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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선 아이도, 어른도 누구도 고립되지 않아

‘사토’에서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만나다



일본 오사카시 니시나리구에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모여드는 여인숙 골목인 가마가사키가 있다. 이 동네에는 아이도, 어른도 고립되지 않기 위한 네트워크가 존재한다.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는 이상이 실현되는 곳

 

1990년대 중반, 니시나리구에서는 아이를 데리고 있는 여성노숙인이 긴급보호 조치되거나 아버지의 폭력 때문에 긴급 도망을 간 가족 등, 개인의 대응으로만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했다. 그래서 어려운 환경에 놓인 어린이들과 이들의 보호자를 지원하기 위해 행정과 민간단체, 그리고 지역사회의 네트워크가 참여하는 연락모임과 사례회의 등이 중학교 학군 단위에서 추진되었다.

 

이 노력을 니시나리구 전역으로 확대하기 위해 2000년 5월에 발족된 것이 ‘우리 동네 니시나리 육아넷’이다. 당초에는 구내 38개 단체가 참여했지만, 지금은 영유아 및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시설과 자원봉사단체 등 70여개 단체들이 함께한다.

 

▶ 니시나리쿠 네트워크 중 하나인 <어린이 사토>의 공간 정문.  ⓒGala Film/Nondelaico

 

육아넷의 설립 취지는 ‘고립되거나 배제되는 어린이와 어른이 없게 하자’는 것. 지역에는 다양한 부모-자녀 관계가 존재하며, 그만큼 다양한 환경에 놓인 어린이들이 있다. 그중에는 부모가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가족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아이들은 하루하루 자란다.

 

설령 어떤 상황이 닥친다 해도, 아이들에게는 건강하게 자랄 권리가 있다. 온전히 애정을 쏟아주는 어른들이 아이들 곁에서 지켜보아 줄 필요가 있다. 만약 아이를 낳은 부모가 그렇게 해줄 수 없다면, 누군가 다른 사람이 아이들을 키우면 된다. ‘마을이 다 같이 아이를 키운다’는 이상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육아넷이다.

 

아동복지법 개정으로 각 지자체에 설치하도록 의무화된 ‘요보호아동대책지역협의회’가 니시나리구에선 ‘아동학대방지 육아지원연락회의’라는 이름이 붙었다. 아동학대를 방지하는 것은 육아를 지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의미에서다. 이 연락회의도 육아넷 속에 포함되어 있다.

 

니시나리구에선 중학교 학군별로 ‘학구 보호회의’가 월 1회 열린다. 이 회의에서 학대나 방치 등의 문제가 걱정되는 아이들 사례를 하나하나 들어가며 구체적으로 누가, 어떻게 보호할지 협의한다. 아동위원과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등 관계기관의 다양한 상담 사례와 정보가 교류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보다 전문적이고 총체적인 지원이 필요한 경우엔 ‘개별 사례회의’도 수시 개최한다. 이런 실천은 아마 일본 전국을 통틀어보아도 유일할 것이다.

 

누구든지 받아들이는 ‘어린이 사토’

 

니시나리구 네트워크 중의 하나인 ‘어린이 사토’(사토는 마을, 시골, 고향 등을 뜻함)는 비영리법인으로 아동의 보육과 긴급 일시보호, 생활장소 제공 등의 활동을 한다. 1977년, 어린이 놀이터가 전혀 없었던 가마가사키에 쇼호 도모코 씨(현재 ‘어린이 사토’ 관장)가 어린이 놀이터를 만들고자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지금 이곳은 필요로 하는 사람 누구든 이용할 수 있다. 어린이도, 어른도, 장애가 있어도, 외국인이어도, 다른 지역에서 도망 온 사람도 누구든 받아들인다. 보통 어린이들을 위한 시설들은 아동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부모의 동의나 교사의 허가를 필요로 하지만, 이곳은 부모로부터 도망쳐온 어린이도 받아들일 수 있다.

 

‘어린이 사토’는 놀이터이기도 하고 쉼터이기도 하다. 공부방이기도 하고 생활공간, 상담실이기도 하다. 주말과 공휴일에도 운영되며 뭐든 무료다. 밥만 먹으러 이곳에 오는 아이도 있다. 마음이 힘든 어른들도 잠시 쉬어가려고 이곳을 찾는다.

