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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여, ‘자기방어 기술’을 배우자!

크라브마가 지도자 최하란씨를 만나다



“작년에 의학전문대학원에 다니는 남자가 여자친구 뺨을 수십 대 때렸던 일이 있었죠. 한 대는 맞을 수 있어요. 그런데 한 대 맞고 나면 정신을 차려야 돼요. 그 자리를 피하거나, 방어하거나, 반격할 수 있어야 됩니다.”

 

서울 합정동에 위치한 스쿨오브무브먼트(School of Movement; 움직임의 학교)에서 열린 ‘크라브마가’ 오픈 특강 시간. 크라브마가 지도자 최하란씨는 누군가 내 뺨을 때리거나 칼로 찌르려고 할 때 막는 법을 가르치면서, 중간 중간 여성에 대한 폭력 사건들을 언급했다.

 

‘크라브마가’ 오픈 특강에 참가하다

 

기자는 지난 8월 자기방어 기술을 배우러 ‘크라브마가’ 오픈 특강에 참가했다. 수업의 시작은 달리기였다. 최대한 상대와 부딪치지 않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뛰어야 한다. 5분 정도 지났을까, 헉헉 숨이 차오른다. 이렇게 뛰어본 게 얼마만인지… ‘아, 이거 언제 끝나지?’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올 무렵, 선생님이 양손에 긴 봉을 가로로 들고 나를 향해 다가온다. 피해서 뛰어야 한다. 봉이 저 멀리 있는데도 괜히 몸을 숙여 피하게 된다. 선생님은 끝까지 봉을 봐야지, 지레 피하지 말라고 소리친다.


▶ 스쿨오브무브먼트에서 크라브마가 수업에 참가한 여성들  ⓒ스쿨오브무브먼트

 

다음은 터치 게임. 두 명씩 짝을 이루고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쫓아 터치한다. 많은 사람들이 뛰고 있는 틈 사이로 내 파트너를 쫓아가야 한다. “체인지!”라는 외침이 들리면 바로 역할을 바꾼다. 앞선 달리기로 이미 다리가 풀려 파트너한테 계속 등짝을 맞았다.

 

10분 넘게 뛰고 나니 심장이 내 심장이 아니다. 1분 쉬고 킥과 펀치 훈련을 시작했다. 상대의 급소를 발로 차고 주먹을 날리고 밀치고 도망가기를 반복한다. 평소에 잘 해보지 않던 동작을 하니 어색하다. 하지만 늘 남자에게 맞거나 위협을 당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여자’인 나도, 킥과 펀치를 날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묘한 즐거움과 해방감이 느껴진다.

 

이날 초급반엔 남성들이 더 많았지만, 중상급반엔 여성들이 더 많이 보였다. 나이대도 다양했다. 크라브마가의 어떤 매력이 여성들을 끌어당기고 있을까?

 

크라브마가(KRAVMAGA)는 헝가리 출신의 유대인 ‘이미 리히텐펠트’(Imi Lichitenfeld)가 만든 격투 시스템이다. 영어로는 Contact Fighting, 즉 몸을 부딪치면서 싸우는 과정을 뜻한다. 우리말로는 ‘근접격투’라고 하며, 자기방어(Self Defence) 기술을 포함하고 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군더더기 없는 말투의 소유자 최하란씨는 스쿨오브무브먼트에서 요가, 케틀벨 운동과 더불어 자기방어 기술 중심으로 크라브마가를 가르치고 있다. 최하란씨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크라브마가는 단순한 테크닉 훈련이 아니라 우리 삶을 더 자유롭고 편하게, 다이나믹하게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소개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 크라브마가 지도자 최하란씨.   ⓒ 일다

 

-크라브마가를 배우는 여성들이 많이 보이네요. 여기 와 보기 전엔 여성참가자는 극소수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여자분들에게 ‘크라브마가에서 뭐가 좋아요?’ 물어보면 다들 ‘재밌다’고 얘기해요. 수업시간에 이렇게 많이 웃을 줄 몰랐다고. 직접 해보기 전에는 무섭고 힘들 줄 알았다, 사람을 메쳐야 되는 줄 알았다, 나는 못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했대요.”

