 옷을 잡거나, 허리를 잡거나, 어깨를 잡거나, 팔을 잡거나, 손목을 잡아채거나, 손을 잡는 공격 뿐 아니라 칼을 사용한 공격을 방어할 때도 사용한다.

 

▶ 360디펜스와 반격   ⓒ스쿨오브무브먼트

 

간결하고 단호한 360디펜스만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때로는 반격이 없으면 계속 공격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방어와 함께 반격이 꼭 필요하다. 상황의 위험도에 따라 위험도가 낮을 때는 손바닥으로 가슴팍을 밀치거나 어깨를 칠 수 있고, 매우 위험한 상황에서는 턱과 얼굴을 향해 팜 스트라이킹을 강하게 날리거나 낭심(음낭)을 차야할 것이다.

 

즐거움이라는 몸의 긍정적 에너지를 충전하고!

 

자기 방어, 셀프 디펜스, 호신술, 크라브 마가… 그 어떤 단어로 이 수업을 표현해도 이 단어들이 주는 첫 느낌은 어려움, 심각함, 두려움 등이다. 호감을 주는 단어들은 아니다. 그런데 왜 정작 수업은 해맑은 웃음소리와 박수와 환호성이 가득할까?

 

도전적이거나 박진감 있는 달리기, 테크닉과 연관된 게임, 도전과 역동성의 쾌감, 동료애와 응원은 어려움, 심각함, 두려움에 대한 정신적, 육체적 준비를 시킨다. 우리는 이런 경험을 통해 셀프 디펜스 수업을 즐거움이라는 긍정적 에너지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 긍정적 에너지는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과 ‘저항은 가능하다’는 용기의 근원이 될 것이다. (최하란)  Feminist Journal IL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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