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제주에서, 할망에게 길을 묻다

<노년여성의 경험을 잇다>2. 제주 할망과의 만남



※ 노년여성들이 살아온 생의 이야기와 다양한 경험이 역사 속에 그냥 묻히지 않고 사회와 소통하며 다음 세대와 교류할 수 있도록, 노년여성을 만나 인터뷰 작업을 해 온 여성들의 기록을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할머니, 할머닌 다시 태어나면 뭐가 되고 싶어요?”

“사람은 죽으면 끝. 다시 태어나면 무시것도(무엇도) 안 되어.”

“저는, 사람 말고 큰 낭(나무)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이신디(있는데)….”

“낭? 큰 낭은 인내하는 거주게(거지). 가지 끊어당(끊어다가) 사람 살리는 거 아니가? 좋은 생각이다만, 다시 태어날 생각 말고 지금부터 경(그렇게) 살라. 그추룩 베풀고 살당보민(그렇게 베풀고 살다보면) 부자 되곡 성공헌다. 경허고(그리고) 결혼은 꼭 허라이(해라). 나 하나로 세상에 나온 사람이 스물이라, 손주까지 합쳥이네(합쳐서). 촘으멍 살당 보민(인내하며 살다 보면), 다 살아지는 거라. 이녁 그림자만 이녁이 잘 만들엉 살암시민 돼.(자신의 그림자만 스스로 잘 만들고 살면 된다).” -제주 서부 중산간 마을의 대농 할망(현 80세) 말씀 중에서

 

보잘 것 없는 나의 질문에 돌아오는 할망의 대답은 마치 종합선물세트 같다. 주려고 계획한 것도, 받으려 의도한 것도 아닌 이 선물은 할망과의 만남 끝에 언제나 약속이라도 한 듯 생겨나는 신기한 물건이다.

 

지난 4년간 많은 제주의 할망(때로 하르방)들을 만나며 단 한 번의 예외 없이 나는 이 선물을 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늘 받는 게 죄송한 마음에 뭐라도 드릴 것이 없을까 생각한 나는 고물상에서 산 아코디언을 등에 이고 다니며 지나간 옛 노래를 함께 부르는 재롱을 떨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도 따지고 보면 자기만족에 불과할 뿐, 아무리 궁리해도 할망의 선물에 보답할 방도는 없는 것 같다.

 

▶ 제주에서 할망들을 만나며 나는 예외 없이 선물을 받았다.  ⓒ 정신지(인터뷰 작가)

 

제주, 죽은 돌이 건네는 살아있는 선물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으니 빨리 좀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입에 달고 사는 팔구십 할망들은 자식 손주 행복하게 사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바랄 게 없는 분들이다. 그러고는 정말 아무 예고 없이 훌쩍 세상을 떠나간다. 각오는 되어있지만, 알고 지내던 할망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 것은 몇 차례 반복되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슬픈 일이다. 이부자리만 남은 텅 빈 할망의 방 앞에서 혼자 훌쩍이거나, 홀로 남겨진 하르방이 묵묵히 담배를 태우는 것을 지켜보는 것. 기록되지 못한 삶의 기억들이 찍어내는 소리 없는 마침표가 하나둘 늘어가는 요즘이다.

 

할망이 떠나간 집은 꽤 오랜 시간 폐가로 방치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붕이 무너지고 기둥과 마루가 사라진 제주의 집은 돌덩이에 불과하다. 흔적만 남은 부엌과 마루의 돌 틈 사이로 잡풀과 대나무가 무성한 폐가를 보며, ‘사람이 죽어 흙이 되는 것처럼 제주의 집은 죽으면 돌이 되는구나.’ 생각한 적이 있다. 그도 그런 것이, 언젠가 만난 우리 동네 돌담장인 하르방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제주도는 한라산이라는 큰 ‘살아있는 돌’과 그곳에서 잘려나간 작은 ‘죽은 돌’로 이루어진 돌 천지 땅이라고.

