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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으로부터 망명, 누구와 어떻게 살 것인가

<생계형 알바를 하는 청년여성들>⑦ 특성화고 취업반 희진



※ 이른바 ‘생계형 알바’를 하는 10대, 20대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빈곤-비(非)진학 청년들의 진로 탐색과 자립을 돕는 협동조합 <일하는 학교>와 은평구청소년문화의집 <신나는애프터센터>와 함께 이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연재됩니다.  - 여성주의 저널 일다


또 한 번의 추석이 지나갔다. 사람들이 모여들자 누구는 앞치마를 매고 상을 차리고 치우고, 누구는 소파에 드러누워 먹고 마시기 시작했다. 보름달처럼 가족이 다 차면 반복 재생되는, 성별로 정해진 역할극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뭐 하나를 바꾸어보려고 해도 줄줄이 사람과 상황이 엮여있어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오히려 무력해진다. 불평등, 일방적인 희생, 폭력 없이도 가족이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할수록 왜 상처받는 것은 나일까. 내년부턴 명절에서 이탈하기로 마음먹었다.

 

이탈이 또 다른 선택이라는 걸 생각하게 해준 사람이 있다. ‘생계형 알바’를 하는 청년여성 인터뷰의 네 번째 대상인 희진이다. 그녀는 작년 8월 전까지는 아르바이트를 해 본 적 없었는데, 갑작스럽게 집을 나와야했다. 그 후로 살 곳도, 의지할 사람들도, 아르바이트도 구하게 된 희진. 가족이라는 격랑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지만, 그녀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망명한 후 ‘자기만의 삶’이라는 감각을 하나씩 모아가고 있었다. 희진이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만난 친구의 소개로, 우리는 연남동 어느 카페에서 만났다.

 

오랫동안 묵혀온 폭력, 다른 선택을 한 가족들

 

“아빠가 나가라고 했어요. 오빠로부터 지켜줄 수 없다고. 신고를 하고, 그 다음날 친구네 집으로 나왔죠.”

 

희진의 여덟 살 위 오빠는 옛날부터 ‘거대한’ 사람이었다. 오빠가 언니를 때리는 걸 본 게 일곱 살 때였는데, 그 때 오빠는 고등학생이었다. 엄청 크고, 뭔가 찍소리 내면 안 될 것 같고, 아예 안 부딪히고 싶은, 내내 그런 존재였다. 오빠는 엄마도 아빠도 다 때렸다. 아빠는 게임하는 오빠를 말리다가 맞아서 입속이 터졌고, 언니는 프라이팬으로 맞고 턱이 나갔다. 오빠는 언니가 자고 있을 때 가슴을 만지기도 했다.

 

희진과 오빠 사이에서의 일은 작년 8월에 일어났다. 학교에서 하는 촬영 과제 때문에 오빠가 안 쓰는 물건을 가져갔었다. 오빠는 당시 그것과 비슷한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려서 희진의 가방 속을 뒤지다가 자기 물건을 발견했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말하려 했는데, 말대답을 한다면서 오빠는 훅, 하며 희진을 때렸다.

 

▶ 방 밖으로 소리가 날까봐 전화 대신 경찰청 홈페이지에서 오빠의 폭력을 신고했다.  ⓒ사진: 오매

 

희진은 경찰청 홈페이지에 오빠의 폭력을 신고했다. 희진은 언제나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오빠는 이게 잘못된 일인지 모르나?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가다니. 언니랑 아빠가 일찍 대처했더라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다음날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희진은 경찰서에 가서 오빠의 폭력을 진술했다. 경찰은 학교에도 연락하고 와서, 상담실에서 담임선생님과 이야기했다. 오빠는 경찰서에 불려가서 말을 듣고 오더니 “미안하다”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희진은 답하지 않았다. 오빠를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경찰이 희진에게 전화했을 때 희진은 학교에서 핸드폰을 걷어가서 연락을 받을 수 없었는데, 그러자 경찰은 대신 아빠에게 전화했다. 아빠는 ‘희진이 오빠와 이미 화해를 했고, 희진도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아빠는 희진에게도 경찰에게 그렇게 말하라고 했다.