 

-‘힘들다’보다 ‘재밌다’는 대답이 많다니 의외인데요. 범죄 상황에서 방어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에 무겁고 힘든 분위기를 떠올리기 쉽잖아요.

 

“물론 범죄 상황은 무섭고 끔찍한 상황이죠. 더럽거나, 두려워서 싫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해서 똑같이 두렵고 끔찍한 방식으로 훈련할 필요는 없어요. 축구선수들도 힘든 훈련만 하는 게 아니라 미니 게임을 자주하면서 축구를 즐기잖아요. 뭔가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은 ‘즐거움’이기 때문에 수업에 즐거움의 요소를 많이 두려고 합니다. 즐거우면 더 잘 기억할 수 있고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거든요.”

 

-크라브마가가 무엇인지 독자들에게 간략히 소개한다면…

 

“크라브마가를 인터넷에 검색할 때마다 ‘아직 우리가 할 일이 많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최고의 인간병기’, ‘살인무술’ 이런 단어가 많이 나오고, 사진이나 홍보 영상도 너무 무섭거나 강한 것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더라고요.

 

크라브마가는 자기방어와 근접격투에 대한 시스템이에요. 육체적인 능력이나 성별,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빨리 배워서 빨리 써 먹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고안됐죠. 무술이라고 볼 수도 없고 시합을 하는 것도 아니에요. 오래 갈고 닦아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배워서 바로 써 먹을 수 있어요. 몸을 지키는 기술뿐만 아니라 자기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도 배워요. 운동적인 요소도 들어있고요. 굉장히 실용적인 시스템이라고 보는 게 정확합니다.”

 

-외국에서도 크라브마가를 배우는 사람들이 많나요?

 

“제가 속해있는 단체가 KMG(KRAVMAGA GLOBAL)인데요, 북유럽과 서유럽을 중심으로 세계 60여개 나라에 퍼져 있고, 지도자만 천명이 넘어요.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남성들이 더 많긴 한데, 인도의 경우는 남성보다 여성들이 더 많이 배우고 있다고 합니다.”

 

-평균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물리적인 힘이 약하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물리적으로 자신을 방어할 수 있을까요?


“일단 우리는 일반인이잖아요. 일반인의 호신술은 상대를 제압하는 게 아니라 위험 상황에 빠지지 않는 것, 벗어나는 것이 목표에요. 여성은 육체적으로 남성에 비해 불리한 게 사실이에요. 게다가 범죄자들은 우리보다 먼저 모종의 계획을 세우거든요. 범행 상대로 삼을만한 약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힘, 속도, 무게, 신장 여러 측면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들이 우리를 얕본다’는 그 점에 바로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틈이 있어요. 그들은 여성을 얕보고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공격해 와요. 이건 몸집이 작은 사람이 반격하기에 유리한 거리에요. 심지어 (공격자들은) 고압적으로 굴기 위해서 턱을 쳐들고 가슴을 들고 과한 행동을 해요. 그건 자신의 중요한 급소의 부위를 노출시키는 상태거든요. 공격하려고 하다 보니 방어 태세가 허술해지는 거죠. 그걸 이용해서 단 한번, 두 번의 행동으로 그 사람의 공격 의지를 꺾어버릴 수 있어요.

 

또, 공격하려는 사람의 계획에는 상대방이 자기를 무너뜨릴 거라는 시나리오는 거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생각하지 않은 일이 벌어지는 순간, 당황해서 멈추게 돼요. 아주 작은 시간이 생길 거예요. 단지 몇 초일수도 있죠. 그 때 위험한 장소에서 빠져나올 수 있어요.”

