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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임기 여성은 짤라야” 상사의 발언이 농담?

정부와 지자체는 저출산 대책보다 임신․출산의 권리부터 보장하라



오는 10월 10일은 임산부의 날이다. 정부는 지난 8월 저출산 긴급 대책을 발표했다. 난임 시술을 지원하고, 다자녀 가구에 각종 혜택을 주고, 남성의 육아휴직을 확대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그러나 정작 일터에서 여성들이 “가임기 여성은 짤라야 한다”, “임신은 조직에 피해를 준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면? 임신이 죄라도 되는 양 상사에게 “죄송하다”고 말해야 하는 실정이라면? 정부의 저출산 대책은 여성노동자의 현실과 괴리가 너무 큰 것일 테다.

 

임신해서 죄송합니다? 어느 복지관에서 일어난 일

 

작년 4월, 부천의 원종종합사회복지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조재화씨(당시 36세)는 둘째아이 임신 사실을 복지관에 알렸다. 그러자 팀장은 조재화씨에게 부장이 한 말을 전했다. ‘부장님이 오늘 오셔서 가임기 여성은 짤라야 한다고 했어요. 선생님 면접 볼 때 가정일로 피해 안 준다고 했다던데…’

 

입사 면접을 볼 때 둘째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말했던 조재화씨는 부장에게 가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부장은 ‘육아휴직을 다녀오지 말든가, 지금 돈 없어서 있는 직원도 짜를 판인데 너 (육아휴직) 들어가도 사람 안 뽑을 거니까 알아서 해’라고 말했다.

 

조재화씨는 임신을 한 것이 축복받기는커녕 죄인 취급받는 곳에서, 과연 직장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 괴로워했다. 그러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화장실에 가보니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인지 피가 비쳤다. 동료였던 계약직 사회복지사 이은주씨(54세)가 조재화씨의 안색을 살폈고, 들어가서 잠깐 누워있으라고 말했다.

 

▶ 2016년 9월 23일 ‘부천원종종합복지관의 성차별․인권침해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가 제작한 피켓.  ⓒ일다

 

직장에서 ‘가임기 여성은 짤라야 한다’는 발언을 하고, 임신한 직원을 죄인처럼 대한 상사의 태도가 부당하다고 여긴 조재화씨와 이은주씨는 복지관 관장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논의하길 원했다. 그러나 팀장은 ‘팀에서 관장님을 만나는 것은 단체행동이기 때문에 안 된다, 관장을 만나려면 팀원들 모두 사표 쓸 각오를 해야 한다’며 이들을 제지했다.

 

결국 동료인 이은주씨가 홍갑표 관장에게 이메일을 보내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관장은 조재화씨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부장이 몸이 아파서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직원들에게 잘 하라는 의미의 말이었다고 한다. 부장이 팀 내에서 자신을 두고 얘기한 것에 대해 화가 많이 나 있다’고. 관장의 말에 조재화씨는 다시 한 번 하늘이 노래졌다.

 

얼마 후, 부장은 조재화씨에게 개인적으로 사과했다. 그런데 사과의 요지는 이랬다. ‘농담이었다, 너와 나의 관계에서는 (그 말이) 전혀 문제될 상황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네가 임신을 해서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이고, 이은주가 없었다면 네가 문제를 제기했을까? 기분 나빴다면 사과한다. 하지만 번번이 이런 일로 문제 삼는다면 우리 복지관은 농담도 하지 못할 정도로 삭막한 기관이 될 것이다.’

 

자신 때문에 일이 커질까 봐 부담을 느낀 조재화씨는 이 이상한 사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6월에 열린 전체 직원회의. 이 자리에서 조재화씨와 이은주씨는 ‘임신은 조직에 피해를 준다’, ‘임산부도 가해자’라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고 말한다.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상황에서 두 사람은 할 말을 잃었다.