 

언니는 예전부터 그랬다. 맞았을 때는 사진 찍어놓고 그러다가 또 말고, ‘지난 일인데…’ 하며 기억을 미화시켰다. 그것이 이제 희진의 일이 되자 아빠와 언니는 놀랐다. 그러나 아빠는 곧 ‘동네 망신이다, 가족끼리 얼굴 붉히고 살면 어떡하냐’고 했다. 언니는 ‘네가 예민하다. 오빠와 나도 그런 일 있다가 잘 지낸다. 솔직히 형제끼리 싸울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했다. 아빠와 언니의 말처럼 ‘내가 예민한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희진은 그 집에서 나왔다. 전화로 신고하면 소리가 들려서 아빠가 못하게 할 것 같아서 컴퓨터로 오빠의 폭력을 신고하고 있던 그 때, 아빠는 방문을 열고 들어와 말했었다. 오빠로부터 널 지켜줄 자신이 없다고. 그러니까 엄마에게 가라고. 희진은 하던 신고를 마저 하고, 짐을 싸서 그 다음날 나왔다. 엄마에게는 갈 수 없었다. 아빠에게 말하지 않고 자취하는 친구네 집으로 갔다. 경찰에는 아빠가 종용한대로 말했다. 오빠와 화해했고, 고소를 취하하겠다고.

 

생계비를 버는 알바를 시작하다

 

아빠는 희진이 엄마에게 가면 집이며 학교며 생활비며 다 해결될 줄 알았지만, 엄마에게는 아빠가 모르는 사정이 있다. 학교에 내야 하는 돈도 있고, 엄마에게는 손 벌릴 수 없었던 희진은 알바를 시작했다. 처음 알바를 시작할 때는 이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시간이랑 거리도 안보고 써주기만 한다면, 돈만 많이 준다면 달려갔다.

 

처음 알바한 곳은 호프집이었다. 호프집은 학교 5시에 마치고 가서 6시부터 12시까지 일하고, 막차타고 집에 와서 자고 바로 일어나 학교에 갔다. 시급은 6천원. 진상손님이 있었는데 호프집 위층 체육관 관장이었다. 한잔 시킨 맥주를 다 못 먹는다고 “같이 먹어주면 안돼?“ 했다. 미성년자라고 하면 안 되니까 교회에 다닌다고 말하면서 피했다.

 

두 번째 알바는 같은 사장님이 운영하는 펍과 화덕피자집이었다. 주 7일 일했다. 펍에서는 다행히 진상손님이 없었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잘해줬다. 그런데 피자집은 일하는 사람 모두가 남자였고 희진만 여자였는데, 성희롱을 일삼았다. 여자친구랑 첫 키스가 어쨌다고 하면서 ‘너도 남자친구 있지 않냐, 잤냐?’ 라고 하고. 평소에도 여자라고 무시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놀라 긴장해서 잔을 한번 깨면, 더 소리를 질러댔다.

 

지금은 홍대의 조용한 밥집에서 일한다. 테이블이 다섯 개이고 메뉴가 네 개인 작은 식당인데, 손님이 많이 없다. 그래도 한가하다고 눈치 안주고, 무엇보다도 밥을 엄청 잘해주어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곳이다. 노는 느낌으로 일하고 있는데, 시급은 홍대 평균인 7천원(올해)이나 작년 기준 6천5백원보다도 낮은 6천1백원이다. 그래도 예전의 경험들을 생각하면 시급이 낮더라도 마음 편한 곳이 낫다. “4백원도 모으면 1만원인데… 덜 먹고 말죠. 마음 편한 곳이 좋아요”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들의 공간에서, 함께 살기

