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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다큐, 래프팅, 갯벌체험의 이면
환경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환경관련 방송들을 텔레비전에서 자주 보게 된다.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눈앞에 펼쳐지는 놀랍고 생동감 있는 장면을 보며 자연의 신비와 함께 이전에 잘 알지 못했던 사실들 알게 된다. 환경 파괴를 고발하고 사라져가는 동식물의 모습을 담은 자연 다큐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환경 위기의 심각성과 보존되어야 할 자연의 소중함을 알려준다.
환경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환경관련 방송들을 텔레비전에서 자주 보게 된다.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눈앞에 펼쳐지는 놀랍고 생동감 있는 장면을 보며 자연의 신비와 함께 이전에 잘 알지 못했던 사실들 알게 된다. 환경 파괴를 고발하고 사라져가는 동식물의 모습을 담은 자연 다큐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환경 위기의 심각성과 보존되어야 할 자연의 소중함을 알려준다.
그러나 산새들이 알을 품고 새끼들을 키워가는 놀라운 장면들을 텔레비전에서 볼 때면 신비로운 모습에 감탄을 하는 이면에, 이런 장면을 찍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새 둥지들이 파괴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곤 한다.
요즘 세상에 가득한 ‘한 건’주의가 생태 현장에도 만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조금 더 생동감 있는 장면을 찍기 위한 욕심이 카메라를 좀더 야생동물에게 가까이 들이밀게 되고, 낯선 카메라에 놀란 야생동물들이 새끼와 둥지를 포기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어쩌다 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성급한 성과를 얻으려는 욕심이 빚어내는, 오늘 우리 주위에 비일비재한 현실이다.
이 곳 산 속에 오래 동안 살다 보니 어디에 비오리와 원앙과 황조롱이가 둥지를 틀고, 수달이 매일 휴식을 취하는 곳이 어디고, 또 어디에 가면 햇빛에 몸을 말리는 구렁이들을 만날 수 있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소문을 들었는지 몇년 전 자연 다큐를 찍겠다고 한 방송국에서 찾아와 가이드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조심스럽게 찍겠다는 다짐을 받고 비오리와 황조롱이의 둥지를 알려주었다.
그러나 알을 품는 비오리를 찍으려고 둥지에 설치한 낯선 카메라를 발견한 조심성 많은 비오리는 둥지로 돌아오지 않았고, 알들은 싸늘하게 식어 세상을 보지 못했다. 황조롱이 역시 욕심을 부리는 촬영팀에 의해 둥지를 포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둥지를 알려준 내 잘못이었다.
자연과 환경에 대한 이기적인 관심
요즘 사람들의 생태에 대한 관심이 오히려 생태를 망칠 때가 있다. 이는 무리한 촬영을 하는 방송들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마지막 남은 천혜의 생태박물관인 동강을 살리자는 전 국민적인 관심 속에 결국 동강이 지켜졌다.
그러나 지금 동강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 동강 댐을 반대한 이들이 너도나도 동강으로 달려가 래프팅을 하는 동안 동강은 물고기가 사라진 죽은 강이 되었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유흥지로 전락했다.
사실 동강의 래프팅은 동강에 목숨 걸던 환경단체들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넘쳐나는 래프팅으로 동강이 죽어가고 있는데, 지금 동강의 위기와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미 동강은 환경단체들 사이에서 한 물 간 사안에 불과하기 때문인 것일까. 또 환경단체에 동조해 동강 댐 건설의 부당함을 연일 보도하던 언론들도 때만 되면 동강의 래프팅을 권장하는 기사로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세상은 참 아이러니하다. 이젠 그 어디서도 예전의 맑고 예쁜 동강을 찾아 볼 수 없다. 이미 동강은 생명을 잃어버린 강이 된지 오래다. 더 이상 지켜야 할 것도, 보존해야 할 것도 남지 않은 놀이터로 변한 ‘똥강’일 뿐이다. 동강의 이런 모습을 마치 미리 바라보기라도 한 듯 알도 레오폴드(Aldo Leopold)는 <모래땅의 사계>라는 책에서 환경보호의 모순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정말로 역사는 역설로 끝이 나게 된다. 모든 야생 자연의 보존은 자기 파괴적으로 이어진다. 무언가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우기 위해 우리는 먼저 그것을 보고 즐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충분히 보고 즐기고 나면, 소중히 여길 야생의 자연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게 마련이다.”
망가지고 있는 것은 동강만이 아니다. 생태관광으로 인해 생태가 망가지는 모순을 무어라 설명해야 할지…. 우리는 꼭 내가 눈으로 보고 확인해야만 지킬 수 있는 마음이 생기는 것일까? 우리 모두가 눈으로 확인한 다음에는 더 이상 지켜야 할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는 레오폴드의 말을 의미 깊게 들어야 할 때인 것 같다.