 

성차별 문제 제기 후 ‘계약해지’된 동료 사회복지사

 

조재화씨는 이 사건을 겪으며 스트레스와 심리적 불안으로 계속 악몽을 꾸고 설사를 해 자궁수축과 탈수 증상을 겪었다. 의사에게 유산 위험이 있다는 경고도 받았다.

 

동료인 이은주씨는 상사의 성차별 발언에 사과를 요구한 자신들이 도리어 조직에 피해를 준 가해자로 몰린 상황이 기막혔고, 내부에서는 이 문제를 풀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두 사람은 사회복지사의 모성권이 침해당하는 현실을 알리기로 마음먹고, 페이스북에 그동안의 상황과 심경을 올렸다.

 

그 후 복지관에서는 계약직으로 일하던 이은주씨에게 7월 31일자로 계약만료를 통보했다. 복지관은 단순한 계약만료라고 했지만, 이은주씨는 조직에 문제를 제기한 것에 대한 ‘보복성 해고’라고 판단했다.

 

두 사람은 복지관을 상대로 싸움을 시작했다. 계약해지된 이은주씨는 복지관 바깥에서, 조재화씨는 복지관 안에서 홀로 고립감을 견디며. 이들의 요구안은 이렇다. 이은주 사회복지사에 대한 계약만료를 철회할 것, 성차별과 인권 침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할 것, 또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고충처리위원회를 설치할 것, 복지관 내 성평등 교육을 실시할 것 등이다.

 

작년 8월부터는 부천 지역의 시민사회단체와 노동단체들이 ‘부천원종종합복지관 성차별, 인권침해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함께 활동 중이다.

 

▶ 부천원종종합복지관의 성차별․인권침해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가 2016년 9월 23일 주최한 결의대회.  ⓒ일다

 

복지관 측 ‘농담이었고, 사과와 화해로 마무리된 일’

 

그러나 대책위원회가 매주 금요일마다 결의대회와 1인 시위, 108배 집회 등을 이어오며, 일 년이 지났지만 이 싸움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대책위는 복지관 측이 명예훼손과 모욕죄로 이 싸움에 함께 한 사람들을 고소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원만한 사건 해결에 등을 돌리고 있다고 전한다.

 

2015년 10월에는 부천 지역 인사들의 중재로, 복지관과 대책위가 중재기구를 구성하는데 합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시작 전 어그러지면서 양측의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원종종합사회복지관 측은 줄곧 ‘가임기 여성은 짤라야 한다’는 부장의 발언은 “농담이었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작년 7월 7일 복지관 측에서 연 기자회견에서도 부장의 발언은 ‘직장 내에서 일상적인 소통의 문화였고 농담이었다’라고 일축했다. 며칠 뒤 ‘원종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 명예 회복을 위한 직원 일동’의 명의로 나온 성명서에도 “‘농담’으로라도 동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상처를 준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복지관 측은 이 사건에서 부장과 조재화 씨 간에 “진정성 있는 사과를 통해 오해가 풀리고, 모든 직원들이 깊이 반성하며 이번 일이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했다”는 입장이다. 또한 “6월 18일 전체 직원회의에서 임산부인 동료의 요구 사항을 모두 수용하고 진심어린 공개 사과와 기관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재화씨와 이은주씨는 ‘농담이었고, 의도하지 않았으나 상처를 줬다면 미안하다’는 말은 진심어린 사과가 될 수 없다고 반박한다. 그 또한 개인적인 사과였을 뿐이지,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기관의 공식적인 사과가 아니었다고 항변하고 있다.

 

조재화씨는 부장의 발언이 여성에 대한 차별이자 비하 발언이고 “여성의 임신에 대한 권리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복지관 측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 대해 지적한다. 여성노동자의 입장에서는 결코 농담이나 말실수로 받아들여질 수 없고, 임신하면 해고당할 수 있다는 위협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조재화씨는 작년 11월 26일 출산휴가에 들어갔고 지금은 육아휴직 중이다. 다행히 아기는 건강하게 태어나 잘 자라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야 하는지 막막하다고 이야기한다. “사실은 두려운 마음이 커요. 임신 중(복지관 근무 당시)에도 계속 고립돼 있었고 지금도 동료들과 이 사건에 대해서 얘기할 수 없다 보니까 고립감이 큽니다. 복귀해서 잘 버텨낼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계약직 직원이 조직에 문제 제기할 수 있을까요?