 

▶ 갑작스런 알바를 하게 된 희진. 그러나 예견된 독립이 아니었을까? ⓒ촬영: 윤미희


희진은 집을 나온 뒤 지방에서 서울로 학교를 온 친구네 집에서 세 달을 지냈다. 희진의 사정을 아는 친구는 집세 같은 건 받지 않았다. 그 후엔 쉼터에 갔다. 희진의 사정을 아는 담임선생님이 권해서였는데, 나쁘진 않았지만 규칙이 너무 많았다. 이불 개면 상점 스티커를 하나 받고, 그런 분위기였다. 그렇게 쉼터에서 두 달을 지낸 뒤, 지금 사는 곳으로 작년 12월에 왔다.

 

인문학 공부를 하는 교육공동체인 이곳은 몇 년 전에 학교에서 되게 좋아하던 언니가 면목동에 인문학 강의를 들으러 가자고 해서 따라갔다가 알게 되었던 곳이다. 여기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다. 딱 어떤 뭐라기보다 그런 문화, 분위기가 있다. 강의만이 아니라 강의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깨우친 것들이 있다. 학교에서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고 하지만, 결코 아니고 멍청하게 속고 살고 있었다는 것도 깨닫게 해준 곳이다. 무엇보다 희진이 가정폭력의 피해자라는 걸 인식할 수 있게 해줬다. 여기가 아니었다면 아빠가 하는 말들에 ‘맞어 그래…’ 하면서 따라갔을 수도 있다.

 

이 공동체에서는 20대 상근자에게 주거를 제공하고 있었다. 상근자이자 희진의 친구인 사람이 방 하나를 내주겠다고 해서 들어갔다. 사실 학교 가기 위해 아침 5시 50분에 지하철을 타고, 학교 끝나고는 야자 9시까지 마치고 집에 오고, 주말에는 알바가느라고 매일매일 아기자기 즐거운 그런 시간은 별로 없다. 좋은 강의가 펼쳐지는 장소지만, 희진은 그 시간에 자야한다. 옆방에서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는데, 그걸 자장가 삼아서 잔다.

 

그래도 편하다. “처음엔 엄마 이야기 꺼내면 엄청 울고 그랬는데… 이제는 덤덤하게 말하고. 야! 우리 엄마 헤어진대! 그렇게 떠들면서 말할 수도 있어요. 학교 친구들보다 여기 사람들에게 더 편하게 말하는 거 같아요.” 함께 사는 상근자 친구가 수업 준비를 하면서 희진의 의견을 물으면, 조금조금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말해보기도 하며, 그렇게 든든한 공간에서 일주일, 한 달이 흘러가고 있다.

 

취업을 앞두고, “직장에서 재밌는 사람이 될 거예요”

 

희진은 특성화고 3학년이다. 취업이 되어 출근을 앞두고 있었는데, 다행히 마지막 방학은 놀고 오라고 첫 출근 일을 조금 늦추어주었다. 그래서 알바도 정리하고 조금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회사는 문화와 관련된 상품을 만드는 곳인데, 직장으로서 평이 좋은 곳은 아니다.

 

“원래 대학가고 싶었는데 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잖아요. 집에서 걱정 안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아니고. 아빠는 경비일 하시는데 계약이 끝나가고, 엄마도 돈이 필요해서 저에게 말씀하시고. 그런 상황에서 제가 인문계를 가서 알바만 하면서 살 수 있었을까요? 부모님은 ‘한국은 대학이야, 대학 가’ 라고 해요. 날 위한 말 같지만 무책임해요. 오빠는 대학을 나왔는데 저러고 사는 거 보면 대학 나오는 건 뭔 의미일까? 싶기도 하구요.”