 

살아있는 큰 돌 위에 태어난 할망 하르방들은 그 많은 죽은 돌을 허물고 쌓기를 반복하며 삶을 일구어 온 사람들이다. 4.3사건(1948년 4월 3일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한 남로당의 무장봉기와 미군정의 강압이 계기가 되어 제주도에서 일어난 민중항쟁. 이승만 정권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된 사건)으로 인해 제주의 수많은 마을이 불태워지고 무고한 마을 사람들이 학살을 당한 그때에도, 초토화된 마을의 흔적은 돌이 되어 남아 있었다. 그 돌을 주워서 새롭게 집을 만들고 죽은 자를 묻은 무덤가와 집과 길의 경계에 담을 쌓았으니, 제주의 돌은 오랜 시간에 걸쳐 무한대로 리사이클 되어 온 섬의 뼈 같은 존재다. 

▶ 사람이 떠나면 숲으로 돌아가는 집   ⓒ정신지

 

하지만 최근 제주의 사정은 크게 바뀌었다. 할망이 떠난 집은 폐가가 되어 더이상 돌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 돌을 이용해 새 집과 담을 쌓을 수 있는 기술을 가진 하르방들 역시 하나둘 소리 없이 세상을 떠난다. 재빠르게 허물어진 할망의 집은 게스트하우스나 카페로 바뀌고, 텃밭에는 파와 콩 대신 예쁜 꽃과 나무가 심어진다. 새로 온 사람들은 이따금씩 그곳에서 장터나 파티를 열기도 한다. 마을에 새 사람이 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노인만 가득하던 곳에 젊은이와 아이들이 북적이는 것은 마을에서 바라던 바이기도 하다. 하지만, 새로운 자의 꿈과 희망에 넘치는 이야기가 시끌벅적 제주에 터를 잡는 동안, 떠나간 자와 이미 그곳에 있던 자들의 이야기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그나마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제주의 돌담을 보고 있자면, 죽은 돌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오랜 시간 담을 쌓아 올렸을 누군가의 이야기가 밑도 끝도 없이 궁금해진다.

 

“…그때, 마을이 모조리 불에 타버리고, 사람들은 살려고 피신을 갔어. 한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다 함께 살았는데, 그것도 아주 잠시였지. 선생님들이 죄다 끌려가서 죽고, 학교도 모조리 불살라버렸어. 사람들도 많이 죽고. 남은 마을 사람들이 해안가 근처로 가서 돌담 위에 새(짚)를 얹은 엉성한 초가집을 짓고 다 같이 거기 살았지. 그때 제일 처음에 한 일이 집 근처 성담을 쌓는 거였어. 만리장성처럼 말이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돌을 주어다가 담을 쌓았는데, 아마 그게 내 나이 아홉에 처음으로 쌓아본 돌담이지. 그러고 나서 4.3사건이 끝나고, 다시 마을로 돌아왔어.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마을을 재건하려니까, 또 제일 먼저 한 일이 담을 쌓는 일이었지. 집 만드는 축담, 길 만드는 올렛담, 화장실에 통싯담, 먹고살라고 밭을 만들면 밭에는 밭담, 게다가 죽은 마을 사람들 무덤을 만들면서 거기에 산담. 그러고 보니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참 많이도 쌓았네.”

 

“…모르는 사람들은 돌담이 그냥 아무 돌이나 주워와서 아무렇게나 쌓아 올린 줄 알고, 협동해서 쌓으면 금방 쌓이는 줄 알아. 하지만 돌 하나하나에 다 생각이 들어 있어. 여럿이 같이 쌓을 때는 내가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다른 이의 의견을 듣지 않으면 안 돼. 한 사람이 잘못하면 힘들게 쌓아 올린 것도 한방에 무너지거든. 그리고 요즘에는 멋지고 튼튼해 보인다고 돌을 기계로 반듯하게 잘라서 쌓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게 정말 좋은 것이 아니야. 오히려, 구멍이 뚫려서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담이 더 강해. 비결은, 구멍이 있으니까 쓰러지지 않는 거야. 그리고 반듯하지 않고 구불구불 쌓아 놓으니까 비바람이 불어도 견뎌내는 거지. 근데 요즘 시에서 용역을 보내서 마을에 새로 쌓는 돌담은 영, 아니야.” -돌아가신 돌담 장인 하르방의 말씀 중에서

