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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새지평

‘아무도 돌보지 않는 자’만 생존한다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6.09.15 12:20

‘아무도 돌보지 않는 자’만 생존한다

<돌봄의 세대 전가>③ 자녀의 시장중심 삶 지원하는 조부모



※ 취업부모의 양육 책임과 부담이 조부모에게 전가되는 이른바 ‘조부모 양육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돌봄의 세대 전가’ 현상이 왜 발생하였으며 어떤 문제를 대두시키고 있는지,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기사를 연재합니다. 필자 김양지영 님은 여성주의 연구활동가입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조부모 양육은 사회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까?

 

한국처럼 장시간 노동이 만연한데다 양육에 대한 공적 지원이 충분치 않은 사회에서는 취업부부가 조부모로부터 양육 지원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너무도 당연한 일처럼 인식되고 있다. 게다가 정부나 지자체도 조부모가 손주 양육을 잘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조부모에게 돌봄 비용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지원책을 모색하고 하다.

 

현실적으로 손주를 양육하는 많은 조부모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지원책은 일정 부분 모색될 수 있다. 그러나 조부모 양육이 앞으로 미칠 사회적 영향은 고려하지 않은 채 이뤄지는 각종 지원책들은 단기적인 응급 처치일 수 있다. ‘대안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가 아니라, 조부모 양육이 미칠 사회적 영향을 고려하고 그러한 토대 위에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와 같은 조부모 돌봄 지원이 미칠 사회적 영향은 무엇인가? 과연 조부모가 손주를 돌봄으로써 취업부부의 시장노동을 지원하는 일이 고무적이고 긍정적인 것인가와 연결되는 질문이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취업부부는 자신의 아이를 자신의 부모에게 맡기고 있다. 조부모는 손주 돌봄을 통해 취업부부들을 지원하는 것이 자녀의 안녕을 위한 것이자 부모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다. 취업부부는 자신의 부모가 아이 돌봄을 지원할 것이라는 당연한 기대 속에서 돌봄 지원을 받으며,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하고 있다.

 

부모로부터 돌봄을 받아왔고, 이제는 자녀를 양육하며 돌봄을 해야 할 취업부부는 또다시 부모에게 자녀 돌봄을 맡기고 있다. 이로써 취업부부는 아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돌봄에서 자유로우면서 동시에, 돌봄을 하지 않음에 따라 돌봄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 조부모가 손주를 돌봄으로써 취업부부의 시장노동을 지원하는 것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까.  ⓒ김양지영

 

손주 양육에 가사노동까지 책임지는 조부모

 

부모로부터 자녀 돌봄을 지원받는 취업부부들은 부모와 동거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동거하지 않으면서 지원을 받고 있다. 부모가 동거를 하는 경우, 보통 취업부부가 가사와 육아를 할 물리적인 시간이 안 된다는 판단 하에 아이 출생 후에 동거를 한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조부모가 가사와 육아를 전적으로 맡는다.

 

그런데 동거하지 않는 경우에도, 가사와 육아를 하는데 있어 서는 동거하는 것이나 크게 다르지는 않다. 보통 자녀들의 퇴근 시간이 늦기 때문에 조부모는 저녁식사까지 준비하고 뒷정리까지 하는 경우가 많다.

 

서인아 씨의 어머니는 아파트 옆 동에 살면서 아침마다 아이를 봐주러 인아씨의 집에 와서 집안일까지 전담하고 있다.

 

“바로 옆 동에 살면서 인제 출퇴근을 하세요. 친정 어머니가 저 출근할 때쯤에 오셔서 저 퇴근하면 집에 가시는. 데리고 주무시지는 않구요. 잘 때는 제가 같이 자고 퇴근하시는 그런 시스템으로. 아무래도. 원래는 목적은 애 봐주신다고 그렇게 하시는데 아무래도 집에 가만히 애만 봐주시진 안잖아요. 집안일도 다 해주시고, 저희 어머니가 어머니 성격상 이렇게 뭘 쌓아두거나 안 치우고 있는 걸 못 보시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그냥 애만 보라고 아무리 얘길 해도 그냥 습관적으로 다 치워놓고 애기도 보고 이렇게 하시고…. 어머니가 거의 저녁 챙겨주시기는 하는데. 저희 어머니가 뭔가 이렇게 딱 밥을 먹고 끝까지 치워놓고 가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리시는 성격이라서.”

