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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만 유독 ‘황혼육아의 굴레’ 시달리나

<돌봄의 세대 전가>① 조부모 양육의 원인은?



※ 취업부모의 양육 책임과 부담이 조부모에게 전가되는 이른바 ‘조부모 양육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돌봄의 세대 전가’ 현상이 왜 발생하였으며 어떤 문제를 대두시키고 있는지,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기사를 연재합니다. 필자 김양지영 님은 여성주의 연구활동가입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조부모 양육 전성시대, 어떻게 보아야 할까


‘황혼육아’, 엄마, 아빠를 대신하는 ‘할마 할빠’란 말들이 대중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각종 미디어에서는 부모가 아닌 조부모를 대상으로 한 손자녀 양육법을 이야기한다. 한편에서는 손자녀 양육으로 골병드는 조부모에 대한 이야기들도 넘쳐난다. 우린 지금 조부모 양육 전성기를 맞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자녀를 둔 취업여성들은 많은 경우 부모, 혹은 시부모의 양육 지원을 받으며 일을 하고 있다. 2012년 보육 실태 조사에 따르면 영아의 경우 35.1%가 조부모 양육 도움을 받고 있으며(서문희 외), 제2차 아동 패널에 따르면 만 2세 미만 영아를 둔 취업모의 경우 조부모가 대리 양육을 맡아주는 사례가 전체의 80.5%를 차지하고 있다.(이정림 외, 2010)

 

이는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자를 보는 것이 오히려 아이들 정서에도 좋고, 부모 또한 양육을 한시름 놓을 수 있어 긍정적이라는 연구도 상당하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의 조부모의 손자녀 양육 현상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주로 부모가 가끔 바쁠 때, 아이가 아플 때 같이 보조적인 상황에서 조부모 양육이 이뤄진다. 반면 우리는 조부모가 부모를 대체하는 강도 높고 집중적인 양육을 하는 대리 양육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 자녀를 둔 취업여성들은 많은 경우 부모, 혹은 시부모의 양육 지원을 받고 있다.  ⓒ김양지영


손자녀를 양육하는 여성노인은 주 평균 47.2시간 동안 손자녀를 돌보는 것으로 나타난다.(백선정 외, 2011) 그러다보니 노인들 사이에는 ‘손자녀 안 봐주는 방법’ 등이 공공연하게 이야기되고 있다. 아이 양육을 맡지 않기 위해 멀리 이사를 가기도 하고, 육아스트레스가 심해 이민을 가고 싶다고 말하는 노인들도 있다.

 

젊은 취업 부부들은 당연히 부모가 아이를 봐줘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다른 부모들처럼 손주를 안 봐주는 자신의 부모를 이해하기 어려워하기도 한다. 심심치 않게 형제들 간에 조부모를 두고 양육 쟁탈전이 발생하기도 하고, 그로 인해 갈등을 겪는 등 조부모 양육을 둘러싼 다양한 현상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몇 년 전부터는 조부모 양육 현실에 대한 실태조사도 이뤄지고 있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 지원 안도 제시되고 있다. 그럼, 조부모가 손자녀를 잘 양육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해법일까? 조부모 입장에서 본다면 이들의 노후 삶의 질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조부모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취업 부부들은 친족 자원이 없다는 사실을 한탄할 것인가? 조부모 지원을 받는 취업부부들은 일도 하고 아이도 키울 수 있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행복한 이들인가?

 

조부모는 손자녀 양육을 통해 성인 자녀 세대의 경제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사회 생산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서비스 제공자인가? 과연 조부모의 돌봄 지원은 우리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 기획 기사를 통해서, 한국 사회에 널리 퍼진 취업부부를 위한 조부모의 손자녀 양육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어보고자 한다.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지 묻고, 이러한 상황이 미칠 사회적 영향에 대해서 고민해보자.

 

공보육의 질이 높아지면 해결된다고?

 

왜 유독 한국에서만 ‘괴로운 황혼육아’, ‘황혼육아의 굴레’란 말들이 나올 정도로 조부모가 성인 자녀를 대신하는 강도 높은 대체양육을 하는가.

 

세계적으로 조부모 양육 지원은 해당 국가의 공보육과 공교육 체계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크리츠(Kriz, 2005)는 복지국가 체제가 다른 영국, 독일, 스웨덴 세 나라를 비교해 가족 정책(부모 휴가와 공보육)이 어떻게 아이 돌봄에 할머니를 결합시키는데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았다.