 

인터뷰의 사기술, 내가 할망을 만나는 이유

 

▶ 할머니 주름 속 셀 수 없는 이야기 ⓒ정신지


나는 할망과의 ‘만남’을 기록하고 사람들과 나눈다. 이것은 일이라기보다는 스스로 낸 10년 치의 숙제다. 몇몇 할망들은 나를 ‘약장시’(약장수)라 부르기도 하는데, ‘인터뷰 작가’라는 호칭보다 훨 마음에 드는 호칭이다. 물론 ‘약장수’도 ‘인터뷰 작가’도 둘 다 사기꾼이란 점에서는 마찬가지일지 모르겠다.

 

(고백하건대) 내가 만난 그 어느 할망도 나에게 인터뷰를 당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그 시절의 약장수 역시 단 한 번도 진짜 약을 판 적은 없다. 듣지도 않는 만병통치약을 할망들의 쌈짓돈과 맞바꿔 간 약장수는 물론 욕먹어 마땅한 사기꾼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기억을 남기고 간 약장수를 지금껏 못마땅해 하는 할망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약장수를 회상하며 배꼽 잡고 웃는 할망들을 나는 여럿 만났다. 그중 가장 재미있었던 일화는 시력을 좋게 한다는 ‘빤스’(팬티)를 팔던 약장수에 관한 이야기였다.

 

할망을 만나는 것을 10년 치의 숙제라고 말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나와의 만남을 즐거운 기억으로 맞바꿀 수 있을 만큼 이제 그들의 기억에 충분한 저장 공간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치매’라는 병은 전염병도 아닌 것이 동네 노인들 사이에서 하루하루 번져나간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는 할망이 늘어나는 것처럼, 치매에 걸려 더는 나를 알아 보지 못하거나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기는 할망도 나날이 늘어만 간다. 치매로 힘든 것은 사실 할망 당사자가 아닌 가족과 주변인이다. 홀로 감당하기 힘든 커다란 기억들을 평생 등에 짊어지고 살아온 할망들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마지막 떠날 여행의 채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할망은 그저 가벼워지고 싶을 뿐이다.

 

치매에 걸려 오락가락하던, 언젠가 만난 하르방 생각이 난다. “서울 의사가 말했어. 내 머리에는 상처가 많다고. 그것도 아주 오래전에 받은 뇌의 깊은 상처. 그것을 그냥 두어서 치매가 심해진 거래.” 일제강점기와 해방, 4.3사건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그가 보아온 폭력과 쟁탈의 기억 속에는 죽어갔던 사람들의 얼굴 하나하나가 상처가 되어 남았다. 게다가 그는 언젠가 농민운동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잡혀가 빨갱이 누명을 쓰고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혀를 깨물어 자살을 시도하려 했으나, 순간 들려온 “죽지 말고 살아 남아 증인이 되어라”는 환청을 하느님의 목소리라 믿으며 팔십 평생을 살아 낸 하르방.

 

“내가 죽을 때까지 이렇게 가끔 내 이야기를 들으러 와줘.” 부탁하던 그가 더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던 순간, 나는 기억을 잃어버린 노인들의 치매는 그들만의 질병이 아닌, 치료 시기를 놓친 우리 모두의 병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살아있는 증인이 기억을 잃어버릴 때까지 아무 손도 쓰지 못한 허탈감으로 그들의 치매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의 치매는 곧 이 사회의 기억상실증이기도 하다.

 

내가 인터뷰라는 ‘사기술’을 써서라도 약장수처럼 할망을 만나고 싶은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뻔히 속을 것을 알면서도 일 년에 몇 차례 마을을 찾는 약장수가 기다려지던 할망의 마음과, 죽기 전에 또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러 찾아와 달라며 직접 만든 녹즙까지 내주시던 하르방의 마음. 결국엔 ‘만남’이 만병통치약이고 ‘대화’가 보약이다. 그 시절의 약장수가 그랬듯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닌’ 만남이기에, 나그네인 나는 일단 자신의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펼쳐 보이는 트릭으로 그들을 만난다.

