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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풀이되는 대학 성차별 강의…문제의 핵심은?
한양대 필수 이수 강좌 ‘HELP 사태’를 보며
※ 한양대에서 또다시 성차별 강의 논란이 제기된 ‘HELP 사태’에 관해, 한양대 반성폭력‧반성차별 모임 <월담>의 호준 활동가로부터 문제를 짚어봅니다. - 여성주의 저널 <일다>
한양대 HELP4 논란을 아시나요?
“그동안 이 수업을 들었던, 그리고 들어왔던 한양대 학우들과, 이를 인지하지 못했던 <월담>을 비롯한 학생자치단위들도 이번 사태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이러한 부적절한 강의가 수 년 간 유지되어 온 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이에 대해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했고,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016년 5월 11일 기자회견 中-
지난 5월 11일 한양대 학생회관 앞 한마당에는 한양대 반성폭력‧반성차별 모임 <월담>과 정의당 한양대 학생위원회, 인권네트워크 <사람들> 한양대 모임, 세 개의 학내 단체가 HELP4(한양리더십) 강의에서 발생한 논란에 관해 학교 측의 책임을 묻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 문제가 된 HELP(한양리더십)4 강의 자료 중 하나. ⓒ월담
헬프(HELP·Hanyang Essential Leadership Plus)4는 한양대 4학년 학생들이 1학기에 수강해야 하는 필수 이수 과목으로, 온라인 강의입니다. 여기서 ‘마음을 훔쳐라! 욕망을 자극하라! 꿈을 팔아라!’라는 소제목 아래 여성혐오와 외모 차별, 황금만능주의 관점이 담긴 사진들을 ‘우수 광고 사례’라며 소개한 내용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이를 확인한 총학생회가 5월 9일 HELP 강의를 운영하는 한양인재개발원 리더십센터 측에 해당 사진을 즉각 삭제할 것과, 책임 있는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리더십센터 측은 다음 날인 10일 “교육콘텐츠 관리 방식에 부족함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수강생 여러분께 큰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는 사과문을 냈습니다.
그러나 리더십센터는 해당 사진이 ‘교육상으로 부적절’했다고 밝혔을 뿐, 사과문 어디에도 이 문제의 본질인 여성혐오, 외모 차별 등에 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과연 이 논란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요.
반복되는 성차별 강의…문제는 젠더 감수성!
사실 ‘꿈과 비전을 품고 미래를 준비하는 차세대 글로벌 CEO를 육성한다’는 목적을 내걸고 있는 HELP는 이번에 논란이 된 부분 외에도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강의가 대부분 취업을 목적으로 진행됩니다. HELP 시리즈의 마지막 단계인 HELP4 강의에서 ‘자기소개서 작성’을 중간고사 대체 과제로 진행한 것이 그 상징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학을 학문의 전당이라고 말하는 것이 진부한 얘기가 되어버린 시대인지 모르겠지만, 자소서 쓰기를 실습하는 대학이라니 그 존재 이유를 묻게 합니다. 더욱이 가부장적 통념과 여성혐오 등을 그대로 담고 있는 내용을 학생들에게 가르친다면, 그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 헬프4 사태를 규탄하는 이미지. ⓒ월담
이번 HELP4 논란 외에도 한양대학교의 젠더 감수성이 어느 수준인지 드러내는 일들은 캠퍼스 곳곳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습니다.
2011년 ‘성폭력은 남성에게 내재된 고유한 본능’, ‘남자들은 도도하게 굴며 남성에게 굴욕감을 주는 매끈한 여자를 보면 성희롱 또는 강제적인 성행위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등의 강의로 폐강운동이 일었던 ‘성의 이해’ 논란이 대표적입니다. 학생들이 문제를 제기했던 당시, 대학 내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젠더’ 관련한 의제를 다루는 기관이었던 양성평등센터는 ‘명백한 성희롱으로 볼 수 없어 도와줄 수 없다’고 했었습니다.
2013년에 신 모 강사는 강의 도중 ‘이대 교수들은 꼴페미다’, ‘게이는 부모한테 불효하는 거다’ 라는 혐오 발언을 해 논란이 되었습니다. 당시 사건을 제보 받은 총여학생회에서 사과를 요구하자, 신 씨는 ‘대한민국 교육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라며 ‘어디 학생이 교수를 무시하고 건방지게 메일을 보내냐’고 적반하장 격으로 나왔습니다. 참고로 신 씨는 2014년에도, 2015년에도 한양대에서 강의를 맡았습니다.
올해는 HELP4 사태에 이어, 바로 이번 학기에도 모 강의에서 교수가 ‘여학생들은 취업, 학점 걱정을 크게 하지 않아도 결혼을 잘하면 된다’, ‘여자들은 결혼 적령기를 놓치면 고생한다’는 성차별 발언을 했습니다. <월담>이 문제를 제기하자 해당 교수는 ‘아버지의 심정에서 나온 조언이었다’며, 뒤늦게 석연치 않은 사과를 한 바 있습니다.