 

스웨덴은 부모의 긴 휴가와 질 좋고 이용이 용이한 보육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할머니가 ‘제2의 엄마’가 되지는 않는다. 그에 반해 영국과 독일은 3세 미만 아이의 보육에 있어서 가족정책의 미비로 인해 할머니가 ‘제2의 엄마’가 된다. 이처럼 보육 정책과 연관시켜 분석해본다면, 한국은 영국과 독일처럼 3세 미만 아이 보육과 관련한 정책이 잘 마련되어 있지 않아 조부모의 지원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조부모 양육 지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보육의 질을 높이고 이용 가능성을 높이면 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많은 연구자들이 해당 국가의 공보육과 공교육 체계가 여성의 시장노동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한다. 한국에서도 자녀를 둔 여성의 시장노동은 공보육의 문제로 다뤄지고 있다. 보육시설 운영 시간이 짧아 맞벌이 부부가 이용하기 어려우니, 시간 연장 보육이 필요하며, 보육시설의 질을 높이기 위해 각종 평가 인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제대로 된 공보육 체계를 갖추지 못한 한국에서 이러한 설명은 충분한 타당성을 갖는다. 공보육 질이 높아지면 취업부모의 일-가족 균형의 어려움이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보육의 질을 높이는 문제와 함께 취업부모가 일하고 있는 노동 현실도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 국가 중 두번째로 장시간 일하는 나라다. 연간 노동 시간이 2,090시간으로 OECD 평균 1,775시간에 비해 현저히 길다.(OECD, 2013) 부모의 노동 시간이 이렇게 길진대, 공보육의 질이 아무리 좋아진다 할지라도 취업부모들은 다른 대리 양육자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많은 부모들이 자신들의 노동 시간에 맞춰 아이가 장시간 시설에 있는 것은 원치 않는다. 한국 사회의 돌봄 정서상, 장시간 보육시설에 남아있는 아이들은 맞벌이 저소득층의 방치된, 불쌍한 아이들로 인식된다. 이를 반영하듯 보육시설의 운영 시간에 대한 한 실태조사에서도 ‘시설을 법정 운영 시간보다 더 길게 운영하는 방안’에 대해 맞벌이, 홑벌이 가구 모두 상대적으로 필요성을 낮게 인식하고 있다.(김은정·이진숙·최인선 외, 2014) 그래서 맞벌이 부부들도 조부모의 양육 지원을 받으면서 오전 9-10시와 오후 4-5시 정도까지만 보육시설에 보내고 있다.


▶ 많은 부모들이 자신들의 노동 시간에 맞춰 아이가 장시간 시설에 있는 것은 원치 않는다.   ⓒ김양지영

  

그렇다면 오랜 시간 아이를 시설에 맡기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돌봄 정서가 문제일까? 부모가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아이들은 부모의 노동 시간에 맞춰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보육시설에 있어야 하는가? 아이의 안녕은 중요하지 않은가? 그렇게 오랜 시간 아이를 시설에 맡겨놓고 일하는 부모는 일도 하고 아이도 키울 수 있어 행복할까? 바로 이 점, 보육의 질이 아무리 높아진다고 할지라도 부모의 노동 시간이 장시간이라면 시설에만 의존해 아이를 키울 수 없기 때문에 조부모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시 퇴근이 불가능하니까…  

 

현재 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기는 취업부모의 ‘시설 이용을 희망하는 시간’과 부모의 ‘노동 시간’ 간에는 격차가 존재한다. 취업부모의 보육시설 이용 시간은 영아의 경우 1일 평균 8시간 56분인 반면, 이용 희망시간은 10시간 19분으로 1시간 23분의 격차가 나타나고 있다. 아동기의 경우 부모의 퇴근 시간과 아이가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평균 2시간 22분의 격차가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 격차도 주 40시간 근무(통근 시간 평균 2시간 포함)를 전제로 해 나온 시간 격차다.

 

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기는 취업부모의 노동 시간은 상대적으로 짧은 법정 노동 시간 이내로 일하는 이들이 상당하다.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경우 노동 시간이 8시간 이내인 경우가 69.4%(8시간 40.8%, 8시간 이내 28.6%)이다. 정시 퇴근을 하는 이들이 51.6%이고, 64.3%가 주로 엄마와 함께 등원, 하원을 하고 있다.(홍승아·김은지·이영미, 2010) 즉 보육시설만 이용해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람은 ‘정시 퇴근’이 가능한 직장에 다니는 이들에 한정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실제 조부모 돌봄 지원을 받는 많은 취업부부들은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었다. 장시간 노동으로 아이들을 돌보기 어려워 조부모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겨 직접 돌보려면, 정시에 퇴근할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부부 간 아이돌봄을 조율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업무 시간을 예상하고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자신의 퇴근 시간을 미리 예측하지 못하며, 노동 시간을 스스로 조정하지 못한다.