 

희진은 일찍부터 특성화고와 취업을 생각했다. 열여덟 살 때부터 언제까지일지 모를 일이 이제 시작되려고 한다. 생계가 달려있고, 아빠와 엄마의 사정까지도 생각하는 취업과 첫 출근. 희진은 어떤 모드로 일을 기다리고 있을까? 답변은 의외로 “재미”였다.

 

“솔직히 일을 엄청 잘하고 촉망받을 것 같진 않아요. 저는 밝은 분위기를 주는 사람이고 싶어요. 일도 힘든데 분위기나 관계마저 힘들면 너무 힘들지 않을까요. 일을 잘 해야지, 승급해야지, 그런 거보다 같이 일할 때 재밌는 사람이고 싶어요.”

 

“첫 월급을 받으면 제가 살고 있는 곳의 사람들과 맛있는 걸 먹을 거예요. 다 모여서 맛있는 거 먹고, 그 다음엔 조금 조금 적금도 들고, 그리고 맛있는 거 또 먹고 노는데 많이 쓰지 않을까 싶어요. (어떤 노는 것이죠?) 여행이요! 사실 이번 여름에도 가고 싶었는데 성수기여서 너무 비싸고 그래서 포기했어요.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은?) 소박하게 영화도 보고 싶고, 아! 서핑도 배워보고 싶어요. 운전면허도 따고 싶었지만 너무 돈이 많이 들더라고요.”

 

▶ 희진은 내년 여름엔 바다에 다녀올 수 있을까?  ⓒ사진: 오매

 

인생에서 중요한 건 ‘사람 무시하지 않고 사는 것’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누구나에게 묵직하다. 정답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기에, 답변의 내용 자체보다 그걸 생각하게 된 계기, 예전의 답과는 달라졌다면 그 전환의 이유 같은 것이 더 마음에 맴도는 것 같다. 희진의 답 또한 그랬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요. 그런데 의미가 좀 달라요. 예전에는 나 진짜 많이 벌어서 복수할 거야, 보란 듯이 잘될 거야, 그랬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엄마 아빠한테 손 안 벌리려면 내 밥벌이는 해야지, 싶은 거예요. 복수를 하겠다, 보란 듯이 성공할 거다, 그런 생각 자체가 날 힘들 게 하는 느낌이에요. 부담스럽고. 그냥 내 인생에서 그런 일은 아웃시키고 싶어요.”

 

희진은 또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 무시 안하는 거”라고 했다.

 

“오빠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도 내가 여자라서, 나이 어려서, 힘이 약해서 그런 것 같아요. 알바할 때 사람들이 누굴 무시하는 것도요. (타인을) 무시하는 건 ‘내가 너보단 나아’ 같은 생각을 하면서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서인 것 같아요. 무시하는 사람은 안정감, 만족감, 자기 합리화 같은 걸 얻겠지만, 당하는 사람은 싫고 괴롭잖아요. 그럼 안해야 하는 거잖아요. 저는 안하고 싶어요. 저는 절대 안 무시할 거예요.”

 

처음 만나 우리가 인터뷰에 앞서 서로 알아가기 위해 자유연상 기법 같은 걸 해보았는데, 희진은 깨알 같은 칸 중 많은 칸에 ‘엄마’라고 썼었다. 엄마는 희진에게 마음 아프고, 걱정되고, 고생을 안했으면 좋겠고, 책임져야 할 것 같은 사람이다. 엄마가 희진의 인생에 감당해야 할 것들을 많이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 희진에게 엄마에 대한 ‘책임감’이 달라지고 있다. 그건 회피나 외면이라기보다는 자기 스스로를 먼저 소중히 세우는 다지기 같았다.

 

“엄마가 서울에 와서 같이 살겠다고 해요. 엄마는 날 챙겨준다고 하지만, 저는 내가 책임져야하는 거겠네, 라고 생각하죠.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같이 살고 싶지 않아요. 지금이 좋아요. 이렇게 얘기하면 엄마가 상처받을 수 있겠죠? 그래서 돌려서 얘기했어요. ‘서울에 오더라도, 내가 어리다고 챙겨야 한다는 부담 말고, 엄마 자신에게 더 집중하라고.’ 이렇게요.”