 

▶ 최하란씨가 크라브마가 시범을 보이고 있다.  ⓒ 일다

 

-저는 범죄 상황에 처하게 되면 괜히 덤볐다가 더 큰 일을 당하지 않을까 두렵거든요. 만약 강간을 당한다면 어떻게든 증거를 남겨 빨리 신고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지, 강간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안 해봤어요.

 

“전 수업에서 ‘내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자주해요. 범죄 상황에 처하면 여성들이 ‘이제 나는 끝이구나’라고 많이들 생각하거든요. 그러면 위축되고 극한 생각도 하게 되죠. ‘괜히 내가 뭔가 해서 죽임을 당하느니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해요. 어떻게 할 것인가는 개인의 선택의 문제겠죠. 그래도 여기서 싸워볼 것인가, 가만히 있을 것인가. ‘당신은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극한 상황에서도 무언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경험하게 된다면, 더 현명하고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겠죠. 알면 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에 덜 두려워져요. 예를 들어서 누군가 나를 커터칼로 위협해서 은신처로 끌고 간다고 가정했을 때, 방어하거나 반격하다가 커터 칼에 찔리는 것이 죽을 확률이 높을까요, 범인의 은신처로 끌려가는 게 죽을 확률이 높을까요? 피는 나겠죠. 아플 거예요. 하지만 찔리는 것이 나에게 더 유리할 수 있죠. 범죄자가 원하는 의도에 따라서 선택하는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하는 거고, 그래서 ‘내가 끝이라고 했을 때 끝난 것’이라고 강조하는 거예요.”

 

-아까 ‘위험 상황을 피하는 것’도 크라브마가에서 중요한 요소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거기에 대해 좀더 설명해 주시겠어요?

 

“크라브마가는 무조건 싸우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아무리 크라브마가를 잘 한다고 해도 (누군가 나를 공격해 오면) 내 몸에 해를 안 입을 수가 없어요. 위험한 상황을 미리 판단해서 싸움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게 좋겠죠. 그래서 수업 내용에는 공격자의 폭력 의지를 좌절시키기 위해서 어떤 행동이나 몸짓을 취할 것인가도 포함돼요. 단호한 태도로 ‘그만하세요! 저리 가요!’라고 외칠 수도 있고, 주변에 신고해 달라고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어요.”

 

-반격만이 능사가 아닌 거네요.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법이 적절할지 판단하는 능력도 필요하겠어요. 제가 수업에 참여해보니, 달리기부터 시작하더라고요.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인 건가요?

 

“달리면 심장이 엄청 빨리 뛰거든요. 땀도 많이 나게 되고요. 숨이 너무 차서 헉헉거리면서 당혹스럽고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죠. 이런 상태가, 마치 범죄 상황처럼 극도의 긴장과 스트레스에 처했을 때 사람이 경험하는 육체적인 상태입니다. 테크닉을 수련하기 전에 이렇게 달리기를 해서 육체적인 준비를 시키는 거죠.

 

달리기가 끝나면 터치 게임을 하죠. 여러 사람이 뛰어다니는 어지러운 상황에서 공격자를 피해 도망가면서도, 다른 사람과 부딪쳐서 다치지 않게 조심해야 돼요. 스캐닝(Scanning)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주변을 인식하는 걸 훈련하는 거죠.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됩니다. 만약 내가 도심에서 쫓기는 상황이 됐을 때, 공격자에게서 도망쳤다고 해도 주변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바람에 갑자기 튀어나온 차에 치인다면 나를 지키지 못한 것이거든요.”

 

-설명을 들어보니, 수업이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구성돼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크라브마가가 여성들한테 더 필요하다는 말씀도 하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특히 한국여성들은 몸을 다이나믹하게 움직이는 부분에서 굉장히 위축되어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조용히 해라, 얌전해라, 다소곳해라’라고 사회적으로 강요받고 남들이 원하는 ‘예쁜 몸’에 나를 욱여넣어야 하잖아요. 그런 걸 깨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저는 여성들이 움직이고 운동하면서 자신이 갖고 있는 틀을 깨고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돕는 거죠.”