 

박가연씨는 평상시엔 부모의 양육 지원을 받다가 야근이 많아지면 아이를 주중에 시부모집에 보내고 주말에 데려와서 돌본다. 그녀는 자신의 퇴근 시간을 예측할 수 없다. 일이 없으면 정시 퇴근이 가능하지만, 일이 많은 날에는 밤 11시, 12시까지도 일한다. 그렇게 일이 많은 날이 많다.

 

“규정 시간은 8시 반부터 (오후) 5시 반까진데. 일이 없을 때는 5시 반에 가요. 저희는 다. 분위기가 그냥 상사 있어도 가는 편이라. 근데 일이 있으면 11시 반에도 가요. 문제는 일이 많은 날이 많아요. 요즘에 애기를 시댁에 보낸 이유가, 신랑이 혼자보기가 너무 버거운 거예요. 제가 늦게 가니까. 그래가지고. 근데 엄마도 아침저녁으로 (애기) 보니까. 그렇다고 엄마 집에서 9시 10시까지 놓기에는 어머니가 너무 힘들고, 그래서 단기간만 보니까 시댁에 그냥 잠깐 보낸 거죠. 퇴근시간이 딱딱 정해져서 칼퇴근하는 데면 괜찮은데, 업무가 시간 딱 됐다고 손 딱 놓고 나갈 수 있는 업무면 되는데, 그렇지 않은 업무가 대부분이니까.”

 

조부모 양육의 진짜 원인은 ‘장시간 노동’

 

장시간 일하는 취업 부부가 공보육에만 의존해 아이 돌봄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현실인지는 강지민씨의 사례에서도 잘 드러난다. 부부 모두 금융업계에 종사하는 강지민 씨는 첫째아이를 출산한 후 시부모 집 근처로 이사했다. 첫째가 7살(둘째가 4살) 때까지 시부모의 전적인 양육 지원을 받았다.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해 시부모 집과 멀어지면서, 강지민씨 부부는 서로 퇴근 시간을 조율해 직접 아이들을 돌볼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한 주도 제대로 시간 맞춰 애들을 데리러 올 수 없었다. 결국은 어머니의 출퇴근 돌봄 지원을 받다가, 그것도 여의치 않아 어머니가 주중에 동거를 하면서 지원하는 형태로 돌봄 지원을 받게 되었다.

 

“우리 힘으로 해보자, 이제부터는 자립을 해보자, 해서 준영이를 (초등)학교에 방과후가 있으니까 7시까지 하고, 준우를 여긴(어린이집) 8시까지 봐준다고 하니까. 준영이 아빠가 바로 (애들) 보내고 출근을 해보는 걸로 해보자. 그렇게 해서 한. 근데 둘 다 너무 여기 동네도 낯설고 어설프고 하니까, 시어머니가 일주일 정도만 와서 한번 봐주시고. 그렇게 했었는데 안 되겠더라고. 7시까지 우리가 올 수가 없더라고. 첫 주 일주일도. 누구라도 와서 애들 찾아서 가야되는데.”

 

“어린이집도 7시까지 있는 애들이 그렇게 많지 않은 거예요. 근데 뭐 차 막히고 늦어버리고 그러면 도저히 이것도 저것도 불안해서 안 되겠어서, 엄마한테 얘기를 하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 엄마는 집이 OO동이야, 버스 한번 타면 왔다 갔다 할 수 있어서 ‘엄마 아침에 와서 애들 보내주고 저녁때 집에 가서 주무시고.’ 왜냐면 대개 불편하다는 거야. 같이 안 살아보다가 사니까. 근데 인제 늦게 오는 날 너무 많고 우리가 그때. 집에 가시기 좀 그렇고 하루 이틀 자다보니까. 그래 월요일날 (우리집에) 왔다가 금요일날 저녁에 (엄마집에) 가는 게 낫겠다.”

 

강지민씨와 같이 조부모의 양육 지원을 받는 사례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이가 있으면서도 전일제로 일하고 있는 여성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부모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긴 노동시간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의 장시간 노동 현실은 전일제 유자녀 취업 부부들이 조부모 지원을 받지 않고서는 일을 지속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실제 많은 여성들의 시장노동 단절(경력단절) 현상은 자녀를 맡아줄 양육자를 찾지 못하거나, 긴 노동 시간과 업무 시간의 경직성으로 인해 일-가족 균형에서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나타난다.(김영옥·오은진·한지영, 2014)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조부모 양육 전성시대는 취업부모의 장시간 노동에 따른 결과이다. 일-가족 균형의 문제가 ‘노동시간 단축’의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서는 해결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부모의 장시간 노동은 질 좋은 공보육 시설을 따지기 이전에, 공보육에 대한 접근성 자체를 낮추고 있다. ▣ 김양지영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손자녀 양육은 할머니의 양육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지만, 할아버지가 양육을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조부모 양육’으로 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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