이제 우리는 자연을 새롭게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참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우리 눈에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함께 담겨야 한다. 눈과 함께 마음이 보고, 마음이 만지고, 마음으로 쓰다듬을 때 진정으로 보게 된다. 분석하고 조사하는 눈이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에 담긴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을 가져야 한다.
생명의 아름다움을 보는 눈에는 놀람과 감탄, 경이로움이 가득하게 된다. 생명 사랑이 빠져버린 무늬만 생태가 아니라, 작은 생명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배우는 진짜 생태가 우리 앞에 펼쳐지기를 소망해본다.일다▣ 최병성(서강지킴이, 사진작가)
요즘 세상에 가득한 ‘한 건’주의가 생태 현장에도 만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조금 더 생동감 있는 장면을 찍기 위한 욕심이 카메라를 좀더 야생동물에게 가까이 들이밀게 되고, 낯선 카메라에 놀란 야생동물들이 새끼와 둥지를 포기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어쩌다 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성급한 성과를 얻으려는 욕심이 빚어내는, 오늘 우리 주위에 비일비재한 현실이다.
이 곳 산 속에 오래 동안 살다 보니 어디에 비오리와 원앙과 황조롱이가 둥지를 틀고, 수달이 매일 휴식을 취하는 곳이 어디고, 또 어디에 가면 햇빛에 몸을 말리는 구렁이들을 만날 수 있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소문을 들었는지 몇년 전 자연 다큐를 찍겠다고 한 방송국에서 찾아와 가이드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조심스럽게 찍겠다는 다짐을 받고 비오리와 황조롱이의 둥지를 알려주었다.
그러나 알을 품는 비오리를 찍으려고 둥지에 설치한 낯선 카메라를 발견한 조심성 많은 비오리는 둥지로 돌아오지 않았고, 알들은 싸늘하게 식어 세상을 보지 못했다. 황조롱이 역시 욕심을 부리는 촬영팀에 의해 둥지를 포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둥지를 알려준 내 잘못이었다.
자연과 환경에 대한 이기적인 관심
요즘 사람들의 생태에 대한 관심이 오히려 생태를 망칠 때가 있다. 이는 무리한 촬영을 하는 방송들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마지막 남은 천혜의 생태박물관인 동강을 살리자는 전 국민적인 관심 속에 결국 동강이 지켜졌다.
그러나 지금 동강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 동강 댐을 반대한 이들이 너도나도 동강으로 달려가 래프팅을 하는 동안 동강은 물고기가 사라진 죽은 강이 되었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유흥지로 전락했다.
사실 동강의 래프팅은 동강에 목숨 걸던 환경단체들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넘쳐나는 래프팅으로 동강이 죽어가고 있는데, 지금 동강의 위기와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미 동강은 환경단체들 사이에서 한 물 간 사안에 불과하기 때문인 것일까. 또 환경단체에 동조해 동강 댐 건설의 부당함을 연일 보도하던 언론들도 때만 되면 동강의 래프팅을 권장하는 기사로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세상은 참 아이러니하다. 이젠 그 어디서도 예전의 맑고 예쁜 동강을 찾아 볼 수 없다. 이미 동강은 생명을 잃어버린 강이 된지 오래다. 더 이상 지켜야 할 것도, 보존해야 할 것도 남지 않은 놀이터로 변한 ‘똥강’일 뿐이다. 동강의 이런 모습을 마치 미리 바라보기라도 한 듯 알도 레오폴드(Aldo Leopold)는 <모래땅의 사계>라는 책에서 환경보호의 모순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정말로 역사는 역설로 끝이 나게 된다. 모든 야생 자연의 보존은 자기 파괴적으로 이어진다. 무언가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우기 위해 우리는 먼저 그것을 보고 즐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충분히 보고 즐기고 나면, 소중히 여길 야생의 자연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게 마련이다.”
망가지고 있는 것은 동강만이 아니다. 생태관광으로 인해 생태가 망가지는 모순을 무어라 설명해야 할지…. 우리는 꼭 내가 눈으로 보고 확인해야만 지킬 수 있는 마음이 생기는 것일까? 우리 모두가 눈으로 확인한 다음에는 더 이상 지켜야 할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는 레오폴드의 말을 의미 깊게 들어야 할 때인 것 같다.
이제 우리는 자연을 새롭게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참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우리 눈에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함께 담겨야 한다. 눈과 함께 마음이 보고, 마음이 만지고, 마음으로 쓰다듬을 때 진정으로 보게 된다. 분석하고 조사하는 눈이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에 담긴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을 가져야 한다.
생명의 아름다움을 보는 눈에는 놀람과 감탄, 경이로움이 가득하게 된다. 생명 사랑이 빠져버린 무늬만 생태가 아니라, 작은 생명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배우는 진짜 생태가 우리 앞에 펼쳐지기를 소망해본다.일다▣ 최병성(서강지킴이,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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