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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이라는 이름의 살육

단지 아름다운 털을 가졌다는 이유로 희생되는 동물들의 숫자는 어마어마하다.

환경운동연합의 발표에 따르면 단 한 벌의 코트를 만들기 위해서 1백 마리의 친칠라(다람쥐 과의 작은 동물), 11마리의 푸른 여우, 크기에 따라 밍크가 45마리에서 2백 마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를 위해 전세계적으로 매년 4천만 마리의 동물들이 ‘모피를 위해’ 죽어가고 있는 셈이다. 이중 3천만 마리는 사육장에서 사육되고 있는 동물들이며, 1천만 마리는 밀렵꾼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야생동물이다.

모피만을 위한 끔찍한 사육과정

밀렵에 의해 희생되는 동물들의 문제도 심각하지만, 사육장에서 오직 모피만을 위해 사육되는 동물들의 상황은 더욱 끔찍하다. 오로지 ‘상업적으로 가치 있는 털가죽’ 이외의 것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 사육 환경이기 때문이다.

동물보호단체 '윤리적으로 동물 대하기’ (PETA)에 따르면 밍크, 너구리, 토끼, 친칠라, 여우 등의 동물은 죽을 때까지 0.5㎥ 정도의 좁은 우리 안에서 갇혀 지낸다. 주로 사육의 편리함을 위해서지만 밍크의 경우 움직임을 최소로 해야 털이 부드럽다는 것이 이유가 된다.

‘상업적으로 가치 있는 털가죽’이란 원칙은 도살과정에서도 적용된다. 생식기 감전, 가스를 이용한 독살, 목 부러뜨리기 등의 방법들은 모두 ‘털가죽을 통째로 얻기 위해’ 고안된 방법들이며 도살과정에서 동물에게 주는 고통은 간과된다. 이런 도살은 대개 우리 안의 다른 사육 동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심어준다.

이러한 사육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사육동물들을 말 그대로 ‘미치게 만든다’. 우리 안의 동물들은 본래 습성과는 무관하게 같은 종족이나 심지어 자기 낳은 새끼를 잡아 먹기도 하며, 다리를 물어 뜯는 등의 자해를 하기도 한다. 우리 밖으로 나가려는 강박적 행동을 보이는 것은 물론이다. 이 모든 끔직한 일들이 ‘아름다운 모피 제품’을 얻기 위해 이루어지는 과정들이다.

가방 1개에 25마리 악어 희생

한 때 모피반대 움직임은 패션계에도 영향을 미쳤고, 환경과 동물보호를 내세운 에콜로지 패션의 등장을 낳아 1990년 ‘가을/겨울 밀라노 컬렉션’에서는 모피 대신 인공모피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공모피와 인공피혁 기술의 괄목할만한 향상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는 동물로부터 얻는 모피와 가죽에 대한 수요와 종류는 점점 더 확대되고 있다.


그 바탕에는 더 나은 고급품에 대한 욕구가 깔려 있다. 얼마나 희소가치가 있고 높은 가격을 매길 수 있는가가 판단의 기준인 것이다. 다음의 기사는 모피와 마찬가지로 유행하고 있는 악어가죽 제품에 관한 한 패션지에 실린 글이다.

“이음새나 흠집이 없는 매끈한 통가죽이 좋은 가죽 제품으로 인정받듯이 악어가죽 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악어 백 하나를 만들기 위해선 보통 두 마리의 악어가 필요한데 센터컷만을 사용한 악어백일수록 좋은 제품이며 가격 면에서도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사나운 성격으로 싸움이 잦은 악어는 이로 인해 스크래치가 생기는 경우가 많아… (중략) 콴펜이나 콜롬보와 같은 악어가죽 전문 브랜드에서는 악어가죽 표면의 스크래치를 최소화하기 위해 대리석으로 된 악어농장에서 사육을 한다고 한다.”

상처가 없는 가죽을 얻기 위해 악어의 생태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대리석으로 된 농장에서 사육한다는 사실은 고품질 악어가죽을 생산하기 위한 노력쯤으로 여겨지고 있다. 기사의 말미에는 한 컬렉션에서 등장한 25마리의 호주 산 악어를 엮어 만든 1억여 원짜리 위빙 백을 악어가죽 열풍의 하이라이트로 언급했다. 단 한 개의 가방을 위해 25마리의 악어를 희생시켰다는 사실은 가방의 희소성과 가치를 높여주는 증거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모피반대운동을 의식한 디자이너들은 컬렉션에 사용된 모피들이 자연적으로 죽은 동물들이거나, 식용으로 사용된 동물들에게서 얻은 것이라며 궁색한 변명을 대기도 한다. 그러나 밀렵으로 희생되거나, 사육장에서 학대 받은 동물의 모피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모피의 유행이 결국 그러한 시장을 유지시키는 데 일조할 것이라는 점에서 모피로 인해 희생되는 동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다▣ 박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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