 

▶ 계약해지된 사회복지사 이은주씨.  ⓒ 일다


복지관 측은 계약해지된 이은주 사회복지사에 대해서도, “정당한 계약 기간 만료와 사업예산 부족에 따른 계약해지”라며 보복성이 없다고 얘기하고 있다. 오히려 이은주 씨와 대책위가 “이를 부당해고라고 허위 사실을 유포하여 복지관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한다.

 

조재화씨와 이은주씨는 작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으나, 올해 6월 기각되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조재화씨에 대해 “출산휴가, 육아휴직과 관련한 인사 상 불이익이 없었기 때문에 구제가 필요 없다”고, 이은주씨에 대해 “계약해지가 계약만료 외에 부당해고라고 볼 만한 다른 근거나 정황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그러나 이은주 사회복지사는 “내가 속해있던 주민 조직화 사업팀보다 사업의 연속성이 떨어지는 팀에 소속된 계약직 직원도 계약이 연장됐다”면서 반론을 제기한다. 사업의 연속성 상에 있는 담당자를 계약해지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간 만료’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은주 씨는 당시 복지관의 핵심 사업 중 하나인 ‘대장동 마을 만들기 주민사업’을 위해 채용되었으며, 마을 주민들로부터도 헌신적인 활동으로 빠른 시간에 신뢰를 얻어가는 중이었다.

 

이씨는 “계약만료 두 달 전인 2015년 4월에 팀장에게 프로젝트를 이월 받았으며, 이미 추석 사업까지 계획을 짜 놓은 상황이었다”라고 말한다. 정황상 당연히 계약이 연장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었다는 것. 이은주 사회복지사는 자신이 성차별적 조직 문화에 문제 제기를 한 사실 외에는, 정당한 계약해지 사유를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출산 대책 만들면 뭐하나, “부천시 나서라” 촉구

 

지난 9월 23일에는 부천시 덕유종합사회복지관 앞에서 대책위의 결의대회가 열렸다. 이곳은 홍갑표 원종사회복지관 前 관장이 작년 12월에 새로 부임한 곳으로, 같은 재단 소속이다.

 

조송자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조직국장은 “부장이 ‘가임기 여성은 다 짤라야 한다’고 말했다는데, 그러면 폐경기가 오는 50대 이전의 여성들은 다 짤라야 한다는 것이냐”라고 물으며, 성차별일 뿐 아니라 “여성혐오 발언”이라고 분노를 표했다.

 

또한 조송자 조직국장은 “정부가 저출산 대책이라면서 지하철에 임산부 전용 좌석을 만들었고 다자녀에 대한 혜택을 주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복지관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임신하고 싶어도 임신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임신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정책만이 아니라 기업 내 문화가 바뀌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부천시에 살면서 장애를 가진 다섯 살 아이를 복지관에 보내고 있는 시민 백선영(34세)씨도 사회복지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으로서 입장을 밝혔다. 백씨는 “이 일은 피해자의 삶만 파괴하는 게 아니라, 사회복지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지역주민 모두를 배신하고 기만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결의대회 참가자들은 부천시가 나서야 할 때라고 촉구했다. 원종사회복지관은 부천시의 위탁을 받아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석왕사 룸비니 재단이 운영하고 있다. 위탁 종료 시점은 2017년 4월이다. 참가자들은 부천시에 “성차별적인 조직 문화를 가진 룸비니 재단이 복지관을 더 이상 운영할 수 없게 재계약을 하지 말라”며, “2015년에 여성친화도시로 선정된 만큼 그 이름에 걸맞게 부천시장이 결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나랑 기자)  여성주의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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