 

부모로부터 돌봄 지원을 받는 많은 취업부부들은 부모를 통해 가사의 상당 부분을 해결하고 있다. 조부모는 성인 자녀들이 출근하기 전부터 퇴근하는 시간까지, 자녀의 집 혹은 자신의 집에서 손자녀를 양육할 뿐만 아니라 성인자녀를 위한 가사까지도 책임지고 있다. 이는 취업 부부가 책임져야 할 가사와 육아 역할이 조부모에게 전가된 것으로 ‘돌봄의 세대 전가’ 현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시장노동에 통합되지 못한채 ‘잠식되는’ 돌봄노동 

 

그렇다면, 조부모는 무엇을 위해 성인자녀를 대신하여 돌봄 역할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돌봄 지원은 어떤 결과를 낳는가? 조부모의 이러한 돌봄 지원은 자녀들이 마음 놓고 직장 생활을 하게 도와주려는 데 있다.(백선정 외 2011, 최인희 외 2012) 자녀 세대의 안녕을 위한 것이고, 그 중심에는 시장노동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자리 잡고 있다.

 

취업부부들은 자신들의 부모의 돌봄 지원 덕분에 시장노동에 집중함으로써, 아이 출생 전후 크게 달라지지 않은 조건에서 일하게 된다. 이들은 퇴근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으며 이전과 다름없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 취업부부들 가운데는 일상적으로 야근을 하거나 주말근무를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조부모의 돌봄 지원을 통해 일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며, 이분들의 지원이 없었다면 일할 시간이 항상 부족한 게 문제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조부모의 돌봄 지원에 따라 자녀 세대인 취업부부의 삶이 시장노동 중심으로 구성되다 보니, 이들에게 돌봄을 할 시간은 항상 후순위로 밀리고 돌봄이 노동시장에 잠식되는 결과를 낳는다. 

 

최수경 씨는 직장 다니느라 너무 피곤해서 집에 와서 아이를 빨리 씻겨 재우고 싶은 마음이 크다며, 자신이 아이랑 있을 때 최선을 다한다는 말은 못하겠다고 말한다. 그녀는 자신을 저녁 8~9시쯤 집에 와 ‘재우는 엄마’로 명명한다. 취업부부는 시장노동을 하느라 이미 지쳐서 돌봄을 할 시간도, 여력도 없다. 

 

취업부부들의 시장노동 중심적인 삶은 돌봄을 최소화하면서 시장 영역에서의 성공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취업부부들 상당수는 조부모의 지원 덕분에 생긴 시간을 일 외에도 학업, 네트워크 쌓기(술, 골프 등), 시험 준비 등을 위한 시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렇게 일상을 시장중심으로 구성하는 취업부부들은 돌봄을 최소화함으로써 돌봄보다는 시장노동에 더 가치를 둔다. 이들의 이러한 시장중심적 사고는 돌봄을 ‘시장 헌신의 제약 혹은 걸림돌’로 보게 한다. 돌봄을 해야 해서 시장에 헌신할 수 없는 상황을 억울함, 불공평함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장재혁 씨는 밤늦게까지 일하며 자신의 에너지를 다 쏟고 싶지만, 아이들을 봐야 해서 그걸 못하는 게 어려움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주중에는 2일 정도 밤 9시를 전후해 집에 들어가 조부모를 대신하고 있고, 주말 중 토요일은 아내가 출근해 아이들을 보고, 일요일은 자신의 밀린 일을 하고 있다. 

 

“음~ 아 그게 좀 막 밤늦게까지 일하고 싶은데 아이들 때문에 일을 포기를 하고, 좀 애들이랑 같이 (있는) 시간도 아이들 양육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다 못 쏟는단 느낌은 사실 집사람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하곤 있거든요. 그게 좀 제일 저는 개인적으로 좀 아쉬운 부분인거구요. 양육을 하면 하면은 좋죠. 하면 좋긴 한데. 그런데 모르겠어요. 너무 이렇게 성과주의적이고 그런 좀 우리나라 사회 시스템에 저희들이 돼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  지금까지 부모로부터 돌봄을 받아온 취업부부는 또다시 부모에게 자녀 돌봄을 맡기고 있다.  ⓒ김양지영

 

돌봄이 무엇인지 모르는 세대

 

취업부부의 시장중심적인 인식은 돌봄 노동을 시장노동에 비해 ‘시간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일’로 인식하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이지영 씨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에 가치를 매기는 방식인 ‘보상이 주어지는지’ 여부와 ‘보상액이 얼마인지’를 기준으로 시장노동과 돌봄 노동을 평가하고 있다.

