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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의 ‘진짜’ 비도덕적 행위, 성폭력
낙태수술 처벌강화 원점으로…승리를 얘기할 때가 아니다
보건복지부가 입장을 내놓았다. 불법 낙태수술을 시행한 의사에 대해 최대 12개월 자격 정지를 가하는 처벌 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고 말이다. 바로 논란의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 일부 개정령>(안)으로부터 불거진 사안에 대한 해명이었다.
지난 주 많은 여성들은 검은 옷을 입고 거리로 나왔다. 낙태를 ‘죄’로 규정한 형법과 모자보건법, 이도 모자라 의료인의 ‘비도덕적 의료행위’에 낙태수술을 포함시키려는 보건복지부 개정령(안)에 분개했다.
얼마 전 폴란드에서 있었던 ‘검은 월요일 시위’의 여파도 있었던지라 보건복지부는 이 사안에 대해 빠른 결정을 내린 듯싶다. 그리고 오늘 SNS 여러 곳에서 ‘승리’를 이루었다는 여성들의 글을 심심치 않게 보았다.
그런데, 정말 승리일까?
물론 정부에 항의했던 여성들은 이번 일을 ‘작은’ 승리라고 말하며 다음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낙태를 금지한 현행 형법과 모자보건법에 이의를 제기하고, 임신중단에 관한 사회적 시선을 바꾸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진짜 싸워야 할 것은 아직 입법 예고에 불과한 이번 개정령(안)만이 아니라, 바뀌지 않고 있는 형법과 모자보건법이니까.
▶ 10월 15일 낙태죄 폐지를 외치며 검은 옷을 입고 서울 종로에서 집회를 연 시민들. © 일다
비도덕적 진료행위 ‘의료인 성폭력’ 논쟁에 불 지펴야
여기서 나는 다시 질문하고 싶다. 이번 보건복지부의 개정령(안)에서 불거진 여성과 관련한 사안은 과연 ‘낙태’뿐이었을까?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일부개정령안 입법예고” 게시물을 볼 수 있다. 입법예고 기간은 9월 23일~11월 2일까지다. 며칠 남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꼭 이 문서를 읽어보면 좋겠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의료인의 비도덕적 의료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다. 구체적 내용은 1개월에서 최대 12개월 자격정지. 둘째, 비도덕적 의료행위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기한다. 별표로 각 행위를 명기.(여기에 낙태시술이 포함됨)
짧은 입법예고 문서와 함께 첨부되어 있는 <규제영향분석서>를 보면, 이번 개정의 보다 직접적인 목표와 의도가 드러나 있다. 규제 신설의 주요 이유로 “의료인의 1회용 주사기 재사용, 진료 중 성범죄”등으로 환자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고 시작한다. 그래서 행정처분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규제의 필요성과 사례, 정부 개입의 필요성, 대안검토 등의 내용을 읽어보면 개정의 주 목적이 의료인의 비도덕적 행위로서 “성폭력”이 고려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해외사례의 비교 분석> 부분에서 OECD국가들에선 의료인의 “비도덕적인 진료행위에 대하여 강력한 행정처분을 하고 있으며, 특히 중한 성범죄 의료인에 대하여는 면허를 박탈하는 국가”도 있다고 적었다.
아무리 읽어보아도 이번 개정안의 주 목적과 배경은, 성범죄 의료인에 대한 처벌을 묵과할 수 없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요 며칠간의 뜨거운 논쟁의 주제가 ‘낙태’였던 것에 비하면, 이 문서는 신기하게도 그것과 별로 상관이 없어 보일 정도이다. 낙태에 대한 사안은 비도덕적 행위를 세분화한 개정안 별표에 뜬금없이 들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이 더 분노하는 것이지만.
최근 몇 년간 의료인의 성범죄 사건들은 꽤 문제가 되었다. 환자의 몸을 직접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그리고 일반인은 사용할 수 없는 각종 약품을 사용할 권한이 있다는 점에서, 의료인의 성범죄에 대한 윤리의식은 보다 더 엄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 의료인의 성추행과 폭력은 여성주의자들 사이에서 빈번하게 문제 제기되었지만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는 것은 별로 본 적이 없고, 사회적 이슈화도 크게 되지 못했다. 오히려 성범죄 전력이 있는 의료인이 버젓이 의료행위를 하고 있다는 뉴스들을 더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의료인의 비도덕적 의료행위, 특히 성범죄와 같은 행위에 대한 처벌은 강화되어야 할 충분한 사회적 배경이 있다.
그러면 보건복지부의 개정령 입법예고는 어쩌다 ‘낙태’로 초점화가 되었을까. 시작은 10월 9일이었다. 이날은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제2차 추계학술대회>가 있었고,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이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입법예고 기간이 끝나 정부안대로 시작될 경우, 모든 산부인과 의사들의 낙태수술을 전면 중단을 할 것이라고 말했고, 이는 기사화되었다. 그날 임신중절수술을 비도덕 진료행위로 간주해 처벌을 강화하는 방침에 반대하는 산부인과의사회의 서명운동도 있었다고 한다.
산부인과 의사들이 낙태에 대해 진심어린 고심이 있었는지를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이왕이면 정부안대로 진행될 경우, 낙태수술을 전면 중단하는 게 아닌 낙태수술을 전면화하겠다고 내걸었으면 어땠을까, 여성의 입장에서 아쉬움은 있지만 말이다. 요점은 산부인과 의사들이 이번 개정안의 문제를 먼저 이야기하면서 사안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논쟁의 전선이 낙태에서 그어진 이유다. 이 사회에서 낙태를 이만큼 이야기하고 논의할 기회가 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나는 애초의 그 개정령을 고집스럽게 되돌아보려고 한다.