 

모여서 놀기, 잘 놀기, 지금 놀기!

 

희진이 인터뷰 후반으로 갈수록 강조한 게 있다. 바로 ‘놀기’다. 그것도 ‘지금, 놀기.’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희진의 고된 경험 이야기를 들으며 ‘어떻게 공감하고 같이 분노하고 위로할까’ 그랬었는데, 뒷부분으로 갈수록 많은 일에 지쳐있던 인터뷰팀 세 사람이 오히려 희진에게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인생 조언을 받아 적고 있었다.

 

“노는 게 중요해요. 잘 놀 줄 아는 사람이 일도 잘하고, 관계도 잘 맺고 그러는 것 같아요. 저는 뛰어노는 게 좋아요. 자전거 타고, 배드민턴 치고, 뛰어노는 것. 나중에 돈 모으고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나면 놀면서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예전 인문학 강의 들었을 때 ‘스쿨’의 어원이 ‘함께 모여 놀다’ 그런 뜻이래요. 놀면서 배우는 게 오래 가잖아요.”

 

지금 고3으로 졸업 작품을 만들고 있는데 그 작품의 주제는 ‘우리는 행복한가?’이다.

 

“어른들은 그러잖아요, 공부해야 할 시기가 있다고요. 그런데 사람마다 그게 똑같을까요? 꼭 열여덟 살은 힘들어야 하고 입시를 해야만 하나요? 그래서 이번 작품은 상상, 픽션 같은 건데 스스로 만든 유급제가 있어요, 학교에. 내가 스스로 유급할 수 있고, 그래서 고3이어도 요리하고, 친구들이랑 놀러 다니며 1년을 보내고. 그리고 시험은 프랑스처럼 철학을 풀어요. 그 때 나오는 문제가 그거예요. 우리는 행복한가?”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자는 말은 ‘없는데 있는 척, 있는데 없는 척’ 하자는 게 아니다. 어찌 보면 지금 내가 굉장히 힘들고 어렵다면, 그걸 알고 터뜨려야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저처럼 집안 사정으로 힘든 또래들에게는 ‘참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지금만 참으면 내년 되면 자유로워지잖아, 고3들도 다 그렇게 말하죠. 엄청 기대하며 살고. 그러나 내년엔 행복할까? 그리고 내년에 행복하기 위해 사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지금 힘든 거 불편한 게 있으면 그냥 터뜨렸으면 좋겠어요. 응어리로 안 담고. 내년만을 기다렸는데 그게 내년에 또 없으면 허무하잖아요.”

 

“괜찮다는 말을 너무 많이 안했으면 좋겠어요. 굳이 자기를 비관하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하면 더 안 괜찮아지는 것 같아요. 기댈 수 있을 때 기대고, 울고 싶을 때 울었으면 좋겠어요.”

 

가족의 격랑으로부터 망명한 희진의 모습이 망망대해에 나온 것처럼 눈앞에 장면이 그려졌다. 그 장면은 두렵거나 무서울 수도 있지만, 왜인지 자유롭고 어떤 것도 예정되어 있지 않아 두근두근한 느낌이다. 추석의 꽉 차고 그 속에서 괴로운 가족 같은 보름달의 모습보다, 비어있지만 외로워서 호젓한 그믐달이 그리웠듯. 안 그래도 희진은 단 하루라도, 바다에 가서 바다를 보고 몸을 꼭 담그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팀은 희진의 바다행을 응원하며 인터뷰 원고비 일부를 버스비로 다음날 보냈다. 희진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하고 싶은 건 해야죠! 하루는 옴빡 놀고, 하루는 푸욱 자고요.”  -  여성주의 저널 일다

 

-인터뷰: 오매, 비버, 조미리

-기사정리: 오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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