우리가 침묵하면, 문제는 계속된다
HELP4 강의 논란을 보며, 물론 그 책임이 학교 측에 있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 필자는 그동안 이 강의를 들어왔던 우리 학생들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강의가 수 년 간 유지되어 온 것은 지금까지 학생들이 수업 내용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거나,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월담>은 이미 2012년에 HELP4 강의에 이러한 부적절한 사진이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습니다. 홈페이지 월담넷(woldam.net)의 ‘차별 돋는 강의실’ 코너에는 2012년 9월 1일자로 이 사진들이 올라와 있습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에 그쳤습니다. 적극적으로 학내에서 공론을 제기하지 않았고, 이 사진들을 삭제하고자 하는 의지조차 부족했죠. ‘4학년이니까’, ‘곧 졸업하니까’, ‘우리 말고 누군가가 문제 제기하겠지’하며 넘어갔던 것이 4년간 이어졌고, 결국 2016년에 와서야 삭제되었습니다.
만약 2012년 <월담>이 적극적으로 공론을 제기했다면 어쩌면 필자를 비롯한 2016년에 4학년이 된 학생들은 이러한 불쾌한 내용의 강의를 듣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죠. 그때의 침묵이 약 4개 학년의 1만4천명의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니, <월담>의 구성원으로서 더욱 큰 책임감을 느낍니다.
학교는 정말 개선의 의지가 있는가!
▶ 개강 첫날인 9월 1일 기자회견을 마치고 <월담>은 리더십센터에 입장문을 전달했다. ⓒ월담
다시는 이같은 일들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학교 측의 성의 있는 태도 변화와 결단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5월 11일 기자회견에서, 한양대학교에 네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첫째, 교육 콘텐츠 점검 TFT(Task Force Team; 특정한 목적을 위해 각 부서에 선발된 이들이 임시로 팀을 만들어 활동하는 것)에 높은 수준의 검증된 젠더 감수성을 가진 인력을 포함하거나, 학생 참여를 통한 개선 체제를 만들 것. 둘째, 젠더 감수성을 함양할 수 있는 수업을 확충하고, 학내 구성원들의 젠더 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할 것. 셋째, 교수·강사 대상의 인권교육을 의무화하고, 강의평가에 성폭력·성차별 언행을 평가하는 항목을 추가할 것. 그리고 넷째, HELP 강좌의 관점과 실효성, 강제성 등을 전면 재검토할 것.
그러나 지난 8월 17일 인재개발원측에서는 ‘교육 콘텐츠 점검 결과’ 성차별, 선정성, 인종, 외모 등 10개 차별 항목에 따른 내용들을 확인하고 이를 삭제, 수정, 유지하였다고 밝혔을 뿐입니다. <월담>이 요구한 네 가지 사항 중, 총학생회 참여를 통해 교육 콘텐츠 점검 TFT를 구성하는 부분만 수용되었고, 나머지는 고려조차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월담>은 인권네트워크 <사람들> 한양대 모임과 함께 2학기 개강 첫날인 9월 1일, 지난 5월에 이어 같은 장소에서 또다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 날 회견에선 2013년도 한양대 21대 총여학생회 ‘밀담’의 회장단 및 집행부 일동 이름으로 HELP 사태에 관한 입장문이 공개되었습니다. ‘밀담’은 특히 2013년도 자신들의 공약 사항이었던 ‘강의평가에 성폭력·성차별 언행의 평가·고발 항목 추가’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한양대 측에 반성폭력·반성차별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유의미한 노력을 기울이라고 요구했습니다.
학교에도, 일터에도 더 많은 <월담>이 만들어지길
한양대학교가 유난하거나 특별하기 때문에 이러한 논란이 발생했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저 이 사회의 부족한 젠더 의식이 한양대에도 투영되었을 뿐이지요. 이를 바꿔내기 위해서는 <월담>이 한양대에서 하고 있는 것처럼, 다양한 영역에서 왜 그것이 성차별인지 혐오인지 알리고 교육하는 과정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평등한 대학과 사회를 향한 첫 발걸음이겠지요.
이를 위해서 다양한 곳에서 이런 문제 의식에 공감하는 이들이 모여 <월담>과 같은 모임을 만들고, 학교에서든 일터에서든 공동체에서든 함께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하여 이 사회가 좀 더 성평등해지기를 기원합니다. 성평등한 세상을 향한 그 길에 저도, 그리고 <월담>도 늘 함께하겠습니다. (호준/ 월담 활동가) - 여성주의 저널 <일다>
※ 기사에 언급된 성명서, 기자회견문, 사과문, 입장서 등은 <월담> 홈페이지 woldam.net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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