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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스트레스에 대한 면역력 키우기
[최하란의 No Woman No Cry] 통제된 공격성
※ 여성을 위한 자기방어 훈련과 몸에 관한 칼럼 ‘No Woman No Cry’가 연재됩니다. 최하란 씨는 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이자, 호신술의 하나인 크라브마가 지도자입니다. -편집자 주
위해를 가하려 하는 자에게 드러내는 ‘공격성’
▶ 경계 모드로 준비하기. ⓒ스쿨오브무브먼트
공격성은 셀프 디펜스(자기방어) 훈련과 실전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공격성은 신경생물학, 정신분석학, 비교행동학, 진화론, 유전학 등 여러 관점에서 분석되고 있다. 여기서는 오직 셀프 디펜스의 범주에서만 살펴볼 것이다.
셀프 디펜스에서 공격성은 침입자를 향해 맹렬하게 짖거나 으르렁대는 개, 온몸의 털을 바짝 세우고 발톱과 이빨을 드러내는 고양이가 잘 보여주는 것처럼 통제된 공격성을 뜻한다. 즉, 나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하는 공격자에게 드러내는 사나움과 투지다.
셀프 디펜스 상황이 육체적 충돌까지 확대되지 않는 수준이라면 평소 심박수를 유지할 정도로 차분한 것이 가장 좋다. 그럴 때 가장 잘 식별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 공격성은 생리적 수준이 아니라,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수준의 경계 모드로 준비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강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인체의 대응
셀프 디펜스 상황이 육체적인 과정을 넘나들 때는 적절하게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심박수가 상승되는 생리적 수준의 변화가 도움이 된다. 이러한 공격성은 복합 운동 기능을 향상시킨다. (대신 손으로 스마트폰을 조작해 112나 119로 신고할 때 필요한 소근육 운동 조절 능력은 평상시보다 떨어지게 된다.)
그런데 감정의 격렬함으로 호르몬 분비와 심박수 상승이 적절한 수준을 넘어 치솟는다면, 운동 제어 능력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다. 추운 날씨에 손가락이 하얗게 변하고 움직이기 어려웠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추위 때문에 혈관이 수축되어 혈액을 받아들이지 못한 근육이 작동을 멈춘 것이다. 추위가 아니라 스트레스 때문에도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혈관 수축(얼굴이 하얘짐), 혈관수축의 반발로 혈관 확장(붉으락푸르락).
화가 났든 불안에 떨든 겁에 질렸든, 강렬한 감정을 인체는 강한 스트레스로 받아들인다. 강한 스트레스에 대한 인체의 대응은 야생에서 맹수를 마주했던 먼 옛날과 다르지 않다. 눈앞의 위험이 계약해지를 통보하는 문자 메시지이든, 자연의 생존 위협이든, 인체의 대응은 같다. 출혈을 제한하려는 생존 기제의 일종으로, 혈관이 수축돼 혈압이 급상승하고 인체의 표피층은 거의 갑옷처럼 딱딱해져 그만큼 움직임이 둔해진다. 정신적으로는 인지 처리 능력이 급격히 저하된다. 시각과 청각은 물론이고 시공간에 대한 지각마저 왜곡될 수 있다.
대부분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감정들은 단일하지 않다. 화, 불안감, 공포는 흔히 서로 결합되고 서로 강화된다. 위협을 느끼거나 위험을 느낄 때 무수한 감정들은 의식으로 들어와 흔히 알아차릴 새도 없이 우리를 압도해버리기 쉽다. 왜냐하면 평소와 다른 비상사태에 걸맞게 기능하기 위해 혈류로 (아드레날린 같은) 여러 물질을 방출하는 역할은 자율신경계가 맡고 있기 때문이다. 자율신경계는 이름 그대로 의식적으로 제어되지 않는 대상이다. 따라서 이 과정은 거의 자동적이다.
감정을 제어하는 통제된 공격성이 필요하다
결국, 화가 난 사람은 겁먹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태에 놓인다. 그러니 정신적으로 불리하고 신체적으로도 불리하다. 우선 목소리나 말이 명료하지 못하다. 감정이 격렬할수록 문장 구성 능력도 떨어지게 된다. 심지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움직인다면 손이나 몸놀림이 굼뜰 것이고, 가만히 서 있다면 손이나 몸이 덜덜 떨리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러니 상황을 제대로 식별하고 처리하기 위해서는 흥분을 가라앉히는 편이 훨씬 낫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이러한 인체의 기제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감정에 휩싸이는 것을 제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런 점을 이해하고 동의한다면 상당한 이점을 얻게 된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참지 말고) “화를 내라”는 조언은 셀프 디펜스 상황에 대한 대응 요령으로써 “무시하라”만큼 허술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공격성을 사건의 처리 과정 중 일부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설령 감정에 휩싸였고 그래서 아쉬운 대응을 했더라도, 사건 후에는 정신을 차리고 좋은 방향으로 정리할 수 있다.