 

주말도 아닌 평일 오후, 한가하게 걷다가 눈이 마주치는 할망에게 다가가 그들이 쓰는 언어로 말을 거는 젊은이는 사실 존재만으로 트릭일는지 모른다. 그렇게 만난 이름 모를 할망의 집에서 이가 녹을 만큼 달짝지근한 커피를 마시며 밑도 끝도 없는 대화를 주고받는 ‘일’, 가끔 딴따라가 되어 트로트 뽕짝을 함께 부르는 ‘일’. (일인 듯 일이 아닌 것 같은) 이 일의 불안함이 가끔 나를 혼란스럽게 할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떠올리는 할망의 이야기들은 사실, 불안한 내 청춘을 위한 만병통치약이 되기도 한다.

 

할망이기 이전에 여자인 그들에게 나는 묻고 싶은 것이 참 많다. 무엇을 어떻게 견디며 여기까지 왔는지,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은지, 지금 가장 그리운 사람이 누구인지…그렇게 나는 내가 스스로에게 궁금해 하는 소소한 질문들을 할망에게 묻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내게 있어 인터뷰는 그런 거다. 서로 만나고, 함께 대화하고, 다 같이 나누면 되는 내 남은 청춘의 보험 같은 거다.

 

▶ 할머니가 주시는 사랑.   ⓒ정신지

 

결국엔 마이스토리, ‘기록’이라는 내 오지랖의 정체

 

고향 제주에 돌아오기 전, 나는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본의 학교에서 ‘지역연구학’이라는 것을 배웠다. 한 사람, 한 집단, 한 사회에 대한 이해를 목적으로, 학문적 카테고리에 연연하지 않고 다중적인 관점으로 특정 지역사회를 조사해 나가는 것이 ‘지역연구’라 불리는 학문이다. 선생도 학생도 각자의 필드를 걷고 보고 사람을 만나며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을 해서였는지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는 딱히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선생에게 배운 게 있다면, 어떻게 걷고 보고 듣는가에 관한 자세는 결국 내가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와 일맥상통한다는 것. 그러니 좋은 선생은 좋은 필드워크(현장 조사)를 하며 기록을 남겼고, 개중에는 그렇지 못한 선생도 있었다. 대문자로 쓰인 굵직한 역사에 촛점을 맞추기 보다는 각 지역에서(혹은 지역과 지역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소시민의 삶에 귀를 기울이고,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연구 결과를 어떤 식으로든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모두의 공통된 사명감이었다. 물론 나는 그것이 성공하는 것도 보았고 실패로 끝나는 것도 보았지만 말이다.

 

나의 필드는 인도네시아의 발리섬이었다. 7 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필드워크를 하며, ‘비치보이’라 불리는 이주민 청년 노동자들의 꽁무니를 쫒아다녔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서핑을 가르치고 일본인 여성들을 유혹하는 젊고 멋진 바다 사나이, ‘비치보이와 그들을 둘러싼 세상’이 내 이십 대의 키워드가 되었다.

 

할망과 마찬가지로 비치보이도 그저 길을 걷다 우연히 만난 것인데, 그 만남 때문에 나의 인생이 바뀌어버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꿈과 희망을 찾아 발리로 모여든 인도네시아 청년들의 자초지종과 발리라는 거대 관광지의 속사정에 눈을 뜰수록, 글로발리제이션 같은 건 다 웃기는 소리고 세상은 부조리하고 불공평한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거미줄 같은 것이라는 결론만 남았다. 그러면서 점점 학문의 시스템이 요구하는 논리정연함이 싫어졌고, 불현듯 ‘내가 이 사람들을 연구해서 박사님이 되면 이들의 삶이 전 보단 나아질까?’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싫어져서 학교를 관뒀다. 12년, 재미로 시작한 일이지만 참 오래도 버텼다.