 

“제가 하루 종일 봐본 결과 24시간 애한테 집중해서 봐주는 게 대개 힘들잖아요…. 나랑만 있으면 그때부터 일대일로 달라붙어서 해줘야 되니까 그게 너무 힘들잖아요. 그래서 시간의 질은 대개 떨어지더라구요. 같이 있으면 거의 애 방치하게 되고, 막 미루게 되고, 피곤해 피하게 되는데. 차라리 그냥 다니는 게 낫지 않나 그런 생각을… 저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금융권이 다른 데보다 보수 같은 것도 괜찮고 쫌 여직원들이 일하기 깔끔한 환경 그런 게 있으니까… 만약에 내가 지금보다 보수가 좀 더 낮고 더 열악한 근무환경이었으면, 그야 내가 이제 육아로 왜냐면 거기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있잖아요. 내가 내 가치관을 온전히 해서 내가 내 방식으로 아이를 양육할 수도 있고 거기서도 얻는 것이 크니까 그쪽을 택하지 않았을까”

 

이지영 씨는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돌봄을 하는 것이 더 손해’라고 인식하고 있고, 돈을 더 많이 버는 사람은 더 많이 벌 수 있게 시장노동에 더 헌신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논리대로라면 시장 영역에서 높은 수입을 가진 사람은 더 열심히 일해서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고, 시장 영역에서 낮은 수입을 가진 사람은 돌봄을 해야 한다.

 

이들은 돌봄 노동은 시장노동보다 낮은 가치를 갖는 것으로, 돌봄보다는 시장 영역에서 교환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시간 사용의 효율성이 더 높은,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조부모의 돌봄 지원이 성인자녀 세대의 돌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 지점이다. 이와 같이 돌봄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돌봄에 대해 평가를 절하하는 기존의 통념을 수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조부모 덕분에 취업부부는 일상적으로, 세대적으로 재생산(돌봄)을 최소화함으로써 돌봄에 대해 잘 모르는 ‘돌봄에 취약한 이들’이 되고 있다.

 

시장중심의 삶, 돌봄의 가치는 계속 하락한다

 

한 개인이 직접 돌봄을 하면서 인식하게 되는 돌봄에 대한 중요성 인식은 사회 전 영역에서 돌봄 가치에 대한 인정으로 이어질 수 있는 힘을 가진다.(Held, 1993; 러딕, 2002) 돌봄을 최소화한다는 것은 이들이 돌봄의 경험을 통해 돌봄의 가치를 알 수 있는 기회를 갖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돌봄이 갖는 사회변화 가능성을 본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의 돌봄 결합’이 젠더 차이와 젠더 불평등을 약화시키는데 핵심이라고 전제하고, 남성을 돌봄 영역에 결합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제시해왔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부부 간에 ‘보편적 돌봄 제공자/이인 소득자·이인 돌봄자’라는 성평등한 시민상(Gornick and Meyer, 2009)이다.

 

그러나 한국에선 조부모의 돌봄 지원을 통해 취업부부가 돌봄을 최소화하고 있다. 취업부부들에게 있어서 돌봄은 ‘안 할수록 좋은 것’이 되고, 시장노동이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이 되고 있다. 이러한 시장중심적인 삶은 ‘돌봄을 하지 않고 시장에서의 생존 및 성공만을 중시’해온 남성들의 삶과 같은 것이다. 시장 가치를 중시하며 돌봄이 분리된 ‘남성적 삶’을 지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노동시장에서 시장 가치만을 중시하는 이들이 생존한다는 것은 ‘돌봄이 시장 영역에 통합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부모의 돌봄 지원 현상은 돌봄을 지속적으로 사적인 영역의 문제로 볼 뿐 아니라, 돌봄에 대한 기존의 저평가를 수정할 수도 없다.  (김양지영)  여성주의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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