문제 상황에서 우리는 대부분 기분이 나쁠 것이고 화가 나고 두렵거나 슬플 수도 있다. 우리는 결코 완벽히 냉철할 수 없다. 그 누구도 완전히 비감정적일 수 없다. 그러나 감정에 휩싸이는 것을 줄이기 위해 노력할수록 훨씬 더 잘 대응할 수 있다. 통제된 공격성은 이런 바탕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 육체적 충돌, 반격. ⓒ스쿨오브무브먼트
앵커링(anchoring) 활용하기
어떻게 강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공격성을 발휘하고 조절해서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을까? 심리학 용어인 “앵커링”(anchoring)은 이 개념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 것이다. “앵커”(anchor)는 배를 정박할 때 내리는 닻을 뜻하며, 앵커링은 어떤 특정 심리 상태로 연결시켜주는 행위를 말한다. 앵커링의 방식으로 주머니칼처럼 필요할 때 공격성을 꺼내 쓰고 다 쓰면 접어 넣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왼손을 앵커링으로 사용한다. 나는 오른손잡이라서 주로 왼발이 조금 더 앞에 놓이고 왼손을 방어 목적으로 사용한다. 왼손이 준비됐다는 것은 내가 방어와 반격의 스위치를 켰다는 것이다. 왼손이 어느 높이에 있든지 준비상태에 들어가면 공격성이 켜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반대로 왼손에 힘을 풀면서 공격성을 낮춘다.
공격성의 스위치를 끄는, 긴장을 풀고 차분해지기 위한 앵커링도 있다. 편하고 부드럽게 숨을 쉬면서 얼굴의 긴장을 푸는 것이다. 이것은 주머니칼을 다시 잘 접어 넣는 과정이다.
위에 소개한 앵커링은 셀프 디펜스 훈련과 실전에서 자주 쓰이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다. 모두가 같은 앵커링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자신에게 더 맞는 것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원칙은 공격성을 꺼내 쓰되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자신을 지켜내고 점차 평온하게 다시 공격성을 잠재우는 것이다.
스트레스 면역 체계 만들기
우리가 자기 방어를 해야 하는 순간에 느끼게 되는 여러 감정들은 모두 스트레스에 해당된다. 그리고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되면 뇌 일부의 기능이 마비되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다행히 우리는 스트레스 예방 접종을 통해 면역력을 기를 수 있다.
나는 <여성들의 셀프 디펜스, 수업 노트> 칼럼에서 달리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러닝머신 위에서 할 수 없는 좋은 달리기들을 한다. 장애물이 등장하기도 하고, 혼잡한 곳에서 신속하지만 안전하게 달리거나 호각 소리에 따라 방향을 바꿔 달리거나 쫓고 쫓기는 달리기를 한다…. 호흡이 가빠지고 심박이 올라가며 교감신경이 극대화되며 긴장되고 정신적, 육체적 활동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운동으로 인한 심박 상승은 생존 스트레스로 인한 심박 상승과 다른 생리적 현상이다. 그런데 격렬한 육체 활동(혈관팽창)과 스트레스의 폭증(혈관수축)이 동시에 일어난다면 이 두 가지 과정이 상충되면서 심박수가 급격히 치솟게 된다. 그러니 셀프 디펜스 모의 훈련에 심박수를 높이는 운동을 결합시키면 매우 효과적인 스트레스 예방 접종이 된다.
스트레스 예방 접종을 통해 소방관들은 불에 대한 면역력을 갖게 되고, 수영을 하는 사람들은 물에 대한 면역력을 갖게 되고, 암벽을 등반하는 사람들은 높은 곳에 대한 면역력이 생긴다. 우리는 셀프 디펜스 훈련을 통해 위험하고 두렵고 당혹스러운 상황에 대한 면역력을 높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생긴 스트레스 면역 체계는 특정 스트레스 뿐 아니라 새로운 스트레스에도 상대적으로 더 잘 적응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면 여러 종류의 감정 폭발로 스트레스가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치솟는 것을 줄일 수 있다. 거듭 말하지만, 침착할수록 좋은 결정을 내릴 기회가 많아진다.
Q 셀프 디펜스 테크닉을 써본 적이 있나요? 있다면 효과가 있었나요?
A “친구와 함께 저녁 9시 반쯤 사람들로 꽉 찬 2호선 전철을 타고 갈 때였어요. 그때 친구는 미니 스커트를 입고 있었는데, 카카오톡으로 뒤에 있는 아저씨가 내 몸에 자꾸 자기 몸을 댄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한테 가까이, 앞으로 오라고 톡을 보냈어요. 친구가 움직이자 그 아저씨도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몸을 숙여서 엉덩이로 툭 치라고 다시 톡을 보냈어요.
그건 수업 시간에 배웠던 베어 허그 공격을 푸는 방법의 첫 번째 동작인데, 친구가 그렇게 하고 나니 아저씨가 움찔 놀라며 멀어지더군요. 워낙 사람이 많은 전철 안이라 아저씨의 행동을 오해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제가 친구에게 가르쳐 준 셀프 디펜스 방법은 적절했던 거죠. 지나친 공격으로 해를 끼친 것도 아니었고, 원하는 결과를 얻기도 했으니까요.” ―학생 인터뷰 중 (일다) feminist journal IL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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