왜냐하면 그 개정령에 여성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또 하나 이야기되지 않은 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의료인의 ‘진짜’ 비도덕적 행위, 의료인의 성추행과 성폭력. 이를 제대로 처벌하는 것, 그리고 성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이 의료행위를 하는데 있어 어떤 제한을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 이 문제는 만만한 일이 아니다.
▶ 법이 여성의 몸을 인식하고 있는 사회라면, 의료인의 비도덕적 행위로 성폭력과 낙태시술이 동일선상에 놓일 수 있을까. ©1980년대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정권의 낙태금지 정책과 여성들의 희생을 다룬 영화 <4개월, 3주... 그리고 2일>
성범죄 의료인 ‘12개월 자격정지’ 합당한가?
이 사안에서만 다시 보자면, 이번 개정안은 비도덕적 행위를 열거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에 대한 처벌 수위가 문제가 될 것 같다. 과연 12개월 자격정지만으로 되는 건가? 아니면 12개월도 과한가? 이런 문제 말이다.
성범죄와 관련하여 의료인의 처벌을 어느 정도로, 어떻게 할 것인지는 여전히 막막한 사안이다. 우리는 그저 추상적인 의견들만 가지고 있다. “의사가 그럴 수 있다니! 의사니까 더 처벌받아야지”, 혹은 “이미 법 형량 다 치렀는데 왜 직업적 제한을 추가로 받아야 하는가?” 정도의 수준 아닐까.
이와 관련해 지난 3월 헌법재판소에서 주요한 판결이 나왔다. (헌재 2016. 3. 31. 2013헌마585 등, 공보 제234호, 602 [위헌,기각])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56조 1항)에 따른 성범죄 의료인의 10년 취업 제한에 대한 것이다. 현재 성범죄 이력이 있는 의료인에 대한 직접적 제한은 이 조항에 따른다. 헌재는 이 조항의 목적 정당성과 수단의 적합성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다만 침해의 최소성과 법익의 균형성에 위배되어 법률조항은 위헌으로 판결이 났다.
즉, 성범죄로 형을 선고받아 확정된 의료인에 대하여 일정 기간 의료기관에 취업을 제한하는 것은 입법 목적도 정당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도 적합하다는 말이다. 다만, 전과자라는 이유만으로 그 경중이나 재범의 위험도 등의 차이 없이 일률적으로 제재하는 방식은 문제라고 보았다. 그 공익의 부합성에도 불구하고, 재범위험성이 낮은 자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이 과하게 침해될 우려가 있다는 말이다. 결국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56조 1항) 조항의 목적과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헌재는 성범죄 전과‘만’으로 ‘일률적’으로 ‘10년’ 취업 제한을 하도록 하는 조항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적어도 이 판결로 인해 향후 요구되는 것이 무엇일지 추측해볼 수 있다. 성범죄 전과가 있는 의료인에 대한 제재의 수준과 방식을 구체화하고 세밀화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실제 이미 이 조항과 관련한 입법예고도 진행 중에 있다고 한다.
성폭력과 낙태수술이 일렬 배치되는 사회에서
소결을 내려 보자. 우리는 일정 정도 승리했다. 이번 보건복지부의 개정령(안)의 의료인의 비도덕적 행위에 임신중절시술은 절대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승리란 무엇이어야 할까? 여성의 삶의 질을 현재보다 더 끌어올리는 것, 나아가 모든 다양한 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종식시키는 것. 그렇다면 우리는 늘 새로운 의문과 질문의 씨앗을 찾아야 한다. 승기가 보이는 전선에서도 다음 전선의 단초를 발견해 놓고, 그렇게 계속 확장해가야 한다.
이제 낙태를 둘러싼 논의들은 의료법 개정이 아닌,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으로 힘을 전환하는 방법을 구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 개정안에서 단초를 얻어 성범죄 등 ‘진짜’ 비도덕적 행위를 저지르는 의료인에 대한 처벌과 그 수위에 대한 논의 역시 세심히 이끌어 가야 할 것이다. 이미 헌재 판결이 있으니 이 논쟁은 곧 시작될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번 시행령(안)은 그런 차원의 준비 작업인 것 같다.
여성들의 입장에서, 성범죄 의료인에 대한 규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런 물음을 던지는 것은 의사들을 더 많이 처벌하라는 요구가 아니다. 사실 그런 단순한 요법은 여성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지도 않는다. 더 첨예한 질문들이 준비되어야 한다. 관련법과 지침들을 구체적으로 살피면서 반대로 여러 법들을 교차해서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시야도 필요하다. 여러 행정지침에, 그 상위 규칙에, 또 상위법에, 법들에… 여성주의 시각으로 끊임없는 질문과 의심을 던져야 한다.
이번 사태의 근본적 문제는 비도덕적 행위로서 ‘성폭력’과 ‘낙태시술’이 동일선상에 놓일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법이 여성의 몸을 인식하고 있는 사회라면 과연 이런 일렬 배치가 가능이나 했을까? 성폭력과 낙태가 이루어지는 그 몸이 비도덕적인 것이라는 메시지인가? 여성들의 분노의 시작은 이 지점이었을 것이다. 여성들은 우리의 몸에 대해 감히 도덕을 운운하지 말라고 외쳤다. 그러니 승리는 법이 여성의 몸을, 다른 몸을, 변하는 몸을, 생생한 몸들을 기억할 때까지 아직은 오지 않은 것이다. 다음 길을 모색해야 할 때다. 김서화 여성주의 저널 일다
※ 보건복지부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일부개정령안 입법예고” 찾기: http://bit.ly/2ejL0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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