 

▶ ‘어린이 사토’를 무대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사토에 오면 되잖아>(시게 요시키 연출) 중. ⓒGala Film/Nondelaico

 

이곳의 활동 중 하나로 ‘어린이 야경’이 있다. 추운 겨울밤, 어린이들 몇 명이 그룹을 이뤄 판잣집을 방문한다. 예전에 아이들은 노숙하는 사람들을 보며 “더럽다, 무섭다, 게으르다”고 차별적인 시선을 보냈다. 불씨를 던지거나 침을 뱉는 사건도 일어났다. ‘어린이 사토’ 활동가들은 이러한 사건을 가슴 아프게 받아들였고, 일단 노숙인들에 대해 알고 그들의 마음을 듣기 위해 야경을 시작했다. 야경에 나서기 전엔 학습 모임을 연다. 노숙자들의 생활이나 일용직, 젠더(왜 아저씨가 많은가)의 문제 등에 대해 공부한다. 일용직 노동자들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이들과 직접 만나면서 자신도, 상대방도 한명 한명이 소중한 존재라는 점을 깨닫는다.

 

‘어린이 사토’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 안심하고 들를 수 있는, 마음의 쉴 곳이 되어주듯이 니시나리구에는 이와 유사한 장소나 놀이터, 공부방, 단체 등이 몇 개나 있다. 어른이든 어린이든 누구도 고립되지 않도록 지역사회가 똘똘 뭉쳐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오모리 준코)

 

[인터뷰] ‘사토에 오면 되잖아’ 시게 요시키 감독

 

38년간 동네의 사랑방 역할을 해 온 ‘어린이 사토’에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사토에 오면 되잖아>의 시게 요시키 감독의 얘기를 들어보자.

 

“영상 관련 전문대학에 다닐 때, 사회적 성향의 영화를 찍고 싶어서 가마가사키에 갔습니다. 우연히 ‘어린이 사토’ 앞을 지났는데요. 안에서 웃통을 벗은 아이가 맨발로 후다닥 뛰어나오더니, 금발의 아프로 머리를 한 스태프가 쫓아 나왔다가 쫓고 쫓으며 다시 안으로 들어가더라고요. 깜짝 놀라 서 있는 제게 아이들이 ‘들어오라’기에 들어가 밤에 문 닫는 시간까지 함께 놀았어요. 사토 아이들과 놀 때는 진심을 다해 놀아야 돼요. 그게 즐거워서 그 후로도 사토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2012년 하시모토 시장 하에 오사카시의 독자적 정책이었던 ‘어린이집 제도’가 폐지되면서(어린이집은 어떤 어린이든 와서 놀고 공부할 수 있도록 ‘무료’로 제공되는 공공시설이었으나, 유료 서비스인 ‘부재중 아동 대책사업’과 유사하며 공평성 문제가 된다고 하여 폐지됨), 사토 역시 존속의 위기에 빠졌을 때가 있었죠. 그때 평소에 내가 제일 좋아했던 장소에서 가장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토는 누가 와도 좋은 어린이들의 놀이터죠. 사토의 활동가들 역시 진심으로 아이들과 함께 놀면서, 아이들이 힘든 일을 겪을 때 아무렇지 않은 척 조언해줄 수 있어요. 이들의 부모도 마찬가집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발달장애 자녀를 둔 엄마는 자신이 아이를 때릴 것 같은 상황이 되면 아이를 사토에 맡기러 옵니다. 사토 사람들은 그 엄마의 등을 쓰다듬으며 이야기를 들어주지요. 그리고 아이를 맡아줍니다.

 

엄마와 함께 생활하지 못하는 여고생도 있습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매우 아끼면서도 자신이 떠안고 있는 고통과 서투름 때문에 함께해주지 못하는 거죠. 부모와 아이들이 너무 힘들지 않게, 좋은 거리감을 갖게 하고 그 사이에 사토 사람들이 있어줍니다.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가족의 형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상 누구에게나, 곁에 사토 사람들 같은 이들이 있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사토에 오면 되잖아>는 도쿄를 비롯한 전국 극장에서 순차 개봉 중이다. (가시와라 토키코)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여성주의 언론 <페민>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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