 

처음부터 공부가 하고 싶어서 일본에 간 건 아니다. 어릴 적부터 내게는 하기 싫은 일이 참 많았는데, 싫은 걸 안 하다 보니 결국 가 닿은 길이다. 대학에 가기 싫어 수능시험도 안 봤고, 반항기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한국사회에서 어른이 되는 것이 싫어 무일푼으로 일본에 건너갔다. 예나 지금이나 나의 삶엔 별다른 계획이란 건 없다. 오로지 하기 싫은 건 하지 않는다는 신념만으로 ‘간신히’ 버텨온 시간이었다.

 

참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들이 어떻게 지금의 그곳에 와 닿았으며, 무엇을 보고 어떻게 버티면서 살아왔는지에 관한 수많은 질문을 던져 온 지난 십여 년이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물어보지 못한 채 나는 절망했고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다시는 오기 싫었던 대한민국, 심지어 고향 제주에 누군가의 장난처럼 ‘툭’ 떨어지고 말았다. 벌써 4년 전의 일이다. 할망을 왜 만나게 되었느냐 물으면 잠시 들렀다 와야 하는 과거의 고백이다.


▶ 할머니 다방 커피.  ⓒ 정신지

 

‘살당 보민(살다 보면) 살아진다’

 

‘걷다 보니 뛰게 되고 뛰다 보니 넘어졌다’는 흔한 좌절과 극복의 라이프스토리를 할망들은 짧게 줄여 약속이나 한 듯이 단 여덟 글자로 표현하곤 한다. ‘살당 보민(살다 보면) 살아진다.’

 

그들의 파란만장한 자초지종과는 달리 나의 첫 좌절은 단순히 ‘실연’에서 비롯되었다. 결혼하기로 약속까지 했던 한 남자가 잠시 내가 제주에 귀국해 있는 사이에 이메일 한 장을 남기고 나를 떠나버린 것이다!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이 사건에 관해 할망들 말씀처럼 ‘살다보니 살아졌다’는 태연함을 지닌 여자가 되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 누구와도 말을 섞고 싶지 않아 아무 말 없이 일 년을 보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목적도 이유도 없이 뚜벅뚜벅 인적 드문 시골 마을을 걷다보니 곳곳에 버려진 폐가들이 보였다. 떠나간 사람들의 기억이 머물러 있는 집을 들락거리며 사진을 찍었다. 마당 한켠에 잔뜩 겨울용 땔감을 쌓아놓고 겨울이 오기 전에 떠나간 사람의 흔적, 오래전 멈추어 버린 달력과 시계에 쌓인 시간의 먼지. 그 곁에 선 내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오만가지 궁상을 떨다가 만난 것이 할망들이다.

 

“여기서 뭐 하냐?”, “뭘 훔치러 왔냐?”, 이외에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첫 만남의 한마디는 “난 예수 안 믿는다”이다. 그렇게 내 절망 스토리에 마침표를 찍으며 등장한 할망들과의 만남은 유쾌하기 짝이 없는 에피소드들로 나의 슬픔에 작은 빛을 드리우기 시작했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할망들은 자신이 경험한 더 큰 슬픔에 관한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시며 내 실연의 슬픔을 단숨에 집어삼키셨다.

 

그렇게 제주 할망 광신론자가 된 나에게 할망은 ‘희망’이었다. 미래라는 것은, 그 어떤 똑똑한 자의 계획과 전략이 아닌 할망 하르방이 지나쳐 온 과거의 심장으로 뛰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깨닫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린 것 같다. 하지만 학교를 뛰쳐나온 지금도 스스로에게 숙제를 내는 자신의 모습이 더는 싫지가 않다. 드디어 나는, 세상 먼 곳을 돌아다니는 여행을 멈추고 고향 제주의 시간을 여행하며 배낭의 무게를 조금씩 줄여나가기 시작한 것 같다. 발걸음이 가벼워져 좋고, 사회에 무언가를 환원해야 한다는 억지의 사명감이 아닌, 나그네 약장수로 내 갈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아 참 좋다. 결국, 이 모든 것이 내가 나를 위해 벌이고 있는 사기행각임을 고백하고 나니 더더욱 좋다.

