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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정 양립’은 왜 여자만?

일과 삶의 균형으로 패러다임 전환해야



육아휴직,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전환형 시간선택제(양육이나 간병 등의 사유로 일정 기간 근로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제도)…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는 이런 정책들은 누구를 대상으로 할까? 많은 이들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여성을 떠올린다.

 

한국 사회에서 ‘일-가정 양립’을 말할 때, 이때의 ‘가정’이란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나 가족 돌봄, 휴식 등 포괄적 의미로 쓰이기보다는 주로 출산과 육아에 한정되어 있다.

 

여성계에서는 “과연 일-가정 양립 지원 정책이 진정으로 여성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인가?”라는 문제 제기가 있어왔다. 일-가정 양립 지원 정책이 여성에게만 육아와 돌봄을 강요하고, 결국 남녀의 성역할 구도를 강화하게 된다는 비판이었다.

 

한편으로는 여성이 육아와 돌봄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한국의 현실이 쉽사리 바뀌지 않으니, 당장 노동시장에서 퇴출당하지 않으려면 이런 정책이 필요하다는 현실론도 있었다.


▶ 웹툰 <경력단절 극복하기> 중에서  ⓒ고용노동부 ‘고용률 70% 로드맵’ 홈페이지 employment70.go.kr

 

일-가정 양립 지원 정책이 ‘모성보호’?

 

최근 일-가정 양립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지난 9월 30일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골든브릿지빌딩 교육장에서 개최한 포럼 <‘일‧가정 양립의 올가미?’ -여성의 시간은 누구의 것인가>에서, 신경아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이같은 견해를 제시했다.

 

신경아 교수는 일‧가정 양립 지원 정책이 단지 ‘여성정책’으로 한정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이 정책이 “여성을 일터에서는 주변인으로, 가족 내에서는 돌봄의 책임자로 살게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법 조항과 정부 부처의 기획, 집행 내용을 보면 일-가정 양립 지원 정책이 실제로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현행법에서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규정을 찾아보면, 2007년 개정된 남녀고용평등 및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의 3장 ‘모성보호’의 하위 범주에 들어가 있다.

 

신경아 교수는 “이러한 법 조항은 결국 임신과 출산의 주체인 여성을 일차적인 지원 대상으로 삼게 되며, 그 결과 양육 역시 여성만의 역할로 전제하는 제도 설계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처럼 성역할 고정관념이 강한 사회에서 양육을 남녀 모두의 책임으로 전환해가기 위한 특별한 조치가 없는 이상, 일-가정 양립 지원 정책은 ‘여성노동자의 출산과 돌봄 지원 정책’으로 한정되기 쉽다”고 진단했다.

 

▶ 9월 30일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일․가정 양립의 올가미? -여성의 시간은 누구의 것인가> 포럼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일-가정 양립은 모든 노동자의 문제다

 

현재 일-가정 양립 지원 정책의 관장 부처는 여성가족부와 고용노동부다. 정책의 방향이나 목표를 설정하는 역할은 여성가족부가 맡고, 각 기업과 기관을 대상으로 예산을 집행하는 건 고용노동부가 담당하는 방식이다.

 

신경아 교수는 “여성가족부의 계획은 주로 홍보와 계몽, 평가 등의 수단에 의존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예산 집행과 체계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예산 집행은 고용노동부를 통해 이뤄지지만, 고용노동부가 이 정책을 자신의 주요 업무로 삼고 있는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올해 1월 정부 각 부처가 발표한 ‘국민행복 분야 합동 업무 보고’를 사례로 들었다. 여성가족부는 일-가정 양립 지원 정책을 핵심 사업으로 설정한 데 반해, 고용노동부는 관련 내용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

 

또 고용노동부는 임신-출산 근로자 보호, 육아-보육 지원, 일-가정 양립 기업 지원 등의 사업을 수행하면서, 이를 ‘여성 대상’ 사업으로 규정해 ‘여성 경력유지 및 경력단절 예방 정책’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한국 사회에선 어떤 정책이 ‘여성 정책’으로 한정되면, 그 정책은 사회 모든 분야에 통합(성주류화)되지 못한 채 주변화되기 십상이라는 것도 우려 지점이다.

 

여성가족부는 올해 ‘일-가정 양립 사각지대 해소’라는 목표를 설정했다. 신경아 교수는 “사각지대라는 표현이 보여주듯이, 일과 가족을 양립하는 문제를 노동자 가족의 필수 과제로 보기보다, 어려움을 겪는 일부 집단의 문제로 제한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 고용노동부 캠페인의 일환으로 악동뮤지션이 부른 ‘일家양득’ 송 ⓒworklife.kr

 

일-삶의 균형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자”

 

신경아 교수는 애매모호한 ‘일-가정 양립’이 아닌 ‘일-(가족)돌봄 양립’이 더 적합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유럽의 ‘일-삶 균형 정책’을 언급했다.

 

‘일-삶 균형 정책’에서 돌봄은 꼭 ‘가족 돌봄’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기 돌봄’도 포함된 개념이다. 신 교수는 “노동중심적인 한국 사회에서 아직 낯선 ‘돌봄’이라는 용어의 의미와 필요, 관련 정책의 내용을 사회적 차원에서 구성해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성역할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하며, “여성과 남성이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는’ 가족 체제로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일-삶 균형 정책이 제대로 구현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포럼에서는 가족과 돌봄의 개념을 확장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조주은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현행 일-가정 양립 지원 정책은 ‘기혼여성+기혼남성+미혼자녀’로 구성된 핵가족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가족’의 개념에서 비혼, 한부모, 무자녀 가족을 소외시키며 소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또한 돌봄에 대해서도 “인간이라는 주체가 돌봐야 할 대상에는 아이뿐만 아니라 동물, 자연, 지역공동체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주은 입법조사관은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입법 과제로, 다양한 가족 형태와 가족구성권이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 등이 제정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한부모 가족이 육아휴직을 사용할 때는 통상임금의 100%를 지급하는 방안, 1인 가구에겐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반려동물이 아프거나 죽었을 때 돌봄 휴가나 장례 휴가를 쓸 수 있는 규정 등도 제시했다.  (나랑 기자)  여성주의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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