 

▶ 최하란씨는 2015년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을 기념해 No Woman No Cry라는 제목으로 여성들을 위한 자기방어 수업을 열었다. 그리고 수익의 전액을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쉼터인 나눔의집에 기부했다.  ⓒ스쿨오브무브먼트

 

-스쿨오브무브먼트에서 크라브마가를 꾸준히 배운 여성들이 어떤 변화를 경험하는지 궁금합니다.

 

“일단은 스캐닝, 즉 ‘내 주변의 상황을 파악하는 게 잘 된다’고 말해요. 밤에 술 취한 사람이 옆에 지나갈 때 전에는 그냥 막연하게 불안하고 위축됐다면, 이제는 그 상황을 인지하고 더 안전한 길을 찾아 갈 수 있게 됐대요. (똑같이 피해 가더라도) 이제는 스캐닝이 가능하기 때문에 전에 비해 덜 불안하고 자유로워진 거죠.

 

또 한 여성은 프리랜서 편집자인데, 출판사 남자 사장이 종종 밤늦게 전화해서 술자리로 불러내곤 했대요. 그 전까지는 응해주다가, 크라브마가를 배우고 나서는 거절할 힘이 생긴 거예요. ‘싫다’고 말했더니 오히려 상대가 다음날 ‘어제는 술 취해서 실수한 것 같다, 죄송하다’는 문자를 보내고, 매번 늦게 주던 임금도 제때 주더래요.

 

크라브마가를 배우고 실제로 폭력적인 상황이 생겨서 이걸 써 먹어 봤다는 사람은 소수에요. 하지만 삶에서 좋은 혜택을 입었다는 사람은 정말 많아요. 단순히 어떤 테크닉을 외우는 걸로 크라브마가를 생각하면 너무 협소한 것 같아요. 크라브마가를 통해 훨씬 다채롭고 다이나믹한 삶을 살아볼 수 있어요.”

 

-체육시간이나 성교육 시간을 통해서 여학생들이 크라브마가를 배우게 된다면, 세상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것 같다는 상상을 해보게 되네요. 크라브마가를 확산시키기 위해서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가요?

 

“일단 제가 있는 공간 스쿨오브무브먼트에서 꾸준히 수업을 하는 게 더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겠죠. 2014년부터는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 “No Woman No Cry”(여인이여 울지 말아요; 자메이카 가수 밥 말리의 유명한 노래 제목)이라는 여성들을 위한 자기방어 특강을 열었어요. 작년부터는 11월 25일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에도 여성을 위한 자기방어 수업을 하고 있죠. 보통 이런 시기엔 포럼이나 토론회처럼 머리 쓰는 프로그램이 많은데, 몸을 쓰는 프로그램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남성이든 여성이든 아동이든 청소년이든 노인이든 모두에게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필요해요. 하지만 유난히 여성들을 가르칠 때 기분이 더 좋고 에너지를 주고 싶은 마음도 더 생기는 게 사실이에요. 사명감도 느끼고요. 더 많은 여성들과 수업을 하고 싶어요.”

 

크라브마가 오픈 특강이 끝나고 돌아와 며칠 동안은 온 몸이 쑤셨다. 달라진 점은, 내 몸의 ‘공격본능’이 살아났다고 해야 할까. 버스를 기다리다가 괜히 발차기를 해 본다든지, 길을 걷다가 허공에 펀치를 날려보곤 했다. 저기에서 누군가가 나를 공격해 온다면 어떻게 방어할 수 있을까 상상도 해 보게 됐다.

 

되살아난 몸의 자신감을 더 많은 여성들과 몸 부대끼며 뿜어보고 싶다. No Woman No Cry! 여자들이여, 자기방어 기술을 배우자!!  (나랑 기자)  여성주의 저널 일다 

 

▷ 크라브마가 9월 17-18일 한가위 특별수업: http://cafe.daum.net/gaiayoga/SNXO/241

▷ 스쿨오브무브먼트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realschoolof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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