 

▶ 제주의 할머니. 박제되어가는 해녀. ⓒ 정신지

 

“할머니,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지난 3년간 나는 신문에 제주할망과의 만남을 연재하거나, 라디오를 통해 할망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일을 했다. 그저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지만, 나눔을 통해 제주 할망들의 목소리가 어딘가에서 작은 위로가 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약장수인 나의 고민을 들어주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할망들께, 이번에는 결혼하기 싫은 친구의 고민과 취업이 걱정인 친구의 걱정, 친구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것 같다는 초등학생의 고민을 녹음해 가서 들려드렸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 이후 삶이 송두리째 바뀌어버린 유가족의 목소리도 할망에게 전했다.

 

지난 연말에는 90분 분량의 <할망의 희망상담소>라는 특집프로그램(제주CBS 노컷뉴스 라디오)을 제작하여, 할망이 상담사가 되어 젊은이들의 고민을 듣고 해결해 주는 상담소를 차려보았다. 작은 시도였지만, 노인이 이 사회의 ‘문제’가 아닌 ‘해법’이라는 사실을 모두와 함께 나눌 수 있었던 뿌듯하고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희망상담소를 만들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문지성이라는 예쁜 여고생 때문이다. 제주에서 태어나 안산으로 전학을 간 지성이는, 수학여행으로 제주로 오던 길목에서 꽃다운 목숨을 억울하게 잃었다. 할망과 대화를 하다 보면 사회이슈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가끔 세월호 이야기를 한다. 그럴 때마다 할망들은 여러 가지 연유로 가슴에 묻은 자식에 관한 이야기, 억울하게 먼저 간 4.3 사건의 희생자에 관한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곤 했다.

 

▶ 할망은 희망이다.   ⓒ 정신지


몇 번이고 이 이야기는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더 큰 위로가 될 것이란 생각을 했었지만, 나는 그저 여기저기 노란 리본 스티커를 붙이고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세월호 이슈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할망의 희망상담소>를 기획하던 중, 영화 <나쁜나라> 상영차 제주에 온 지성이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해 드리고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고민을 물었고, 지성이 어머니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할망께 이런 질문을 하셨다.

 

“…사랑하는 아이를 잃고 나서, 많은 사람들은 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고맙기도하지만 때로 그 위로조차 상처가 되어 돌아올 때가 있습니다… 4.3사건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한평생을 살아오신 당신께 묻습니다. 할머니, 저는 앞으로 이 긴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정말 궁금합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담긴 음성 파일을 나는 여러 할망과 함께 들었다. 반응은 한결같았다. 잠시 아무 말 없이 침묵하며, 가슴에 묻은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리시던 할망들은 결국 눈물을 머금고 내 말이 무슨 위로가 되겠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시다가, 크게 한숨을 쉬고는 나직이 말씀하셨다.

 

“…경해도(그래도), 살암시민(살다 보면) 살아진다. 나가(내가) 그추룩 행(그렇게 해서) 살았다…곁에 이시민(있었으면) 밥이라도 한 끼 촐려줄 건디(차려줄텐데)… 아맹(아무리) 힘들어도 어멍이 건강해야 한다. 아프지 말앙(아프지 말고) 밥 잘 먹어라. 나가(내가) 너 마음 다 안다…”

 

방송이 나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지성이 부모님께 고맙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과연 내가 받아야 할 메시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짧은 한마디가 나에게 준 가르침은 크다. 돌아가신 돌담장인 하르방이 일러주신 대로, 살아있는 돌에서 잘려나간 죽은 돌이 거친 바람을 막는 담이 되는 데 필요한 것은 누군가의 손길이다. 살아계신 할망들이 말씀하시는 대로, 우린 결국 ‘살다 보면 살게 되는’ 그런 막연한 시간 속을 여행하고 있는 작은 돌 같은 사람들이다.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노인들의 이야기 속에 내가 찾던 용기와 지혜가 선물처럼 숨어 있었던 것처럼, 내 안에 있는 모든 고맙고 소중한 것들은 모두 내가 아닌 곳에서 오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어떻게든 우린 만나면 되고, 대화는 나누면 된다.  정신지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