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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유채를 추석 이틀 전에 파종했어요. 이 밭은 유채를 소 사료용으로 쓰고 있어요.”
유채에 대해 말하라면 하루 종일도 마다하지 않을 농부 김인택씨는 만나자마자 찬 바람이 쌩쌩 부는 밭으로 안내했다. 추운 겨울 시퍼런 잎을 드러내고 자라고 있는 부안군 주산면 유채밭에서 인터뷰가 시작됐다.
민가 뒤편에 위치한 땅에는 유채가 자라고 있었다. 아는 농민이 ‘소 사료’로 유채를 한번 써보겠다며 가을부터 유채씨를 뿌려봤다. 사료에 입맛이 길들여진 소들은 처음에는 유채를 안 먹었지만 곧 익숙해져 “나중엔 유채부터 찾는다”고 한다.
거기서 너른 들판으로 이동했다. 가을엔 누렇게 벼가 익어 황금물결을 일으켰을 들판이 조용했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보면 파릇파릇 유채가 자라고 있었다. 봄이 오면 들판은 유채꽃으로 장관을 이룰 것이다.
농부 김인택씨. 10월에 파종한 유채를 보여주며 유채의 이로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450농가가 참여했고, 10월 10일에 씨를 뿌렸어요.”
지난해 파종한 유채는 생산이 예상만큼 좋지 못했다. “2년 정도는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이죠. 지금은 잘 자라고 있습니다.” 김인택씨는 밭으로 내려가서 “(유채가) 잘 자라고 있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바이오디젤을 생산하는 농민들의 꿈 축산농가에서 나오는 축분을 유기농 퇴비로 바꾸는 기계를 설치해서 사용하고 있다. 지열을 이용해 우렁농법을 전수하기도 했다.
부안농민들은 2,3년 전부터 유채를 심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이오디젤의 원료가 되는 유채에 대한 농민들의 관심은 오래됐다. 주산면 농민들은 주산사랑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여 일찍부터 재생가능에너지를 실험해왔다.
7년 전 지역 축산농가에서 나오는 축분을 유기농 퇴비로 바꾸는 기계를 직접 설치하고, 유기농 퇴비를 이용해 농사를 지어왔다. 유기농 퇴비를 만드는 기계설비를 돌리는데 필요한 전력은 전기 대신 바이오디젤을 이용했다.
또한 농기계를 움직이고 비닐하우스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원으로 전기와 화석자원 대신 태양열, 지열 등 재생가능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농민들은 이제 바이오디젤을 통한 지역의 자원순환체계를 꿈꾸기 시작했다. 김인택씨의 설명에 따르면, 유채를 활용한 지역의 에너지순환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유채기름은 몸에 좋은 식용유로 사람들이 먹고, 지역음식점이나 학교에서 나오는 폐식용유를 수거해 바이오디젤을 만들어 농기계나 트럭, 학교 스쿨버스에 쓰는 방법이다.
실제로 2005년부터 농민들은 경운기나 트럭에 바이오디젤을 써보고 “좋다”는 것을 경험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일하는 농가에서는 BD20(바이오디젤 20%, 경유 80%)만 해도 매연이 적어서 작업하기가 훨씬 낫고”, 트럭이나 기계가 한결 조용하고 부드럽게 움직인다는 것. 특히 비닐하우스 농사를 지을 때는 농기계를 운행하면서 환기가 잘 되지 않는 것이 문제인데, BD20만 써도 많이 개선된다고 한다.
농부들은 꿈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 유채 이모작을 시도했다. 벼 수확이 끝난 다음 논에 유채씨를 뿌렸고, 봄이 되자 들녘은 노란 유채꽃으로 장관을 이루었다. 지방자치단체는 유채관광으로 버는 수입도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신문기사들은 앞을 다투어 부안을 ‘노란 유전(油田)’, ‘꽃으로 달리는 부안’ 등으로 소개했다.
그러나 유채씨를 논에 뿌리고 희망을 일구던 부안농민들의 꿈은 거기서 멈춰 섰다. ‘바이오디젤로 달리는 학교버스 타기’ 행사를 지역주민들과 아이들이 함께 참여해 성공적으로 치르고 난 직후, 정부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사업법 개정고시를 시행했다. 유채를 통해 자원순환체계를 만들려던 농민들의 시도는 법에 저촉을 받는다며 전면 금지됐다.
기가 막힐 일이었다. 이제 농민들이 자신의 농기계에 바이오디젤을 사용하는 것도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한국에서는 바이오디젤 업체가 무료로 학교버스에 바이오디젤을 공급하겠다고 해도 불법이다. 주산면 농민들은 지역에서 폐식용유를 수거해 바이오디젤을 생산하는 시스템까지 갖추었지만, 모든 것이 법에 저촉돼 ‘올스톱’ 됐다.
유채, 화학비료 대신해 천연비료 역할
유채를 이용해 직접 바이오디젤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은 법으로 “발이 꽁꽁 묶여버렸지만” 유채가 농민들에게 주는 혜택은 또 있다. 이모작으로 “유채를 심어서 수확한 뒤, 벼를 심게 되면 화학비료를 3분의 2로 줄여도 된다”는 것이다.
그 동안 화학비료 한 포대 비용이 6천원, 7천원 했다. 비료 값이 비싸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20kg 비료 한 포대가 2만원에서 2만2천원 정도까지 올랐다.
“그 동안 농가가 구매했던 비료값 6천원은 정부가 절반을 보조했던 거에요. 비료 한 포대 값이 원래 1만 2천원이었던 거죠. WTO 협상이 타결되니까 농업보조금을 못 주게 되었잖아요. 원래 가격으로 1만2천원으로 갔다가, 고유가 되면서 2만2천원까지 올라간 거에요. 유채 심은 농가들은 화학비료 양을 줄였기 때문에 경제적 이득이 발생하더라는 것을 이젠 아는 거죠.”
보리로 이모작을 한 농가와 소득을 비교해보면 2008년 경우 유채가 낫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화학비료를 대신할 녹비작물 역할을 한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유채를 심은 농사의 소득이 낫다.
유전자조작 작물로 만든 식용유 대체할 '착한 작물'
유채기름은 식용유로 다른 기름보다 적합하다.
“식품안전에 대해서 얘기하면 환경호르몬에 대해서는 많이들 얘기하지만 유전자조작에 대해서는 국민적 관심을 못 만들어냈잖아요. 현재 식용유에 쓰이는 수입콩들은 거의 유전자조작 작물일 텐데, 대표적인 유전자조작 식품은 간장, 식용유거든요. 특히 식용유는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있기 때문에, 농민입장에서는 우리 아이들에게 유전자조작 식품을 안 먹이기 위해서 우리나라 유채를 심을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유채농사를 짓기 위해 찾아본 의학서적들과 논문들을 통해 유채기름이 “아토피 치료와 개선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실제 김인택씨 가정뿐 아니라 주변 가정에서 유채기름이 아토피 개선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걸 경험했다.
김인택씨는 현재 부안에서 심고 있는 유채씨가 “20년 동안 공무원 혼자서 전통육종법을 통해 개발한 유채품종이고, 식용유용으로 개발한 것이지 바이오디젤용으로 개발한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는 “우리나라 유채를 땅에 심는 게 유전자조작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 문제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은 한국에서, 재생가능에너지를 통해 지역의 자원순환체계를 만들고자 했던 김인택씨와 주산농민들. 비록 정유사들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이상한 법’으로 인해 가로막혀있지만, 에너지자립을 향한 농부들의 선구적인 실험과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일다] 윤정은
※ 에너지정치센터(www.enerpol.net)와 일다는 ‘기후변화와 에너지 전환’에 관련한 기사를 공동으로 기획해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 기획취재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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